로마서 강해

로마서 강해(145)-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가족사랑 2024. 1. 5. 00:23

로마서 강해(145)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 로마서 16장 16절 -

 

본문 16하반절에서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말로 사도 바울의 문안인사는 끝을 맺고 있습니다.

당시 소아시아 지역 중심으로 퍼져 있던 모든 교회의 교인들을 로마교회 교인들이 얼마나 알고 있었겠습니까?

절대 다수의 교인들이 개인적으로는 서로 모르는 관계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 모르는 사람들로 구성된 모든 교회들이 로마교회 교인들에게 안부를 전한다고 인사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고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며 이방인의 사도로서 그의 사명은 오직 복음전파와 교회의 하나됨에 있습니다.

바울은 먼저 교회의 하나됨을 위해 이방인교회의 구제헌금을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하고자 합니다.

그런후에 그는 로마교회에 들러 성도들을 만나고 그들에게서 후원을 받아 서바나(스페인)로 갈 것입니다.

 

바울은 1절과 2절에서 뵈뵈를 추천합니다.

그리고 3절에서 16절에서는 로마에 있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일이 이름을 들어 개인적인 문안을 합니다.

바울은 뵈뵈를 ‘교회의 일꾼’이라고 부릅니다.

바울은 로마성도들에게 구체적으로 당부합니다.

“너희는 주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 줄지니”

뵈뵈는 아마도 로마교회에 이 편지를 직접 전달하는 목적으로 가는 듯 합나다.

뵈뵈 자매에 대한 추천이 나온 후에 기다란 인사목록이 이어집니다(316).

 

바울은 26명중 24명의 이름을 부르며 개인적으로 문안합니다.

이들은 과거 선교사역 과정에서 알게된 사람들입니다.

먼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에게 문안합니다(3절).

그들은 바울을 위해 자기들 목숨까지도 내놓을 정도로 헌신한 자들입니다.

이어 바울은 아시아에서 처음 열매맺은 이방인 그리스도인 에배네도에게 문안합니다.

유대인으로서 로마교인들을 위하여 수고를 많이 한 마리아, 바울의 친척으로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8절에서 15절에서 나머지 개인들과 그룹들에 대해 문안인사를 합니다.

「주안에서 사랑하는 암블리아, 그리스도 안에서 동격자인 우르바노와 스다구,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집안사람들), 바울의 친척 헤로디온, 나깃수의 가족중 주안에 있는 자들, 주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 주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 주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 아순그리도와 블레곤과 허메와 바드로바와 허마와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들, 빌롤로고와 율리아와 네레오와 그의 자매와 올름바와 그들과 함께있는 모든 성도에게 문안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긴 문안 인사를 끝맺으면서 로마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문안합니다.

 

바울은 이 문안을 통해 참된 성도의 교제는 교회와 교회, 더나아가 모든 교회와 모든 교회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울의 이 문안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같은 주님으로 섬기고 있는 모든 교회들이 영적으로 다 한 교회를 이루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성도(聖徒)의 교제- the communion of saints '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끼리, 교회 다니는 성도들 간에 주 안에서 교제하고, 사랑하며 지낼 수 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성도들 간에 가깝지도 않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않는 그런 관계로 지내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히려 사회에서 만난 동료나 친구와는 잘 지내면서 교회 성도들과는 가깝게 지내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모든 사람을 항상 똑같이 대해주고, 똑같은 사귐을 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초신자였을 때 성도들과 사귀고 교제했던 것과 어느 정도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서 사귀고 교제하게 되었을 때에는, 사귐의 기준도, 모양도 많이 달라집니다.

 

성도(聖徒)거룩한 백성을 의미합니다.

성도는 “구별된 무리라는 뜻으로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사귐은 다른 세상에서의 사귐과 달라야 합니다.

 교제한다는 말은  헬라어로 코이노니아(κοινωνία), 영어로는 휄로쉽(Fellowship)입니.

헬라어 ‘코이노니아라는 말은 문장의 구조에 따라서 여러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교제, 다른 곳에서는 교통한다는 말로, 또는 동참한다든지 참여한다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전반적인 의미는 서로의 유익을 위하여 교제하고 협동하며 사귀는 것을 말합니다.

'코이노니아'는 단순히 만나서 밥 먹고 차 마시고 이야기하는 정도의 교제를 말하지 않습니니다.

'코이노이나'는 필요할 때 도와주는 교제를 의미합니다.

함께 참여해 주고, 필요하면 물질로도 도와주는 것이 '코이노니아'입니다.

 

 

초대교회 공동체에서 '성도의 교제-코이노니아 (κοινωνία)'에 대한 모범을 봅니다.

사도행전 2장42~47절을 보면, 초대교회 공동체의 몇 가지 특성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에 몰두하며, 서로 사귀는 일과 빵을 떼는 일과 기도에 힘썼다. 
모든 사람에게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사도들을 통하여 놀라운 일과 표징이 많이 일어났던 것이다.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들은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집이 돌아가면서 빵을 떼며, 순전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서 호감을 샀다. 주님께서는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다."

 

1)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들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2)믿는 사람들이 함께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했습니다.

3)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었습니다.

4)성전에 모여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습니다.

5)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6)구원받은 사람이 날마다 더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모두 성도의 교제 가운데서 이루어졌습니다.

만약 신앙공동체 속에서 성도의 교제가 없었다면 이러한 일들은 나타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표적, 물건의 통용, 소유의 분배, 떡을 뗌, 하나님 찬양은 외적으로 드러난 교제의 표현들입니다.

 

‘성도’란 거룩하게 구별된 무리를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불신자들과 구별됩니다. 이 구별됨은 관계 속에서 분명히 나타나게 됩니다.

성도의 교제는 세상 사람들의 교제와는 다릅니다.

성도의 교제는 시간과 죽음을 넘어서는 교제입니다.

성도의 교제는 인간적인 계산을 넘어서는 교제입니다.

성도의 교제는 신앙 안에서 하나 곧 한 가족이 되는 교제입니다.

성도의 교제는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 교제입니다.

 

성도의 교제는 이 세상을 떠난 성도들과의 교제입니다.

이 교제는 그들 혼과 영교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히브리서12장1절)”라고 했습니다.

성도의 교제 가운데서 이미 영원의 시간 가운데 들어가 있는 많은 증인들을 회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증인들이 살아간 삶의 모범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들이 닦아 놓은 영성의 길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영성 생활에 좋은 등불이 되고 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예언자들, 사도들은 이미 오래 전에 살았던 인물들이지만, 오히려 살아있는 사람보다 더 생생하게 우리 가운데 현존합니다.

그리고 기독교 역사에서 영원히 잊혀질 수 없는 수많은 인물들은 언제나 우리 가운데 살아 있습니다.

 

성도의 교제는  종족, 문화, 혈연, 학연, 지연을 초월해서 현재 살아 있는 성도들과 갖는 교제입니다.

유대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비유 중에 머리 둘을 가진 어린아이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어머니가 아이를 낳았는데 몸은 하나이고 머리가 둘이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 아이를 한 아이로 보아야 하는지, 아니면 둘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그때 한 지혜로운 랍비가 해답을 제시했습니다. “뜨거운 물을 한쪽 아이 머리에 부었을 때, 다른 아이도 동시에 울면 하나이고, 울지 않으면 그 때는 둘로 보아야 한다.”

이 이야기는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은 어디에 있든지 하나임을 말하고자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비록 흩어져 있지만 유대인이 고통당하면 다른 곳에 있는 유대인들 역시 그 아픔을 같이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성도의 교제는 개 교회의 범주를 넘어 세계의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한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는 형제자매들로서의 교제입니다.

비록 시간과 공간의 제약 때문에 서로 흩어져 있지만 어디에 있든지 우리는 주 안에서 한 형제자매입니다.

우리는 서로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서로를 위해 중보하는 기도로 영적 교통을 갖게 됩니다.

 

성도의 교제는 교회라는 울타리를 넘어서 소외되고 고통받는 가난한 자, 병든 자들과 연대해 가는 교제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하신 것처럼 성도들의 교제는 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들과 연대해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도의 교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교제에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포함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와의 교제 가운데 살게 됩니다.

이 교제는 이 현실 세계에서뿐 아니라 영원히 계속되는 교제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것들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 로마서 8장3839절 -

 

 

성도의 교제는 단순히 믿는 사람들끼리 모여 인간적인 교제를 갖는 것만이 아닙니다.

이 교제는, 신앙인 모두에게 주어진 거룩함과 그리스도의 은총 그리고 성령의 은사에 참여하는 길입니다.

성도의 교제는 단순히 만나서 밥 먹고 차 마시고 이야기하는 정도의 교제를 말하지 않으며, 그보다 필요할 때 도와주고, 관여할 수 있는 일에 함께 참여해 주고, 필요하면 물질로도 도와줄 수 있을 때 진정한 의미의 코이노니아가 형성됩니다.

코이노니아는 라틴어로 콤뮤니오(communio)라고 합니다.

여기서 영어의 홀리 커뮤니언( The Holy Communion)말이 나왔습니다.

즉 성찬(εὐχαριστία 에우카리스티아)은 ‘거룩한 교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과, 그리고 함께 떡을 떼고 잔을 나누는 성도들 간의 거룩한 교제가 바로 성찬식입니다.

성도의 교제는 시간과 죽음을 넘어서는 교제입니다.

성도의 교제는 인간적인 계산을 넘어서는 교제입니다.

성도의 교제는 신앙 안에서 하나 곧 한 가족이 되는 교제입니다.

성도의 교제는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 교제입니다.

 

이 세상에  '성도의 교제'만큼 순수한 교제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 '성도의 교제'보다 넓은 교제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 '성도의 교제'보다 즐거운 교제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 '성도의 교제'보다 깊은 교제는 아무데도 없습니다.

세상의 어떤 교제보다도 '성도의 교제'는 복되고 아름답습니다.

바울과 로마성도들은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주안에서’ 하나됨을 이루어가는 결속됨의 권면을 받아들이며 바울의 문안을 받습니다.

 '거룩하게 입 맞추는 교제' 를 가졌습니다.

오늘 우리가 초대공동체의 '교제'를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평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