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135)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지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또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에게 문안하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하라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하라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에게 문안하라 내 친척 헤로디온에게 문안하라 나깃수의 가족 중 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아순그리도와 블레곤과 허메와 바드로바와 허마와 및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들에게 문안하라 빌롤로고와 율리아와 또 네레오와 그의 자매와 올름바와 그들과 함께 있는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로마서 16장 7∼16절 -
바울이 그의 서신을 마무리하면서 안부를 전했던 많은 사람들 가운데 오늘은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들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7절)
이들은 여기 이후에 성경에 더 이상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울에게 그들은 소중했던 사람이었고, 필요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은 문안을 부탁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그들을 문안할 특별한 이유를 말해 왔습니다.
1-2절에서는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자매 뵈뵈는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라고 했습니다.
3-4절에서는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다'고 했습니다.
5절에서는 에배네도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맺은 열매'라고 했습니다.
6절에서는 '마리아에게 문안하라'고 하면서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했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각 사람이 '문안을 맏을만한 합당한 이유'를 설명하므로 그들이 복음전파 사역을 하는데 함께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안드로니고와 유니아(Andronicus and Junias)
오늘 7절에서는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고 하면서 그들이 어떠한 사람인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지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
(1)바울의 친척이었습니다.
(2) 함께 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3)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지는 사람이었습니다.
(4)바울보다 먼저 그리스도를 믿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이 '문안하라'고 한 사람 중에서 세 사람이 '내 친척"이라고 표현됩니다.
두 사람은 오늘 성경에 나온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이고, 나머지 한 사람은 7절에 나오는 ' 헤로디온'입니다.
학자들은 ‘내 친척’이라는 표현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여러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첫째, 혈육의 친척.
둘째, 바울의 가까운 동료.
셋째, 다소 지역의 친한 시민.
넷째, 동족 유대인.
대부분 학자는 네 번째 해석을 취합니다.
일단 이들이 유대인이고, 바울과 함께 한 믿음의 동역자였기에 바울이 특별히 가까운 호칭을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은 '안드로니고'(Andronicus)와 '유니아'(Junia)가 자기 친척이라고 했습니다.
'친척'으로 번역된 '슁게네스'(συγγενηs)가 '친족' '동포'라는 의미인 것을 감안하면 실제 친척이라기 보다는 유대인으로서 바울과 친밀한 관계에 있었던 관계를 표현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 같은 유대인이라도 누구에게든지 친척이라 부르지 않은 것을 보면 특별히 친척이라 호칭된 사람들은 바울과 보다 긴밀한 관련을 맺은 사람들이었음이 틀림없습니다(Lenski, Murray).
그리고 이들의 이름이 유대인의 이름이 아니라 헬라 이름처럼 보입니다.
이것은 아마도 이방인 지역에 사는 유대인이었기에 유대 이름보다는 헬라 이름을 사용한 것 같습니다.
유대인들은 헬라 이름을 사용하고, 라틴어와 이집트어 호칭을 사용했다는 역사적 기록도 있습니다.
안드로니고와 유니아(Ἀνδρόνικον καὶ Ἰουνίαν)는 부부로서 함께 선교 여행을 다닌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은 이들을 “함께 갇힌 자”라고 소개합니다.
아마도 복음을 위해 함께 투옥된 적이 있거나, 바울처럼 투옥된 경험이 있는 듯합니다.
여기서 '함께 갇혔던'으로 번역된 헬라어 '쉬나이크말로투스'(συναιχμαλώτους)는 직역하면 '전쟁에서 함께 포로 된 자'란 뜻입니다.
그들이 구체적으로 언제 어디서 바울과 함께 감옥에 갇혔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신앙과 사역 때문에 감옥에 갇힐 정도로 불굴의 신앙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들은 바울이 당한 여러 번의 투옥 사건 중 한 사건에서 함께 감옥에 갇혔을 것입니다.
브루스(Bruce)는 그곳이 에베소였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바울은 이들이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진다”라고 말합니다.
'사도들에게'를 가리키는 헬라어 원문은 '엔 토이스 아포스톨로이스'(ἐν τοῖς ἀποστόλοις)로 복수 여격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 말의 일차적인 뜻은 그들이 사도들에게 잘 알려졌다는 의미가 있습니다(Kasemann).
넓은 의미로 보면 주님이 직접 세운 사도를 제외한 다른 사도들에게도 인정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사도를 지칭하는 '아포스톨로스'(ἀποστόλοις)는 일차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선택하셔서 세우신 열두 사도를 지칭하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그리스도를 따르며 주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한 사람으로 주님께서 직접 세우신 12제자 이외의 제자들도 포괄하여 의미하기 때문입니다(Dunn, Bruce).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진다'는 것은 그들이 사도들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감옥에 갇힐 정도로 불굴의 신앙정신을 가진 이유 때문에 그들은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김을 받았습니다.
바울 역시 그들의 신앙과 열정을 인정하고 문안한 것입니다.
이 두 사람(안드로니고와 유니아)은 그들의 믿음과 봉사로 인해서 바울을 비롯한 사도들의 인정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복음 사역을 돕는 사도들에게도 잘 알려졌을 정도로 특별히 다른 사람과 구별되었다는 것입니다(Murray).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의 헌신과 노력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고 합니다.
자기보다 먼저 예수를 영접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두 사람이 사도들 가운데서 왜 높이 평가받고 있는지를 말해줍니다(Lenski).
그들은 기독교 역사 초기에서부터 일찍 회심(回心)하였기에 지도자로서 알려질 시간상의 여유가 충분히 있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으로서 예루살렘이나 그 주변 지역에서 자연스럽게 알려졌으며 또한 사도들의 무리와도 쉽게 연합될 수 있었습니다(Murray).
교회는 많은 사람들의 헌신과 섬김을 통해 복음의 아름다운 역사들이 이어지고 세계 곳곳에서 열매를 맺습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 그렇게 협력해주는 이들이 있습니다.
복음을 위해 수고와 헌신을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복음을 위해 함께 고난을 당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복음을 위헤 나의 보호자가 되어주는 이들이 있습니다.
복음을 위해 교회를 열정으로 섬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헌신과 수고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내가 그렇게 헌신하고, 수고하고, 열정으로 섬기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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