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136)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에게 문안하라!"
「또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에게 문안하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하라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하라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에게 문안하라 내 친척 헤로디온에게 문안하라 나깃수의 가족 중 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아순그리도와 블레곤과 허메와 바드로바와 허마와 및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들에게 문안하라 빌롤로고와 율리아와 또 네레오와 그의 자매와 올름바와 그들과 함께 있는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로마서 16장 8∼16절 -
바울이 로마에 있는 기독교인에게 편지를 쓸 때 로마 교회 주도권은 이방파가 잡고 있었습니다.
A.D. 49년까지는 유대파 그리스도인들이 로마교회의 주도권을 잡고 있었지만, A.D. 49년에 클라우디스 황제가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추방시킵니다.
그 때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뿔뿔히 흩어지게 됩니다.
그러다가 A.D. 54년 네로 황제가 추방령을 풀어서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로마로 귀환하게 되는데 그 사이에 추방되지 않았던 이방 그리스도인들이 로마 교회의 주도 세력이 되었습니다.
강자가 된 이방파 그리스도인들은 약자인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방식에 대해서 폄하하고, 무시했습니다.
반대로 약자가 된 유대 출신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의 정결법과 안식일 법에 대해서 무시하는 이방 그리스도인들을 비판하면서 갈등 가운데 있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16장에는 26명의 이름이 나오는데, 이 사람들을 분석해 보면 로마 교회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26명 중에서 유대인이 5명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전체 로마 교회 명단은 아니지만 전체로 따져도 15%~20%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추방 당한 사이에 교회의 주도권이 이방 기독교인들에게로 넘어가 있는 게 확연히 나타납니다.
사람 있는 곳에 갈등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교회 안에는 숱한 갈등이 있습니다.
보수파와 진보파의 갈등이 있고, 오래된 교인과 새로 들어온 교인간의 갈등이 있습니다.
지금 바울은 그토록 가고 싶었던 로마 교회의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면서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나온 말이 ‘주 안에서 서로 문안하라’ 입니다.
바울은 로마에 가서 그들을 만나, 스페인 선교의 후원자가 되 달라고 부탁해야 하는데, 그토록 중요한 로마 교회가 갈등 가운데 있는 것을 보면서 방문하기 전에 그들이 하나되어 하나님의 한 백성으로 살아 가기를 소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뜻에서 보면 로마서에서 가장 중요한 장은 16장입니다.
바을은 갈등하고 있는 로마교회에 ‘주 안에서 서로 문안하라’는 이 말 한마디를 하기 위해서 1장에서부터 15장까지 서술했다고 봐도 됩니다
오늘은 안부를 전했던 사람들 가운데 '암블리아'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에게 문안하라"
- Amplias -
‘암블리아’가 누구인지 성경에서는 달리 비교할 수 있는 대목이 없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주로 세 가지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당시 흔한 노예의 이름이 '암블리아'입니다.
둘째는 왕족으로 편입이 된 암블리아가 있습니다.
셋째는 사도바울에게서 복음을 들은 성도, '암블리아'가 있습니다.
1세기 로마의 남자 노예의 수는 6천만명이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학문과 기술이 뛰어나 해방 노예의 신분으로 제국에서 출세한 인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별히 제4대 황제인 클라우디우스(통치 AD 41-54) 의 시대가 그렇습니다.
그는 로마의 귀족들이 지배하고 있는 원로원의 세력을 견제하고 황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아예 학식과 경륜이 있는 해방 노예를 대거 등용하여 행정부를 이끌어갔습니다.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통치기간이 대체로 사도 바울의 세계선교의 기간과 겹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주후 47년경 로마시에서 소동을 자주 피우던 2만5천명의 유대인을 그리스반도의 남쪽 도시 고린도로 쫓아내어버렸습니다.
이 사건은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사도행전 18장2절).
이때 그의 황권강화방안으로 ‘암블리아’와 같은 노예 출신이 해방이 되고 황족의 가문에 편입이 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
바울은 '암블리아에게 문안하라!'고 하면서 그 이름 앞에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아블리아!'라는 설명을 붙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빈부나 귀천이나 남자나 여자나 인종간에 차별이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전해지고 누구나 차별이 없이 믿음을 가지고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주 안에서'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자유인이나 노예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착한 자는 사악한 자가 차등이 없이 이제는 모두 거룩한 무리인 성도가 되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에게 문안하라”고 한 것은 우리의 신앙에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초기 기독교 묘지(1세기) 카다콤에서 비석이 하나 발견 되었습니다.
이 카타콤은 로마 왕족인 도미틸라(Domitilla) 가문에서 자신들의 카타콤 일부를 기독교인들에게 사용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암볼리아(Amplias)’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정교한 비석이 발견된 것입니다.
성서학자들에 의하면 이것은 그 당시 교회에서 유명한 사람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의 묘비 주변의 정교한 장식이 그것을 증명해 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상식을 벗어나는 것이 그 비석에 있었습니다.
어느 시대를 불문하고 사람이 죽으면 비석에 이름과 성을 기록합니다.
그런데 그 비석은 잘 장식되긴 했지만 그냥 이름만 '암블리아'로 크게 적혀 있었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그가 비록 교회에서 유명한 위치에 있긴 했지만 그의 신분이 노예였을 가능성을 뒷 받침 해 줍니다(바클레이 주석, p. 305).
비석의 주인공이 바울이 가리키는 암블리아인지는 의문이 여전히 남지만 하나 중요한 것을 발견합니다.
당시 로마 제국은 6천만 명의 노예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노예가 믿음의 공동체에 들어왔을 때는 뭔가 달라졌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노예라는 신분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빌레몬서에 나오는 오네시모처럼 가장 무익한 사람이 주 안에서 가장 유익한 하나님의 사역에 헌신하는 사람으로 변화 되었습니다.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네게 그를 돌려 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
- 빌레몬서 1장11∼12절 -
세상이 모든 것을 막아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노예도 주 안에서 자신을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시 로마계급 사회 구조는 가장 하급구조에 노예들이 속해 있었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 자유는 허락되었겠지만 법적으로는 주인의 소유물에 불과했습니다.
그런 노예들이 새로운 세계를 맛보게 된 것은 바로 기독교의 영향이었습니다.
‘주 안에서’라는 단어가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계급과 신분을 타파하고 사람이 사람으로 대접을 받는 그런 구조가 생겨난 것입니다.
로마는 노예 사회구조라는 틀을 깨뜨리지 못하도록 여러 장치로 유지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예들이 교회에 들어오면 이 틀이 무너지는 일이 일어나곤 했습니다.
여전히 신분상으로는 종이지만 또 다른 신분을 주 안에서 가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 안에서는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지고 사랑의 관계가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예수 밖에서는 그들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소유물입니다.
그러나 '주 안에서' 변화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 고린도후서 5장17절 -
사도 바울은 '암블리아(Amplias)'를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라고 로마교회에 소개했습니다.
어떻게 그는 사도 바울로부터 이런 호칭을 듣고 되었을까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노예가 존경 받는 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헌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그를 버렸지만 그는 세상을 섬겼습니다.
'암블리아(Amplias)'가 노예의 신분을 벗어나 자유인으로 섬기다 죽었는지 아니면 여전히 노예로서 교회에서 섬기는 자로 살다 죽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노예라고 가정할 경우 그는 어떤 일을 교회에서 할 수 있었을까요?
아니면 어떤 계기로 자유인이 되었을 때 그는 교회를 위해 무슨 일을 했을까요?
그리고 어떤 일을 했기에 그가 죽었을 때 비문에 큰 글씨로 그의 이름을 교회가 적어 주었을까요?
성경은 아무것도 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암블리아(Amplias)'는 '주 안에서 유명한 자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존경 받는 자로 세워졌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본문에서 사용하는 ‘문안하라’는 의미는 인사하라는 뜻도 있지만 ‘존경하라’는 의미도 내포하기 때문입니다.
노예 출신의 '암블리아(Amplias)는 초대교회를 이끌어 간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가능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주 안에 들어와 세상을 섬기는 자로 헌신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에 헌신할 때 신분에 상관없이 존귀한 자로 그를 높여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다스리는 주님의 방식입니다. 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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