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로마서 강해(133)-내가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가족사랑 2023. 7. 7. 22:17

로마서 강해(133)

내가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내가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그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맺은 열매니라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지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또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에게 문안하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하라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하라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에게 문안하라  내 친척 헤로디온에게 문안하라 나깃수의 가족 중 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아순그리도와 블레곤과 허메와 바드로바와 허마와 및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들에게 문안하라  빌롤로고와 율리아와 또 네레오와 그의 자매와 올름바와 그들과 함께 있는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로마서 16장 516절 -

 

사람은 혼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은 혼자서 생존할 수 없습니다.

람이 살아가는 데는 이웃이, 친구가, 동료가 필요합니다.

혼자 있을 때보다 여럿이 함께 있을 때 생존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아집니다.

일을 할 때도 그렇습니다.

혼자서 하는 일은 능률도 나지 않지만 위험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안전하게 작업하기 위해서는 꼭 두 명 이상이 함께  조를 짜서 일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에도 함께하는  동역자가 필요합니다.  

‘동역자’(fellow worker)는 헬라어 합성어로 ‘함께 일하는 사람’(συνεργός)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같은 목적을 위해 협력하여 일하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6장에서 여러 사람들의 이름을 언급합니다.

이들을 소개하기도 하고 또한 '문안하라!'고 말합니다.

이 가운데는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습니다.

젊은이도 있고 연세 드신 분도 계십니다.

싱글도 있고 부부도 있습니다.

귀족도 있고 노예도 있습니다.

사업가도 있고 공무원도 있고 유식한 사람도 있고 무식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은 다 주님의 일꾼이면서, 사도 바울의  동역자들입니다.

 

 

에배네도(Epaenetus)

-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맺은 열매 -

에베네도(Epaenetus)는 바울이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익은 열매'였습니다.

그는 아시아에서 첫 번째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입니다.

여기서 아시아는 당시 로마 제국의 행정구역으로 오늘날 터키 지역을 말합니다.

바울은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고 싶어 했지만, 성령께서 길을 막고 유럽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포기하지 않고 유럽에서 선교를 마친 후 아시아로 들어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 지역은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가 있는 지역입니다.

사도 바울이 3차 선교 여행을 하면서 에베소를 중심으로 전도를 하면서 얻은 최초의 이방인 회심자가 에배네도였습니다.

 

에배네도(Epenetus)는 그 당시 믿음의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던 이름이었습ㄴ다.

에배네도에게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익은 열매’라는 말이 더해져 있습니다.

 이것은 '처음'이라는 말을 강조하기 위함인 것으로 보입니다.

성경은 ‘첫 열매’에 대해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첫열매는 헬라어로 아파르케(ἀπαρχή)라고 하는데 9번 나옵니다.

그 중에 야고보서 1장18절과 요한계시록 14장4절 외에는 전적으로 바울서신들에만 이 단어가 나타납니다.

사도바울은 그만의 독특한 신학적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그의 서신인 로마서나 고린도 전서에서 아파르케(ἀπαρχή))를 사용합니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일관되게 첫 열매로 번역되고 있는데, 이것은 과일, 곡식의 첫 열매뿐만 아니라, 가축의 초태생, 사람의 맏이를 말하는 단어입니다.

첫 열매가 나타내는 것은 율법의 제사에서 소산물의 첫 열매를 드리거나, 가축의 첫 새끼를 바치는 것을 말합니다.

모세의 율법은 칠칠절, 즉 맥추절(the Feast of Harvest)을 지킬 때, 밭에 씨를 뿌려서 거둔 곡식의 첫 열매를 바칠 것을 명합니다(출 애굽기 23장17절, 34장22절).

이때 첫 열매를 뜻하는 단어가 비쿠림(בִּכּוּרִים)입니다.

이 단어를 구약 70인경은 대부분 πρωτογενήματα(프로토게네마타)라고 번역하는데, בִּכּוּרִים(비쿠림)은 단순히 곡식의 첫 열매 뿐만 아니라, 맏아들, 가축의 첫 새끼를 말합니다(느혜미야 10장36절).

그런데, 에스겔 44장30절은 모든 종류의 첫 열매로서 בִּכּוּרִים(비쿠림)을 ἀπαρχή (아파르케)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의 첫 열매로서 아파르케ἀπαρχή가 쓰이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단어는 곡식의 첫 소산물, 가축의 초태생을 의미하는 πρωτογενήματα(프로토게네마타), 사람의 맏아들을 의미하는 πρωτότοκος(프로토토코스, firstborn)보다 더 넓은 차원으로 동물, 식물, 사람을 포함하는 처음(beginning)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곡식의 맏물, 짐승의 첫 소산도 하나님께 속한 것일 뿐만 아니라, 첫 아들 또한 하나님께 속한다는 선언이 이를 반영합니다.

 

바울은 시간적 순서, 혹은 질적인 정도에 있어서 최초의 일, 최초의 사건을 말할 때, 이 단어 첫 열매,  아파르케(ἀπαρχή)를 사용합니다.

고린도 교회의 스데바나 가정이 아가야 지방에서 처음 복음을 영접하고 믿음의 가정이 되었음을 강조하면서, 그 가정을 아가야의 첫 열매,  아파르케(ἀπαρχή) 라고 호칭합니다(고린도전 16장15절).

또한 바울은 로마교회 교인들에게 에배네도에게 문안인사를 하라고 권면하며, 그를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맺은 열매  아파르케(ἀπαρχή)라고 호칭합니다(로마서 16장5절).

바울은 복음을 받아들인 첫 회심자를 그 지역의 첫 열매임을 말하며, 마치 첫 열매를 바치는 제사와 헌신으로 비유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바울은 죽었다가 살아난 예수 그리스도를 첫 열매,  아파르케(ἀπαρχή)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린도전서 15장20절)

죽었지만 부활하여 영원한 삶을 사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첫 열매라고 표현하는 것은, 부활의 첫 열매 예수처럼, 하나님의 자녀들도 그런 생명의 열매를 얻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음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에배네도(Epenetus)가 첫 열매인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 의미를 가질까요?

모든 사람들은 안정된 삶을 추구합니다.

안정된 직장을 통한 안정된 수입, 안정된 환경, 안정된 신앙 등등… 안정된 상태가 사람을 편안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첫 열매라는 것은 이러한 안정된 상태를 깨고 불확실성에 도전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불확실한 가운데 도전하여 그 처음의 안정된 결과가 첫 열매인 것입니다.

따라서 첫 열매는 불안정을 안정으로 바꾼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보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 당시의 사람들, 특히 이방 지역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조상의 전통에 따라 생활했습니다.

그들의 신앙 또한 조상들의 신앙에 따랐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안정된 생활을 버리고, 새롭게 도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도전은 사람들의 칭찬을 받는 도전이 아닙니다.

비난과 경멸, 심지어는 형제들로부터 배척당하는 일까지 발생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을 초래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들을 사도행전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많은 사람들 중 에배네도에게 아시아의 처음 열매라고 한 것은 바로 이러한 그의 용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에베네도는 자신의 동족들과 함께 안정된 생활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 예수의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그는 그 예수가 생명의 주님이신 줄 알고, 위험을 무릎 쓰고 받아들였습니다.

그 결과 그를 통해 아시아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받아들였습니다.

에베네도는 불확실성을 극복한 인물입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이 점을 첫 열매라는 말로 칭찬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지 모험 없이는 새로운 결과를 도출할 수 없습니다.

신앙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 없이는 처음 열매라는 칭찬 또한 없습니다.

에배네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새로운 일에 도전한 첫 번째 열매였습니다.

 

에배네도(Epenetus)

- 바울이 사랑하는 사람 -

바울은 에배네도를 가리켜 '사랑하는'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바울이 누구를 사랑했다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모든” 사람을 “형제”로서 사랑했습니다.

바울이 '사랑하는 에배네도!'라고 표현한 것은 그가 성도이기 때문에 모든 성도들을 사랑하는 주님의 마음으로 그렇게 표현을 한 것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가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았을 것이라는 추측과 함께 그가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만한 일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여기서 '내가 사랑하는 에베네도'라고 한 것은 특별한 이유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의 신실함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참 중요한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사랑을 받고, 남편이 아내에게 사랑을 받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사랑받고, 자식이 부모에게 사랑을 받는 것 또한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성도가 성도에게 또 성도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은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사랑을 받는 것은 그냥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을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때로는 하나님의 사랑이나 부모님의 사랑같은 일방적인 사랑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라도 더 많은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사랑을 받을 만한 일을 해야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에배네도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를 믿은 첫 번째 신앙 열매였습니다.
바울은 첫 번째 신앙 열매인 에베네도를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오랜 세월을 자신과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신실하게 처음부터 변함이 없었습니다.
가장 충성된 사람이 누구입니까?

오랫동안 마음을 함께 나누는 사람입니다.

일반적으로 신실함을 판가름하는 세 가지 기준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 오랫동안 함께 충성했는가? 
둘째, 작은 일에도 충성했는가? 
셋째, 어려운 때에 충성했는가>

에베네도는 아시아의 첫 열매로서 힘들고 어려워도 늘 바울을 신실하게 섬기며 따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울을 떠났지만 첫 열매 에베네도는 마지막까지 바울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의 사랑하는 에베네도'라고 한 것입니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가정생활에서도 대단히 모범적이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가정생활의 성공비결이 무엇입니까?"
포드가 대답했습니다. "자동차 개발할 때처럼 한 여자에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인내할 줄 모르고 새 것에 대한 호기심이 지나치면 행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미국의 방송인 중에 바바라 월터스라는 유명한 앵커우먼이 있습니다.
그녀는 이혼했는데, 나중에 성공적 재혼을 위해 신중하게 남편 대상을 물색하며,
컴퓨터에 자기 적성을 비롯한 모든 자료를 넣고 최종 남편감 후보를 뽑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고른 가장 좋은 남편 후보감을 보니까 바로 전 남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렵고 힘들어도 첫 사랑을 변치 않는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감정대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

꾸준함과 인내와 충성이 신앙 승리의 비결입니다.

에베네도처럼 우리도 주님으로부터 '당신은 나의 사랑하는 사람입니다.'는 인사를 받습니다. 평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