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로마서 강해(127)-나는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명예로 삼았습니다

가족사랑 2023. 3. 24. 04:51

로마서 강해(127)

 

나는

그리스도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명예로 삼았습니다

 

나는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이름이 알려진 곳 말고,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명예로 삼았습니다.

나는 남이 닦아 놓은 터 위에다가 집을 짓지 않으려 하였습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한 바,

"그의 일을 알지 못하던 사람들이 보게 될 것이요, 듣지 못하던 사람들이 깨닫게 될 것이다"

한 것과 같습니다.

- 로마서 15장 2021절 -

 

- 동방정교회 성당에 그려진 바울 -

오늘 읽은 로마서 15장에서 바울은 자신의 목회 자세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늘 새로운 곳을 향해 복음을 전하고, 다른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에 가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합니다. 

"나는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이름이 알려진 곳 말고,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8)복음을 전하는 것을 명예로 삼았습니다. 나는 남이 닦아 놓은 터 위에다가 집을 짓지 않으려 하였습니다."(20절)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은 3차례에 걸쳐서 전도여행을 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부터 일루리곤(Illyricum)까지 했습니다.

"나는,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에 이르기까지 두루 다니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남김없이 전파하였습니다."(19절).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수리아, 길리기아, 갈라디아, 아시아, 마게도냐의) 일루리곤까지 편만하게 전했습니다( 15:19). 이제 이곳에는 더 이상 복음을 전할 곳이 없기 때문에 서바나(스페인)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초대교회에는 12 사도들이 있었습니다.

사도들은 주님의 명령인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라'고 하신 말씀에 따라 사방 곳곳에 흩어져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가롯유다 대신 맛디아가 제자로 뽑혀서 다시 12 제자를 이룬 예수님의 제자들은 사방곳곳에 흩어져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서와 사도행전에는 12 사도들이 각각 어디에서 복음을 전했는지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사도들의 모임에서 사도들이 서로 어느 지역에 복음을 집중적으로 전하도록 하자는 역할분담을 하였을 것입니다.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복음을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증인이 되라고 하신 분부에 따라 선교정책과 선교전략을 숙의하였을 것입니다.

그 선교전략 가운데는 세계를 몇 지역으로 나누고 그곳에 각 사도들이 역할을 맡았을 것입니다.

이 역할분담에 의하여 베드로는 본도와 갑바도기아 등에서 복음을 전했고, 도마는 인도에서 등등 각기 사도들도 맡은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최선을 다하였을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사도들의 회의에서 한 선교전략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는 장소에 가서 이중으로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바울 사도의 선교의 원칙이기도 했습니다.

성경에서 바울이 말한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한다'는 말은 복음이 이미 전해진 곳에 가서 자기의 이름을 드러내려고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바울은 복음을 전했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한 바, "그의 일을 알지 못하던 사람들이 보게 될 것이요, 듣지 못하던 사람들이 깨닫게 될 것이다" 한 것과 같습니다."(21절)

복음전도 사역의 핵심은 예수의 복음을 듣지 못한 자들에게 그 복음을 듣게 하므로 예수를 구주로 믿게 하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복음전도 사역자가 복음을 전하고 있는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한다면 복음전도의 효율성이 떨어집니다.

주님의 복음이 땅 끝까지 속히 전해지기 위해서는 다른 사역자들이 사역하지 않는 곳에 가서 사역을 해야 효율적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전도의 효율성을 위해 이미 사역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에서는 사역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것은 그의 사역관이 자기가 아닌 복음 자체를 위한 정신이었음을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복음전도 사역자들은 모두가 다 주의 일을 하는 한 동역자들입니다.

다른 사역자가 복음을 전하는 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다른 사역자의 수고를 가로채는 것입니다.

다른 사역자가 가르치는 대상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다른 사역자의 수고를 가로채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사역자의 사역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른 사역자의 공적과 영광까지 가로채는 것이 됩니다.

그것은 사역에서 도적질과 같은 행위입니다.

그런 행위는 동역자를 상처받게 하고 사역에 대한 회의를 갖게 하고 좌절하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동역자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다른 사역자가 사역하고 있는 곳에서는 사역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의 사역관이 자기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동역자를 존중하는 정신입니다. 

 

영국의 청교도 목사이며 웨스트민스터 총회 멤버인 허버트 팔머 (Herbert Palmer, 1601–1647)는 캠브리지 퀸즈 대학교(Queens' College Cambridge)의 총장을 지냈습니다.

팔머는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The Westminster Shorter Catechism) 작성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이었습니다.

 

팔머(Palmer)목사는 <목회자의 열 가지 마음자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① 양을 도적질하지 말아라

② 고자질하지 말아라

③ 전임자에게 성실하라

④ 후임자에 대해 배려하라

⑤ 성직자의 권위를 가지고 생활하라

⑥ 좋은 시민이 되라

⑦ 전 시간을 자기사명을 위해 봉사하라

⑧ 보수에 관계없이 일하라

⑨ 부녀들에 관한 목회자의 특수한 책임을 기억하라

⑩ 집안일에 성공하라

- 허버트 팔머 (Herbert Palmer, 1601&ndash;1647) -

한경직(韓景職) 목사는 성공적인 목회자의 십계명으로,

① 잃은 양을 찾을 것이나 남의 양을 도적질하지 말것이요

② 새교회 설립에 힘쓸 것이나 기성교회로부터 분열케 말것이요

③ 새예배당 건축은 좋으나 이웃교회 처마 밑에 세우지 말것이요

④ 반대하는 교회 억지로 머물지 말고, 환영하는 교회 억지로 떠나지 말것이요

⑤ 부름받는 목장에서 충성을 다하고 남의 울타리 넘겨다 보지 말것이요

⑥ 교인집 심방은 해도 이웃놀이는 하지 말것이요

⑦ 남의 비밀 누설하지 말것이요

⑧ 금전거래 분명히 할것이요

⑩ 교역자끼리 시기하지 말 것 등을 말했습니다.

 

- 한경직((韓景職,&nbsp;1902년&nbsp;12월 29일&nbsp;~&nbsp;2000년&nbsp;4월 19일))

 

하나님 나라는 모든 사역자들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다른 사역자들이 수고하여 이룬 공동체도 주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역자가 이미 이루어 놓은 공동체 일원들에게 가르치게 되면 그 사역자의 리더쉽이 발휘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역자와 일원들 사이가 서원하게 되고 때론 갈등과 대립과 분열이 일어나게 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역자들의 수고를 가로채서 자신의 사역을 이루려는 것은 이미 이루어진 공동체에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 됩니다. 이것은 주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주의 나라를 파괴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자신이 주의 일을 하는데 열심을 냈을지라도 그것은 열심을 낸 만큼 주의 나라를 더 파괴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른 사람이 이루어 놓은 공동체의 일원들을 가르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인 공동체를 온전케 하려는 정신입니다.

남의 터 위에 건축을 하는 것은 쉽습니다.

사역에서 쉽게 빠른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른 사역의 태도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의 양심과 명예

-  나는

그리스도의 이름이 알려진 곳 말고,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명예로 삼았습니다  -

 

사도 바울은 3차 선교여행에서 유럽 지역 교회들에게 받은 구제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그것은 환난을 당한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와 두로와 가이사랴를 거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동안 기도자들과 제자들과 예언자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체포될 것이라고 하면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권면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성전에 있을 때였습니다.

소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무리들을 충동하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어내어 죽이려 했습니다. 

이런 큰 소동이 일어나자 안토니오 요새에 있던 로마 군대 천부장이 군사들을 데리고 와서 체포하여 영내로 데려갔습니다. 

천부장이 백부장에게 채찍질하여 심문을 하게 하자 바울은 자신이 로마 시민권자임을 밝혔습니다.

그래서 천부장은 결박을 풀고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바울을 고발하려는지 알기 위해 산헤드린 공회 앞에 세웠습니다. 

이때 바울은 산헤드린 공회원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알고는 자신이 부활 문제로 심문을 받는다고 하자 소란이 일어났습니다. 

천부장은 다시 바울을 영내로 데려왔습니다. 

그리고는 유대인 40명의 결사대가 바울을 암살하려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는 470명의 군사를 호위하게 하고 가이사랴에 있는 벨릭스 총독에게 보냈습니다. 

바울은 벨릭스 총독에게 심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산헤드린 공회와 벨릭스 총독 앞에서 심문을 받을 때 자신의 무죄를 변호하기 위해서 말했습니다.  

"동포 여러분, 나는 이 날까지 하나님 앞에서 오로지 바른 양심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사도행전 23장1절)

 

바울은 산헤드린 공회와 벨릭스 총독 앞에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말했습니다.

 자신은 자금까지 양심에 따라 하나님을 섬겼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이 살아왔다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무슨 일이든 언제든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양심에 거리낌이 없이 살아왔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언제나 하나님 보실 때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보아서 부족함이 없이 살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 디모데전서 1장19절 -

하나님의 사람이란 근본적으로 범사에 양심에 따라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양심이 교육이나 범죄의 습관에 의해 더럽혀지기도 하지만 거듭난 사람의 양심은 기본적으로 선합니다.

양심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기준이 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담대하게 하는 동력이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떳떳하게 하는 요인이 되게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그가 누구이든지 항상 모든 일에 양심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

양심에 따라 사는 삶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양심을 따라 살 때 그곳에 하나님의 축복도 따라옵니다.

 

미국 캔자스시티에 '빌리'라는 한 노숙자가 구걸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날도 빌리는 길에 앉아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앞에 한 여인이 지나가다가 빌리를 보고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동전 지갑을 열어 다 속에 있는 것을 다 쏟아주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온 여인은 자신이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녀는 지갑 안에 있던 약혼반지까지 깜빡하고 모두 털어준 것입니다.

이 여인의 이름은 '사라 달링'이었습니다.

당황한 사라는 빌리가 있던 곳으로 황급히 갔지만 노숙자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시간 노숙자 빌리는 동전을 세다가 반지를 발견하고는 보석 가게에서 감정을 의뢰하던 중이었습니다.

보석 가게 주인은 4천 달러를 줄 테니 자기에게 반지를 팔라고 했습니다.

노숙자 빌리는 깜짝 놀랐습니다.

반지가 진짜 보석일 줄은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 돈이면 당장 힘든 노숙자 생활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빌리는 마음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그 여인이 내게 선을 베풀었는데, 이 반지는 돌려주는 것이 마땅하지!’

빌리는 보석상에게 반지를 팔지 않고 돌아왔습니다.

다음 날 사라가 다시 그 노숙자를 찾아갔습니다.

노숙자 빌리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빌리는 사라에게 반지를 건넸습니다.

사라와 남자 친구는 정직한 빌리에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노숙자 빌리와 더 깊은 대화를 통해서 그의 아픔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사라와 남자 친구는 빌리를 돕기 위한 모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 감동적인 사연이 화제가 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서 20만 달러(한화로 2억 4천만 원)가 넘는 거금이 모였습니다.

빌리는 그 돈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빌리는 16년 동안 소식을 알 수 없던 형제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만일 노숙자 빌리가 당장의 이익을 위해서 반지를 팔았다면

그에게는 4천 달러가 생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선의를 저버린 죄책감이 그를 항상 따라다녔을 것입니다.

빌리는 쉬운 길이 아니라 바른 길을 택했습니다.

'빌리는 양심이 원하는대로 행동했습니다.

반지를 주인에게 돌려줌으로써

인격을 지켰습니다.

명예를 얻었습니다.

자신의 아픔을 공감해주는 사라라는 친구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선행에 감동해서 그를 후원한 수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몇 배의 후원금을 얻었습니다.

그는 양심대로 원하는대로 행동하여 보상을 받았습니다.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 로마서 15장20절 - 

 

"나는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이름이 알려진 곳 말고,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명예로 삼았습니다.

나는 남이 닦아 놓은 터 위에다가 집을 짓지 않으려 하였습니다."

- 로마서 15장20절 새번역 -

 

바울은 '그리스도의 이름이 알려진 곳 말고,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명예로 삼았다'고 말했습니다.

이 구절을 새번역 성경은 '명예로 삼았다'번역했고, 개역성경은 '힘썼다'로 번역했습니다.

이 단어는 헬라어로  '필로티무메논(φιλοτιμούμενον)'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필로스'(φίλος, '사랑함')와 '티메'(τιμή, '명예, 존귀')가 합성된 단어로 '힘쓰다'는 의미 외에 '명예를 사랑한다.' 또는 '영예로운 일로 간주한다.', '열성으로써 노력하다.'의 의미를 가집니다.

'명예로 삼았다'는 것이 바울 자신의 개인적인 영예를 구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의 사도적 책임이었습니다.

사도란 단순한 목사나 전도자가 아닙니다.

바울 자신이 고린도전서 3장 10절에서 말한 대로 그의 사명은 '터'를 놓아 다른 사람이 그 위에 건축할 수 있게 하는 것, 즉 남들이 아직 가지 않은 곳,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지 않은 곳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고린도전서 3장10절 -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영예로운 일로 여겼습니다.

바울은 복음전도사역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이 일을 위해 최선을 다해 열정적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특히 바울은 그리스도의 이름이 알려진 곳 말고,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명예로 삼았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남에게 존귀히 여김을 받고 명예롭게 살기를 원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는 자를 축복해 주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청년기에 애굽으로 팔려갔습니다. 그에게는 온갖 유혹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서 나는 죄를 범할 수 없다'라고 결심하고 끝까지 자신을 지켰습니다. 명예롭게 살기를 원했던 요셉이었기에 후에 높은 지위에 올라 애굽으로 구원하고 형제를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바벧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궁궐에서 주는 음식을 먹으라고강요당할 때에, 그는 이방 나라의 임금이 먹는 음식은 먹을 수가 없다고 단호히 거절하며 채소와 물을 먹으면서 유대인의 명예를 지켰습니다. 그에게는 사자굴 속에 들어가는 위험도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명예를 지킬 수 있게 보호하셔서 후에 바벧론의 총리대신까지 되었습니다.

삭개오는 부자였지만 그에게는 명예가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명에롭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뽕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런 삭개오를 예수님께서는 명예롭게 대접하시고 그에게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명예를 주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모든 사람에게 업신여김을 받던 창녀였지만 그가 예수님 앞에 엎드렸을 때에 하나님의 딸이 되는 명예를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명예롭게 섬기는 사람을 명예롭게 대접하십니다.

기독교는 종교적 규율이나 이데올로기가 아닙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며 부활'이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나의 인격체와 사귀는 가운데 그안에 있는 무진장한 자원을 공급받아서 보다 나은 명예로운 삶을 살아가는 삶입니다.

신앙이란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삶의 전체이기 때문에 내가 지니고 있는 좋았던 모든 것들이 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말씀하십니다.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

- 마태복음 11장 28∼29절 -

예수님은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데서부터 출발할 수 있느냐?"

"바닥에서, 인생의 0점에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느냐?"

"네가 그동안 누렸던 명예들, 돈과 재물들, 권력들 다 내려놓고 다시 겸손한 마음으로 신앙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느냐?”

“이 세상의 다른 어떤 것보다 예수님이 더 소중한가?"

"정말 예수님만을 네 인생의 주인으로 삼을 수 있느냐?

"예수님이 네게 복이요, 기쁨인 것을 선포할 수 있느냐?”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그 길이 널찍하여서,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너무나도 좁고,

그 길이 비좁아서, 그것을 찾는 사람이 적다."

- 마태복음 7장1314절 -

 

사실 무엇인가를 새롭게 시작한다는것은 늘 두려움을 앞서게 합니다.

편안하게 새 길을 가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새 길은 늘 위험을 동반하고 실패를 각오해아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고집하는 것은 높은 자리는 고사하고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일입니다.

참으로 어렵고 난감합니다.

그래서 이 지점에 이르면 누구나 타협을 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사람들은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쉬운 길이 아니라 바른 길을 갔습니다. 

바울이 그랬고, 신앙의 선배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어떤 위협이 있더라도 바른 길을 걸었습니다.

명예로운 길을 선택했습니다.

지금 우리도 그 길, 명예로운 길을 선택했습니다.

우리 뒤돌아서지 맙시다. 평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