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로마서 강해(61)-택하심이라는 원리를 따라 세우신 하나님의 계획

가족사랑 2021. 3. 15. 17:10

로마서 강해(61)

 

택하심이라는 원리를 따라 세우신 하나님의 계획

 

"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 로마서 9장 10-13절 -

 

 

11절을 보십시오.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택하심’이란 단어는 헬라어 에클레게(ἐκλογη)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로마서에서 바울이 자주 사용했습니다.

"그런즉 어떠하냐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11:7)

"복음으로 하면 그들이 너희로 말미암아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로 말미암아 사랑을 입은 자라"(로마서 11장28절).

베드로후서 1장10절에도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데살로가전서 1장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살전1:4)에서도 쓰여졌습니다.

 

오늘 성경은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선택받은 백성만이 구원에 참여한다는 것을 이삭과 이스마엘의 예를 들어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마엘은 종의 자녀이기에 버림받았다는 반박이 있을 수 있으므로 이번에는 적통 이삭의 자녀인 야곱과 에서의 예를 들어 확증하고 있습니다.

 

12절과 13절입니다.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이들은 쌍둥이라서 신분적 차별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둘을 구분하셨습니다.

그들은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하나는 택한 자로 다른 하나는 유기(선택받지 않은) 자가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선택을 받고 어떤 사람은 유기된다면 공평하지 못하다고 합니다.

그것도 자신의 의지가 아니고 거부할 수 없는 다른 존재의 뜻에 따라 된다면 그것은 불공평합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그 결정은 오로지 하나님의 영역임을 분명히 합니다.

 

14∼16절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왜 에서가 아니고 야곱입니까?

그 대답은 오직 부르시는 분이 결정하신 선택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데 있어서 우선권이 없습니다.

어떤 행위가 있든 어떤 지위에 있든 상관없이 그것들이 부르심의 우선권으로 작용할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교회들이 인간의 행위를 조건 삼아 부르심의 우선권으로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택에 대한 철저한 반발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구원은 이미 하나님의 예정하신 뜻이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기 이전에 하나님께서는 이미 창조와 심판에 대한 모든 계획을 완전하게 세우셨으며 그 계획에 의해 지금 역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그 같은 계획에 의해 그의 구원받을 백성들이 선택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에베소서 1장36절) 

 

예정(豫定)은 하나님의 성품에 관해 알려 줍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직접 자신의 손으로 세심하게 인류 역사를 써 나가시는 분이심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우연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우연히 일어나는 일들은 없습니다.

전능하고 선하신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 영원 전에 계획되지 않은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습니다.

예정은 우리를 선택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우리의 구원이 안전하고 완전하게 이뤄졌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우리가 장차 받을 하늘의 기업은 창세전에 우리를 선택하신 하나님께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장차 받을 기업에서 떨어지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기업을 얻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없습니다.

또한 우리에게서 그 기업을 빼앗을 수 있는 존재도 없습니다(로마서 8장3139절).

 

분명 수많은 위험과 수고와 유혹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그분의 백성들인 우리는 끝까지 보존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정을 통해 매일 고난과 아픔의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큰 위로를 얻습니다.

이 진리로 인해 매일의 영적 전투에서 연약해지라도 성도들을 다시 힘을 얻게 됩니다.

우리를 선택하신 하나님은 확실히 우리를 지키실 것입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 요한복음 10장28절 -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선택하셨다는 말에는 선택되지 않은, 불택자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불택자들에 대해서 예수님은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 도다"고 하시고,  선택자들에 대해서는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 요한복음 10장 26∼27절 -

 

예수님은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에게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불택자들에 대해서는 "저주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마25장).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의 결과입니다.

구원이 포기될 수 없는 이유는 우리의 행위를 근거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에 근거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우리 행위를 묻지 않으셨기 때문에, 마지막까지도 우리 행위와 관계없이 긍휼과 자비에 의해서 마쳐질 것입니다.

따라서 진심으로 그리스도를 알게 된 자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만 생각할 뿐이지 자기 행위를 근거 삼지 않을 것입니다.

행위가 아니라 택하심을 따라 일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권위만을 세상에 세우시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인간의 행위를 근거로 일하셨다면 세상에 세워지는 것은 인간의 영광과 능력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하심을 따라 일하신다면 행위가 세워질 근거가 없습니다.

오직 창조하시고 택하시고 부르신 하나님만 세워질 것입니다.

 

예례미야 1장5절에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에도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1:3~6)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전부터 우리를 예정하사 하늘의 신령한 복을 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은 은혜는 거저 받은 은혜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뜻과 예정하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닙니다.

부르시는 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서게 된 것입니다. 평안!

 

- 하늘가는 길, 강릉 남대천에서 산돌의집 장득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