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로마서 강해(59)-내 동족은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가족사랑 2021. 3. 15. 14:19

로마서 강해(59)

 

내 동족은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 로마서 9장 4∼5절 -

 

 

유대 민족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일로 인해 사도 바울이 크게 근심하고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을 갖는 것은 그 당연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민족이라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않는 다른 그 어느 민족보다 더더욱 믿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의 복음은 바로 유대 민족의 하나님이 행하시는 구원사역의 복된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은 유대 민족이 갖고 있는 모든 특권적 역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베푸신 역사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the people of Israel)」

 

유대 민족에게 주어진 역사적 특권을 바울은 본문 4∼5절에서 다음과 같이 열거합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바울은 동족 유대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특권에 대하여 몇 가지 말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유대인들을 가리켜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바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란 뜻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은 한 조상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번성한 민족입니다.

그리고 그 아브라함은 하나님에 의하여 특별한 언약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태어난 유대인의 자존심과 명예는 대단한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은 메시야의 언약이 있었으며 또 몇 가지의 축복이 있습니다.

 

1. 이스라엘에게는 양자(養子)됨의 축복이 있습니다

“양자됨”은 로마서 8장의 양자와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롬8:14∼15)

 

여기서 양자는 참된 그리스도인, 거듭난 사람들, 즉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들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의 ‘양자됨’은 속해 있었던 장자적 위치를 말합니다.

구약에 보면 유대인들에 대하여 특별한 신분을 부여해 는 말씀들이 나타납니다.

특히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고 말씀들이 등장합니다.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출애굽기 4장22절)

"나는 이스라엘의 아버지요 에브라임은 나의 장자니라"(예레미야 31장9절).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라”고 하셨습니다(출애굽기 19장5절).

‘내 아들’이라고 부르셨습니다(호세아 11장1절).

 

2. 이스라엘에게는 영광(榮光)이 있습니다

‘영광’이란 그들의 신분적인 영광과 약속으로 말미암은 영광입니다.

‘영광’이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친히 찾아오셔서 그들과 만나시고, 그들 가운데 임재하신 것을 뜻합니다.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매 그들이 광야를 바라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나더라"(출애굽기 16장10절)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엿새 동안 산을 가리더니 일곱째 날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니라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 같이 보였고"(출애굽기 24장16∼17)

"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리니 내 영광으로 말미암아 회막이 거룩하게 될지라"(출애굽기 29장43절)

"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출애굽기 33장18∼19절)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신 후에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과 함께하시며 그들의 광야 길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 영광은 일찍이 아무 민족에게도 주신 일이 없었으며 오직 유대인들에게 뿐이었습니다.

 

3. 이스라엘에게는 언약(言約)들이 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다윗, 그리고 그 수많은 선지자들로 말씀하신 언약은 모두 이스라엘에게 유효한 것들이며 그들은 마땅히 그 언약을 믿고 그 언약을 따라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했습니다.

언약은 하나님의 은혜의 주권적인 행위입니다.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예레미야 31장33절)

언약은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이스라엘을 통하여 스스로 행하시겠다고 맹세하는 것입니다.

언약은 언제나 전적으로 하나님 편에서 일방적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여기서 “언약들”이라고 복수를 쓰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근본적인 언약을 바탕으로 사람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이삭과 야곱 등에게 계속해서 율법의 국면을 밝혀 주며 갱신에 나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은 이 세상에서 이스라엘과의 언약이 있었을 뿐입니다.

 

4. 이스라엘에게는 예배(禮拜)가 있습니다

‘예배’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하나님께 대한 경배를 말합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린 민족은 오직 이스라엘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만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는 예배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성막의 예배를 통해서 가장 명백하게 드러났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방식이 그 성막의 예배를 통해서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출애굽기 25장 89절)

"성막에서 쓰는 모든 기구와 그 말뚝과 뜰의 포장 말뚝을 다 놋으로 할지니라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감람으로 짠 순수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않게 등불을 켜되  아론과 그의 아들들로 회막 안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보살피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지킬 규례이니라"(출애굽기 25장 19∼21절)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법에서 가장 중요 부분이 제물(祭物)입니다.

이스라엘의 제물 드린 법은 첫째로 하나님께 향연(饗宴)을 드리는 의미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공의(公義)를 만족시키는 윤리적인 것입니다.

이런 윤리적 제사법은 이방인들에게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지를 결정하시고 계시하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예배는 인간이 원하는 대로, 인간이 좋아하는 대로, 인간의 방편대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로마서 12장1절)

그리고 예배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가 없는 예배는 가식입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가 6장 6∼8절)

하나님은 눈물로 애통하며 회개하는 예배를 찾으시고 받으십니다.

예배는 첫째로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한 바대로 행하지 말고 하나님의 방식을 지켜야 합니다.

둘째로 그때나 지금이나 그 점은 매우 중요한데, 그 길은 오직 하나 뿐인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는 길입니다.

 

5. 이스라엘에게는 약속(約束)들이 있습니다

이 약속들은 위대한 구원의 계획과 체계로부터 결과 되는 특별한 축복들을 지칭합니다.

약속들은 메시야 시대의 복락들과 영광들을 지칭합니다.

메시야와 그 통치에 속한 모든 자에게 주어지게 될 상세한 축복들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의 탄생, 그리스도의 사역,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 승천, 재림 등 모든 것에 관한 약속을 다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약속을 한 마디로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나라(즉 천국) 건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여 부르시고 그의 후손을 약속하신 대로 번성하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함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을 출애굽 하게 하시어 시내산 계약을 통해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님의 백성을 삼으신 위대하신 구원행동도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구현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혈통을 통해 인류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로마서 1장 3∼4절)

그리스도께서 그들 중에서 나신 것은 큰 특권이요,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구원자 그리스도를 유대인의 몸에서 나게 하시고, 그들에게 먼저 복음을 영접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항상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로마서 1장16절)

우리에게는 예수를 믿음으로 이 약속들 중에 어느 것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사람들은 그 약속을 스스로 폐기해 버렸습니다.

 

6. 이스라엘에게서 그리스도가 나셨습니다

유대인의 조상들은 어떤 존재입니까?

아브라함이 그들의 첫 조상이요 이삭과 야곱이 그들의 조상들입니다.

이들은 모두 위대한 족장들로 하나님의 언약을 받았고 그 언약에 의하여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까지도 육신적으로 보면 저들과 함께 유대인으로 나셨습니다.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마태복음 1장 16∼17절)

이 예수님이야 말로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십니다.

바울은 과거 자기 선조들에게 한 언약들을 가리키며 이는 너희를 통하여 이 세상을 구원하실 예수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의 언약을 이룬 민족이다. 그래서 “율법을 세우신 것” 즉 율법을 받은 민족 아니냐?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은 경로로 보건대 유대인들이야말로 이 세계 인류 중 가장 복된 민족이요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거나 구원의 은총에서 제외될 리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서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누구보다도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 특권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이스라엘 민족만큼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와 특권이 주어졌습니다.

그들은 구원의 문제만큼은 꼬리가 되지 않고 머리가 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핍박했습니다.

복음으로 구원을 받아야 할 그들이 오히려 복음의 원수 노릇을 했습니다.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할 그들이 오히려 복음의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핍박하고 죽이고자 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이런 그들에 대해 애타는 목자의 심정, 상한 마음, 통곡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안타까워했고 큰 근심과 마음의 고통으로 괴로워했습니다. 평안!

 

- 하늘가는 길, 강릉 남대천에서 산돌의집 장득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