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로마서 강해(57)-나에게는 큰 슬픔이 있습니다

가족사랑 2021. 2. 19. 15:18

로마서 강해(57)

 

나에게는 큰 슬픔이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 로마서 9장 1∼3절 -

 

 

바울 사도가 겪은 근심과 고통은 지금까지 이 세상에 태어났던 어떤 사람과도 다른 근심과 고통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며 그 사명감에 투철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민족에게도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관심 또한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그는 동족인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복음전도를 방해하며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일 때문에 매우 가슴 아파했습니다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사도 바울의 자기 민족을 위한 근심과 고통의 깊이”는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이고, 아픔이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저주를 받아’의 ‘저주(詛呪)’는 헬라어로 아나데마(ἀνάθεμα)라고 하는데 파문(축출)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축출(끊어짐)’, 다시 말해 ‘하나님과 단절됨’이 바로 저주입니다.

‘생명’과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단절되었다는 것은 곧 죽음이요 영원한 불행입니다.

사도 바울은 실제로 자기 형제 곧 골육지친을 구원하는데 어떤 도움이 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짐도 감수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유대 민족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아 구원의 은혜에서 단절되어 있음을 고통스러워하는 그의 심정이 어떠한지를 드러내며 동족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의 깊이를 내비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옛날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 모세를 기억하게 됩니다.

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에서 나와 석 달 만에 시내 광야에 이르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을 떠난 지 삼 개월이 되던 날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니라"

 - 출애굽기 19장1절 -

 

모세는 거기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시내 산에 올라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율법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지체되자 백성은 그를 기다리지 못하고 모여 모세의 형 아론에게 그들을 대신 인도할 신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 출애굽기 32장1절 -

 

그래서 아론은 그들이 모은 금붙이로 금송아지를 만들어 주었고 백성은 거기에 제사를 드리며 좋다고 뛰놀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보고 그 앞에 제단을 쌓고 이에 아론이 공포하여 이르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아론이 보고 그 앞에 제단을 쌓고 이에 아론이 공포하여 이르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 출애굽기 32장4∼6절 -

 

이 광경을 보신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산을 내려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 출애굽기 32장7절 -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분노에 차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 출애굽기 32장9절 -

 

그때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울부짖었습니다.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 출애굽기 32장31∼32절 -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 출애굽기 32장33절 -

누구든지 오직 죄를 범한 사람만 때가 되면, 내가 그들에게 반드시 죄를 물어 생명책에서 지워버리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때 모세는 이렇게 하나님께 간청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주소서. 그렇게 하지 않으시려면,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저의 이름을 지워 주십시오."

 

여기 ‘생명책’에서 이름을 지워버린다고 하는 것이 바로 “저주”, 하나님에게서 축출됨을 말합니다.

그만큼 모세가 자기 백성을 끔찍하게 사랑하고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뜨거운 마음과 열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바로 모세와 같이 자기 구원을 포기할 만큼 동족을 사랑하여 구원받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는 바울의 심정이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세워 쓰신 모세나 바울이 하나님의 구원에서 끊어져나갈 리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택하시고 구원하셔서 복음의 사도로 귀하게 사용하신 바울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 리도 없습니다.

이 같은 일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바울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 로마서 8장38∼39절 -

 

바울이 이렇게 말한 것은 거짓이 없는 진실과 그가 참으로 원하는 간절함의 마음의 표현입니다.

그러나 차라리 그렇게 되도 좋으니 자기 민족을 구하여달라고 부르짖을 줄 아는 것이 민족을 위하는 사도 바울의 마음이었습니다.

 

바울과 모세, 이들에게서 찾아 볼 수 있는 공통점은 꼭 같습니다.

그것은 자기 동족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근심을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구하려는 근심은 거룩한 근심이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근심입니다.

고린도후서 7장에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 고린도후서 7장10절 -

 

그렇습니다!

거룩한 근심은 후회함이 없는 근심이요, 구원에 이르게 하는 근심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동산에서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있으라"(마태복음 26장38절)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처럼 자기 동족을 사랑하여 구원받기를 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보면 피는 물보다 진하다. 또 팔은 안으로 굽는다하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의미는 누구든지 다른 사람보다는 자기 가족을 먼저 생각하게 되고, 다른 나라 사람보다는 우리 동족을 더 위하게 된다는 것을 아주 재치 있게 표현 한 속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원래 하나님께 처음 부름을 받을 때에는 자기 동족이 아닌 아방사람들에게 특별히 복음을 전하도록 소명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이방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면 전할수록 항상 그 마음에 떠나지 않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울의 동족 이스라엘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이 이방인에게 복을 전하고 있을 때 유대민족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심지어 예수 믿는 사람들을 극렬히 핍박하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가 전도하여 예수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바울은 자기 동족에 대한 생각에 마음이 계속 편치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자손 중 이삭, 이삭의 자손 중 야곱, 이 야곱이 얍복 나루에서 하나님께서 축복하시지 아니하면 하나님을 결코 놓지 않겠다며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야 말겠다는 강한 집념과 의지를 보였을 때, 하나님께서 그 야곱의 간구를 들으시고 그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주셨습니다(창세기 32장1332절).

그는 이러한 이스라엘 사람이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자기 동족을 사랑하여 구원받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의 감정이 조금 복잡합니다.

거기에는 울분이 있습니다.

원통함이 있습니다.

억울함이 있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표현하자면 이 그 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평안!

 

 - 하늘가는 길, 강릉 남대천에서 산돌의집 장득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