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 강해

사도신경 강해(2)-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가족사랑 2021. 3. 5. 15:59

사도신경 강해(2)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 창세기 17장 1∼8절 -

 

 

사도신경의 처음 단어는 <전능하사>라는 전능한 하나님을 믿는 고백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의미하는 것으로 전지(全知), 전재(全在), 전능(全能)의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전지(全知)>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신다는 말입니다.

보통 인간은 경험 반경이 너무나 좁기 때문에 미래의 일을 전혀 모릅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일을 지식 전체의 몇 억 분의 일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계시므로 과거, 현재, 미래를 다 아십니다.

 

이새의 집에 왕을 선택하러 간 사무엘이 장남 엘리압에게 기름을 부으려고 하자 하나님께서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사무엘상 16장7절)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우리의 속마음을 아십니다.

역대하 16장에는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역대하 16장9절)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시편 33편에는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굽어보사 모든 인생을 살피심이여 곧 그가 거하시는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들을 굽어살피시는도다”

(시편 33편13∼14절)

하나님은 선하고, 아름답고, 귀한 행동을 살피십니다.

 

전재(全在)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어디에나 계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하늘을 쳐다봅니다. 초대교인들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하늘은 신의 보좌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도 부활하신 후 하늘로 올라가셨으며, 하나님의 음성도 대체로 하늘에서 들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믿는 것이 딱히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은 하나님은 하늘에만 계시지 않고 어디에나 계십니다.

안 계시는 곳이 없는 무소부재의 하나님입니다.

 

시편139편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 시편139편7∼10절 -

 

<전능(全能)>이란 말은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에 있어서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모든 것이란 말은 문자 그대로 ‘무엇이든지’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빛이 있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자 빛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에 따라 하늘과 땅, 바다와 육지, 식물과 동물 등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와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람과 바다를 잠잠케 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를 마르게 하셨으며, 죽은 자를 살아나게도 하셨습니다.

성경의 기록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와 같은 일을 수행할 때에 무슨 노력을 했거나 정성을 집중시켜서 힘써 일했다는 기록이 없고, 무엇이든지 원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예레미야 32장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능력과 펴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사오니 주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 없으시니이다”

(예레미야 32장17절)

 

마태복음 19장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마태복음19장26절)

 

하나님께서는 인간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기적과 이적의 하나님이십니다.

 

누가복음 1장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누가복음1장34∼37절)

 

욥은 하나님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욥기42장2절)

 

예레미야 32장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

(예레미야 32장27절)

하나님은 전쟁 승패도 좌우하십니다.

 

1.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오늘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자신을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성경의 배경을 살펴보면 아브라함에게는 실망과 좌절의 기간이었습니다.

그는 75세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고향을 떠날 때 분명 하나님께서는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24년이 지난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할 99세에 이르기까지 그에게는 그 어떤 자식도 없었습니다.

있는 것은 고작 자기 아내인 사라의 여종 하갈로부터 얻은 이스마엘 뿐이었습니다.

물론 그는 여전히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고는 있었겠지만, 속마음에는 “이제 틀렸구나!”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내 사라도 역시 남편 아브라함과 같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내 나이 여든 아홉이니 하나님께서도 별 수 없겠구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같은 절망적인 상황에 있는 아브라함 가정에 하나님께서 찾아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창세기 17장1∼4절)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창세기 17장15∼16절)

 

이때 아브라함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창세기 17장17∼18절)

 

아브라함의 부정적 반응에 하나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창세기 17장19절)

 

아브라함은 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다시 아브라함 가정에 찾아왔습니다.

이때는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는 이미 월경이 끊어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도저히 임신할 수 있는 몸의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형편에 처해 있던 아브라함 가정에 하나님께서 찾아와서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창세기 18장10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뒤편에 있는 장막 문에서 들었습니다.

사라는 속으로 웃으며,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창세기 18장12절)고 하며 웃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라의 그 웃음을 들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창세기 18장13~14절).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한 하나님이십니다.

여기에 쓰인 '전능한 하나님'이란 이름은 히브리말로는 ‘엘샤다이(EL Shaddai)’라고 합니다.

"엘 샤다이"란 "절대적이고 우주적인 통치자"라는 뜻입니다.

70인 역에서는 전능자, 무소부재자, 주권자등의 뜻으로도 번역되어있습니다.

이것은 구원의 하나님이라는 뜻의 "여호와",

그리고 자연을 창조하시고 보전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의 "엘로힘" 등과도 구별되는 이름입니다.

"엘 샤다이"는 자연의 질서를 거스려서라도 끝까지 약속을 성취하시려는 절대 능력의 소유자이신 하나님의 성호입니다.

 

아브람이 99세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이때는 아브라함이 “이제 나는 죽은 몸이다. 사라가 자녀를 낳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소망이 없다”는 때입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이 자기는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절망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찾아 오셔서 "나는 엘 샤다이, 전능한 하나님이다. 너는 불가능하지만, 전능한 하나님에게는 불가능이 없고 무엇이나 할 수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낙심하고 좌절할 때, 고통이 심할 때 찾아야 할 분은 바로 "엘 샤다이의 하나님, 전능한 하나님"이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말씀을 하시고 그 말씀을 성취하시는 전능한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연의 질서를 거스려서라도 약속을 끝까지 성취시키려는 능력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은 전능한 하나님이시다

 

구약성경 예레미야 18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진흙을 이겨 그릇을 만드는 토기장이의 집에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는 그곳에서 토기장이의 손에 들려진 잘못 만들어진 진흙 그릇을 보았습니다.

토기장이는 그것을 즉시 부셔서 다시 진흙 덩어리로 만들었다가 새로운 그릇으로 고쳐 만들었습니다.

토기장이는 자기 마음대로 그것을 가지고 만들거나, 부수거나, 고치거나, 없애 버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렘18:6)

 

하나님께서는 그가 바라시고 원하시는 대로 근절시키거나 파괴해 버리거나 멸망시키거나 또는 세우거나 심거나 하실 수 있는 전능한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매우 무서운 묘사입니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 속에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아래서 인간이 하나의 물건 취급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인간을 물건 취급하듯이 하시는 불의한 하나님은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고 선하시고 거룩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선배 신앙인들은 하나님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편145편8절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신명기4장31절 “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심이라 그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너를 멸하지 아니하시며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리라”

 

예수님께서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9장 23절과 24절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라고 했습니다.

26절에서는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하나님의 성품에는 악한 성품이나 더러운 성품은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지만> 당신의 성품에 반대되는 일은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이적 기사만 행하시는 하나님은 아니십니다.

천지를 말씀으로 지으시고, 그 안에 자연법을 주시고, 인간에게 지혜를 주신 하나님은 그 자연법과 인간의 지혜를 따라 역사를 엮어 나가십니다.

인간 자신의 문제는 인간 스스로가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하시기도 합니다.

전자공학을 발견시켜 계산을 빨리하고, 먼 곳에 있는 것을 예측도 하고, X광선을 발명하여 병을 고칩니다.

특히 의술을 발전시켜 생명을 많이 구출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직접 인간 생활에나 인류 역사에 개입하시고 간섭도 하시지만,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인간에게 맡겨서 하십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는 아무래도 그대로 두어서는 안될 일을 간섭하십니다.

꼭 하나님께서 이적으로 해야할 필요성이 있을 때 하나님은 간섭하십니다.

 

아브라함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에 그의 아내 사라가 이제 더 이상 희망 가능성이 없는 그 나이에 하나님께서는 간섭하셨습니다.

나이 많은 아브람과 수태치 못하는 사래는 그들에게 아들을 약속하신 하나님이 실제로 전능하신 분이시며, 아브라함의 100회 생일을 앞두고 그의 목적을 성취시킬 수 있는 분임을 알 필요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전능은 구체적으로 애굽의 종살이를 하고 있던 이스라엘을 출애굽시켜 해방시키는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애굽의 종살이에서 탈출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기에 개입하셔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전능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에서 경험되고 증거됩니다.

신약성경에서 많이 사용된 고백중의 하나는 십자가에 죽은 예수를 일으킨 하나님에 대한 고백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명백하게 나타낸 줍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문제는 삶과 죽음의 문제입니다.

이것보다 더 큰 문제는 우리에게 없습니다.

특히 죽음은 인류의 영원한 수수께끼이며 비극적 사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의 <전능의 힘>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그것이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은 이같은 <전능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죽은 자도 살아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전능의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이 그들로 하여금 일평생 복음 전도자가 되게 했습니다.

재물도, 심지어 죽음까지도 버릴 수 있게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절망의 시기에 살던 아브라함과 사라를 찾아오셨듯이 오늘 우리에게도 찾아오십니다.

절망가운데 있던 이들에게 희망을 주셨듯이 우리에게도 희망을 주십니다.

한숨과 같은 의심의 웃음을 가졌던 사라에게 참 웃음을 주셨듯이 우리에게도 참 웃음을 선물로 주십니다.

우리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을 때 하나님께 울부짖습니다.

풀려질 수 없는 문제에 빠져 있을 때 도와달라고 절규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모른척하거나, 또는 팔장을 끼고 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찾아오셔서 우리의 문제에 간섭하십니다.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전능의 팔을 휘두르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웃게 해주십니다.

여러분들의 삶 속에서 이 전능의 하나님을 만나 뵙기를 기도합니다. 평안!

 

-하늘가는 길, 강릉 남대천에서 산돌의집 장득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