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강해

고린도전서 강해(6) - 나의 전도는 성령의 능력으로 한 것입니다

가족사랑 2025. 3. 10. 00:54

"나의 말과 나의 설교는 성령의 능력이 나타낸 증거로 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4~8절□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김익두 목사가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다

황해도 신천읍에는 안중근 의사가 살던 두라면에 저수지로 가는 길목에 척서리 개울이라고 하는 냇가가 있었습니다.

이 개울에 돌다리가 있었는데 이 다리 옆에는 언제나 앉은뱅이 거지가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가는 이 오는 이들이 앉은뱅이 거지를 불쌍히 여겨 동냥을 해 주었기 때문에 이 거지는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김익두 목사도 그 자리를 지날 때 마다 잊지 않고 꼭 얼마의 돈을 쥐어주고 지나갔습니다.

때때로 김익두 목사는 '나도 베드로처럼 저 앉은뱅이를 일으킬 수만 있다면 근사할텐데.......하고 늘 마음에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가랑비가 내리는 한적한 오후에 김익두 목사가 그 다리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도 별로 없었고 인적이 드문 시간이어서 매우 조용한 때였습니다.

“한푼 적선 합쇼!”

김익두 목사를 보고 앉은뱅이 거지가 손을 내밀었습니다.

성경구절을 암송하느라고 골똘해 있던 김익두 목사가 움칫 걸음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다가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오늘은 인적도 뜸하고 마침 보는 사람도 없으니 이럴 때 한번 저 앉은뱅이를 일으켜보면 어떨까?”

이런 생각에 다시 한번 주위를 빙 둘러다보니 마침 오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행여나 사람이 보는데 시도하였다가 만일 실패하기라도 하면 무슨 망신일까 싶어 아무도 없을 때 한번 시도해 보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때가 마침 좋았고 기회가 적중하다고 생각되어 그 앉은뱅이에게 다가가서 손뼉을 딱 치면서 불렀습니다

“날 똑똑히 보시오!”

“예? 나요?”

앉은뱅이는 갑자기 상기된 김익두 목사의 얼굴을 의아한 눈빛으로 올려다보며 대답했습니다.

김익두 목사는 앉은뱅이의 손을 꽉 움켜잡고 그를 주목하면서 큰 소리로 명령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성경에 있는 말씀 그대로 외치면서 그를 힘껏 잡아 일으켰습니다.

원래 힘이 장사인 김익두 목사인지라 앉은뱅이는 그의 힘에 의해 번쩍 들려졌습니다.

그리고 김익두 목사는 그의 손을 놓았습니다.

그랬더니 잠시 들려졌던 그 몸체가 그만 땅바닥에 털썩 떨어지면서 엉덩이가 땅에 부딪히고 비명이 터져 나왔습니다.

본래 불편한 육신이라 통증을 못이겨 소리를 지르며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아이쿠 나 죽네! 사람 살려요! 그는 몸을 비틀며 비명을 질렀습니다.

“사람 죽여요 ! 아이구 아이구...........”

김익두 목사가 살펴보니 앉은뱅이가 전혀 일어설 기색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만 부끄럽고 무안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순간 번쩍 뇌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렇다! 왜 내가 믿음으로 하지 않고 주위를 돌아보았는가? 이런 연약한 믿음으로 어떻게 앉은뱅이를 일으키겠다고 나섰는가? 참 한심한 노릇이다....”

아무리 성경을 다시 상고해봐도 베드로가 한바퀴 빙 둘러보고 앉은뱅이를 일으킨 일이 없었기에 생각하수록 자신의 행위가 부끄러웠습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그는 그만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벗어나와 그 길로 예배당으로 뛰어갔습니다.

강단 아래 무릎을 꿇고 깊이 탄식하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여!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 종이 심히 믿음 없음을 회개하나이다. 이 연약하고 어리석은 종이 주의 영광을 훼손한 것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김익두 목사는 자신의 믿음이 부족함을 탄식하며 진심으로 깊이 뉘우치고 회개했습니다.

이러한 상태로 목회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행위인가를 깨닫고 7일을 금식하며 철야로 기도했습니다.

물 한모급 입에 대지 않고 완전히 식음을 전폐한채, 깊은 기도에 몰입했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도 모두 부질없는 것임을 마음 깊이 깨달으며 기도에 열중했습니다.

“주여! 하잘 것 없는 개나 돼지도 발이 있고 소, 닭도 다리가 있어 걸어 다니고 있는데 저 불쌍한 인생은 무슨 죄가 많아서 저렇게 걷지도 못하고 앉아서 평생 저 고생을 하며 살아가야 합니까?”

김익두 목사의 눈에서 주르르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김익두 목사는 남달리 인정이 많았습니다 .

그는 성령의 감동으로 남을 가엾게 여기는 사랑의 마음이 생겨 애통하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눈물로 흘러 내린 것입니다.

‘앉은뱅이를 고쳐 한번 명성을 얻어 보리라'고 생각했던 허망한 명예욕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사랑과 긍휼의 눈물이 한없이 흘러 내렸습니다.

이렇게 눈물로 회개하고 기도하다가 6일째 되는날 척서리 냇가로 다시 내려갔습니다.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엿새를 굶어서 다리가 휘청거리고 기운이 진하였지만 힘을 내어 간신히 다리까지 걸어갔습니다.

다리 근처에 자리를 잡고 동냥을 청하던 앉은뱅이는 멀리서 김익두 목사가 자기를 향해 걸어오는 것을 발견하고 기겁을 하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오지마시오! 적선 안 해도 좋으니 제발 오지 마시오.”

앉은뱅이는 손을 휘저으며 김익두 목사가 다가오는 것을 제지했습니다.

또 한번 혼이 날까봐 겁을 집어 먹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김익두 목사는 그를 향해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그의 손을 붙잡고 간절히 호소했습니다.

“지난번 일은 용서하시오. 내가 그때부터 지금까지 금식하고 철야하며 당신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 드렸소이다. 오늘밤이 기도 작정한 마지막 날인데 나와 함께 가서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눈물을 흘리며 진심으로 말하는 김익두 목사의 태도에 앉은뱅이는 마음이 움직여 함께 가기로 동의했습니다.

김익두 목사는 엿새동안을 꼬박 굶어 다리가 휘청거렸지만 앉은뱅이를 등에 업고 있는 힘을 다해 교회당으로 걸어갔습니다.

강단 밑에 엎드린 김익두 목사와 앉은뱅이는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기도했던지 전신에서 땀이 비오듯 흘렀고 얼굴은 눈물과 땀으로 범벅이 되었습니다.

“주여! 이 불구자를 불쌍히 여겨 일으켜 주옵소서! 간절히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주께서 이 사람을 일으키사 걷게 하여 주옵소서! 

걷지 못하는 다리에 힘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믿습니다! 주여, 믿습니다!”

밤이 새도록 두 사람은 서로 붙들고 울면서 목이 쉬도록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어느덧 깊은 밤이 지나고 새벽 미명이 되었을 때 갑자기 앉은뱅이가 다리에 힘을 얻더니 벌떡 일어섰습니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한 걸음 두 걸음 발을 옮기더니 급기야는 예배당 안을 껑충껑충 뛰어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너무도 기뻐서 두 손을 들고 “만세! 만세! 할렐루야! 할렐루야!”를 외치면서 껑충껑충 뛰어 예배당 안을 계속 돌아 다녔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익두의 하나님이시여! 고맙고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익두 목사도 감격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4절)

 

바울은 그의 전도가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은인간의 논리적이고 철학적인 접근 방식으로 복음을 전하려는 시도를 의미합니다

당시 고린도는 지식과 철학이 중요한 문화적 중심지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혜와 학문에 큰 가치를 두었습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인간의 지혜나 설득력 있는 의존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복음의 전파와 신앙의 확립이 인간의 지혜에 의존하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접근 방식이 복음의 진수를 전달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바울은 복음이 단순한 이론이나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하나님의 능력과 성령의 실제적인 사역에 의해 확립된다고 믿었습니다.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은 신앙생활의 핵심 요소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깊은 의미와 실천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개념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이 이 땅에 보내신 세 번째 위격으로, 신자들의 삶에 실질적이고 변화를 일으키는 역할을 합니다.  

성령은 교회가 하나님의 사역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성령은 교회가 복음을 전파하고, 사랑과 섬김을 실천하는데 필요한 능력을 제공합니다.

성령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를 신자들에게 깨우쳐 주며, 성경의 교훈을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성령은 신자들이 성경의 말씀을 단순한 글자가 아니라 살아있는 진리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합니다.

성령은 성경의 말씀을 삶 속에서 실천하도록 인도합니다.

성령은 신자들에게 영적 은사를 부여하여 교회와 사회에서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도록 돕습니다.

성령은 신자들이 어려운 상황이나 도전에 직면했을 때 큰 힘과 위로를 제공합니다.

성령은 신자들에게 필요한 지혜와 인내를 주며, 그들이 신앙의 여정을 계속해 나가는 데 필요한 용기와 확신을 제공합니다.

성령은 신자들이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셩령은 신앙의 어려운 시기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경험하게 합니다.

성령의 역할은 교회 공동체의 성장을 돕는 데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조용히 와 계시는 분이 아니라 밖으로 나타나시려는 분이십니다.

성령이 각 사람에게 나타시려는 목적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린도전서12장7절)

성령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고 성장시키기 위해 나타나십니다.

성령의 나타나심은 하나님이 자신을 신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드러내시는 방식을 말합니다.

성령의 나타나심은 감정적인 체험이나 신비적인 사건으로 나타납니다.

그 핵심은 신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깊이 이해하고 그에 따라 변화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나타나심은 신자들에게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가능하게 합니다.

 

성령의 능력은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효과적으로 감당하게 합니다.

성령의 능력은 신자들이 서로 협력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게 합니다.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은 신앙생활의 본질입니다.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은 신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게 합니다.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은 교회와 사회에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진리를 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은 단순한 신앙적 체험을 넘어, 신앙의 본질과 신자들의 삶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성경을 잘 풀이하여 설교하고 말씀을 전한다 해도, 전도와 선교는 말의 언변이 아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입니다.

이러한 사실 앞에 우리는 한없이 겸손해질수 밖에 없습니다.

오직 우리는 하나님의 일하심만을 바라보고 목도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미사어구와 언변으로 하나님을 증거하려 해도 중요하고 가장 근본적인 것은 오직 성령의 능력입니다.

우리의 삶에 그 성령의 능력이 늘 나타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사역에 그 성령의 능력이 늘 나타나기를 기도합니다. 평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