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강해

고린도전서 강해(8) -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가족사랑 2025. 3. 26. 00:19

□고린도전서 3장 10~17절□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

 

B.C 30년경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Vitruvius)가 쓴 “建築十書(The Ten Books on Architecture)"에서 '건축물이란 충분한 내구성(耐久性)이 있고, 편리하며, 아름다운 외관을 가져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내구성(耐久性)이란 지진하중(地震下中), 풍하중, 크리프하중, 변형, 화재에 의한 손상, 부식 등과 같은 위험하중을 포함한 다양한 힘과 하중에 대한 구조물의 저항(抵抗)을 의미합니다.

건물 구조의 내구성이 충분하지 않으면 수명이 짧고 사용자의 안전과 보안에 심각한 문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높은 유지 관리 비용이 발생합니다.

건물 구조의 내구성이 충분하려면 기초가 튼튼해야 합니다.

 기초란 건물의 모든하중을 받아서 안전하게 지반(땅의 표면)에 전달하는 건축물 하부의 지중(땅을 뚫고 들어갔을 때의 그 속)구조부입니다.

기초는 기둥, 벽체의 고정하중이나 적재하중 등의 외력을 지반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때문에 하중으로 인한 침하가 일어나지 않도록 기초의 하중을 안전하게 받을 수 있는 견고한 지반에 설치해야 합니다.

1994년 10월 21일 한강에 위치한 성수대교의 중간 부분이 갑자기 무너져내려 현장을 지나던 시내버스와 차량들이 그대로 추락하면서 32명이 사망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이듬해 1995년 6월29일에는 서울 서초구에 있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무려 502명이 사망했습니다.

성수대교 사고와 삼풍백화점 사고는  1970년에 33명이 사망한 와우시민아파트 붕괴 사고와 함께 대한민국 3대 붕괴 사고로 불립니다.

와우시민아파트, 성수대교, 삼풍백화점은 다 기초가 부실해서 일어난 사고입니다.

무슨 일이든 기초가 중요합니다.

기초가 부실하면 그 다음에 계속 문제가 됩니다.

공부나 운동에도 기초가 중요합니다.

특히 운동에는 기초 체력이 중요합니다.

기본적인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운동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합니다.

건축을 할 때 기초를 잘 놓아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집을 짓기 위해 제일 처음에 해야 되는 일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집을 지을 터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터를 잡아야 집을 짓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집을 지으려면 먼저 터가 있어야 합니다.

그 터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 지을 집이 그 가치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회사가 창립할 때 자본금이 얼마가 들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회사의 터는 자본금에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어떤 회사는 자본금은 없고 어떤 기술을 가지고 시작된 회사도 있습니다.

이 회사의 터는 기술입니다.

그리고 어떤 회사는 경영마인드가 특이한 것으로 시작된 회사도 있습니다.

이것이 그 회사의 터가 됩니다.

 

오늘 성경은 교회와 성도가 바른 기초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것을 건축의 비유를 통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여러 개의 파당으로 나누어져 자기들의 신앙의 뿌리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에게 있다고 자랑했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기초 위에 교회를 세우려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바른 기초 위에 교회를 세울 것을 권고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따라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어 고린도교회의 터를 닦았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에 와서 전도하여 교회를 세우고 일 년 반 동안 고린도에 머물면서 교회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그리고 그 기초 위에 아볼로를 비롯한 후임자들과 고린도 교회를 섬긴 사역자들이 교회를 세워갔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로 닦아둔 터 위에 교회를 세워갈 때 어떻게 세울까를 조심하라고 합니다.

조심하지 않으면 우리도 생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세속적인 것이나, 사람의 지혜나 욕심에 이끌리어 잘못된 방향으로 교회가 움직일 수 있습니다.

 

1.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그러면 바울이 닦아둔 고린도교회의 터는 무엇입니까?

11절을 보십시오.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교회의 터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에베소서 2장에 보면,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20∼22절)고 했습니다.

우리가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하실 성전을 짓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기에 터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터는 무엇입니까?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하고 사도들이 증거 한 예수 그리스도가 터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10∼11절에서 이 터를 닦아 두었다고 합니다.

그것도 자기에게 주신 은혜를 따라 되었다고 합니다.

자기 능력으로 터를 닦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터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다른 터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 터 위에 성도가 연결되어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터는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된 것처럼 그 위에 세워지는 집도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이루어집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유일한 기초요 터입니다.

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2장(1∼2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기초를 닦을 때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만을 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사실이 고린도 교회를 세운 고린도교회의 기초였습니다.

고린도교회뿐 아니라 모든 교회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전하는 복음입니다.

 

교회는 무엇입니까?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이기 때문에 교회에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기초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빠져 버리면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기초를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것 위에 세우면 그것은 아무리 겉으로 근사한 교회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교회는 아닙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인다 할지라도 교회는 아닙니다.

아무리 효과적인 조직을 갖추고 있다할지라도 교회는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공로로 구원받은 것을 감사하여 예배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증언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세워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를 있게 한 유일한 근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지 않으셨다면 교회도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신 일이 없었다면 교회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고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주심으로 교회가 탄생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에서의 속죄와 구원이 교회를 존재케 하는 유일한 기초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떠나면 기초가 무너진 건물과 같아서 곧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어떤 경우에도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복음 위에 서있어야 합니다.

 

교회의 기초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린도교회가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로 나누어진 것은 그 기초를 무너뜨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두어야할 기초를 사람에게로 옮겼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처음 세운 바울도 귀하고, 교회 부흥에 기여한 아볼로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교회와 신앙의 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사상이나 조직이나 풍조도 교회의 기초가 될 수 없습니다.

보수나 진보가 교회의 기초일 수 없습니다.

교단이 교회의 터일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 행하는 프로그램이나 사역이 교회의 기초일 수 없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때문에 세워졌고, 그리스도 때문에 존재하고, 그리스도 때문에 귀하고 가치가 있습니다.

봉사나 구제나 친교나 양육이나 선교도 다 예수 그리스도의 기초 위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해져야 합니다.

교회가 그 터와 기초를 그리스도께 두면 모든 사역을 통해 그리스도가 드러나고 그리스도께서 하시기를 원하셨던 일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사람이 그 기초에 있으면 사람이 드러나고 사람의 뜻이 드러납니다.

다른 무언가가 그리스도 대신 그 기초에 있으면 그리스도 대신 그 무언가가 드러나게 됩니다.

이단이 이단인 것은 교회의 기초를 옮겼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기초를 엉뚱한 데 두기 때문에 이단입니다.

사람에게 그 기초를 두고 잘못된 교리와 왜곡된 진리에 그 기초를 둡니다.

그래서 사람이 드러나고 잘못된 교리와 왜곡된 진리가 드러납니다.

이단은 겉으로 아무리 그럴듯해도 그러므로 교회가 아닙니다.

 

2.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오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교회를 세워갈 때 어떤 재료를 사용하는가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12절과 13절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터가 좋다면 반드시 그 자재도 좋은 것으로 사용하여 아름다운 건물을 지어야 합니다.

우리가 지어야 할 터는 얼마나 소중한 터입니까?

예수님의 피로 사신 값으로 따질 수 없이 귀한 터입니다.

이 귀한 터 위에 아무렇게나 집을 지을 수 없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그리고 13절에는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공적(功績)”을 불로 심판한다고 했습니다.

개역성경은 "공적(에르곤, ἔργον)"을 '공력'으로 번역했습니다.

새번역성경은 “업적” 으로 번역했습니다.

공동성경은 "한 일" 로 번역했습니다.

영어 성경은 "work"로 번역했습니다.

우리의 업적, 우리가 한 일은 공개적으로 불의 시험을 당합니다.

테레사 수녀는 평생 자신을 괴롭힌 만성두통을 참아가며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파스칼은 청년 시절부터 괴롭힌 온몸의 통증을 이겨내고 '팡세'를 남겼습니다.

베토벤은 청각장애의 고통 속에서 불후의 명곡을 만들었습니다.

구세군운동을 주도한 캐더린 부스는 "내 삶에 있어서 단 하루도 고통스럽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믿음의 훌륭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은 대부분 고난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주님 믿는 사람으로 큰 일을 한 사람은 인생의 고통을 통해서 금이나 은같이 됩니다.

신앙생활이 힘들고 어려움이 있다고 하더라도 인내로서 이겨나갈 때 믿음의 아름다운 집을 세워나갈 수 있습니다.

고난의 터널을 통하고 불같은 시련을 통해 자아가 깨어지고 변화를 받은 사람이 금 같은 사람, 은 같은 사람이 됩니다.

 

베드로전서 1장7절 말씀입니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집을 짓는 재료가 두 가지로 나옵니다.

하나는 금과 은과 보석이고, 다른 하나는 나무와 풀과 짚입니다.

금과 은과 보석은 가치 있고 변하지 않는 영구적인 것을 말합니다.

반면에 나무와 풀과 짚은 가치가 없고 일시적인 것을 말합니다.

금과 은과 보석은 말씀의 진리, 십자가의 도,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선물인 믿음, 성령의 능력과 같은 순전한 진리를 말하고, 나무와 풀은 인간의 사상이나 인간의 지혜나 지식 그리고 진리가 아닌 거짓 교훈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절대로 다른 터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 죽음과 부활의 터전은 영원하고도 절대 완전한 터입니다.

예수님만이 온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며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영원히 변하거나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터가 됩니다.

 

사도행전 4장1112절 말씀입니다.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우리의 신앙생활은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터 위에서 세워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십자가의 도와 성령의 능력과 하나님의 지혜와 믿음으로 세워가야 합니다.

말씀에 순종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하고, 하나님의 지혜로 일하며, 모든 일을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인간의 지혜나 세상의 지혜나 잘못된 교훈으로 하면 안 됩니다.

진리 아닌 방법이나 수단을 쓰면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기초 위에서 교회를 섬기고, 봉사하면 너끈히 불의 시험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 세상 마지막 날, 심판의 날에 그 세운 공적을 따라 심판받습니다.

이때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세운 사람은 상을 받게 됩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수시로 변하는 인간적 생각이나 지혜에 근거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습니까?

심판의 불을 통과하고 당당히 설 수 있는 금과 같은 믿음의 재료로 인생의 집을 짓고 있습니까?

아니면 심판의 불을 견디지 못하고 타버릴 재료를 사용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 보십시오.

주님의 말씀에 기초를 두고 금 같은 믿음으로 인생의 집을 세우십시오. 평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