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강해

고린도전서 강해(9) -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가족사랑 2025. 4. 1. 22:40

□고린도전서 3장 16~17절□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1. 성전(聖殿)

보통 '성전(聖殿)'이라고 하면 솔로몬의 성전을 연상하게 됩니다.

다윗이 성전을 짓고자하여 하나님께 아뢰었으나 잦은 전쟁으로 많은 피를 흘렸다하여 그 아들 대에 가서 짓게 하심으로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7년간에 걸려 장엄하고 화려하게 지었던 그 영광스러운 성전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것들을 생각하기 전에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로, 성전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생각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집은 사람의 집이 아닌 하나님의 집이라는 말입니다.

두 번째는 성전은 하나님의 설계에 의해서 지어졌다고 하는 생각입니다.

물론 다윗의 준비가 있었고 온 국민의 정성이 깃들였으며, 바벨론으로부터 백향목이 오는가 하면 목수들이 나무를 다듬는 등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가운데 솔로몬을 통하여 지어졌으나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바는 이 성전은 하나님께서 설계를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성전의 길이와 높이, 폭은 물론 섬세한 부분에까지 써야할 자재들과 준비해야 하는 기명들을 일일이 지명하고 계십니다.

성전이 다윗에 의해 뜻이 정해지고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가운데 솔로몬에 의해 완성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에 대한 경륜과 설계는 하나님께서 친히 하셨다는 것을 성경은 계속 강조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이 성전은 하나님을 위한 집이라고 하는 생각입니다.

이 성전 안에서 되어지는 모든 일을 이 집을 하나님의 집이 되게 하는데 근본 목적이 있습니다.

집이란 하나의 기구입니다.

만약 그대로 세워 놓고 사용하지 않는 집이라면 그것은 집이라기보다는 마치 하나의 비석과도 같은 것입니다.

집이란 그릇과도 같아서 반드시 어떤 목적을 위해 쓰이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의 집은 오직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만 쓰여지는 집이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넓은 의미로 말한다면, 온 우주가 모두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러나 성전은 특별히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는 분이시니 굳이 교회에 가서 예배드릴 것 없이 집에서, 또는 골방에서 기도하면 되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모든 집이 다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전을 구별하신 허락하신 목적은 이 집만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서 쓰여지게 하는데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성전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전은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고,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에 의해서 세워진 집입니다.

 

 

2.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

 

오늘 말씀은그 성전이 '우리'라고 말씀합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16절)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십니다.

하나님의 전인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이 계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거룩하고 그리고 모든 성도들은 하나입니다.

각 성도는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사실 이 말은 유대적 사고방식에 의하면 매우 도발적인 것입니다.

가히 신성모독에 해당된다고 할 수도 있는 발언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성전은 하나님을 상징하는 곳입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얼마나 어렵게 생각했는가 하면, 하나님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못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이라는 단어에는 모음(母音)이 없습니다.

이 의미는 읽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거룩하신 이름을 감히 우리 입으로 발음조차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서기관들은 성경을 필사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인데, 그렇게 성경을 베껴 쓰다가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붓을 다시 빨고 썼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집인 성전도 당연히 그만큼 거룩하고 감히 우리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곳인데, 바울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다’고 파격적으로 말씀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가르쳐 성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한복음2장19〜22절)

어떻게 해서 예수님의 육체가 성전이 될 수 있을까요?

성전의 기능은 인간이 지은 죄를 대신해서 소나 양이 죽여 제사를 드려서 하나님과 인간이 화해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신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태복음20장28절) 

그러므로 성전에서 행해지던 제사는 궁극적으로 예수그리스도에게서 일어나게 될 일을 미리 그림자처럼 보여준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17절 말씀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무서운 경고입니다.

누구든지, 어떤 사람이든지 성전을 더럽히면 멸하리라고 하십니다.

성소를 더럽히는 자는 결코 하나님께서 그냥두지 않습니다.

과거나 현재나 미래에도 그러하십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사람이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키십니다.

성전을 "더럽히면(프데이레이, φθείρει)은 파괴한다’ ‘부패케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좀 더 본래의 뜻에 가깝게 해석하면 ‘보다 나쁜 상황으로 이끌어 간다’,  또는  ‘망치게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더러워지니 하나님께서 파괴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성령을 모시고 사는 성도들이 자신을 '더 나쁜 상황으로 이끌어가거나 망치게 하면' 하나님께서 벌하십니다.

질병으로 벌하시고, 물질로 벌하시고, 고난과 고통으로 벌하십니다.

심지어 죽음으로 부르시기도 하십니다.

교회의 분열은 부패를 가져오고 나아가서 교회를 파괴하는 것이 됩니다.

역사 이래 교회를 분열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멸하셨습니다.

교회의 분열은 안에서의 부패요 파괴입니다.

이는 핍박으로 인한 파괴 곧 밖에서 오는 파괴보다 더욱 무서운 파괴입니다.

교회를 분열로 핍박으로 부패하게 하는 자를 하나님은 멸망하십니다.

 

안디옥교회의 이그나티우스(Saint Ignatius of Antioch, 35년경〜108년경 )는 초대 교회를 위해 헌신했던 속사도 교부입니다.

이그나티우스는 주후 69년경에 안디옥교회의 감독직을 맡아 사역하다가 로마 황제의 박해로 아디옥에서 체포되 끌려가 108년경에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는 로마의 원형경기장에서 맹수의 밥으로 죽음을 맞았지만, 요동하지 않고 끝까지 당당하게 신앙을 지켰습니다.

그에게 순교는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하여 그와 하나가 되는 특권이었습니다.

그는 순교를 앞두고 성도들에게 편지를 남겼습니다.

“여러분들이 나를 방해하지 않는다면, 나는 자신의 선택으로 그리스도를 위해 죽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나에게 ‘부적절한 친절’을 보이지 않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내가 야수들에게 던져지도록 두십시오.

왜냐하면 그러한 방법으로 나는 하나님께 다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밀입니다.

나는 정결한 떡으로 나타나기 위하여 짐승들의 이빨에 의해 물어 뜯겨 으스러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짐승들을 설득하여, 그 짐승들이 나의 무덤이 되고 내 육신 어떤 부분도 남기지 않게 하여,

내가 잠들었을 때 누구에게도 폐가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때 나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것이고, 이때 세상은 나의 육체를 보지 못할 것입니다.

나를 위해 주님께 이러한 도구들을 통하여 내가 하나님께 바치는 희생 제물로 나타나도록 탄원하십시오”

 

 

이그나티우스는  하나님에 의해 잉태된 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경건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집, 성전을 더럽히는 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은 멸망받아 지옥에 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성전을 더럽힌 자는 사형을 받거나 백성에게서 끊어졌습니다.

"사람이 부정하고도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면 여호와의 성소를 더럽힘이니 그러므로 회중 가운데에서 끊어질 것이니라 그는 정결하게 하는 물로 뿌림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부정하니라"(민수기 19장20절)

신약시대의 교회는 성전이신 교회에서 거짓교리를 가르친다든지, 분열을 획책한다든지, 이런 것을 교회를 더럽히는 것이므로 그런 자는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십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공동체가 성전이라 했습니다.

그러면 바로 이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를 더럽히고 파괴하는 행위를 하는 것이 성전을 더럽히는 것이 될 것입니다.

성도들 간에 이간을 부쳐 분리하게 하는 것이나 시기하는 것이 교회를 더럽히고 파괴하는 것입니다.

질투하는 것, 분쟁하는 것이 교회를 더럽히고 파괴하는 것입니다.

부정적이고 불신의 행동을 하는 것이 교회를 더럽히고 파괴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덥럽히는 것이 성전인 자기 자신과 형제를 더럽히고 파괴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하나님께 무서운 죄를 짖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거룩”이란 구별되었다는 뜻입니다.

거룩의 히브리어 '코데쉬'(קדש)는 ‘잘라냄, 분리함’을 의미하는 말로 ‘더러움과 분리된 상태’를 말합니다.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두고,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삼으셨느니라”(신명기14장2절)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위기11장45절)

신약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를 하나님은 거룩한 자들로 구별되게 관리하십니다.

성경은 거룩한 책이요 거룩한 사람으로 살 때 진실로 복을 얻게 됩니다.

거룩함은 성도의 체질이어야 합니다.

거룩한 사람을 한자어로 성도(聖徒)라 합니다.

기독교인이 된다고 인격이 완전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거룩한 백성이라 칭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이 되었다는 선포를 얻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존재가 세상에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처럼 표시되기를 바라므로 성도의 삶이란 대단히 조심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데살로니가전서 4장7〜8절)

성도의 삶은 세상 사람들과는 달라야 합니다.

성도의 삶은 경건(敬虔)이 기본이어야 합니다.

 

어떻게 성도가 거룩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거룩함은 인간의 지혜나 사람이 가진 선()의 정신으로는 하나님께 상달(上達)될 거룩이 나오지 않습니다.

근본이 죄성의 뿌리로 시작된 인간은 불가능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실현될 수 있습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본성이기에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거룩을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한복음 17장18〜19절)

그리고 성도가 거룩하기 위해서는 세상적인 것들을 피해야 합니다.

허영심을 버려야 합니다.

허영심을 가지고 세상의 부귀영화를 추구해서도 안됩니다.

쾌락을 버려야 합니다.

사도 요한이 제자들에게 간곡히 부탁합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요한일서 2장15〜16절)

탐심을 버려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형제 사이의 유산분배’를 해결해 달라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에게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눅12:15)고 말씀하셨습니다.

‘탐심’은 더욱 더 가지려는 억제할 수 없는 열망을 말합니다.

유산을 더 가지고 싶은 탐심에 대해 경계하신 것입니다.

세상의 헛된 것들을 탐내는 것은 하나님의 성전된 우리에게 합당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을 슬프시게 하지 말고 거룩하게 살아 성령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님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거룩한 삶으로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타락한 세상 속에서 섞이지 않고 거룩성을 회복하며 구별된 삶을 살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합니다.

혼탁한 세상을 좇아가지 말고, 흉내내지 말고,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처럼거룩한 삶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를 그 거룩한 삶으로 부르십니다. 평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