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과 칼럼

"많은 값을 줄테니 산을 파십시오!"

가족사랑 2024. 3. 15. 07:35

 

일제시대에 평양에 백선희라는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14살에 결혼하여 16살에 남편이 세상을 떠나 과부가 되었습니다.

남편을 잃고 홀로된 그녀는 새벽마다 교회에 나가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목사님을 아버지처럼 여기고, 신뢰하며, 교회 일이라면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봉사했습니다.

그녀는 생활에도 충실하여 열심히 삯바느질을 하며 돈을 모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가 찾아와서 '좋은 산이 하나 있으니 그 산을 사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소개하는 말만 믿고 그 산이 어떤 산인지 가보지 않고 산을 샀습니다.

그녀는 모든 사람이 다 자기 같은 줄 알고 믿고, 좋은 산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산을 산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 산에 가봤더니 나무 한그루도 없고 풀 한포기도 없는 그냥 돌산이었습니다.

그녀는 속았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상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그 산을 사서 다행이지, 만약 다른 사람이 그 산을 샀더라면 얼마나 마음이 상했을까?’

그녀는 이처럼 남을 배려하는 착한 심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어떤 일본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많은 값을 줄테니 산을 파십시오.'

그때 백선희 성도는 거절했습니다.

그 이유는 쓸모없는 산을 파는 것은 양심이 괴로운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값을 많이 준다는 것도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거절을 하니 또 찾아와서는 그때 값보다 10배를 더 줄테니 팔라고 매달렸습니다.

당시 일본은 도로를 내고 공장을 짓는 일로 시멘트의 원료인 석회를 찾고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백선희씨가 소유한 그 산이 온통 석회로 가득 찬 돌산임을 알아낸 것입니다.

그것을 알 턱없는 백선희씨가 산을 팔지 않겠다고 거절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나중에는 그 산이 100배까지 값이 뛰었습니다.

나중에는 200배까지 뛰었습니다.

그래도 안 판다고 하자 그 일본사람은 그 여인의 신분을 조사했습니다.

집안에 광물학자가 있는 지, 고고학자가 있는 지, 어떤 배경이 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알아보니 백선희 씨 주위에는 아무 인물도 없고 다만 교회 다니는 신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그 일본 사람이 생각했습니다.

교회 다니는 신자들은 다른 사람 말은 안 들어도

교회 목사님 말씀은 잘 듣는다는 것을 알고 백선희 성도가 나가는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목사님을 만나 그 일본 사람은 백선희 성도가 그 돌산을 팔도록 권고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일본 사람은 목사님에게 그 산은 석회산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이 야이기를 다 듣고 목사님은 백선희 성도를 찾아갔습니다.

"백선희 성도님! 하나님이 바로 이때를 위해서 자매에게 큰 복을 주신 것이니 그 산을 파십시오"

목사님의 권고에 따라 백선희 성도는 자기가 그 산을 샀던 가격에서 무려 250배의 돈을 받고 그 산을 팔았습니다.

사기 당한 줄로만 알았던 그 산을 아주  비싼 가격에 팔게된 것입니다.

 값싸게 팔아도 될 수 있었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이 아플까봐 갖고 있었던 그 산이 황금덩이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그녀는 훗날 조만식 장로님의 기념관을 지을 때 거금을 내놓아서 기념관을 잘 지을 수 있게 했습니다.

백선희씨는 선한 일을 너무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그녀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이름을 백선임으로 불렀습니다.

백선희 성도는 자비와 배려의 마음으로 성경적 경제부흥을 경험했습니다.

 

 

유대인들의 지혜서인 탈무드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탈무드에 보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이것을 히브리어로는 "키소, 코소, 카아소"라고 부릅니다.

 

첫째 기준은 "키소(caaso)"입니다.

"그의 주머니"라는 뜻입니다.

돈 주머니, 곧 전대를 의미합니다.

그 사람이 돈을 어떻게 벌고, 어떻게 쓰느냐를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돈은 사람을 만듭니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돈이 축복이 되기도 하고 저주가 되기도 합니다.

사람이 돈의 주인이 되느냐 돈이 사람의 주인이 되느냐에 따라서 그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돈이 인생에서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돈은 인생에서 너무나 중요합니다.

특히 신앙생활에서 돈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돈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주님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물의 중요함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 누가복음 16장11절 -

우리가 세상의 재물, 즉 돈을 바로 사용할 때 주님께서 그 사람을 신뢰하고 참된 것, 즉 영적이고 영원한 것을 맡기십니다.

우리가 돈을 버는 것은 돈을 쓰기 위한 것입니다.

돈을 벌기만 하고 쓸 줄 모르면 안 됩니다.

루마니아 속담에 가장 나쁜 돈은 쓰이지 않는 돈이다라고 했습니다.

어떤 분이 돈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돈이란 거름과 같다. 돈을 쌓아 두면 악취가 난다. 그러나 그것을 넓게 뿌리면 사물들을 잘 자라게 할 수 있다.

 

- 앤드루 카네기 Andrew Carnegie(1835-1919) -

 

미국의 강철왕 앤드루 카네기(Andrew Carnegie)는 1835년 스코틀랜드에서 가난한 직물공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무척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돈이 없어서 옷을 살 돈이 없었습니다.

그는 누더기 옷을 걸치고 살았습니다.

앤드루는 섬유공장에서 일주일에 1달러 20센트를 받고 새벽부터 밤까지 허드렛일을 했습니다.

앤드루는 열심히 책을 읽어 지식을 넓혀 갔습니다.

책은 주로 동네의 사설 도서관에서 빌려 보았습니다.

돈이 없었기 때문에 결혼도 늦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 안에서 늘 성실한 삶을 살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사업에 크게 성공해서 세계적인 갑부가 되었습니다.

그는 늘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로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의 생활 신조는  "돈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해야 한다." 였습니다.

그는 어려운 교회들을 많이 지원했습니다.

그는 특별히 모든 교회가 최상의 찬양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려운 교회에 전자오르간을 많이 지원했습니다.

그가 기증한 전자오르간의 수는 무려 7천대에 이르렀습니다.

그가 죽으면서 남긴 유명한 유언이 있습니다.

"돈을 남기고 죽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러므로 나의 전 재산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해 다오."

세상 사람들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온통 돈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인 우리는 다릅니다.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 고린도전서 10장31절 -

 

 

둘째 기준은 "코소(coso)"입니다.

"그의 잔"이라는 뜻입니다.

그 사람이 인생의 즐거움을 어디에서 찾는가를 살펴보면 그 사람의 인물됨을 평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의 잔에 술을 부어서, 부어라 마셔라 하면서 육신의 향락을 도모합니다. 

술을 마시고 술을 즐기는 것을 인생 최고의 행복으로 알고 사는 것은 바른 생활 태도가 아닙니다.

술은 우리의 지성을 무력화시켜 본능에 따라 살도록 만듭니다.

'코소'는 단순히 술잔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무엇을 즐거움으로 삼고 사느냐 하는 것과도 연관됩니다.

우리 신앙인은 인생의 행복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에서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인생의 즐거움을 어디에 두면서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웨스터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문답을 보면 인생의 최대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밝혀 주고 있습니다.

문1.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이 무엇인가 ?

답.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 하는 것이다.

(1)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며 ( 요 11:4 , 고전 10:31 , 계 4:11 )

(2)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 ( 시 73:25,26 , 요 17:22-24 )

"Men's chief and is to glorify God, and to enjoy Him forever."

인생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늘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어 드리기를 기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셋째 기준은 "카아소(ciso)"입니다.

"그의 노여움"이라는 뜻입니다.

그 사람의 감정 조절 능력과 인내력을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또한 평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절제한다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말에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했습니다.

왜 지렁이를 밟으면 꿈틀합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주된 이유는 그 지렁이가 아직은 덜 죽었기 때문입니다.

지렁이가 완전히 죽으면 밟아도 꿈틀거릴 수가 없습니다.

은 일에도 화를 내지는 않는지,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 너무 감정적으로 대하진 않는지 잘 살펴야 합니다.

가인은 동생 아벨에 대한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분노로 가득했고, 안색이 변했습니다.

그래서 가인은 하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결국 동생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육신이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적은 일에도 화를 벌컥벌컥 냅니다.

온갖 성깔을 다 부리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인 성도는 달라야 합니다.

성도는 옛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아 버린 사람입니다.

완전히 장사지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으로 거듭난 사람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갈라디아서 2장20절 -

 

사랑하는 여러분!

돈은 경제적 가치의 척도입니다.

돈은 물건의 교환수단이고 또한 가치 척도의 수단입니다.

우리가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그만한 가치의 물물교환이 필요합니다.

옛날 사람들은 비교적 귀하다고 여겼던 금붙이나 조개껍데기, 소금같은 것을 교환의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돈이 모이면 저장수단이 됩니다.

사람들은 돈을 저장하여 자신의 꿈을 이룹니다.

돈은 저장의 수단일 뿐 아니라 재창조 수단이기도 합니다.

돈이 움직이면 돈이 됩니다.

돈은 돈을 낳습니다.

돈은 돈이 되는 데로 가려는 본성이 있습니다.

돈은 자신의 확장을 위해 끊임없이 돌고 돕니다. 

돈은 우리에게 유익과 편리를 제공합니다.

돈은 어쩌면 인류가 만들어 낸 가장 위대한 발명품 중의 하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돈은 경제적 기능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영적인 기능이 있습니다. 돈은 세상과의 관련이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세상과의 관련이 경제적 기능이라면 하나님과의 관련이 영적인 기능입니다.

이 두 기능은 서로 같이 있습니다.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갑니다.

돈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영적 기능은 소유권에 대한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 마태복음 6장24절 -

물질의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소유권이 왜 중요합니까?

소유권자만이 판매할 수 있습니다.

소유권자만이 양도할 수 있습니다.

소유권자만이 처분할 수 있습니다.

소유권자만이 폐기할 수 있습니다.

물질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관리하십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공급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사람에게 주셨습니다.

모든 채소, 모든 나무, 모든 짐승, 모든 새, 모든 땅에 기는 것, 모든 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

- 창세기 1장29-30절 -

하나님께서 모든 물질을 공급하십니다.

우리가 노력해서 물질을 얻지만 근본적으로 그 물질은 내가 만들거나 내가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물질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왜 우리에게 주셨을까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라고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 창세기 1장28절 -

우리가 물질생활을 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언제나 공급하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 전도서 5장19절 -

재물은  “어떤 사람에게든지” 대상의 제한이 없습니다.

누구나 가능합니다.

타고날 때부터 부자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재물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야베스의 기도”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존”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천국에 갔습니다.

베드로가 그를 안내하기 위해 문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참 가다보니 커다란 창고가 있는 데 창문은 하나도 없고 겨우 작은 문 하나가 달려 있습니다.

죤이 보고 싶다고 하자 베드로가 안보는 것이 낫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존은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일정이 다 끝날 무렵 존이 또 졸랐습니다.

“아까 보았던 커다란 창고를 볼 수 없을까요?”

결국은 베드로가 존을 그 창고로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창고 문을 열자 그 큰 건물에 바닥부터 천장까지 수많은 선반들이 빽빽히 들어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선반들마다 리본이 달려 있고 리본에는 이름들이 씌여져 있었습니다.

존이 재빨리 자기 선반을 찾았는 데 수도 셀 수 없는 수없는 선반중의 존의 이름이 나타났습니다.

존이 물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님, 도대체 이 선반의 이름들은 무엇입니까?”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이것들은 땅에 있는 성도들이 간구하면 주시려고 준비했던 하나님의 응답들입니다.

그런데 당신이 땅에서 구하지 않아서 그냥 쌓여 있는 것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의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이 구하지 않아서 그대로 있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공급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온 땅의 주인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분의 자녀입니다.

부자 아버지가 아들을 억지로 가난하게 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매일 매일 좋은 아버지이십니다. 평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