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과 칼럼

"자네 얼굴에 광채가 나니 과거에 급제하고도 남을 상이네!"

가족사랑 2024. 1. 20. 18:06

 

조선중기의 학자며 기인(奇人)인 이지함 (李之函) 선생의 호(號)는 토정(土亭)입니다.

토정이라는 호(號)는 지금은 없어진 서울 마포나루 어귀에 토담집을 짓고 살았던 일에서 기인했다고 합니다.

 

토정(土亭) 이지함이 언젠가 천안삼거리에 위치한 한 주막집에 머무르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마침 그 주막에는 각지에서 올라온 젊은 선비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들은 한양에서 곧 있을 과거'를 보기 위해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과거에 급제하기를 바라고 공부를 해온 그들 인지라 당대에 큰 학자이며 기인으로 명성을 크게 떨치고 있는 토정선생의 방을 찾아가 한 말씀을 듣고자 모이기에 이르렀습니다.

토정 선생이 여러 젊은이들을 말 없이 바라보다가 문득 한 젊은 선비를 지목해 말을 했습니다.

 "자네는 이번 과거에 급제할 운이 없으니, 서운하겠지만 그냥 고향에 돌아가시게."

토정 선생의 말을 들은 이 젊은 선비는 모든 사람이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민망해 그냥 슬그머니 일어나 선생에게 인사를 드리고 뒷걸음질로 방을 빠져 나왔습니다.

젊은 선비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같은 청천벽력 같은 말에 아연해졋습니다.

선비는 멍한 느낌에 주막을 나와서는 대문옆 담벼락에 등을 기대고 쪼그려 앉아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 동안 과거 급제를 목표로 얼마나 열심히 공부해 왔는데 시험을 보기도 전에 고향으로 돌아가면 고향에선 나를 못난이라고 손가락질 할테고, 대학자이신 선생의 말을 무시하고 과거를 보러가서 정말 낙방이라도 하면 평소에 흠모해 온 토정선생의 말씀을 우습게 아는 놈이 되겠고, 이를 어찌하면 좋겠는가?'

선비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멀거니 땅바닥을 내려다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수 많은 까만 개미 떼들이 줄을 지어 자신이 앉아있는 자리 바로 앞을 좌에서 우측으로 이동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깜짝 놀라 좌측으로 눈길을 돌려 바라보니 그 뒤로도 끝없는 개미들이 줄지어 앞의 개미들을 따라 오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도대체 이 개미들은 어디를 향해 이렇게 질서정연하게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

선비는 호기심에 몸을 일으켜 그 선두에 선 개미를 보기 위해 걸어가 보게 되었습니다.

가다보니 선두에서 가고 있는 개미가 있는 곳으로부터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아니한 곳에 큰 항아리 하나가 놓여 있고 그 독 안에는 물이 가득차 금시라도 넘칠 듯이 찰랑거리고 있었습니다.

부엌에서 버린 허드렛 물이 배수 하수관을 통해 항아리에 떨어지게끔 되어 있었고, 물이 가득차게 되면 자체의 무게로 인해 독이 기울어져 도랑 쪽으로 물이 쏟아 부어지도록 만든 구조였습니다.

선비는 이제라도 부엌쪽에서 누군가가 물을 버리면 그 독이 기울어져 이동하고 있는 개미들의 선두를 향해 쏟아지면 저 많은 개미들이 때 아닌 물벼락을 만나 다 죽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황급히 뛰어가 구정물이 가득한 독을 힘들게 옮겨 도랑에 부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빈 독을 옮겨 제 자리에 갖다두고는 가뿐 숨을 몰아쉬며 아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개미의 긴 행렬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 가던 길을 계속해서 가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선비는 그 많은 개미를 살렸다는 사실에 마음이 홀가분해졌습니다.

젊은 선비는 한참 후 토정선생이 하신 말씀이 다시 생각나, 조금전에 앉았던 자리로 되돌아가 다시 쪼그려 앉아 다시금 골똘히 생각에 잠겼습니다.

"자네, 거기서 무엇을 하는가?"

깜짝 놀라 돌아보니 언제 나오셨는지 토정 (土亭) 선생께서 대문 앞에 서서 자신을 향하여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벌떡 일어나 머리 숙여 인사를 드리니 선생께서 젊은 선비를 향하어 다가 오셨습니다.

토정 선생이 가까이 와서 젊은이를 보더니 흠칫 놀라며 물었습니다.

"아니, 자네는 아까 방에서 내가 낙방을 할 운이니 고향으로 내려가라 한 바로 그 젊은이가 아닌가?"

젊은 선비가 그러하다고 하니, 토정 선생이 머리를 갸웃거리시며 말했습니다.

"내가 조금 전에 자네에게 얘기를 할 때 본 자네의 상(相)과 지금 보는 자네의 상이 완전히 다르니 이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네!"

"자네 얼굴에 광채가 나고 서기가 충천하니 과거에 급제를 하고도 남을 상인데, 도대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상이 바뀌었단 말인가?" 

젊은 선비는 너무나 황당하여 도대체 무슨 말씀이시냐며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습니다.

토정 선생은 선비에게 재차 물었습니다.

"잠깐 사이에 자네의 상이 아주 귀한 상으로 바뀌었네. 그동안 분명히 무슨 일이 있었을 테니 내게 숨김없이 말씀을 해 보시게." 

젊은이는, "아무런 일도 없었습니다만." 하고 말씀을 드리다가  문득, 항아리를 옮긴 일이 생각이 나서 잠깐사이에 일어난 일을 소상히 말씀드렸습니다.

이야기를 다 듣고나신 토정 선생께서 하늘을 우러러 바라보시고는 혼잣말로 말씀하셨습니다.

"수 백, 수 천의 죽을 생명을 살리었으니, 하늘인들 어찌 감응이 없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는 젊은 선비에게 말했습니다.

"자네는 이번 과거에 꼭 급제를 할 것이니 아까 내가 한 말은 마음에 두지말고 한양에 올라가 시험을 치르시게."

토정 선생은 빙그레 웃으시며 젊은 선비의 어깨를 톡톡 두드려 주고 난 뒤 주막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이 젊은 선비는 토정선생의 말씀대로 과거에 응시하였습니다. 

그리고 장원 (壯元)으로 급제를 하였습니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인생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주어진 환경과 운명에 순응하는 사람입니다.

대개 이런 분들은 운명을 거스르지 않습니다.

뭔가 잘못되면 다 자신의 팔자소관이려니 하고 받아들입니다.

두 번째 부류는 운명을 변화시키며 개척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대개 적극적이고 도전적인 인생을 삽니다.

그들은 긍정적으로 사고합니다.

그들 앞에 절망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늘 마음속에 불꽃같은 열정과 희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들은 불가능한 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성경에는 운명을 바꾸고 개척해 나갔던 많은 인물들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은 야곱입니다.

야곱은 구약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인물로 그의 아버지는 이삭이고, 할아버지는 아브라함입니다.

이삭은 쌍둥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형은 에서이고 동생이 야곱입니다.   

형 에서는 사냥을 좋아한 반면 야곱은 조용한 성격으로 어머니를 잘 도와주었습니다.

야곱은 속임수로 형 에서의 장자의 축복권을 가로채었다가 결국은 에서의 분노로 외삼촌 집으로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이 때 야곱이 가진 것이라고는 지팡이 하나뿐이었습니다(창세기32장10절).

그러한 야곱이 처가살이 14년을 마치고 자기 살림을 챙긴 지 6년 만에  "가축 떼뿐만 아니라 남종과 여종, 낙타와 나귀도 많이 가진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야곱은 도망자에서 큰 부자가 되고 축복의 인생이 되었을까요?

야곱은 운명에 주저앉지 않고 도전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창세기 31장에는 야곱이 외삼촌의 집에서 어떻게 살았는가를 자세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 이십 년을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 떼의 숫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낮에 도둑을 맞았든지 밤에 도둑을 맞았든지 외삼촌이 그것을 내 손에서 찾았으므로 내가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 - 창세기 31장 3840절 - 

야곱은 맡겨진 일을 양심적으로 처리했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나태하거나 굴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늘 마음속에 불꽃같은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또한 야곱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절대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 창세기 32장1012절 -

야곱이 오랫동안의 나그네 생활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오는 길에 얍복 강가에서 고민에 빠졌습니다.

형 에서가 수 백명의 부하들을 거느리고 자신을 향해 오고 있다는 소문이었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가 아버지를 속여 자신의 장자권을 빼앗은 자신에게 복수할 것이라는 생각에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야곱은 처자와 형 에서에게 보낼 선물들을 보내놓고 깊은 밤중에 홀로 남았습니다.

이때 그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씨름하게 됩니다.

"당신이 나를 축복하지 아니하시면 나는 당신을 결코 놓아드릴 수 없습니다"

이날 밤의 야곱의 도전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는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슬쩍 져주시고 야곱을 축복하십니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창세기32장2430절 -

 

야곱의 아들 요셉도 운명을 바꿔 나간 사람입니다.

어릴 적 요셉은 부자 아버지를 만나 잘 살았습니다.

자기 위로 형이 열 명이나 있었지만 아버지의 총애를 받아 요셉은 채색옷을 입고 다녔습니다.

이같은 아버지의 편애로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이웃나라에 노예로 팔려 갔습니다.

부잣집 아들이 한 순간 노예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노예로 팔려간 곳에서 그는 다행히 그 집의 살림을 총괄하는 집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였습니다.

집주인 아내가 요셉을 유혹하여 잠자리를 같이 하자는 제의를 거절하여 모함을 받아 결국은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감방에 갇혀 옥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수 년간 옥살이를 하던 어느 날!

요셉은 극적으로 그 나라의 총리대신이 되는 행운을 얻습니다.

 

요셉은 헤어 나오기 어려운 구덩이에 빠진 운명의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구덩이 안에서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고, '이게 내 운명!'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그 구덩이 운명에서 다시 일어서는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은 구덩이 인생을 승리의 인생으로 바꾸어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은 어떻게 그 운명의 구덩이에서 살아 남을 수 있었을까요?

요셉은 어떻게 그 운명의 구덩이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구덩이 속에 있는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요셉이 노예로 팔려간 집에 있을 때 일입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 창세기 39장2∼3절 -

요셉이 모함을 받아 옥에 갇혔을 때의 일입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 창세기 39장21∼23절 -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사람이 자신을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한 치 앞도 모르는 무지한 존재입니다. 

잠시 후 죽을 것도 모르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난의 구덩이를 만날 때 너무 일찍이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 내려버립니다. 

자신도 그렇고, 사람들이 ‘당신은 실패자요, 다 끝났습니다.’라고 할 땨에도 하나님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아니다. 너는 실패자가 아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 시작이다. 너는 다시 일어날 수 있다. 힘 내!. 내가 도와줄게.’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은 죽을병에 결렸어요. 준비하세요.’라고 할 때 하나님은 ‘아니다. 너는 산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누구실까요?

하나님은 우리 미래의 모든 것을 다 아시고 결정하시는 분이십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미래를 아시고 결정하십니다.

우리 인생의 최후 결정권자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최종결정을 내리시기 전에는 그 누구도 우리 인생에 대한 최종결정을 내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결정하시기 전에는 어떤 일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스스로 인생의 운명을 결정 내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다 끝났다.’고 할 때가 하나님의 시작입니다

사람들은 잊어도 하나님은 결코 잊지 아니하시고 기억하십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 이사야 49잘15절 -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자의 입을 통해서 우리 인간을 향한 당신의 뜨겁고 절절한 사랑을 보여줍니다.

이 세상 그 어떤 부모, 그 어떤 연인들이 이같은 절절한 사랑 고백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시온이 말하기를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고,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는구나. 어머니가 어찌 제 젖먹이를 잊겠으며, 제 태에서 낳은 아들을 어찌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비록 어머니가 자식을 잊는다 하여도, 나는 절대로 너를 잊지 않겠다”

- 새번역 이사야서 49장 14~15절 -

예기치 않은 고통이나 환난이 찾아올 때 우리 역시 이스라엘 백성처럼 부르짖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성공과 기쁨의 날에도 함께 하시지만, 실패와 슬픔의 깊은 밤에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주님이십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떠나간다 할지라도 주님만큼은 항상 나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나와 함께 하시며 끝까지 응원하시고 지지해주십니다.

우리 인간 존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유형의 버림을 받습니다.

결코 원치 않았지만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속절없이 세월이 흐르고, 든든한 산 같던 아버지, 편안한 언덕 같던 어머니도 병들고, 늙고, 세상을 떠납니다.

엄중한 세월의 순환 주기 앞에서 그 누구도 영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만은 다릅니다.

세상의 부모들과 사랑했던 사람들, 믿었던 친구들과 숱한 인연들이 세월과 더불어 사라지고 떠나가지만 주님만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바라보는 주님의 시선은 분노와 실망의 시선이 아닙니다.

그 분의 시선은 한없이 따뜻하고 너그러운 시선입니다.

마치 갓 태어난 젖먹이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시선입니다.

오늘 나를 바라보시는 주님의 시선은 애지중지, 노심초사가 가득 담긴 시선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나를 떠나간다 할지라도 끝까지 내 곁을 떠나가지 않으시는 분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끝까지 내 등 뒤에 서서 나를 응원하시는 분이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내가 깊은 수렁에 빠져 허덕일 때, 친구들이며 지인들이 다 나를 두고 수군거릴 때도 끝까지 나를 잊지 않고 보살피시는 분이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그 분은 우리가 방황할 때조차도 끝까지 나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 분은 나를 귀히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은 나를 존중하고 나에 대한 구원의지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 마태복음 28장20절 -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나를 잊어버린다고 걱정하지 마십시요!

내 인생에 큰 도움을 준 중요한 사람들이 나를 잊어버린다 해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가장 중요한 분이신 하나님이 나를 기억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모든 일을 주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미래를 아시고 최종적으로 결정하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승리의 인생을 살아가십시오. 평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