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과 칼럼

목숨 걸고 노력하면 안 되는 것이 없다!

가족사랑 2024. 1. 27. 12:49

어머니 저는 해냈어요!

- 대한민국 1호 국가품질명장 김규환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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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1956년 6월 18일 강원도 평창군 방림면 계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가난하여 국민학교를 중퇴하고 경상북도 대구시 방촌동(現 대구광역시 동구 방촌동)의 냄비공장에서 냄비뚜껑에 상표 붙이는 일을 하며 돈을 벌었습니다.

1975년경에는 어머니가 병환으로 쓰러졌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어머니의 치료비를 벌기 위해 사북 탄광으로 갔고, 그는 소년가장으로서 여동생을 보호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여동생을 데리고 상경해 아무 일이라도 찾으면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당시 음식물 쓰레기통을 보면 잔반을 주워먹을 정도의 가난에 시달렸습니다.

밤중에 상갓집에 몰래 들어가 음식을 마구 훔쳐먹고 도망나온 적도 있었습니다.

1976년에는 중학교 교복을 입고 사진을 찍었는데, 국민학교 중퇴였던 그가 중학교 교복이 입어보고 싶어 빨랫줄에 널려있던 집주인 아들의 교복을 몰래 가져다가 입고 사진을 찍은 것입니다.

1977년 8월경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그는 더 이상 삶의 의미는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열심히 노력했던 이유가 어머니 병 약값을 벌기 위해서인데 어머니도 돌아가셨고, 학력과 기술이 없어 가난에서 벗어날 희망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동생한테 아이스크림을 사 주고 쥐약을 사서 자살하려고 했지만 여동생이 자살을 말려서 그만두었습니다.

자살을 포기한 직후였습니다.

그는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기 때문에 글도 읽을 줄 몰랐습니다.  

우연히 신문에 난 글이 궁금해서 이게 무슨 글인가 물어봤습니다.  

옆집 아주머니가 그것은 '대우가족 모신다라는 글이라고 했습니다

'대우' 라는 사람도 나 만큼 외로워서 '가족'을 모집하는구나.  세상에 별의별 광고도 다 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사람을 채용한다는 뜻을 알고, 이것도 인연이다 싶어 회사를 찾아갔습니다.   

회사 앞에 당도하자 수위는 냄새난다고 그를 쫒아냈고  그래도 들어가야 한다고 하니까 그를 거지취급해서 심하게 때렸습니다.

 거의 한시간을 얻어맞고 있을 때, 마침 차 타고 지나가던 김성중 (김우중 대우 회장의 막내동생) 씨가 우연히 발견하고 , 수위에게 '무슨 행패냐 거둬줘!'라고 말했습니다.  

서울사람에게 '거둬줘!'라는 말은 '도와주되, 밥한끼 정도 주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경상도 말로는 ‘도와주되, 우리 식구로 받아줘'라는 말입니다.

그때 그를 패던 수위는 경상도 사람이었습니다.

수위는 '채용해서 써라'는 말로 알고  당시 서두칠 부장에게 그 임원이 쓰라고 했다고 전했고. 입사자격이 미달이어서 면접에 떨어졌지만 잡부로(사환) 채용이 되었습니다.

 

대우중공업에 사환으로 입사한 김규환의 일화가 있습니다.

당시 그는 매일 아침 5시에 출근하였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하루는 출근하던 대우 중공업 사장이 그를 보았습니다.

"왜 출근을 일찍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저씨는 누구세요?"라고 되물었답니다.

그랬더니 대답은 안하고 "지금 청소하는것은 누가 지시한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냥 제가 좋아서 하는 것입니다"라고 했더니 "음, 성실하고 훌륭하군! " 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선배들을 위해 미리 청소도 하고 기계 워밍업을 한다'고 했더니 다음 날 정식 기능공으로 특별 승진되었습니다.

2년이 지난 후에도 계속하여 어김없이 그는 5시에 출근하였습니다.

어느 날 다시 사장이 그를 보고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는 또 다시 똑같이 대답했습니다.

사장은 그를 다음 날 반장으로 또 승진시켜 주었습니다.

 

김규환에게는 특별한 가훈(家訓)이 있습니다.

그것은 '목숨 걸고 노력하면 안되는 것이 없다'입니다.   

그는 국가기술자격 학과에 9번 낙방했습니다.

1급 국가기술자격에는 6번 낙방했습니다.

 2종보통운전 5번 낙방하고 창피해 1종으로 바꾸어 5번만에 합격했습니다.  

사람들은 한동안그를 '새대가리'라고 비웃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나라에서 1급 자격증 최다보유자입니다.

훈장2. 대통령표창 4. 발명특허대상. 장영실상을 5번 받았습니다.

초정밀 가공분야 명장으로 추대되었고 우리나라에서 상을 제일 많이 받고 명장이 되었습니다.

그는 5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합니다.

그는 학원에 다녀본 적도 없습니다.

그는 외국어를 하루에 한 문장씩 천천히 암기하였습니다.

집 천장과 벽, 식탁, 화장실 문, 사무실, 가는 곳 마다 단어장을 붙이고 외웠습니다.

이렇게 꾸준하게 외우다보니 나중에 회사에 외국 바이어가 방문할 때 대화로 설명 할 수 있었고 5개국어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김규환은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제 자신을 위해 준비하고 노력했기에 기회를 만난 것 입니다.

승진이나 돈 버는 것은 자기의 노력여하에 달려있습니다.

세상을 원망하거나 불평하기보다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십시요. 

그러면 부러운 것이 없습니다. 남이 잘되는 것을 배 아파하지 말고 노력하십시요. 

의사.변호사.회계사 각종 고시합격자들 모두 다 노력하였습니다.

그들은 남 모르게 끊임없이 노력 하였습니다. 

하루종일 쳐다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 해답이 나옵니다.

저는 2만4천6백12건을 제안제도에 채택되었고 국제발명특허 62개를 받았습니다. 

저는 일에 있어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건 개선하려고 노력합니다.

정말로 하루종일 쳐다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 해답이 나왔습니다.

원하시는 일이 있으면 미적찌근하게 일하지 마십시요.

일을 하는둥 마는둥 빈둥빈둥 인생을 허비할 것이 아니라 모든 일에 목숨을 걸고 노력하십시요.

그러면 반드시 성취 할 것 입니다.

저는 하루에 3시간 정도의 잠을 자고 있습니다.

보통 9시경에 잠들어서 새벽 12시나 1시경에 일어나서 새벽까지 책을 보다가 출근을 합니다.

이제까지 700여 가지의 제품과 신기술을 개발하였습니다.

정말 목숨을 걸고 내 인생에 충실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인정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자신을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가십시요! "

 

 

 

김규환은 1977년 8월부터 2010년 9월까지 대우중공업 종합기계사업부문(현 두산인프라코어)에 재직하였습니다.

그의 학력은 초등학교 중퇴이지만 한국폴리텍Ⅶ대학 기계공작과의 2년 과정을 이수하였습니다.

인제대학교 석좌교수도 역임하였습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 국회의원(6번)으로 당선되었습니다.

 

김규환의 인생 좌우명은 "지금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요" 입니다.

그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녀보지 못하였고, 5대독자 외아들에 일가나 친척하나 없이 열 다섯 살에 소년가장이 되었습니다.

기술하나 없이 25년전 대우중공업에 사환으로 입사하여 마당쓸고 물 나르며 회사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훈장 2개. 대통령표창 4번. 발명특허대상. 장영실상을 5번 받았으며 초정밀 가공분야 명장으로 추대되었고 우리나라에서 상을 제일 많이 받고 명장이 되었습니다.

김규환이 그렇게 된 비결은 지금하고 일에 최선을 다한 결과입니다.

대우중공업 사환때 일입니다.

청소부 겸 사환의 업무는 회사 마당을 쓸고 풀을 뽑는 일입니다.

기술을 배울 수 없기 때문에 열심히 해 봤자 승진된다는 가망이 없습니다.

국가에 의한 사회복지가 부족하던 시절 김규환이 굶어죽지 않게 회사에서 살려준다는 정도의 의미밖에 없는 일자리입니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식당 아주머니들이 회사 식당에서 밥 짓는 것을 도왔습니다.

비오는 날에도 마당을 쓸었습니다.

그리고 임원 면담 때 이 회사 사람들이 마당에 꽃을 심지 않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라고 꽃씨 살 돈을 받아왔습니다.

여러 사람에게 잘 보이는 자리에는 꽃을 심고, 구석의 안 보이는 자리에는 야채를 심어 기능공들이 회식할 때 나눠 먹을 수 있게 했습니다.

또 한쪽 구석에는 도라지를 심었습니다.

사장님이 "또 무슨 일을 하느냐?"고 할 때, 그를 "전 그냥 도라지 심으면 좋을 것 같아서 그냥 심어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습니다.

미국에서 중요한 바이어가 공장을 방문했습니다.

공장 견학이 끝나고 곳곳에 심어져 있는 도라지꽃을 보고 이 꽃이 무슨 꽃이냐고 물었습니다.

김규환은 당시 영어 공부를 시작하기는 했지만 '도라지'가 영어로는 무엇인지 몰라서 우물쭈물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미국 바이어가 ‘American star flower'라고 하면서 도라지꽃의 별 모양이 꼭 미국 국기와 똑같다며 아주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수백만 달러의 계약을 흔쾌히 응하고 갔습니다.

사장님은 김규환에게 "자네가 아주 훌륭한 일을 해냈다."고 하면서 그에게 더욱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해주었습니다.

기술을 모르는 청소부가 대기업에 기여한다는 것은 허황된 소리로 보이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는 꽃을 심어서 그런 황당한 일을 실제로 해냈습니다.

 

 

김규환은 입사 36개월 후에는 반장으로 승진하였습니다.

반장 시절 그는 영어회화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외국인 바이어들은 한국 현지 사정을 알기 위해 통역을 대동하고 공장을 방문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통역은 기계가공 기술자가 아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전달 못합니다.

생산직 중 영어회화를 할 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김규환이 통역을 완벽하게 해서 주변 기능공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반장 시절 그는 정밀가공연삭기능사 2급 (현 연삭기능사)에 응시하였습니다.

실기는 1번만에 합격하였지만 필기는 9번을 떨어지고 10번째에야 합격했습니다.

기계가공기능사 1급 (현 컴퓨터응용가공산업기사) 역시 필기를 5번 떨어지고 6번째에야 합격했습니다.

운전면허 필기도 5번쯤 떨어지고 합격했습니다.

 

 한 번은 이경훈 사장이 관심을 가지고 직접 김규환을 불렀습니다.

국제 대회나 전국 대회에서 여러 차례 상을 받은 사람이니만큼 "학교는 어디까지 나왔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김규환은 국민학교 정도까지밖에 못 공부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사장이 이사에게 직접 그를 공부시키라고 지시하였습니다.

나이 먹어서 초중고 과정을 일일이 통과하려면 단계가 많아 힘드니까 중간과정은 생략하고 대학교육만 받는 쪽으로 접근했습니다.

학비 지원을 위해 4,500여명의 대우 사원이 지원했는데 사내 시험에서 1등을 해서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회사측에서는 회사를 휴직할 수 있게 해 주고 교육비를 모두 지원했습니다.

김규환은 창원기능대학 (현 한국폴리텍 7대학) 기계공작과에 2년간 교육을 받았습니다.

당시 이 학교의 교육수준은 국내 최고수준 전문대였습니다.

이 학교의 졸업생들은 당시 중견기업의 중역으로 취업하든지 창업을 했습니다.

그러나 김규환의 학력은 초등학생 수준이었으므로 영어 등의 학업을 따라가지 못해 큰 고생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노력한 끝에 성적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학점이 높아졌고 끝내 졸업도 했습니다.

졸업하자마자 사장이 부인과 함께 본사로 불러올려 축하해 주었습니다.

당시 이 학교에서는 영어를 못하면 졸업을 못하도록 하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는 재학 당시 5개 국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전문대를 졸업한 직후, 김규환은 직장(職長)으로 승진하였습니다.

생산직에서 '직장'은 상당히 높은 중간관리직 직급입니다.

그가 직장으로 승진한 것은 입사 15년만이었습니다.

그 후 탁월한 성과를 인정받아 <국가품질명장>이 되었습니다.

직장으로 승진한 뒤 그는 TV에 나오는 등 전국적으로 유명해졌고 자서전도 썼습니다.

외국이나 삼성, 여러 회사에 강연을 다니기도 했습니다.

 

김규환은 이렇게 말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스스로를 칭찬하는 것입니다.

내가 1등이고, 최고의 명품을 만들 것이며,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것입니다."

그는 이런 태도를 가지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도전했습니다.

김규환은 매사를 고맙게 생각했습니다.

대개의 사람은 하찮은 일, 하기 싫은 일이 주어지면 짜증을 냅니다.

하지만 김규환은 매우 고마워하며 일을 했습니다.

70년대 말 중공업 회사의 생산직 사원들의 조직문화는 몹시 험했습니다.

친절한 교육 같은 것은 상상할 수 없었고 마음에 들지 않게 일을 해 놓으면 바로 얼굴을 주먹으로 심하게 때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병원에 가도록 선배에게 맞아도 맞은 것보다 선배가 가르쳐준 것 하나를 더 대단하게 생각하고 선배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김규환에게 중요한 것은 부지런한 것입니다.

김규환은 30여년의 직장생활 동안 매우 많은 시간을 일했습니다.

직장생활 초기에는 8시에 업무를 시작해도 되는데도 불구하고 5시에 출근했습니다.

반장으로 승진한 뒤 그의 하루 일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는 회사에서 일했으며 밤 12시에 잠들었습니다.

그리고 새벽 3시에 일어나 어시장에 생선 배달 부업을 하러 갔습니다.

그러다가 출근을 했습니다.

김규환이 야근, 밤샘근무를 너무 자주 하자 건강을 해친다고 주위에서 '강제 퇴근 명령, 출근 금지 명령'을 제안해서 장시간 일하지 못 하게 막은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무슨 일을 하든 기존 방식보다 더 잘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청소부를 할 때는 마당에 꽃씨와 작물을 심었으며, 기능사원 보조공을 할 때는 한밤중까지 선배들 기계를 분해하고 닦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능사원 보조공으로 처음 기계를 만져본 지 6개월도 안 되어 '기계를 잘 고치는 사람'으로 여기저기 불려다니게 되었습니다.

김규환은 무슨 일이든지 일을 즐겁게, 그리고 열심히 했습니다.

그는 사소하거나 반복되는 일이라 해도 열심히 했습니다.

입사 초기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하루는 고참이 기계를 목욕시키라고 했습니다.

깨끗이 닦으라는 뜻이었는데 곧이곧대로 세제를 풀어 기계를 목욕시켰습니다.

당연히 기계 내부에 세제가 들어가 거품이 끊이지 않고 나왔습니다.

그는 혼날까 봐 기계를 분해해 깨끗하게 닦은 후 다시 조립하려는데 아무리 해도 아귀가 맞지 않았습니다.

이대로 회사에서 쫓겨나겠구나 싶어 고참들에게 ‘죄송하다’는 편지라도 쓰고 떠나려고 종이를 찾다 기계조립도를 발견하고, 그걸 보면서 밤새 기계를 조립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기능사원들이 그에게 기계에 대해 가르쳐주기 시작했습니다.

이내 소리만 들어도 뭐가 잘못됐는지 알 정도로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그는 일을 무슨일이든지 열심히 했습니다. 

- 김규환(金奎煥, 1956년 6월 18일 &sim; ) -

 

목숨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 마태복음 22장3740절 - 

 

삼성그룹 고 이건희 회장은 삼성의 숙원인 초일류기업 목표에 도달한 뒤 임원들 앞에서 진심을 털어놓았다 합니다.

”당신들은 최선을 다했지만, 나는 목숨을 겁니다”

사즉생대천명(死卽生待天命)!

이 회장이 죽을 힘을 다하여 자신을 던지고 그 후에 받는 삼성의 결실이 초일류기업의 명성이었습니다.

시간은 매우 소중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매 순간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해 최선을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입니다.

자신을 하나님 앞에 놓고 그분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뜻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지금 이 순간에 행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덕이 많은 수도자를 찾아가서 어떻게 하면 덕을 쌓을 수 있는 지를 물었습니다.

덕이 많은 수도자께서 나는 일할 때에 일하고, 기도할 때에 기도하고, 쉴 때에 쉬고, 먹을 때에 먹는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저도 그렇게 하는데요” 하고 말하자 수도자께서는 “많은 사람들이 일하면서 먹을 것을 생각하고, 기도하면서 쉴 것을 생각하며, 쉬면서 먹을 것을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한 가지뿐입니다.

매 순간 순간을 예수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예수님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일하고, 고뇌하고, 잠자고, 아픈 것을 예수님을 위하여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충 대충 기도 생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기도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시간될 때, 하고 싶을 때만 나오고 조금 피곤하고 힘들다고 쉬고 그런 대충대충 하는 기도 생활 말고 힘을 다해 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 기도의 자리를 지키고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섬기고 순종하는 일에 최선을 해야 합니다.

내가 원할 때만 하는 순종이 아닙니다.

내 마음에 들 때만 하는 순종이 아닙니다.

내가 하고 싶을 때만 하는 순종이 아닙니다.

내가 시간이 될 때만 하는 순종이 아닙니다.

내 상황이 좋을 때만 하는 순종이 아닙니다.

내 생각과 같을 때만 하는 순종이 아닙니다.

내가 원하지 않을 때라도 순종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라도 순종하는 것입니다. 

내 시간이 되지 않을 때라도 순종하는 것입니다. 

내 상황이 어려울때라도 순종하는 것입니다. 

내 감정이 되지 않을 때라도 순종하는 것입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요한계시록 2장10절 -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에베소교회 장로들을 불러오게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 사도행전 20장 22∼24절 - 

그는 하나님의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자기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는 주를 위하여 살고 주를 위하여 죽기를 원했습니다.

선교사는 죽으러 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가다 보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중국 선교의 비젼을 가지고 계신 목사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 중국에 가면 자녀 교육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선교에 힘쓰다가 가족들이 어떤 위험에 닥치면 어떻게 합니까”

“나는 모릅니다. 나는 주님으로부터 가라는 명령만 받고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자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참된 가치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위하여 죽을 것인지를 결정한 사람은 인생의 참길을 찾은 사람입니다.

 

'최고의 것'에 목숨을 바쳐야 합니다.

인간에게 가장 귀한 것은 바로 생명입니다.

이 생명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과 그가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위해 죽도록 충성하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고 일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가 있는 고귀하고 고상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최고의 자리에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을 위해 우리는 목숨까지도 바칠 만한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 최고는 주님께 충성하는 것입니다. 평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