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로마서 강해(119)-믿음이 강한 우리

가족사랑 2022. 12. 4. 07:23

로마서 강해(119)

 

믿음이 강한 우리!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 로마서 15장 13절 -

 

로마교회는 구약성경에서 금지하는 돼지고기와 같은 음식을 먹지 말아야할 것인가? 아니면 먹어야할 것인가를 두고 다투고 있었습니다.

믿음이 강한 자들은 구약의 율법은 완성되었기에 돼지고기는 마음대로 먹어도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대로 믿음이 약한 자들은 구약성경에서 금하고 있는 고기는 절대 먹지 말아야하고, 체소만 먹어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때 돼지고기를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믿음이 강한 자들은 자신들만 옳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자라고 하면서 믿음이 약하여 채소만 먹어야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비난하고 비판했습니다.

“야, 웃긴다! 돼지고기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냐?  구약의 율법은 이미 완성되었잖아!  그런데 왜 채소만 먹어야한다고 주장해? 너희들 그렇게 믿음이 약하냐?"

 이렇게 믿음이 강한 자들은 믿음이 약한 자들을 비판하고 비난했습니다.

 

교회 안에는 믿음의 강한 자와 약한 자가 함께 존재합니다.

성경은 믿음이 강한 자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믿음이 강한 사람이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강한 자와 약한 자는 상황에 따라 바뀝니다.

로마교회에서는 유대인 그리스도인이 약자이고, 이방인 그리스도인이 강자입니다.

물론 유대인 교회에서는 반대였을 것입니다.

따라서 강자란 다수의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마땅히> 약한 자의 약점을 짊어져야 합니다.

 

'강한 자'라는 헬라어의 본 단어는 '오히 뒤나토이(οἱ υνατοί)'라는 단어입니다. 

이 '뒤나토이'라는 단어는 '능력있는 사람, 무엇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 힘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로마교회에서는 '영적으로 강한 사람이 강한 자입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강한 사람입니다.

영적인 분별력있는 사람이 강한 자입니다.

반면에 ‘연약한 자(아뒤나토이, ἀδυνά τοι)’는  '어떤 약점을 지닌 사람'을 가리킵니다. 

영적으로 허약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약점'에 해당하는 '아스데네마타'(ασθενηματα)는 '양심의  연약함'을 의미합니다.

'약점'에 대해 루터(Luther)는 '결함이 있어서 부서지기 쉬운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했습니다.

'마땅히'라는 말은 헬라어로 '오페이로멘 Οφείλομεν'인데,  우리가 빚 진다는 의미입니다.

 '마땅히'란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강한 자에게 주어져 있는 의무입니다.

독일어 성경에서는 '강한 자의 의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담당하고'에 해당하는 '바스타제인'(βασταζειν)은 '영접하고' '참고' '견디고' '지고'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담당하고'라는 말은 소극적으로는 강한 자들이 약한 자들의 연약한 부분을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는 강한 자들이 약한 자들의 연약한 부분을 '대신 떠 맡아서 필요를 보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은 믿음이 약한 자들의 약점을 빚진 자처럼 짊어지고 다니는 사랑으로 덮어주고 보살펴 주는 상태를 뜻 합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 갈라디아서 6장2절 -

현대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남의 짐을 지는 것입니다.

남이 자기 짐을 져 주기 바라지 자신이 남의 짐을 대신 지려하지 않습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결혼의 조건을 물어 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이 '자기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라고 대답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아픔을 공감하고 이해해 주는 사람이 좋다고 말합니다.

본질적으로 볼 때 자기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자기가 이해해 주지 않고 남이 이해해 주길 바라는데 남들은 왜 자기를 이해해 줍니까?

자신이 남을 이해하고 남의 짐을 담당하려 해야 합니다.

믿음이 있는 자, 성숙한 자가 먼저 희생해야 합니다.

그것이 옳은 것입니다.

집에서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이 싸우면 누구를 혼냅니까?

자잘못을 가리기보다는 큰 애를 혼냅니다.

큰 애가 더 이해할만하고 포용할만하도록 성숙했기 때문에 큰 애를 나무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강한 우리는!

복음에 대해 바른 깨달음을 가진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약한 자의 약점을 짊어져야 합니다.

 

첫째,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아야 합니다.

1절에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강한 자가 자기만을 생각하여 믿음이 연약한 자를 무시한다면 믿음이 연약한 자는 시험에 들어 믿음에서 돌아서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강한 자는 항상 자신이 기쁜 쪽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자기가 바로 알고 있는 것만 생각하고 자기의 믿음있는 것을 확인, 증명하기 위해 믿음없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려 하면 안됩니다.

 

둘째, 이웃을 기쁘게 해야 합니다.

2절에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고 했습니다.

이는 자기를 기쁘게 하지 말라는 부정적인 권면에 대한 긍정적인 권고입니다.

이는 단순히 다른 사람의 기분이나 비위를 맞추라는 것이거나 다른 사람이 원하는 바를 모조건 따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

다른 사람의 영적 각성과 성장을 위한 것이라면 자기가 희생해서라도 필요를 채워 주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은 믿음이 연약한 자를 위해 자신의 자유와 권한과 권리를 제한하고 연약한 자의 약점을 잘 감당해 주어야 합니다.

 

셋째, 선을 이루고 덕을 세워야 합니다.

2절에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선을 이룬다'는 말은 내적이고 도덕적인 목적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선'이란 자신의 기쁨이 아닌 연약한 자의 약점을 더 생각하는 내적 가치를 말합니다.

 '덕을 세운다'는 말은 헬라어 본문을 보면, '집을 세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입니다.

'덕'은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는 외적 행동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의 영적 유익을 위해 희생하는 목표는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는데 있습니다.

이것들은 자기의 의를 세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연약한 자의 비위를 거스리지 않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이것들은 오직 연약한 자의 영적 유익을 위한 목적들을 위해서입니다.

 

사실 어느 공동체나 약한 자는 소외를 받습니다.

소수의 목소리는 묻혀버립니다.

보통 갈등이 생기면 약자에게 주문합니다.

“너만 입 다물면 돼!”

언제나 약자에게 조용히 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복음의 원리는 세상의 원리와 다릅니다.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약함을 짊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 빌립보서 2장6〜8절 -

 

믿음이 연약한 자는 남이 어떻게 되든지 오직 자기 자신만의 기쁨을 위해 살아갑니다.

반면에 믿음이 강한 자는 이웃을 위해 선과 덕을 세움으로 이웃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하며, 오직 자기 자신만을 기쁘게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은 영적으로 어른과 같은 존재가 영적으로 어린아이와 같은 연약한 자에게 그들의 약점을 담당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강한 자’는 남을 배려하는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강한 자’는 내 안에 있는 기쁨이 좀 빼앗기는 한이 있어도 이웃에게 기쁨을 주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강한 자’는 남이 상처 받고 마음이 아파하는 것을 미안해하며 이웃에게 뭔가를 주려고 애쓰는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강한 자’는 내 이웃의 약점까지 포용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신앙인을 누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신앙인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입니다.

연약한 자들을 돌아보는 사람입니다.

이웃에게 유익을 끼치고 그 결과 그를 하나님 앞에 세워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어떤 결정을 해야 할 때, 하나님의 뜻에 좀 더 가까울 수 있는 지침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일이 비록 죄나 양심에 거리끼는 일이 아니더라도, 단지 자신만의 기쁨을 위한 것이라면 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6.25 직후

나병 환자 수용소에 미국 로터리 클럽에서 회원들이 방문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미국에서 파견나온 간호사 선교사 한 사람이

나병 환자의 고름이 흐르고 있는 상처를 간호하고 있는 뜨거운 인간애의 장면을 포착하였습니다.

한 사업가가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사진을 찍으면서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이것은 백만불짜리 가치가있는 사진이다.

그러나 나는 누가 나에게 백만불을 주어도 이 일을 못할 것이다."

간호사자매는 이 사업가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저도 그 일을 못합니다."

이 대답을 듣고 사업가가 당황하면서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자매가 대답하기를

"그리스도의 사랑이 저를 강권하기 때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에서 나를 향해 보여 주신 조건 없는 그 놀라운 사랑!
내가 그를 신뢰했을 때 나에게 놀라운 죄사함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나를 의롭다 하시고,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고,

나에게 영생을 허락하시고,

지금 내 삶의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이 사랑을 체험한 사람들만이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사랑의 방식을 따르십시오. 평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