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로마서 강해(120)-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가족사랑 2022. 12. 4. 07:57

로마서 강해(120)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 로마서 15장 3절 -

 

지난 시간 로마서 15장을 시작했습니다.

 '믿음이 강한 우리!'라는 제목이었습니다.

 '복음에 대해 바른 깨달음을 가진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약한 자의 약점을 짊어져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

- 로마서 1장 12절 - 

 

성숙한 그리스도인, 즉 믿음이 강한 우리가  ' 약한 자의 약점을 짊어지기 위해 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강한 자가 자기만을 생각하여 믿음이 약한 자를 무시한다면 믿음이 약한 자가 시험에 들어 믿음에서 돌아서게 될지 모릅니다.

그리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아야 하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기쁨보다 다른 영혼들의 기쁨을 구하셨습니다.

신앙은 결코 자신의 이기심만을 채우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참된 신앙인은 자신을 헌신하고 희생해서라도 이웃의 아픔과 약함을 세워주는 자입니다.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옥중에서 빌립보교회에 보낸 옥중서신입니다.

바울은 감옥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한없는 기쁨에 넘쳐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 빌립보서 1장 12절 -


바울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사역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모습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늘 똑같은 마음, 똑같은 얼굴로 성도들을 기쁨으로 섬길 수 있는 것은 복음 때문입니다.
복음의 능력에 사로잡히면 기쁨이 넘칩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 행하신 일이 얼마나 놀라운가를 깨닫는 순간, 미칠 듯이 기쁩니다.

무엇을 아끼겠습니까?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 갇혀 매를 맞고 있으면서도 찬송했습니다.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 사도행전 16장 2225절 -

이들로 하여금 찬송할 수 있게 만든 힘이 무엇일까요?

캄캄하고 폐쇄된 감옥에 있었지만, 그들은 하늘로부터 임한 빛줄기를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거룩한 소원, 착한 생각, 거룩한 동기, 거룩한 상상력을 일으키십니다.

그렇게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그분의 역사(役事)를 이루어가십니다.

바울은 빌립보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 빌립보서 1장6절 -

우리의 삶에서 시작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비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모든 것은 주님으로부터 왔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주님으로부터 출발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서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시작하신 분이 끝내십니다.

주님께서 나로 하여금 일을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선한 마음을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선한 동기를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나로 선한 상상력을 갖게 하셨습니다.

시작하게 된 일들은 하나님께서 시작하게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일을 끝내실 것입니다.
우리의 삶과 죽음,
시작과 끝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십니다.


시작과 끝 사이에는 별 일이 다 일어납니다.

그러나 시작하신 분과 끝맺는 분이 동일하기에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은 알파와 오메가가 되십니다.

요한계시록 1장 8절입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요한계시록 22장 13절도 보십시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우리의 삶의 출발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삶의 끝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의 시작과 마침이 되십니다.

주님께서 끝내십니다.

우리 마음대로 결론이 나지 않습니다.

복음이 우리를 기쁨으로 충만하게 할 때 우리는 지치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복음의 힘은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더 위력적입니다.

식을 줄 모르는 에너지를 만들어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 빌립보서 4장 45절 -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는 것이 사랑입니다.

자기를 기쁘게 하기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보여 주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조롱하고 비판했습니다.

침을 뱉고 채찍으로 때리고 창으로 찔렀습니다.

마침내는 십자가에 못 박아서 죽여 버렸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조금이라도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가만히 계셨겠습니까?

조금이라도 자기를 주장하고 옳고 그름을 따지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그렇게 말없이 돌아가셨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 모욕과 아픔을 다 참으실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보다 우리를 더 존귀하게 여기셨기 때문에 말없이 십자가에서 죽어 주실 수 있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자기만 기쁘게 행동하셨다면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은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자기를 잡으려고 온 사람들에게 자기 기분대로 하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빌라도 앞에서 자기 기분대로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람들이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조롱할 때 기분대로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매 순간 예수님은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난당하고 죽임 당하셨으며 결국 우리를 기쁘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다른 사람의 약함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어 주시기까지 우리에게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믿음이 강한 우리는 자기를 기쁘게 하기보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믿음이 강한 우리는 자기를 기쁘게 하기보다 이웃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넘어진 사람들을 일으켜 주고, 다른 방향으로 가는 이들을 올바로 인도하여 선을 이루고 덕을 세워야 합니다.

갈라디아 1장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 갈라디아서 1장10절 -

 

사람을 기쁘게 하느라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더 큰 실수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우리는 하나님의 기분을 먼저 생각하고 또한 이웃의 기분을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평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