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로마서 강해(115)-하나님의 나라 / 성령 안에 있는 의

가족사랑 2022. 10. 29. 20:47

로마서 강해(115)

 

하나님의 나라 - 성령 안에 있는 의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 로마서 14장 17절 -

 

최근에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천국에도 전화가 있고 지옥에도 전화가 있어서 좌석 예약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천국의 전화번호는 66-3927이고, 

지옥의 전화번호는 11-1111이랍니다. 

그 이유는

구약성경의 권수 39와 신약성경의 권수인 27을 합한 66

천국의 국번이 되고 39 27이 그 고유번호이기 때문이랍니다. 

그리고 지옥의 전화번호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가 최고라는 일류의식 등

자기만이 제일이라는 생각이 합쳐서 11-1111이 된다고 합니다.

 이처럼 천국의 전화번호보다는 지옥의 전화번호가 훨씬 외우기가 쉽고, 

따라서 지옥의 좌석 예약자들이 천국의 좌석 예약자들보다 더 많다는 정보입니다.  

천국 좌석을 예약하려면 성경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고, 

지옥 좌석을 예약하려면 자기가 최고라는 주장만 열심히 하면 되니까

당연히 천국 좌석 예약은 어렵고

지옥 좌석 예약은 쉬울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천국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그가 천국 문 앞에 서니, 한 천사가 그에게 암호를 대라고 했습니다.

“나는 교회에 헌금을 많이 했습니다. 

나는 도덕적으로 깨끗한 삶을 살았습니다. 

어디에서나 나는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천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당신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부자는 결국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물러갔습니다.

이후  외모가 훌륭한 다른 남자가 천국 문을 두드렸습니다. 

천사가 암호를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성직자로서 주님을 섬겼습니다. 

나는 주님의 이름으로 의로운 일을 많이 했습니다. 

유명한 기관들이 나에게 최고의 영예를 주었습니다.” 

천사가 대답했습니다.

“당신은 왕을 알지 못합니다.” 

그 사람이 물러나자마자 할머니 한 분이 그 문에 이르렀습니다. 

할머니는 허리가 구부정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의 두 눈은 반짝이고 있었고, 얼굴은 빛났습니다.

 할머니는 손을 높이 들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피, 나의 대답은 오직 피라오. 할렐루야! 그 피가 나를 씻겨준다네!” 

즉시 진주문이 열리고, 

그 귀한 영혼이 천국으로 들어갈 때, 

천국의 합창단이 할머니가 부르는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오늘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과는 무관하며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의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합니다. 

종교 개혁을 이끈 프랑스 출신의 개혁주의 신학자이자 종교개혁가 칼빈(장 칼뱅, Jean Calvin1509 ~ 1564)은 이 말씀을 이렇게 읽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물질적인 것에 있지 아니하므로 형제를 위해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하나님 나라의 혜택을 못 누리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는 음식의 문제로 다투는 나라가 아닙니다.

어떤 성도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마치 규칙이나 규정 덩어리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라면 정해진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매주 교회에 나가야 하고 십일조도 정확히 내야하며, 극장에는 가지 말아야 하고, 어떤 음악은 들어선 안된다고 믿습니다.

그런 신자들에게 믿음이란 규칙과 규정 그 자체입니다.

그들은 그 모든 규칙을 철저히 지켜야만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 나라는 본질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의(義, Righteousness, 쟈다크, צךקה) 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의(義)”라고 하면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면으로 해석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의(義)”는 그런 의미와는 조금 다릅니다.

성경은 타락한 모든 인간을 가리켜 '불의한 자'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지옥에 간다면 “불의(不義)” 때문에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불의”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헬라어로 ‘의’(디카이오쉬네δικαιοσύνη)  신약성경에서 넓은 의미로 '주님의 의무를 이행하는 자의 상태, 또는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는 조건'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는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려면 하나님은 나의 주인이 되고 나의 그분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주종관계입니다. 왕과 백성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왕이 되시고, 나는 그 분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왕은 주인이므로 나는 그 분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왕국 안에 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나 일에 있어서 하나님께 올바르고 합당해야 합니다.

그들에게는 잘못되거나 부당하거나 구부러지거나 기울어지거나 치우친 것이 전혀 없어야 합니다.

이처럼 의(義)는 우리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서게 됨을 의미합니다.

 

바울에게 있어서도 의(義)는 항상 하나님과 인간과의 올바른 관계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능케 되며, 성령의 영향 아래 의로운 행위로 그 자체를 나타냅니다.

의로운  사람은 성령에 충만한 사람입니다.

성령에  충만한 사람은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을 찾아 열심으로 그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성령에  충만한 사람은 이 땅의 욕심, 자신의 육신적인 욕망을 채우는 것을 목적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지 않습니다.

성령에 충만한 사람은 오직 하나님과 그 분의 나라를 사모하는 열정으로 순수하게 봉사하는 것을 목적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마태복음 6장31-33절 -

 

그렇습니다.

'의'를 사모하는 사람은 결코 먹고 사는 문제로 하나님의 일을 그르치지 않습니다.

이익의 문제를 가지고 형제의 가슴을 상하게 하지 않습니다. 

자기 문제 때문에 교회에서 덕을 거스르거나 문제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義)를 사모하는 사람은 먹고 마시는 것 때문에 신앙의 형제들에게 비방을 들을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근본적으로 자유하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이든지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먹는 것으로 형제들이 상처를 입는다면 그 형제를 위하여 우리는 먹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성령에 충만한 사람입니다.

성령 충만은 언제나 이웃 관계에서 이웃에 대한 자비와 배려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삶은 먹고 마시는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런 것으로부터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 자유를 가지고 형제의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교회의 덕을 해쳐서는 안 됩니다.

참 자유인은 주님과 교회를 위한 삶을 살아갑니다.

참 자유인은 자신의 이기적인 마음을 바꾸어 주님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포기합니다. 평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