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113)
비판하지 말라
- 우리는 모두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 로마서 14장 10〜13절 -
개와 고양이는 둘 다 우리 인간과 친숙하면서도 서로는 사이가 좋지 않은 앙숙입니다. 그것은 의사소통 기준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개가 앞발을 들어 올리는 것은 사이좋게 놀자는 행동인데 고양이는 공격할 때 앞발을 들어 올립니다. 또 개는 호감을 표시하기 위해 꼬리를 세우고 흔드는데 고양이에게는 이렇게 하는 것이 위협의 신호입니다. 개가 귀를 뒤로 젖히는 것은 복종의 뜻을 나타내지만 고양이는 공격할 때 그런 자세를 취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자기의 기준으로 보면 상대방의 의사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친하게 잘 지내자고 하는 행동도 싸우자는 표시로밖에는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오해와 갈등은 동물세계 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사회에도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똑 같은 행동도 나라나 지방마다 다릅니다. 우리는 오라고 하는 손짓을 서양 사람들은 가라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른 사람들 사이에만 아니라 가장 가까운 가족 사이에도 오해와 갈등이 생겨 때로는 주먹다짐까지 갑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요? 그것은 서로 간의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 “다르다”는 말과 “틀리다”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비슷한 것 같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사과나 배 같은 과일을 나눌 때 한 박스를 둘로 나누는 것과 반으로 나누는 것은 표현은 다르지만 내용적으로는 같습니다. 나누는 방법이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은 아닙니다. 개수로는 같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둘로 나누는 것과 셋으로 나누는 것은 표현은 같지만 실제적으로는 틀립니다. 개수가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르다”는 말은 잘못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실제로는 맞는데 표현이 다를 뿐입니다. 하지만 “틀리다”는 말은 표현만이 아니라 실제 내용도 잘못되었다는 뜻입니다. 진리와 거짓으로 이야기하면 “다르다”는 말은 거짓이라는 뜻이 아니라 같은 진리를 표현만 다르게 한 것이라는 뜻이고, “틀리다”는 말은 진리가 아니다, 거짓말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실상은 어떻습니까? “다른 것”과 “틀린 것”을 혼동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내가 맞으면 상대방 역시 나와 달라도 맞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나와 같지 않으면 다르다는 생각보다는 틀렸다는 생각부터 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이런 측면이 있습니다. 사실 믿음의 모습도 사람들마다 얼마나 많은 차이가 있겠습니까? 아니 같은 사람의 신앙도 시시각각으로 달라지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때 어떤 분들은 피아노에 맞추어서 조용하게 주로 찬송가를 부르기 좋아하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분들은 소리가 좀 크더라도 여러 악기를 동원해서 신나게 아주 열정적으로 복음성가 부르기를 더 좋아합니다. 그렇다고 이 둘 가운데 어느 한 쪽만 맞고 다른 쪽은 틀렸다고 할 수 없지 않습니까? 두 찬양 방식이 분명히 차이는 있지만 그렇다고 어느 쪽이 더 좋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
우리가 형제를 함부로 판단을 하거나 업신여기지 말아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이기 때문입니다.
12절입니다.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본문에서 말하는 심판은 우리의 잘잘못을 따져서 지옥에 넣거나 천국에 보내는 그런 심판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그런 심판은 없습니다.
이미 우리는 죄의 용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미 생명을 얻었고 이미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5장에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쓰인 심판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베마티(βηματι)라는 말인데, 이 말은 재판석이 아닌 운동경기장에서 심판이 서 있는 자리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즉 죄인이 아닌 운동경기를 하는 자들이 경기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잘못하면 바르게 하게하고 경기가 끝이 나면 그 거둔 성적대로 상을 주는 자리를 말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가 하나님 앞에서 점검을 받고 그 행한 대로 상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많은 성도들이 상을 받지 못함으로 인해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부끄러움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줍니다.
요한일서2장입니다.
“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28절)
심판대 앞에서 어떤 성도들은 상을 받지 못하는 한편, 다른 성도들은 큰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실 성도들은 믿음의 행위나 봉사나 마음의 동기에 있어서 큰 차이가 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공의로우심 가운데 각 성도에게 가장 공의하게 상을 내리실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는 우리가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늘나라에서 그리스도와 영원히 거하는 것이 우리 각자에게 가장 큰 기쁨이지 상급 그 자체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에 기록된 대로 형제를 비판하고 형제를 업신여기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이 시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지개가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는 서로 다른 일곱의 색깔이 함께 어우러져서 조화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하나의 색으로만 되어 있으면 무지개가 지금처럼 아름답게 보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개인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사는 법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생각해 서로 존중하고 용납하며 배려해야 하겠습니다. 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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