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114)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 로마서 14장 13〜16절 -
오늘 성경은 형제를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무엇보다도 형제자매 앞에 걸림돌을 놓지 않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다른 형제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행동 방식을 택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다른 형제의 신앙 성장에 방해되거나 그를 넘어뜨리는 원인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단호하게 피할 결심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연약한 형제 앞에 두지 말라고 주의시키고 있습니다.
여기서 '부딪힐 것'으로 번역된 헬라어 '프로스콤마(πρόσκομμα)'는 부딪칠 돌, 거리낌, 넘어짐, 장애물 등으로 번역되는데, 사람의 발에 걸려 넘어지게까지 할 수 있는 어떤 것을 가리킵니다.
'거칠 것'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칸달론(σκάνδαλον)'은 어떤 사람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마련된 장애물 또는 덫(obstacle;NIV)을 뜻합니다.
'추문'이라는 뜻을 가진 스캔들(scandal)이라는 말은 ‘올무’, ‘덫’, ‘함정’이라는 뜻의 스칼달론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원래 스칼달론은 '길 가는 사람을 올무에 걸려들게 하는 나무 토막'이었습니다.
이것이 은유적으로 사용되어 고의로 죄를 짓게 만드는 것을 뜻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이 용어는 죄로 끌어 들이기 위해 유혹하는 어떤 것을 나타내는 묘사입니다.
'프로스콤마'와 '스칼달론'은 모두 예수님께 대한 유대인의 적대감을 지적하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기록된 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 로마서 9장33절 -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 베드로전서 2장7〜8절 -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고린도교회, 갈라디아교회에서 '거치는 것' 으로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고린도전서 1장23절)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되었으리니"(갈라디아서 5장11절)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예수의 십자가 지는 것을 만류하려 했을 때 '스칸달론'을 베드로에게 사용했습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 마태복음 16장23절 -
이처럼 이 두 용어(프로스콤마, 스칸달론)는 의도적으로 형제를 꾀어 그에게 죄가 되는 것을 행하도록 유혹하는 것에 대한 단호한 경고로서 사용되었습니다.
비록 어떤 행동을 할 때 그 동기가 한 형제를 '연약한 자'의 범주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한 순수한 열망에 있다 할지라도 그로 인해 형제의 신앙 성장에 방해가 되거나 그를 넘어지게 하는 원인이 된다면 그것은 그릇된 것임을 말합니다.
바울은 강한 자들이 어떤 일을 할 때 먼저 '그 일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를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내가 이 일을 한다면 믿음이 약한 형제들은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인가 ?'를 생각하여 공동체의 건덕을 위해 사려깊은 행동을 할 것을 촉구한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몇 가지 예를 들어 이를 설명하는데, 자신은 부정한 음식이란 애초에 없다고 믿고 있다고 말합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바울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예수님이 오신 이후 그러한 규정이 무의미해졌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분명하게 구약의 율법에서 규정한 의식적인 부정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성취하셨기에, 구약에서 규정하는 부정한 음식이나 정결한 음식 자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에서 “모든 식물을 깨끗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이는 마음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로 들어가 뒤로 나감이라
이러므로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하시니라"
- 마가복음 7장18〜19절 -
예수님은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가는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과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이나 간음과 같은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구약의 음식규정을 지키던 유대인들에게 그것은 매우 이상한 주장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비록 자신과는 다른 견해였지만 이를 매우 신중하게 다루었습니다.
바울은 어떤 음식이든 원하는 것은 자유롭게 먹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다만 특정한 음식을 부정하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그 음식은 부정한 것이므로, 그 음식을 그대로 먹는 것은 부도덕한 행위로 간주했습니다.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14절).
바울의 이 말은 어떤 규정이 누군가에겐 필요할 수 있으나 그렇다고 모두에게 다 필요한 건 아니라는 뜻입니다.
예컨대, 간음이나 절도나 살인은 항상 죄가 됩니다.
그러나 그 밖의 그리스도인의생활에 관한 문제들은 딱히 흑백을 가릴 수 없습니다.
어떤 신자는 먹는 음식에 아무런 제한도 두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먹는 문제로 옳고 그름을 가늠할 수는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은 마음가짐에 달려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식습관 때문에 다른 형제가 힘들어졌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 사람을 사랑으로 배려하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15절).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희생하여 구원하신 형제를 음식과 같은 식물로 믿음을 무너뜨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형제를 망하게 하는 것은 그의 믿음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즉 양심으로 행하지 않게 됨으로 죄를 짓고, 그 결과로 실족하여 믿음에서 떠나는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자유함을 누려야 하지만, 그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를 근심하게 하거나 실족하게 한다면 그 자유를 절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생명까지 희생하셨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약한 지체를 위하여 음식과 같은 작은 것에서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려는 것은 옳은 자세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이나 속된 것이 없습니다.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전통적인 구분은 근본적으로 폐기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베드로가 기도하다가 환상을 보게 됩니다.
하늘이 열리면서 한 그릇이 내려왔는데 그 안에 큰 보자기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보자기 안에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것들은 부정한 것입니다.
그때 하늘에서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베드로는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고 하자,
하늘에서 다시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이렇게 세 번을 하다가 그 그릇이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이것은 상상할 수 없는 전통적인 사고의 파괴입니다.
베드로가 이 환상을 보고 난 후 로마 백부장 고넬료에게 가게 되고, 하나님께서 이방인들도 받으시는 것을 믿고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이것이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신앙 안에는 부정한 음식이 없습니다.
음식문제로 형제를 근심하게 하면 안됩니다.
그것은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 로마서 14장 20∼21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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