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 강해(9)
너희는 세상의 소금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 마태복음 5장 13절 -
소금은 세상에서 제일 흔한 물건입니다. 소금은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바다 물속에서도 산에서도 찾아 얻을 수 있습니다. 곳곳마다 산속에도 돌소금 광산이 있습니다. 1년에 수백만 톤의 소금을 캐어 내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소금은 바닥날 염려가 없을 정도로 매장량이 무진장입니다.
소금이 이렇게 흔하지만 소금처럼 귀한 것도 없습니다. 세상에서 소금 없이는 모든 동물이 살아 갈 수 없습니다. 우리 몸은 매일 어느 정도의 소금을 먹어야 되고, 철강, 고무산업, 피혁공장, 염색공장, 화학약품, 의약품,심지어 겨울에 눈을 녹이기 위해 길가에 뿌리기까지 어디나 소금이 들어가지 않고는 되는 일이 없습니다.
믿는 사람을 가리켜 비유할 것이 많은데 하필이면 흔한 소금, 또 별로 값이 없는 소금으로 비유하셨을까요?
이왕이면 ‘너희는 세상의 다이야몬드이다.’ 아니면 ‘너희는 세상의 황금 덩어리이다.’ ‘너희는 값나가는 보석이다’고 했으면 나름대로 자부심도 가지고, 기뻐하는 사람이 많았을 것인데. 어째서 별로 값도 없는 세상에서 제일 흔한 소금에다가 비교를 하셨을까요?
성경에서 소금은 거룩함과 순결함의 상징이었습니다.
구약에서는 여호와에게 희생의 제물을 바칠 때 수소와 숫양에 제사장이 소금을 뿌리도록 했습니다(겔43:24).또한 소금은 더러운 물을 깨끗하게 하며, 죽음과 유산(流産)의 더러움을 깨끗하게 하는 것으로 사용되며(왕하2:20∼21), 출애굽기에는 “향을 만들되 향 만드는 법대로 만들고 그것에 소금을 쳐서 성결하게 하고”(출30:35)고 말씀하셨습니다.
열왕기하 2장에 보면 엘리사가 여리고에 갔을 때 그곳 주민들이 엘리사에게 찾아와서 하소연을 합니다. “보십시오, 선생님께서도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는 좋지만, 물이 좋지 않아서, 이 땅에서는 사람들이 아이를 유산합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새 대접에 소금을 조금 담아 가지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소금을 가져 오니 엘리사는 물의 근원이 있는 곳으로 가서, 소금을 그 곳에 뿌리며 말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이 물을 맑게 고쳐 놓았으니, 다시는 이곳에서 사람들이 물 때문에 죽거나 유산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자 그 곳의 물은 엘리사가 말한 대로 그때부터 맑아져서 오늘에 이르렀다는 이야기입니다(왕하2:19∼22).
1.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은 양념으로 사용됩니다. 음식에 소금을 치지 않으면 제 맛을 내지 못합니다.
예수님 당시나 지금이나 소금의 가장 큰 용도는 역시 음식 맛을 내주는 것입니다. 아무리 정성스럽게 마련한 음식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 소금이 들어가지 아니하면 결코 맛을 제대로 낼 수 없습니다. 특히 인공조미료가 없던 시절 음식 맛을 내는데 가장 요긴하게 쓰인 것은 소금이었습니다. 사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소금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달걀을 맛있게 삶았는데 소금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소금 치지 않은 설렁탕 또는 꼬리곰탕은 어떨까요? 마치 앙꼬 없는 찐 빵과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소금이 있어야 제 맛이 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 되라’는 예수님 말씀은 제자들의 귀에 “이 힘들고 고달픈 세상살이에 시달려 지쳐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진정 살아갈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소금이 되라.”는 말씀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참기름이 아무리 고소하다고 해도 소금이 들어가지 않으면 느끼하기만 하고 고소한 맛이 나오지 않습니다. 모든 음식에 소금이 들어가야 비로소 제 맛을 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신 말씀은 맛이 없는 땅위에서, 재미없는 세상에서 맛이 있게 사회를 변화시키라는 말씀입니다.
맛이 있는 소금!
그리스도인이 들어가는 곳에는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자기도 살 재미가 있고, 다른 사람의 삶도 재미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흔히 우리는 “저 사람 맛이 갔어!”라고 말하는데, 맛이 간 사람에게 맛이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이 세상은 매일 깨가 쏟아지게 재미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슬픈 일도 있고, 걱정되는 일도 있습니다. 짜증이 나서 욕도 나가고, 팽개쳐 버리고 싶은 때도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삶은 고달픈 정도가 아니라 의미가 없는 것 같고 판에 박힌 속에서 반복되는 기계적 생활에 살맛을 잃고 있습니다. 그럴 때 맛을 나게 하는 양념을 치는 사람이 소금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향한 소금이어야 합니다.
인생의 풍랑을 만나 시달리고 있는 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해주는 소금이어야 합니다.
슬픔에 젖어 있는 이들에게 기쁨의 꽃다발을 안겨줄 수 있는 소금이어야 합니다.
불의의 사고를 당하여 고통과 번민 속에 거해있는 누군가의 손을 잡아 기도해줄 소금이어야 합니다.
실수와 실패로 인하여 낙심 중에 처한 이들에게 변함없는 신뢰감을 보여주는 소금이어야 합니다.
불우한 환경 때문에 미래를 포기한 사람들에게 희망의 불을 붙여주는 소금이어야 합니다.
특히 세상에 나 혼자 밖에 없다는 외로움에 떨고 있는 이들 곁에 다가가 함께 해주는 소금이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을 살맛나게 해주는 맛소금입니다.
욥기 6장에 “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 닭의 알 흰자위가 맛이 있겠느냐”(6절)고 했습니다.
골로새서 4장에도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8절)고 했습니다.
음식에 소금이 적당히 들어가서 간이 잘 되어서 맛이 좋다는 표현으로 “짭짤하다”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또 찌개가 짭짤하게 맛이 있다는 표현도 씁니다.
이 짭짤하다는 말은 음식 말고 다른 좋은 것을 표현할 때도 씁니다.
일을 잘 하는 사람 솜씨가 있는 사람을 말할 때도 이 말을 씁니다.
“그 집 며느리 살림솜씨가 짭짤하다.”라고 합니다. 장사가 잘 되어서 돈을 좀 많이 벌었을 때도 이 말을 씁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이런 짭짤한 맛을 내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음식도 맛나게 하고, 세상사람에게 칭찬받는 그런 짭짤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소금은 상하기 쉬운 물건을 보존하는 일에 사용합니다.
소금 속에는 소독과 살균작용을 하는 염소이온이 들어 있어서 많은 독소들이 유입이 되어도 썩지 않고 유지가 되고 있습니다. 생선에 소금을 치면 상하지 않는 것이나 바닷물에서 상처가 생겼을 때 덧나지 않고 잘 낫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지금은 냉장고가 있어서 냉동시켜 보존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소금을 쳐서 저려 놓는 일이 전부였습니다.
안동에 간고등어가 왜 유명한지 아십니까? 바다와 꽤 떨어져 있는 안동에서 생선은 무척 귀한 산물이었습니다. 이동수단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바다인 강구, 축산, 후포 등으로부터 고등어를 가져오자면 통상 1박 2일이 걸렸습니다. 강구에서 새벽 5∼6시쯤 출발하면 날이 어두워져서야 황장재 넘어 신촌마을에서 저녁을 먹고 하루 밤을 쉴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 새벽에 다시 출발하여 진보나 임동면 챗거리에 가서야 고등어를 넘길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틀이나 걸리는 이동시간으로 인해 고등어가 상하기 쉽기 때문에 고등어의 장기간 보존을 위해서는 소금이 필수적이었습니다. 소금간을 하는 것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는데, 먼저 고등어를 잡자마자 즉석에서 배를 따고 간을 하는 형태가 있고, 두 번째로는 포구에 도착하여 간하는 방법, 마지막으로 소비지역까지 운반하여 간을 하는 형태 등입니다. 이 중 안동간고등어는 세 번째 방법을 택했습니다. 생선은 본래 상하기 직전에 나오는 효소가 맛을 좋게 하기 때문인데, 영덕에서 임동면 채거리까지 하루가 넘게 걸리며 오다 보면 얼추 상하기 직전이 되며, 이 때 소금간을 하게 되면 가장 맛있는 간고등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소금은 우리의 뇌 세포가 작동을 하고 각종 필요한 호르몬의 분비가 조절이 되고 근육세포에서도 수축과 이완에 필요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소금의 섭취가 중단이 되면 우리 몸속에 있는 세포의 기능이 완전히 마비가 되어서 생명이 위험해집니다. 이처럼 소금은 우리의 생명이 유지가 되는 아주 중요합니다.
소금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이 멸망하지 않도록 하는 아주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소금 그리스도인은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나누어주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죽어가는 사람들 영원한 멸망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갖게 해 주는 중차대한 사명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소금으로서의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속에 있을 때에 우리가 악으로부터 보존되고 또 믿는 사람들이 그 시대를 썩는 데서 보존할 수가 있습니다.
성도의 영향력은 많던 적던 세상으로 퍼져 나가면서 상해가는 세상을 보전하고 유지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람들이 사는 이 세상에서 부패하지 않도록 하는 소금같은 사람입니다.
사회 곳곳에서 썩어져가는 곳에 소금의 영향을 감당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3.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무 쓸데가 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밖에 버려져서 사람들에가 짓밟히게 됩니다.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소금은 그 모양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소금이 짠 맛을 낼 때 소금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이지 짠 맛을 빼고 난 소금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외형적으로 어떤 모습을 갖추고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성공하고 간판이 좋고 인물이 좋고 뭘 많이 가지고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맛을 내고 있느냐 그 사명을 다하고 있느냐 그것이 중요합니다.
맛을 내지 못하면 성도답게 살지 못하면 밖에 버려져서 쓸모없는 존재가 되고 맙니다.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라는 말 뒤편에는 ‘소금이 그 맛을 잃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뜻이 숨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실 때 ‘만약’이라는 말을 쓰셨습니다.
수퇘지가 새끼를 낳을 수 없는데 만약에 수퇘지가 새끼를 낳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런 뜻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어날 수도 없고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세상의 부패를 막아야 할 기독교인들이 부패를 막지는 못할망정 스스로 부패하고 있습니다.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로마가 기독교인들을 박해한 지 300년 만에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는 상상할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수많은 영웅과 황제가 있었던 로마 제국이 어떻게 뒤집히게 되었습니까? 그토록 멸시하고 박해하던 로마가 어떻게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순결하고 진실한 삶의 모습, 잔인한 고문과 순교의 자리에서도 끝까지 신앙을 버리지 않는 뜨거운 믿음이 박해자들의 가슴을 녹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될 때, 당시 기독교인의 수가 로마 인구의 3%도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들 소수의 무리가 지니고 있던 진실한 신앙과 복음적인 삶, 강렬한 생명력이 로마의 부패를 방지했으며, 그 거대한 제국을 결국 변화시켰습니다.
소금은 바닷물의 3%를 차지합니다.
3%의 소금이 녹아 있기에 어떠한 오물이 들어가도 바다는 썩지 않고 푸르름을 드러낸다고 합니다.
소금의 사명을 다하는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이 전체 인구의 3%만 되어도 이 세상은 부패하지 않고 유지될 수 있습니다.
로마가 변화된 것처럼 이 세상이 변화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바닷물 속에 녹아서 부패를 방지하는 3%의 소금 같은 역할을 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그 3%의 소금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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