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 강해(11)
더 낫지 못하면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5장 17∼20절 -
천국(天國, 하나님의 나라 η βασιλεια του θεου)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신 모든 가르침의 주제는 천국이었습니다.
성도들의 실천적인 윤리에 관한 교훈으로 알려져 있는 산상수훈의 주제도 천국에 관한 것입니다.
그동안 팔복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는데 그 주제도 역시 천국이었습니다.
천국으로 시작해서 천국으로 끝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5:3)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5:10)
성경에 우리말로는 천국(天國)이라는 표현이 한 가지이지만 사실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흔히 말하는 천국(Heaven) 즉 구원을 얻은 영혼이 죽은 후에 가서 하나님을 영원토록 찬양과 경배로 섬기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가의 다락방에서 마지막 유월절 식사를 하신 후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요14:1∼2)라고 하신 바로 그 곳입니다.
이곳은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천당이나 극락과 같은 의미입니다만 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는 죽은 후에 가 봐야 인간의 영원한 운명이 결정 된다고 가르칩니다. 살아서는 어떻게 하든 최선을 다해 자기들 신의 노여움을 풀고 그 마음에 들도록 해야 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전부입니다. 그래서 정성, 치성, 헌금, 희생 등을 가능한 많이 갖다 바쳐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 땅에서의 삶의 목적은 남이야 어떻게 되었든 오직 자기 자신의 성적표만 잘 관리하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선행과 구제는 진정한 선이라기보다 죽은 후 평가를 잘 받기 위해 이 땅에서 자기 공적을 쌓는 정도의 의미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은 구원을 얻은 성도들이 죽은 후에 하나님을 영원토록 찬양과 경배로 섬기는 곳입니다.
둘째는 주님의 거룩한 통치가 실현되는 영역으로서의 “하나님의 왕국 (η βασιλεια του θεου), 혹은 주님의 나라 (the Kingdom of Heaven, 혹은 the Kingdom of the Lord)”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이 임하는 그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의 의미는 어떤 영토적이거나 장소적인 의미보다는 바로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개념적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가장 먼저 하시 말씀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4:17)였습니다. 주님은 곧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이 땅에 있는 사단의 왕국을 친히 물리치시고 죄악과 사망의 사슬에 묶여 있는 죄인들을 구원하심으로써 인간의 삶 속에 천국을 실제적, 현재적으로 오게하겠다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만이 갖는 천국에 관한 특유의 의미입니다. 구원의 확신을 얻은 신자가 이미 이 땅에서 주님의 통치를 받는 삶 전체를 말합니다.
이 땅에서 신자가 누리는 ‘하나님의 왕국’에는 현재 임재한 나라와 미래에 도래할 나라라는 이중적 성격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장래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마6:10). 요한계시록에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새롭게 이루실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계19∼22장,계22:12,20) 그러므로 천국은 예수님 재림(再臨)시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또 이미 우리 가운데 임해 있는 하나님 나라에 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느냐는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대해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1)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지상 사역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가 우리 가운데 뿌리 내렸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씨 뿌리는 비유(마13:3∼23)에서 보듯이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좋은 땅에 ‘하나님의 나라’라는 씨앗을 이미 뿌려 놓으셨습니다.(마13:11, 23)
구원 받아 천국의 비밀을 소유한 하나님의 자녀들끼리 사랑하고 섬기는 공동체 안에 하나님나라가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1.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
오늘 본문 20절 말씀에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라고 했습니다.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은 오늘 본문 말씀과 마태복음 18장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여기 “결단코 ~하지 않다”라는 말은 아주 강한 어조로 어떤 수단이나 어떤 방법으로도 할 수 없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자신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낫지 못한 사람은 결코 어떤 수단 어떤 방법을 다 동원한다고 해도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서기관과 같은 의를 가진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서기관들을 책망하시는 말씀을 종종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2장에 보면 예수께서 가르치시면서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막12:38-40)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의 서기관들은 아주 대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천국 문을 열어놓고 두 사람만 들어 보낸다면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들어갈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긴 옷을 입고 시장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문안을 받고 회당이나 잔치자리의 높은 자리에 앉아서 폼을 잡았습니다.
서기관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성경을 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인쇄기술이 없었던 시절에 성경말씀을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이 또박또박 쓰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말씀은 외울 정도로 잘 아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제일로 알던 시절에 정말로 존경받을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가르치기도 했는데 성경을 가르칠 때는 서서 가르치는 법이 없었습니다. 좌정하고 앉아서 권위 있게 가르쳤고 배우는 사람들은 아주 조심스럽게 스승을 대하면서 배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꾸짖을 때 늘 대표적으로 꾸중을 듣는 사람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잘못은 성경을 그렇게 연구를 하면서도 깊이 깨닫지 못하고 성경에 나타난 글자그대로만 알고 그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참 뜻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성경을 그렇게 많이 보고 쓰고 가르쳤으면서도 그 성경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는데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성경말씀을 가지고 자기들의 권위만 세우고 잘난 척하고 이익을 챙기기에 바빠서 예수님께서 그 메시아라는 말을 듣고도 오히려 완강하게 거부했던 사람들입니다.
바리새인과 같은 의를 가진 사람, 역시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서기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가르친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바리새인들은 그 연구한 말씀을 가장 모범적으로 잘 지키려고 노력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바리새인(pharisees)이라는 말은 분리주의자라는 의미입니다.
구별된 자들입니다.
그들은 세속인들과 자신들을 구별 지어서 바리새인들이라고 불렀습니다.
누가복음 18장에 그 대표적인 예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고, 다른 한 사람은 세리였다. 바리새인은 서서,혼자 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남의 것을 빼앗는 자나, 불의한 자나, 간음하는 자와 같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으며, 더구나 이 세리와는 같지 않습니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내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그런데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우러러볼 엄두도 못 내고, 가슴을 치며 '아, 하나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의롭다는 인정을 받고서 자기 집으로 내려간 사람은, 저 바리새인 아니라 이 세리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눅8:10∼14)
바리새인들은 당당하였고 교만하였습니다. 사람들을 무시하였습니다. 사실 율법은 금식을 강요한 적이 없습니다. 일 년에 한번 정도 권장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금식을 일주일에 두 번이나 했습니다. 기도도 많이 했고, 구제도 많이 하였으며, 또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나 십일조 헌금을 하는 것에 모범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가장 욕을 많이 먹은 사람들이 바로 이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들도 율법을 많이 알고 많이 지켰지만 율법의 참된 의미를 잘 몰랐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율법을 제정하셨는지 어떤 마음으로 율법을 지켜야 했는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서기관들처럼 율법의 완성으로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고 오히려 예수님을 핍박하고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들이 율법을 지키는 것은 너무나 형식적이고 가식적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자기의 의를 자랑하기 위해서 사람들 보는데서 큰 소리로 기도하고 자기가 행한 선행들을 자랑하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누가는 이 바리새인들을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눅18:9)로 비유를 한 것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완벽하게 다 지키는 사람이라고 착각을 하면서 살았고 자기들처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멸시하면서 살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정말로 선하고 착하고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님의 눈으로 그들을 보았을 때 그들은 정말로 형편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1장에 예수님께서 심하게 바리새인들을 꾸짖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책망하셨습니다.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눅11:39)라고 하셨습니다. 그릇이 안과 밖이 다 깨끗해야 하겠지만 한 쪽만 깨끗하게 하려면 겉보다는 속을 깨끗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그릇에 담는 음식이 깨끗하게 됩니다. 그런데 겉만 그럴듯하게 깨끗하게 하고 속에는 더러운 것이 그대로 있다면 깨끗한 음식을 담아야 하는 그릇으로서 쓸모가 없게 됩니다.
사람도 이와 같이 겉이나 속이 다 깨끗하면 좋겠지만 특별히 속사람이 깨끗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외모를 중요하게 여기고 외모만 볼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속을 중요하게 여기시고 속마음을 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외형적으로 일을 얼마나 많이 했는가가 하나님의 관심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속마음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가를 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교만하게 날뛰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교만한 마음을 가졌을 때 사탄이 가장 기뻐합니다. 사탄은 우리가 교만할 때를 기다립니다. 우리가 뭔가를 자랑할 때를 기다립니다. 우리가 뭔가 우쭐하고 잘난 척 할 때를 기다립니다. 그 때 넘어뜨리기가 가장 쉽기 때문입니다. 그 때 유혹을 하면 십중팔구는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교만하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교만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자기 생각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일을 많이 한다고 해도 교만하여 자기를 자랑하면 그 순간 하나님께서 우리를 책망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 분명히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
우리가 가진 의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가진 의보다 더 나아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의가 무엇일까요?
로마서 3장에 있는 말씀입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3:21∼22)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을 사람은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킴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 외에 다른 하나님의 의의 기준이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의롭다고 인정을 해 주십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는 그 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지킴으로 얻으려고 했던 그 의보다 훨씬 더 나은 의이며 이 의만 가지면 반드시 천국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의입니다.
1. 돈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힘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후렴)거듭나면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2. 벼슬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지식으로 못가요 하나님 나라
3.어여뻐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맘착해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오늘 본문 19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천국에는 큰 사람이 있고 작은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큰 사람은 칭찬을 많이 받고 상급을 많이 받는 사람이고 작은 사람이란 칭찬을 적게 받고 상급을 적게 받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그같이 가르치는 자는 작은 자가 되는 것이고 이를 행하는 것 즉 계명을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큰 자라 일컬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여기 계명을 행한다는 것은 다시 구약의 율법으로 돌아가서 그 계명들을 지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계명은 예수님께서 재해석하시는 그 계명들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잘못된 율법들의 해석을 바르게 하시고 또 가르치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사는 자는 천국에서 큰 사람이라고 칭찬과 상급을 받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이 천하를 얻고도 제 생명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아무리 성공을 하고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해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를 반드시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가 얻게 되는 의입니다.
그 의가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의 의보다 훨씬 귀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여 줄 것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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