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강해

산상수훈 강해(12)-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가족사랑 2021. 1. 18. 16:55

산상수훈 강해(12)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 마태복음 5장 21∼24절 -

 

 

오늘 성경은 살인에 대한 예수님의 교훈입니다

예수님의 살인에 대한 이해는 누구를 죽이는 것만이 살인이 아니라 형제에게 노하는 것이 살인이고, 형제에게 욕하는 것도 살인이고, 형제를 미련한 놈이라고 하는 것도 살인이고, 모두 심판의 대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형제에게 노할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런데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은 노하는 것이 이미 살인한 것과 진배없다는 것입니다

 ‘라가라는 말은 바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얼마나 쉽게 내뱉었던 말인가요

그런데 바보라는 말만 해도 살인죄가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미련한 놈이라는 말 역시 얼마나 쉽게 비교하며 던진 말입니까

그런데 그렇게 말한 사람은 지옥 불에 들어가리라는 것입니다

 

1.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예수님의 새로운 이 율법해석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모두 살인자라는 뜻이었고, 결국 그들을 불편하고 난처하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살인은 죄의 결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죄를 지은 인간의 최초의 행동이 살인이었습니다

 

창세기48절에 보면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살인하게 된 동기가 어디에서 출발하는지 아십니까

미움입니다. 질투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제물은 받지 않고 동생 아벨의 제물만 받으셨다는 질투에서 미움이 일어나고 결국은 살인으로까지 이어집니다.

 

이 미움을 동반한 살인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신문과 TV에 나오는 사건의 대부분이 미움 속에서 출발합니다.

결혼문제로 다툼을 벌이다가 24살 처녀가 자기집 아파트에서 62세난 어머니를 흉기로 찔러 살해합니다.

폐지를 줍던 70대 할머니를 같은 고물업을 하던 사람이 7m 옥상 아래로 밀어 떨어뜨린 후 부상만 입은 것을 확인하고, 재차 할머니를 결박해 호흡기 등을 테이프로 감아 질식사 시킨 일도 있습니다. 그가 할머니를 죽인 이유는 고물을 어지럽게 놓아뒀다고 꾸중하는 것에 흥분해 그랬다는 것입니다.

어떤 전직 프로농구 선수는 아내의 쌍둥이 언니를 살해했습니다. 처형이 "너 같은 놈 만날 것 같아 내가 시집을 안 간다"며 자신을 무시하는 발언을 해 말다툼을 하다 일을 저질렀습니다.

어느 모텔 종업원은 자신을 무시했다고 잠자는 손님 객실에 들어가 무참하게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했습니다. 체포된 후에도 "흉악빔이 양아치를 죽였다"고 하면서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살인에 대한 새로운 가르침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살인에 대한 가르침은 사람의 목숨을 취하는 것도 살인이지만 그 이전에 내면적 마음의 태도와 동기가 더 중요한 것임을 밝혀 주셨습니다

 

마음의 분을 내는 것은 살인의 직접적인 동기가 됨으로 이미 살인한 것이요, 남에게 라가라는 굴욕적인 말이나 욕설을 하는 행위도 분을 참지 못하고 죄악된 마음으로 행한 것이니 역시 살인을 포함하는 것이요, 상대를 미련하다고 무시하고 경멸하는 것도 살인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미워하는 마음이 곧 살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며, 화를 내고 욕을 하고 상대를 무시하는 마음의 행위와 입술의 말은 바로 살인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2324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하나님께 경배하고 예물 드리는 일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믿는 형제자매가 서로 화목(和睦)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이 세상의 모든 부모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자녀들이 부모에게 맛있는 음식을 가져오고 좋은 의복을 사오는 것보다 오히려 형제간에 화목하고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더 기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 안에서 형제된 우리 성도들이 아무리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예물을 드리고 경배해도 서로 물고 찢고 싸우면 하나님께서는 그 예물을 싫어하십니다.

한 가정에서도 남편과 아내가 물고 찢고 싸우면 그 다음에는 기도가 막혀버립니다. 기도를 해도 하나님이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용서해주고 화목하는 것은 우리 신앙생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예배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입술로 찬송의 예물을 드리고 기도로 예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가 찬송과 기도로 예물을 드릴 때 그것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우리의 심령이 얼마나 메말라지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 우리의 찬송과 기도가 열납되기 위해서는 서로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용서하고 화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예수믿는 사람끼리 용서하고 화해(和解)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기도하면 성령이 들어오셔서 하나되게 하시고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게 만듭니다

그 다음에 예물을 받으십니다.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세워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원한다면 먼저 사람들과의 바른 관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요한일서 4장20절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주님은 좋은 관계를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주님의 죽으심은 하나님과 사람의 화목을 위한 것이고 이로 말미암아 사람과 사람 사이의 화목을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원망을 들으면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거룩한 의식에 참여한다는 것은 매우 위선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는 눈에 보이는 화려한 의식이 아니라 형제와 함께 교회에 나와 손을 맞잡고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는 예배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려면 예배드리기 전에 먼저 형제와 화목해야 합니다. 그래야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먼저 분을 푸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형제와 화목하는 일을 예배보다 긴급한 일로 간주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을 해결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그가 드리는 제물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형제의 인격을 멸시, 모독, 저주함으로 형제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면, 그 형제는 마음에 원망과 한을 품고 하나님께 호소하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그가 드리는 예배를 받으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이러한 사실을 잊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손에 많은 피를 묻히고 회개하지도 않은 채 아무렇지도 않게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그들이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을 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이 아벨을 시기하여 미운 마음을 품고 있을 때에 그를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가인에게 그의 마음에 있는 죄를 지적하시고 그에게 그 죄를 다스리라고 권고하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이러한 하나님의 권고를 듣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는 죄를 지을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형제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심판을 받고 하나님 앞을 떠나서 유리하며 사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도 예배를 드리다 형제에게 원망을 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면, 즉시 가서 그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합니다. 그 후에야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는 것을 보고 예수님이 안식일을 어겼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나는 제사를 원치 아니하고 자비를 원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배우라!"

 

하나님은 우리가 이웃의 생명을 존중하고 그들과 화목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형제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들을 사랑하고 축복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결코 이웃을 멸시하거나 저주하지 말아야 하며, 그들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형제를 멸시하고 그들에게 상처를 입히면 그들은 우리를 축복하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러한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야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가서 온전한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웃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을 하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그러한 일이 생각나면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기도하시시오. 

형제를 사랑하고 내 몸처럼 여길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화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해야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 말씀을 대할 때 제사 즉 예배를 드리는 것보다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고 단정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형제 사랑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그것은 말씀을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왜 형제를 사랑하고 화해해야 합니까

그것은 예배를 잘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 앞에 깨끗한 우리의 마음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선행이 예배보다 중요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제일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창조하신 목적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악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희생제물이 되게 하신 목적도 믿음으로 구원받은 백성들이 하나님께 다시 예배를 드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형제자매들과 가까운 이웃들과 잘 지내야 합니다

가족들 친척들에게도 잘 하고 국법도 잘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도덕적으로 훌륭한 사람이라고 해도 하나님께 인정은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살인과 폭력, 저주와 미움과 분노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형제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십자가의 하나님 사랑을 깊이 묵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사랑을 결심하고 실천하십시오

미워하지 않으려고 애쓰시지 말고 사랑하려고 노력하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나는 사랑하기를 원하지만 사랑을 할 수가 없어요.”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적 사랑은 느낌이나 감정이 아닙니다

사랑은 결단이고 행동입니다

그래서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습니다

감정적으로 원수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원수에게 물을 마시우고 양식을 줄 수는 있습니다

이것은 의지적인 행동이므로 가능합니다.

 

기독교의 사랑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의지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인 사랑을 순종하여 실천할 때 그 순종이 사랑하는 마음도 가져오게 됩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부터 시작해서 용서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꿔주십니다

이것은 우리 힘으로 하는 게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사랑하기로 결단하고 실천하면 됩니다

사랑할 때 비로소 우리는 용서를 알게 됩니다

사랑할 때 비로소 우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고 하셨습니다

이 사랑으로 비로소 우리는 주님을 닮아갑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