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 강해(8)
마카리오이!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 마태복음 5장 10절 -
오늘날 북한 정권은 주민들에게 북한을 세운 김일성과 전 지도자인 김정일 그리고 그의 아들 김정은을 신처럼 숭상할 것을 세뇌시킵니다. 체포, 감금, 고문과 처형은 기독교인들과 같이 다른 신을 찬양하는 주민들에게 흔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40만으로 추정되는 북한의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믿음으로 인해 언제 감금될지도 모르는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성경책을 소지하거나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고문과 처형을 당할 수 있고, 그들의 가족은 3대에 걸쳐 처벌을 받게 됩니다.
1990년대에는 약 2백만명의 북한주민들이 식량부족으로 인해 영양실조와 굶주림으로 죽어갔습니다. 기독교인 가족들도 수 천 명이 죽었습니다. 오늘날 열 명 중 한 명의 북한 기독교인, 즉 4만 명 정도는 감옥의 노동수용소에서 죽을 때까지 일하고 있고, 도망친 몇 명중에 일부가 살아남아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왔습니다.
탈북자 김철호 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북한에서 기독교인들은 늘 발각될까 두려워합니다. 만약 유죄로 밝혀지면 끔찍한 벌을 받게 되지요. 바로 죽음을 뜻할 만큼 엄청나니까요. 북한정권은 강제로 주민들에게 김일성과 김정일을 신으로 찬양하도록 하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주님을 찬양하는 것을 봐 줄 수가 없지요. 주민들은 김일성과 김정일을 찬양하도록 잘 훈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부모들은 도저히 김일성이나 김정일을 찬양할 수가 없어요. 이로 인해 그들의 자식들과 다른 가족들까지도 벌을 받게 됩니다. 이런 아이들은 고등교육이나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어떠한 기회도 박탈되게 됩니다. 모든 것을 잃게 되지요.”
또 다른 탈북자 최미자씨는 “북한 노동수용소에 있는 우리들이 얼마나 잔인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 세상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요덕수용소로 강제이송 되었습니다. 거기서 9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냈습니다. 우리는 짐승같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아니 거기서는 짐승들이 우리보다 더 낫게 살았지요. 나를 너무도 슬프고 화나게 한 것은 내 부모님과 아이들까지도 요덕수용소로 끌려갔다는 사실입니다. 내 아이들도 동물처럼 다룬다니 견디기 너무 힘들었어요. 그들의 만행에 치가 떨려요. 온 세상이 그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았으면 좋겠어요. 아버지께서는 요덕 수용소에서 돌아 가셨어요. 관이 없어 시신을 거적으로 싸야 했죠.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 또한 극심한 굶주림으로 돌아 가셨어요. 내 아이들마저 잃었을 때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이 슬프고 괴로웠어요. 너무 슬퍼서…. 굶주림에 죽은 요덕의 들과 산에 쌓여 있는 그 많은 시신들을 결코 잊지 못할 겁니다. 세상에 알리고 싶어요.”
또 다른 탈북자 박대호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많은 서방 국가들은 북한의 형제자매들이 겪고 있는 고난을 모릅니다. 북한에서 주님을 믿다가 잡히면 3대까지 죽임을 당합니다. 믿음의 형제들은 그들 자신의 죽음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잡히면 가족 전체가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남몰래 예수님을 믿을 뿐, 다른 누가 또 믿음의 형제인지 서로 알지 못합니다. 혼자 집에서 성경을 읽고 있던 한 형제의 이야기입니다. 한 밤중에 너무 성경 읽기에 몰두한 나머지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답니다. 소리가 커져서야 누군가 문 앞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재빨리 성경책을 숨겼답니다. 그 지역 촌장과 두 명의 이웃이 갑자기 들어와서는 질문과 함께 그의 조그마한 집을 수색했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성경책을 찾고 말았죠. 그는 이제는 죽었구나 하고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성경책이 발견되면 무슨 일이 생길지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이웃은 찾은 성경책을 자신의 옷 속에 숨기며 아무 것도 찾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다음날 성경책을 가져갔던 그 이웃이 혼자 왔습니다. 그리고 성경책을 돌려주며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도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나도 믿습니다. 지금의 어려운 상황 때문에 다른 믿음의 형제들과 교제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 혼자 믿음을 지켜 왔습니다. 여기 이렇게 나의 주변에 다른 믿음의 형제가 있다는 것에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좀 더 조심해서 성경을 읽으시고, 나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지금 난 비록 당을 위해서 일하는 몸이지만, 몰래 다른 믿음의 형제들을 돕고 있어요. 다른 형제들을 위해 기도해야 해요. 그러면 언젠가 북한도 자유롭게 복음을 나눌 수 있을 겁니다. 북한의 기독교인들은 세상에서 최악의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어려움에도 주님께서는 견디어 낼 수 있도록, 믿음과 강건과 용기로 그들을 채우십니다. 그들과 함께 하시고 천국에 대한 희망을 주십니다. 그것이 북한의 기독교인들은 만날 때마다 서로 기도를 요청합니다. 기도로 주님 앞에 함께 선다는 것의 귀중함을 이해하는 까닭입니다. 사람들은 제게 묻습니다. ‘어떻게 북한에 기독교인들이 살아남아 있습니까?’ 그들에게는 비밀이 있습니다. 주님의 간섭을 통한 보호와 기적입니다. 그들의 육체는 너무나 굶주렸지만 주님의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주를 찬양하지 않고는 그들은 결코 살 수 없답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을 살아남아 있게 하는 비밀입니다.”
1.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
예수님은 마치 오늘의 북한을 예견이나 하시듯이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다’는 것은 주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박해를 받는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이 잘못해서 박해를 받는 경우입니다.
자신이 잘못해서 박해를 받는 것은 엄밀하게 말해서 박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루는 것입니다. 성도들 가운데는 자신이 잘못해서 고통을 당하면서 ‘십자가를 진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자신이 잘못해서 고통을 당하는 것은 십자가와는 전혀 무관한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박해는 자신이 잘못해서 박는 박해가 아닙니다.
둘째는 애매하게 고난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운전을 하다보면 나는 내 차선으로 잘 갔는데 다른 차가 차선을 넘어와서 나의 차를 들이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업을 같이 하다가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금전적인 손해를 보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가 바로 까닭 없이 고난을 당하는 경우입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이런 경우를 당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셋째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에 보면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경건하게 살고자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박해가 있습니다. 바르게 사는데도 박해가 없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입니다. 주님의 일을 하고는 자에게는 반드시 박해가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모든 선지자들이 배척당하고 순교했습니다.
신약에 나오는 모든 사도들이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 순교했습니다. 요한이 옥에 갇혔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바울의 일생은 쓰라린 냉혹한 박해의 연속이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을 위하여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위해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도행전에 있는 말씀입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행5:41).
우리가 이 악한 세상에 살면서도 공격을 받지 않고 편하게 살아간다면 두 가지 경우 가운데 하나가 분명합니다. 악한 세상과 같은 편이거나 아니면 항복했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주님이 오실 날이 멀지 않아서 그런지 요즘 세상은 교회와 성도들을 더욱 박해합니다. 사실 교회나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박해를 받을 만큼 그렇게 잘못하지는 않습니다. 평균적으로 교회와 성도들은 세상의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다른 종교인들보다 훨씬 더 경건하게 삽니다. 훨씬 더 의롭게 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와 성도들이 비난의 대상이 되고 박해를 받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열 가지 가운데 하나만 잘하면 그 잘한 하나 때문에 칭찬을 듣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열 가지를 잘하고 한 가지만 잘못해도 그 잘못한 한 가지 때문에 비난을 받고 박해를 당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질이 아닌 사소한 것으로 인해 세상 사람들부터 비난을 당하거나 박해를 받지 않도록 더 성실해야 합니다.더 사랑해야 합니다. 더 용서하고, 더 감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의는 의지나 생각이 하나님의 뜻과 합치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의지나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박해를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 11절에서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것은 예수님을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은 또한 복음을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자들이 핍박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복음이 곧 의의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은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이라는 말입니다.
그냥 '받는 자'라는 말과 "받은 자"라는 말은 차이가 있습니다. "받는 자는"이라는 말은 현재 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는 반면, "받은 자는"이라고 할 때에는 과거완료형입니다.
이미 핍박을 받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앞으로 제자들과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 받을 핍박을 염두에 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과거완료형 분사를 사용했습니다. 이것은 이미 핍박 받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것은 주님이 의도를 가지고 과거완료형 분사로 말씀하셨음을 보여줍니다.
히브리어에서는 미래의 일이지만 틀림없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표현할 때에 과거형을 사용합니다. 예언에 해당되는 표현을 할 때에 이런 용법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래서 예언적 과거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과거완료형 분사를 사용하신 것은 핍박을 받는 것은 피하지 못할 일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천국이 저희의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천국이 저희의 것임이요'라고 말하는 것은 주와 복음을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사람은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핍박을 받는 믿음이 천국을 자기 것으로 받는 진짜 믿음이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핍박을 받은 것은 그 사람의 믿음이 가짜가 아니라 진짜라는 것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기 때문에 천국은 이런 사람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보십시요! 믿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위해 핍박을 받고 자기 가정과 재산과 목숨을 내어버릴 사람은 없습니다.
핍박을 받은 것은 자기가 믿는 것을 진실하게 그리고 최고의 가치로 믿고 따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에게 핍박이 임하도록 내 버려두실까요?
왜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세상에서 박해를 받도록 허용하시는 것일까요?
여러분은 왜 하나님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박해를 받도록 하신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박해가 알곡과 가리지를 구별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3:12)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자녀들을 박해받도록 허용하시는 것은 박해를 통해서 알곡을 골라 하늘나라의 곡간에 모아들이기 위해서입니다.
또 하나님은 자녀들을 연단하기 위해서 박해를 허용합니다.
박해는 사랑하는 자녀들을 연단하는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잠언 17장에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3절)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5장에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3〜4)고 하였습니다.박해는 하나님의 자녀를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는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연단하신 후에 상을 내리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누가복음 6장에서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22절)라고 말씀하시고 23절에서는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의 큰 상이 있는 박해이기 때문에 기뻐하고 뛰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9장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21절)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박해를 받게 되면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박해하는 사람들을 미워합니다.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상을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상이 있다는 것을 알았던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에서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롬12:14)고 하였습니다.
박해를 받을 때 우리는 더욱 사랑하고 더 많이 축복해야 합니다.
그것도 할 수 없으면 우리를 박해하는 자를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들에게 상급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에게 세 가지 상을 약속하셨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둘째, 하늘의 큰 상을 약속하셨습니다.
셋째, 선지자의 반열에 서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이 약속하신 하늘의 상을 바라보며 박해를 견디고 이기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의를 위하여, 주님을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고, 하늘에서 큰 상을 받으며 선지자의 반열에 서는 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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