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 강해

사도신경 강해(16)-"보아라,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신다!"

가족사랑 2022. 6. 27. 18:04

사도신경 강해(16)

 

"보아라,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신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입니다.

이 계시는 곧 일어나야 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천사를 보내셔서, 자기의 종 요한에게 이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사람과 듣는 사람들과 그 안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지키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그 때가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나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이 편지를 씁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또 앞으로 오실 분과,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또 신실한 증인이시요 죽은 사람들의 첫 열매이시요

땅 위의 왕들의 지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 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며,

자기의 피로 우리의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여 주셨고, 

우리로 하여금 나라가 되게 하시어 자기 아버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에게 영광과 권세가 영원무궁 하도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   
"보아라,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신다. 눈이 있는 사람은 다 그를 볼 것이요, 그를 찌른 사람들도 볼 것이다.

땅 위의 모든 족속이 그분 때문에 가슴을 칠 것이다."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멘. 

-요한계시록 1장 17절(새번역) -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의 마지막 조항에 이르러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신다고 했습니다.

승천하신 예수님은 반드시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데 그때는 이 세상의 심판주로 오셔서 이 세상의 모든 잘못된 것을 심판하고 그때부터 신천신지, 즉 새 하늘과 새 땅을 건설할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올라가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 혹은 '두 번째 오신다'라는 말을 신학적으로는 재림(再臨, (Second Coming, Second Advent))이라고 합니다.

초림(初臨), 즉 동정녀 몸에서 아기로 태어난 첫 성탄절 때에도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그리스도의 출생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누가복음 2장38절)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성도들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늘로부터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신앙고백의 중요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고 하신 말씀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이 재림에 관하여 예언한 것은 모두 1,000여 번이나 됩니다.

신약성경에만도 예수님의 재림을 약속한 것이 318회나 되는데, 이것은 신약 성경의 매 25절마다 한 번 꼴로 기록되어 있는 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께서 그 재림의 시기를 결정하신다 했습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태복음 24장36절)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사도행전 1:6〜8절).

요한복음 14장 3절에서는 다시 오실, 즉 재림에 대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사도행전 1장 11절에는 승천하실 때에 곁에 모시고 섰던 천사들은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예언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 때에 죄인은 심판을 받습니다.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디모데후서 4장1절).

그러나 구원을 얻은 신자들은 완전하고도 영원한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므로 그리스도의 재림은 성도들에게 귀중한 소망이 되며 간절히 사모하는 날이 됩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마태복음 25장31〜33절)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 25장46절)

 

1. 성경을 꿰뚫고 있는 재림신앙

재림에 대한 신앙은 성경을 꿰뚫고 있는 신앙입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부활이나 승천도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그보다는 실질적 의미에서 재림에 더 강조점을 두었습니다.

 

사도행전 1장에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천사들이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1:11)고 승천의 목격자들에게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전도에 있어서 <재림신앙>이 핵심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편지들 가운데서 강조점이 변하기는 했으나 “주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신다”는 <재림신앙>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그는 로마교회, 고린도교회, 빌립보교회, 에베소교회, 데살로나가교회 등에 보내는 글을 통해 계속해서 재림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쓴 편지들에는 재림에 대한 그의 신앙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교인들의 재림 신앙은 매우 긴박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나타나기 전에 죽는 사람은 어떻게 될 것인가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들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서 죽은 자들이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위해 다시 살아난다고 말해 주기도 했습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데살로니가전서 4장13〜17절).

바울은 고린도서 7장에서 이제 재림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며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쾌락에 매여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심지어 결혼도 하지말고 주님의 오실 날만을 전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좋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만일 갈라섰으면 그대로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고린도전서 7장8〜11절)

 

로마서도 재림에 대한 바울의 확고한 신앙을 보여 줍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로마서 13장11〜12절)

 

바울은 빌립보교인들에게도 재림에 대한 희망을 말합니다.

빌립보서 3장20절에서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라고 말합니다.

또한 에베소서, 골로새서 등 바울의 전 서신에서 재림에 대한 기대로 충만해 있습니다.

그 외 목회서신인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 등에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디모데전서 6장14절) 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에서도 재림신앙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브리서 9장28절)

베드로후서는 아예 재림에 대한 기대를 저버린 사람들에게 분명히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신다는 재림신앙을 일깨워주기 위한 목적으로 기록된 재림책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에는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고 재림을 의심하는 신앙인들에게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베드로후서 3장 8〜10절)고 합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한 복음서에도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말씀이 곳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가복음13장

“그 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24〜26절).

누가복음21장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27절).

오늘 읽은 마태복음24장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말씀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30~31절)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예수님의 재림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왜 이처럼 많은 곳에 재림에 이야기가 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재림은 분명히 일어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두 번째 이 세상에 다시 오십니다.

그리고 그 분이 오셔서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심판>입니다.

 

2.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이유는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심판을 위해서 다시 오십니다.

그 심판은 산 자와 죽은 자 모두를 위한 심판입니다.

최후심판은 구원역사의 최종 목적지입니다.

택하신 자는 구원하고, 죄된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다시 오십니다.

 

예수님께서 오시면 세상을 심판합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마태복음 25장31절)

예수님께서 오시면 마귀를 심판합니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히브리서 2장14절).

예수님께서 오시면 그동안의 우리의 행위가 심판의 대상입니다.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주리라”(요한계시록 2장23절)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로마서14장12절).

예수님께서 오시면 그동안의 우리의 언어도 심판의 대상입니다.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야고보서 5장9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태복음 12장36〜37절)

 

심판의 결과는 지옥 불에 들어갈 자와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자로 나뉘어집니다.

지옥 불에 들어가는 자들은, 무신론자(시14:1)와 일반죄인 (계21:8)위선자들 (마7:22)과 무자비한 자들 (마25:41-43)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시편 14장1절)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자들(계21:7)은 끝까지 신앙을 지킨 자들입니다.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요한계시록 21장7절)

 

사랑하는 여러분!

심판의 날은 양과 염소를 가르는 날입니다.

가짜와 진짜를 따로 따로 세우는 날입니다.

그 심판의 날은 어두움의 자식들에게는 최후의 날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빛의 자녀들에게는 새로운 시작의 날이 될 것입니다.

주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는 축복의 날이 될 것이고, 주님을 거부했던 자들에게는 저주의 날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공의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죄를 용서하시기도 하지만 반면 죄에 대한 형벌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도 합니다.

지금 우리 주변을 보면 죄인이 더 잘 사는 것같습니다.

남을 짓밟는 사람이 더 잘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필요합니다.

마지막 날에는 모든 것이 심판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3. 재림을 준비하는 성도의 자세

그러면 우리는 어떤 자세로 주의 재림을 준비해야 해야 하겠습니까?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의 자세에 대하여 누가복음12장36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의 성도들의 형편에 대하여 서너 가지로 경종해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17장에서 "롯의 처를 생각하라"고 하셨습니다(32절).

누가복음 18장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셨습니다(8절).

마태복음24장에는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27절)고 하셨습니다.

롯의 처는 하나님이 불로 심판을 내리는 중에도 세상에 미련을 두고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도망하는 중에도 세상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세상 생활에 분주한 그리스도인들은 이 롯의 처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속적인 생활에 물들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먼저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어야 합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해야 합니다.

사탄의 시험에 들면 우리는 성별된 생활을 못합니다.

우리의 생활이 성별되고 세속화되지 않기 위해 기도하는 생활이 필요합니다.

죄는 우리의 의의 옷을 벗겨 우리들로 벌거벗은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벌거벗은 수치를 드러내게 하는 죄를 멀리해야 하겠습니다.

 

다음에 <등불을 켜고 서 있어야>합니다.

등불은 주 재림의 소망을 바라보게 하는 예언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이 등불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주 재림을 예비할 수 없습니다.

도적이 와서 구멍을 뚫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마치 노아 시대의 사람들이 홍수가 나서 그 홍수로 심판을 받으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인 줄 알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환난의 때가 와도 인류의 종말 인줄 모르며 주 재림의 징조가 보여도 어두워서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 재림의 소망을 안겨 주며 그 재림을 준비케 하는 예언의 등불을 켜 들고 서서 주님의 오심을 기다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재림은 반드시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속히 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대는 참으로 주 재림의 소망을 가지고 신랑을 맞을 준비를 서둘러야 할 그런 시기입니다.

우리가 주의 재림을 사모한다면 종말에 임할 그 어떤 환난도 결코 두렵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생애 중에 오신다면 우리는 역사상 가장 복된 성도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시험의 때에 보호를 받으므로 결코 종말에 있을 환난이 우리를 해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오실 때 공중으로 끌려 올라가 공중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될 것이므로 땅속의 모든 것이 드러나 불로 심판을 받는 일곱째 대접 심판에서도 보호를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 새로운 세계를 이룬 지상에 내려와 주님과 함께 천년왕국에서 천년 동안의 에덴의 축복된 생애를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천년 후에는 죽음을 거치지 않고 홀연히 변화 받아 영화로운 몸으로 영원한 천국에 올라가 영원토록 우리 주님과 함께 살아갈 것입니다.

이 소망을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값진 보화처럼 깊이 간직하십시오.

주 재림에 대한 소망을 가지시고, 주의 오심을 간절히 사모하십시오.

성경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 22장20〜21절의 말씀입니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재림(再臨: The Second Coming)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Turning and turning in the widening grye(선회하며 넓어지는 소용돌이 위로 돌고돌며)
The falcon cannot hear the falconer;(매는 매부리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Things fall apart; the centre cannot hold;(사물은 흩어진다. 중심은 지탱되지 않는다.)
Mere anarchy is loosed upon the world,(순전한 무질서가 세상에 풀어지고)
The blood-dimmed tide is loosed, and everywhere(피빛 어두운 조수가 풀어지고, 세상 도처에서)
The ceremony of innocence is drowned;(순결의 의식(儀式)이 그 물 속에 함몰한다.)
The best lack all conviction, while the worst(가장 선한 자들은 모든 신념을 잃고, 반면)
Are full of passionate intensity.(가장 악한 자들은 격정에 차 있다.)


Surely some revelation is at hand;(확실히 어떤 계시가 목전에 있다.)
Surely the Second Coming is at hand.(확실히 재림이 목전에 있다.)
The Second coming! hardly are those words out(재림! 이 말이 나오기 바쁘게)
When a vast image out of Spiritus Mundi(세계의 영(靈)에서 나온 한 거대한 영상이)
Troubles my sight: somewhere in sands of the desert(나의 눈을 어지럽힌다. 사막의 모래 어디에선가)
A shape with lion body and the head of a man(사자의 몸과 사람의 머리를 가진 형상 하나가)
A gaze blank and pitiless as the sun,(태양처럼 텅 비고 무자비한 눈초리를 하고)
Is moving its slow thighs, while all about it(느린 허벅지로 움직인다. 주위론 온통)
Reel shadows of the indignant desert birds.(격노한 사막 새의 그림자들이 회전하고 있다.)
The darkness drops again; but now I know(어둠이 다시 내린다. 허나 이제 나는 안다,)
That twenty centuries of stony sleep(이천 년의 바위 같은 잠이)
Were vexed to nightmare by a rocking cradle,(흔들리는 요람 하나에 흔들려 악몽 속으로 들어감을.)
And what rough beast, its hour come round at last,(어떤 난폭한 짐승이, 자기 시간이 드디어 와,)
Slouches towards Bethlehem to be born?(태어나려고, 베들레헴을 향해 휘청휘청 걷고 있는가?)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 1865-19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