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과 칼럼

오, 우리 오마니!

가족사랑 2022. 5. 6. 20:59

 

 

 

 

아, 우리 어머니 !

2005년 1월 20일

어머님께서 우리 집에 오신 지 벌써 보름이 지났습니다.

어머님 오시면 발 마사지도 해드리고 족탕도 해 드려야겠다고

마음 속으로 여러 번 다짐했었지만 너무 부끄럽게 되었습니다.

정식으로 발 마사지 한번도 못해드렸고, 족탕은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어머님은

늘 저를 걱정하십니다.

"언제나 돼야 은행 빚은 다 갚게 되느냐?"

"아이들은 많이 있느냐?"

"보육료는 얼마나 받느냐?"

"선생들은 몇명이냐?"

그러면서 "내가 여기 어떻게 있느나?"고 하십니다.

성경을 보시는 틈틈이 생각이 나곤 하는 모양입니다.

 

어머님은

자꾸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얼마 전에는 변영주를 그렇게 찾으셨습니다.

'한번도 보지 못했다'고 하면서

'어서 빨리 오게 하라'고 성화가 대단하셨습니다.

엊그제 영주가 왔다 갔는데

이번에는 삼촌엄마가 또 보고 싶다고 하십니다.

일 주일에 3번씩 병원에 가서 오기가 쉽지 않다고 해도

막무가내입니다.

 

오늘 저녁에는 그 동안 맺혔던 얘기를 하셨습니다.

"아빠가 오면 장충동에 가야겠다"고.

※어머니는 큰 형님을 "아빠"라고 부르십니다.

제가 

"어머님, 형님은 이번 설에 윤혁이 보러 제주도에 갔다온대요."

하니까 좀 섭섭하다는 표정입니다. 

"아빠는  왜 이번 주일에는 한번도 안오느냐?"고 하십니다.

지난 주일에는 

"수요일에 왔는데 왜 아직도 안오느냐?"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내일은 형님이 오실거예요."라고 했습니다.

 

지금

어머님은

심장 근처가 많이 아프십니다.

영주 말대로 심장에 좀 이상이 생긴지도 모르겠습니다.

엎드려서 성경을 오랫동안 보셔서 그런건지?

아니면 다른 이상이 생겼는지?

오늘 밤에는 너무 아프시다면서

조금도 손을 못대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갈까요?" 했더니

이제 나이 90으로 죽을 건데 무슨 병원이냐고 하십니다.

너무 오래살았다고 하시면서

'아버지는 일흔일곱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오늘

어머님이 너무 고통을 호소하시기에

아픈 부위에 손을 얹고 안수기도를 해드렸습니다.

아멘, 아멘! 하시면서 응답하셨습니다.

 

어머님께서

자꾸 삼촌엄마는 보고 싶어하시고

"죽어도 장충동에 가서 죽겠다."고 하시는 걸 보니

늘 

죽음 앞에 서 계시는 걸 느끼게 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직 건강하신 것 같은데

이미

속 사람은 죽음을 품에 두고 계신 것 같습니다. 

 

저는

새벽마다 어머님을 위해 기도할 때

성경 보시다가

그냥 하나님의 부름을 받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고통을 느끼시지 않고 죽음을 맞이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어머님은

지난 주일에도

번창교회 주일예배와 오후 찬양예배에 참석하셨습니다.

저는 지난 주에 지하 예배당에 내려가시는게 너무 힘들어

이번에는 예배를 포기하실 줄 알았는데

토요일이 되자 목욕을 하시겠다고 하면서

주일 예배준비를 하셨습니다.

주일오전예배 마치고 모시고 오려고 하자

찬양예배도 드리겠다고 해서 찬양예배까지 드렸습니다.

오후 늦게

막내네 식구들이 왔습니다.

어머님은

막내를 보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말끝마다

"이번 주일에는 오겠지?"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막내가 와서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모릅니다.

그날

어머님은

막내네 식구들을 맞이하기 위해

주무시던 방에서 나와 큰 방으로 옮기셨습니다.

어머님에게 이것은 큰 모험입니다.

한번 움직이는 것이 아주 힘들기 때문입니다.

평소에는 아무리 권해도 계시던 밤에서 나오지 않는데

이번에는 손수 방에서 나오셨습니다.

어머님의 자녀 사랑 방식입니다.

그리고

어머님은

그날 밤 

아주 편한 잠을 주무셨습니다.

 

어머님은

하루 종일

성경을 손에서 놓지 않으십니다.

성경을 뚫어지게 보고 계십니다.

엎드려서,

앉아서,

때로는 다른 자세로

성경을 보고 계십니다.

 

그러다가

틈틈히

사진을 꺼내십니다.

보고 싶은 사람

만나고 싶은 사람을 골라서 보여줍니다.

 

아, 어머니!

지금 어디쯤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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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죽으면 와라"

2005년 1월 26일

수요일 미국 LA에 사는

윤석 아빠(장충룡)가 전화가 왔습니다.

어머님께서 여기에 계시다고 하니까

반가와했습니다.

이야기를 하다가 어머님께

전화를 넘겨 드렸습니다.

평소

어머님께서는

전화가 와도

듣기가 어려워 통화를 포기하시곤 하셨는데

이날은

수화기에 대고 안들린다고 하면서

안부를 물으셨습니다.

그러다가

윤석 아빠에게

어머님은

"나 죽으면 와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이 말씀이 묘하게 들렸습니다.

살아계실 때 어머님을 찾아뵙는게 자녀의 도리인데

어머님은 '나 죽으면 와라'고 하셨습니다.

아마 장례식을 염두에 두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어머님은

늘 죽음을 앞에 두고 계십니다.

말끝마다

"내가 아흔이야!"하십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못보던 사람의 이름이 떠올려지면

한번 보고 싶다고 하십니다.

그리고는

"장충동으로 가야하는데" 하십니다.

작은 누님(장의숙)도

이날 바로 이어 전화가 와서 어머님께

수화기를 드렸더니

그런대로 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다가

어머님은 

장충동에 가야하는데 어떻게 하느냐?"

눈에 눈물이 그득 고였습니다.

그러다가

어머님은 저에게 수화기를 주면서

작은 누님의  전화번호를  알아두라고 하시면서

"수첩을 꺼내 적으라!"고 하셨습니다.

수첩에는 이미 작은 누님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래도

어머님은

"다시 크게 적으라!"고 하셨습니다.

장충동에 가셔서 작은 누님에게 전화를 하시겠다는 거였습니다.

  

오늘, 목요일 오후 5시에

모처럼

형님께서 오셨습니다.

일주일 내내 기다리시던 형님입니다.

어머님은

형님에게

"장충동으로 가자!"고 하셨습니다.

형님은

아직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윤혁이 한테 갔다와서 모시겠다고 하였습니다.

순간

어머님은 실망의 빛이 역력하셨습니다.

  

효도가 무엇일까?

  

어머니는 저에게

어머님은 텅빈 지갑을 보이셨습니다.

간직하고 있던 새돈을 10장 꺼내서 어머님께 드렸습니다.

어머님은 얼른 그 돈을 지갑에 넣으셨습니다.

저는 또 이번 설날에 쓰시라고 1000원짜리 새돈도 많이 드렸습니다.

어머님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스쳐갑니다.

오늘 저녁

7시 30분 넘어

장영숙 전도사(장승길 막내 딸)가 왔습니다.

어머님은 영숙이의 얼굴을 알면서도 그가 누구인지를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한참만에도 누구인지 깨닫습니다.

기억력이 분명 예전만 못합니다.

자꾸 자꾸 치매 증상이 짙어져 감을 느낍니다.

  

어머님은  

장충동으로 돌아가시고 싶어 합니다.

그곳은 어머님의 영혼의 고향입니다.

하늘나라로 돌아갈 통로입니다.

그곳에 가있어야

신광 동산에 뭍힐 수있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어머님은

죽음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어제 윤석아빠와 통화할 때

어머님께서 말씀하시던

"나 죽으면 와라!"는 소리가

가슴을 후빕니다.

  

어머니!

지금 어디쯤 계셔요.

 

2005년 1월27일 밤 11시30분

산돌 장득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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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또 오실거죠?"

사랑하는 우리 어머니!

  어머님!

어머님과 함께 있은지

벌써

한 달이 되었네요.

  

지난 1월4일 화요일

장충동 형님댁에 계시던 어머님을

우리 가족 셋(장득룡, 조남경, 장윤국)이 

모시고 왔었지요.

윤민이가 미국에 가 있지 않았더라면

윤민이도 함께 어머님을 모시러 갔었을텐데.

  

처음

어머님은

저희 집이 낯설어

자꾸 형님 댁으로 가시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장충동에 가지 못하게 된 것을 아신 어머님은

한편으로는 체념하시면서도 못내

윤국 이모를 붙잡고 서러움을 쏟으셨습니다.

  

어머님!

그렇게

벌써 한달이 지났습니다.

  

어머님!

참 용케 한 달을 참으셨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어머님!

매일 어머님과 함께

식사를 하지 못해서 너무 죄송합니다.

어머님은

함께 밥을 먹자며 상 한쪽을 비워놓으셨건만

번번히

함께 식사 자리를 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함께 식사를 했던 순간은 열 번도 못될 것같습니다.

너무 죄송합니다.

  

어머님!

그래도

저희에게는

이번 한 달이 너무도 즐겁고 보람있는 나날이었습니다.

이번에

저희는

어머님을 위해

작으나마 정성을 쏟을 수 있었습니다.

어머님을 위해서

아버님을 비롯한 친척들의 사진첩을 만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번에 

어머님께서

늘 아껴 부르시던

<언문풀이전도가>를

사진과 함께

화일에 끼워 놓았습니다.

아마

어머님께서

저희 집에 오시지 않았더라면

이런 작업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머님!

어머님께서

저희 집에 계시는 동안

저희들은

어머님의 모습을 훔쳐 볼 수 있었습니다.

어머님은

매일 성경을 손에서 놓지 않으셨습니다.

신광교회 주보에 나오는

성경문제를 매 주일마다  

신속하게 풀어내시는 그 총명함은

어느 젊은 사람도 따라오지 못할 것입니다.

어머님은

주일마다

번창교회 예배에 참석하셨습니다.

빼마디가 쑤시는 아픔을 뒤로 하며

때로는 윤국이 등에 업혀서

때로는 제 등에 업혀서

3층에서

그 지하 예배당으로 가서 예배를 드리셨습니다.

그것도

오후예배까지.

 

 

언제가 오후예배 때는

<언문풀이전도가>를 부르셨습니다.

이 모습은 제가 영상으로 담아 놓았습니다.

 

어머님께서

하늘나라에 가시더라도

저희들은 영상을 통해서 어머님을 늘 만나 뵐 것입니다.

  

그리고  

어머님은

자기 전에

아침에 깨어서 늘 기도하셨습니다.

  

어머님은

너무 오래 살아 다 잊어 먹었다고 하시면서도

무려 칠 십년도 더 된 가족들의 이름을 외우셨습니다.

일일이

저희 가정과 교회, 그리고 어린이집의 일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참견하시는 그 예리함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윤국이가

저녁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하면서

손주의 저녁밥을 챙기시는

자상한 어머님의 모습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미국에 있는 충룡이가 전화 왔을 때

어머님은 '나 죽으면 와라'하면서

이미 죽음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음을 밝히셨습니다.

삼촌 엄마를 비롯해 친척들의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어머님을 통해서 친척의 정을 보았습니다.

   

어머님!

한 달이

이렇게 너무 짧게 지나갔습니다.

어머님께는

너무도 길고 길었던 한달이었겠지만

저희에게는 한 순간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어머님!

이제

어머님은

설날 아침에는 저희와 함께

막내(장흥룡)네 집으로 가십니다.  

막내 집에 가셔서 설날을 즐겁게 보내세요.

자녀들과 손주들의 정성의 세배를 받으세요.

이번에는

어머님께서 

세뱃돈을 후하게 줄 정도로 넉넉하게 챙겨 놓으셨잖아요?

아마 손주들이 기뻐할겁니다.

어머님!

이렇게 자녀들의 효도를 통해서

금년 일년도

강건한 한 해가 되세요.

  

그리고

어머님!

다시 장충동에 가셨다가

또 다시

기회가 되면

저희 집에 다시 오셔야해요.

어머님!

다음에도 다시 오실거지요?

다음 번에

저희 집에 오시면

이번보다

더 성숙한 모습으로   

어머님을 모시겠습니다.

  

어머님!

건강하세요.

하늘나라의 소망으로 사세요.

어머님!

아직도

어머님은 하실 일이 남아 있습니다.

장손 윤혁이가

아직도 짝을 정하지 못했습니다.

둘째(장을룡) 목사의 막내 지은이도

아직 짝을 짓지 못했습니다.  

윤성이도,

윤국이, 윤민이, 윤호, 윤진, 윤민이도

이제 짝을 지을 나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어머님!

어머님의 기도가 우리 가정에 필요합니다.

저희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저희도

어머님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변여화 어머님!

사랑합니다.

아자!

아자!

우리 변여화 어머님!

 

2005년 2월 7일

 

- 산돌의집 - 

 

"아자, 아자, 우리 어머니!"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 마태복음 15장 21~28절 -

 

우리 사회는 전통적인 윤리관이 급속하게 파괴되고 있습니다.

어른은 말할 것도 없고, 청소년들의 성윤리가 파괴되었습니다.

전통적인 윤리 중에서도 가족 윤리가 심하게 무너져 가족이 붕괴되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귀신들린 딸을 가진 어머니의 이야기는 가정 윤리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게 합니다.

이 어머니는 하나님께 택함받지 못한 이방 여인이었습니다.

이 여인의 딸은 귀신들렸습니다.

귀신들려 미친 딸 아이! 어찌 딸만 미쳤겠습니까?

미친 딸을 바라보는 어머니도 같이 미쳤습니다.

딸자식은 귀신이 들려 미쳤고, 어머니는 그 딸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찢어지도록 괴로워서 미쳤습니다.

 

이 여인은 자신이 속한 수로보니게 족속과는 원수지간으로 지내는 이스라엘 민족의 선지자 예수님을 찾아갑니다.

이웃 친척들이 분명히 그녀를 향해 ‘왜 하필이면 원수에게 가느냐’고 손가락질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들의 손가락질에 개의치 않았습니다.

딸의 병만 고칠 수 있다면 그녀는 어떤 비난도 감수하리라 마음 먹었습니다.

 

자식을 위한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은 하나님의 아가페적인 사랑에 비교되곤 합니다.

이 여인이 그런 사랑을 가졌습니다.

이 여인뿐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다 ‘비단결 같으시던 고운 손이 떡갈나무 등걸처럼 되도록’ 자녀를 위해 헌신하십니다.

손발이 다 닿도록 고생하신 부모의 사랑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있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께 도와 달라고 울부짖습니다.

그러나 여인의 울부짖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반응은 너무나 냉냉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여인의 가슴에 못질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여인은 물러서지 않습니다.

아마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에수님께 나왔더라면 돌아섰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자신의 문제로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딸의 문제를 가지고 온 것입니다.

어머니이기에,

사랑하는 자식을 위한 일이기에 그녀는 결코 물러설 수가 없습니다.

“주여 제 딸을 고쳐주시옵소서.”

이 여인은 예수님께 ‘개같은 여인이 되어도 좋으니 제발 딸의 병을 고쳐 주십시오.’ 라고 애원합니다.

여인은 철처하게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로지 딸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입니다.

사랑하는 딸이 병만 낳는다면 개로 취급받은들 어떠랴? 고 한 것입니다.

여인의 겸손과 자존심을 포기하는 이 숭고한 행위가 딸의 병을 고쳤습니다.

 

눈물의 자녀는 망하지 않습니다.

눈물로 사랑을 보여 주십시오.

가정이 회복되면 사회는 저절로 회복됩니다. 평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