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아이가 있습니다!"
"Here is a boy!"
성도 수가 적어서 교회 건축이 버거웠던 한 목사가
교회학교 어린이들까지 동원해 40일 새벽기도회를 열었습니다.
새벽마다 모여 열심히 기도하는 데 인근 초등힉교 교장선생님이
새벽기도회를 중지해줄 것을 정중히 요청해왔습니다.
기도회에 참석한 어린이들이 수업시간에 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회는 계속됐습니다.
어느 날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새벽기도 시간에 졸다가 일어나보니 아침 7시였습니다.
집으로 급히 뛰어가던 소년은
길에 쓰러져 있던 할머니를 발견하고 병원에 데려가 목숨을 구했습니다.
후일 그 할머니와 아들이 학교에 찾아와 보답을 약속했습니다.
어린이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컴퓨터와 자전거도 있고 장난감도 있어요.
제게 선물하려거든 우리 교회 성전을 건축하게 도와주세요.”
할머니와 아들은 상당히 많은 액수를 개척교회에 헌금, 성전이 완공됐습니다.
사람이 일할 때는 사람이 일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기도할 때는 하나님이 일합니다.
(man works, man works. man prays, God works).
요한복음 6장에는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쯤 되는 사람이 배부르게 먹고도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찾다는 기적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 요한복음 6장 5∼13절 -
예수님께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뭐라고 하셨습니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5절).
예수님의 말씀은 떡을 파는 곳만 있으면 얼마든지 사서 먹일 수 있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빌립을 시험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빌립은 예수의 말씀을 듣고 어떻게 했습니까?
'조금씩 준다고 해도 200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당시 화폐 단위로 1데나리온이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그러므로 200데나리온은 한 사람이 최소한 7-8개월 동안 일을 해야 모을 수 있는 아주 큰 금액입니다.
물론 아주 정확한 계산입니다.
하지만 빌립의 계산은 계산에만 머물렀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기적에 대해서 방해꾼이고 걸림돌일 뿐이었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무리기 두 마리 이야기>에는 빌립만 나오지 않습니다.
안드레와 한 아이도 나옵니다.
안드레는 한 아이와 대화하여 이 아이의 점심 도시락을 예수님께 가지고 왔습니다.
안드레는 가능성을 찾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가능성의 사람, 믿음의 사람, 동시에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안드레가 기도했다는 표현은 단 한 마디도 없지만 그는 분명히 기도의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작은 점심 도시락 하나를 품에 꼭 쥐고 시시각각 변하는 소년의 마음을 꽉 붙들고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기도하는 일임에 분명합니다.
소년의 손을 붙들고 대중들 틈에서 예수님 앞으로 걸어가면서 안드레는 아무도 모르게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했을 것입니다.
모두가 넋을 놓고 있는 사이에 안드레는 사람들 속에서 가능성을 찾아 나섰습니다.
안드레는 자기 도시락을 가지고 온 아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나왔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얼마나 미련하고 철부지 같은 모습입니까?
안드레 자기도 어린아이의 도시락이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드레는 빌립처럼 앉아서 계산기만 두들기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발빠르게 이곳저곳 뛰어다니는 사람이었습니다.
안드레는 예수님의 말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사람을 열심히 찾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한 아이가 내미는 도시락을 구하게 된 것입니다.
안드레는 그 아이에게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무리기 두 마리를 받아냈습니다.
이 아이를 보십시오!
이 아이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아이 한 사람의 도시락에 불과한 양입니다.
오천 명이나 먹어야 되는 현실에 비추어보면 너무나 하찮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의 눈에는 하찮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니까?”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예수님은 빌립처럼 인간적인 계산부터 앞세우지 않으셨습니다.
어린아이의 작은 도시락이라고 하찮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안드레에게 왜 철부지같이 행동하느냐고 책망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계산이 정확한 빌립보다 자기 도시락을 예수님께 드린 어린아이의 헌신을 더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또 그 아이를 예수님께 데려온 안드레의 믿음을 더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러기에 안드레가 오병이어를 가지고 왔을 때 예수님은 사람들을 잔디에 앉게 했습니다.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그리고 가져온 오병이어를 가지고 축사를 하셨습니다.
수많은 사람, 오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배불리 먹고도 남는 놀라운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에는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Here is a boy!"
"여기 한 아이가 있습니다!"
아이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걸 모두를 위해서 내 놓았습니다.
오천 명이나 먹어야 되는 현실에 비추어보면 너무나 하찮은 것이었습니다.
아이는 빌립처럼 계산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아니 계산을 할 줄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믿음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통해서 무언가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상상했습니다.
결국은
아이가 예수께 드린 이 작고 하찮은 도시락이 놀라운 기적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푸신 기적은 다른 데서 오지 않았습니다.
한 아이가 자신의 것을 예수님 앞에 들고 나온 것으로부터 출발했습니다.
분명히 이 아이는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소중한 헌신을 했습니다.
분명히 오병이어의 기적에는 한 아이의 헌신이 있었습니다.
바로 여기서 기적은 시작되었습니다.
나도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나도 성공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나도 안드레처럼, 이 아이처럼 주님의 나라에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작은 것이 작은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손에 올려질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하찮은 것이 하찮은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나라를 위해 쓰여질 때 다이나마이트 같은 폭발력이 일어납니다.
이제 내가 그 기적의 주인공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습니다. 평안!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 마가복음 9장 23∼24절 -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 빌립보서 4장 11∼13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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