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 강해(11)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
“무리가 다 일어나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고발하여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니 빌라도가 예수께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무리에게 이르되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 하니
무리가 더욱 강하게 말하되 그가 온 유대에서 가르치고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여기까지 와서 백성을 소동하게 하나이다 빌라도가 듣고 그가 갈릴리 사람이냐 물어 헤롯의 관할에 속한 줄을 알고 헤롯에게 보내니 그 때에 헤롯이 예루살렘에 있더라 헤롯이 예수를 보고 매우 기뻐하니 이는 그의 소문을 들었으므로 보고자 한 지 오래였고 또한 무엇이나 이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연고러라 여러 말로 물으나 아무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서서 힘써 고발하더라 헤롯이 그 군인들과 함께 예수를 업신여기며 희롱하고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도로 보내니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관리들과 백성을 불러 모으고 이르되 너희가 이 사람이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내게 끌고 왔도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심문하였으되 너희가 고발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 헤롯이 또한 그렇게 하여 그를 우리에게 도로 보내었도다 보라 그가 행한 일에는 죽일 일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때려서 놓겠노라 (없음) 무리가 일제히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 하니 이 바라바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러라 빌라도는 예수를 놓고자 하여 다시 그들에게 말하되 그들은 소리 질러 이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하니 그들이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 이에 빌라도가 그들이 구하는 대로 하기를 언도하고 그들이 요구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를 놓아 주고 예수는 넘겨 주어 그들의 뜻대로 하게 하니라” - 마가복음 15장 15∼47절 -
사도신경은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의 탄생, 빌라도에게 고난 받으신 예수님을 고백하고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33년 생애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3년여 동안 공생애 활동을 하시면서 하늘나라 복음을 전하시고 숱한 기적과 이적을 행하셨는데 그 내용은 쏙 빠져 있습니다.
아마 사도들의 생각에 예수님의 지상 생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십자가 사건이기 때문에 사도신경에서는 예수님의 생애에 관한 내용은 과감하게 생략해 버린 것 같습니다.
복음서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마지막 고난주간의 기록이 1/3 가량 됩니다.
요한복음의 경우는 거의 절반에 달합니다.
33년 생애와 비교해 봐도 그렇거니와, 공생애 3년과 비교해 봐도 십자가 사건의 비중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1. 십자가 사형
십자가에 사람을 달아 죽이는 방법은 고대 중동지방과 로마 제국에서 많이 사용되던 방법이었습니다.
기원전 2세기에 유대나라를 지배하고 있던 로마 황제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는 유대교를 버리지 않는 유대인을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했습니다.
예수님 생전에도 갈릴리에서 일어났던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서 2천명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유대 역사가 요세프스는 로마 정부가 유대인들을 십자가 처형을 했기 때문에 “십자가를 세울만한 곳이 없었으며 몸을 매달 십자가도 남지 않았을 정도”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로 죄인들을 처형하는 관습은 애굽, 페키니아, 칼다코, 앗수리아, 인도, 로마와 헬라에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십자가를 가장 무섭고도 또 가장 부끄러운 죽음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십자가를 불행한 나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3장에서 신명기 21장을 인용하여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2장2절에는 십자가는 부끄러운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
사형당하는 것이 다 부끄러운 것이지만 그중에서도 십자가에 매어 달려 모든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서 치욕을 당하면서 죽는다는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수치를 당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십자가의 형틀이란 이러한 부끄러움과 수치스러운 일인 동시에 저주받는 사람들이 져야할 형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부끄럽고 수치스런 십자가형을 받으신 것입니다.
2.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15절을 보십시오.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빌라도는 사람들의 만족을 위해 예수님께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그리고 군병들에게 먼저 채찍질을 하라고 일렀습니다.
당시 로마의 채찍은 끝에 날카로운 뼛조각이나 쇳조각이 붙어 있었습니다.
군병들은 예수님을 사슬로 묶고 이 채찍을 휘두르기 시작했습니다.
한번 휘둘릴 때마다 살이 한 점씩 뜯어져 채찍 끝에 늘어붙었습니다.
살점이 뜯어져 핏줄들까지 뜯어졌습니다.
사방으로 피가 튀었습니다.
이 채찍은 무려 120대나 휘둘려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졌습니다.
군병들은 예수님을 끌고 온 군대들 가운데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예수님의 옷을 발가벗기고 자색 옷을 입혔습니다.
예수님의 머리에는 가시면류관을 꾹 눌러 씌웠습니다.
굵은 가시는 살을 파고들어 핏줄기를 그어냈습니다.
그들은 그런 예수님을 보며 아무렇지 않게 조롱했습니다.
갈대로 머리를 치며, 또 침을 뱉었습니다.
피로 얼룩져진 예수님 그 많은 군병들 가운데서 잠잠히 그렇게 맞으며, 희롱 당하며 서 계셨습니다.
21~24절까지는 십자가에 못 박히기까지의 예수님의 모습이 나옵니다.
마침내 군병들은 지쳐 쓰러진 예수님을 끌고 십자가를 지웠습니다.
그들은 체포된 전날 밤새 심문받고 채찍으로 만신창이가 된 예수님의 어깨에 72Kg이나 되는 십자가를 얹었습니다.
아무런 기력조차 없는 예수님은 그 십자가를 지고 한 걸음씩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다가 그 무게에 눌려 쓰러지셨습니다.
팔꿈치와 무릎은 깨져서 피가 흘렀습니다.
그럴 때마다 군병들은 쓰러진 예수님을 군화발로 찍으며, 욕을 해대며 다시 일으켰습니다.
온 몸에 피가 말라붙은 채로 예수님은 계속 쓰러지셨습니다.
마침 시골에 갔다가 올라가는 중인 구레네 시몬이라는 사람이 구경하는 무리들 틈에 끼어 있었는데 군병들은 그를 끌어내어 그 십자가를 대신 지게 했습니다.
드디어 예수님은 골고다라고 하는 언덕 끝에 올랐습니다.
25절을 보십시오.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군병들은 녹슨 대못과 그 못을 박을 큰 망치를 가져왔습니다.
그들은 붉은 피가 진득하게 붙어 있는 뼈가 앙상한 예수님의 손을 양쪽에서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그 손목에 못을 대고 망치를 높이 쳐들었습니다.
쾅! 쾅! 쾅! 소리와 함께 굵은 못이 예수님의 손목을 뚫었습니다.
순간 새빨간 피가 뿜어져 나와 사방으로 튀어 생살에 못질을 해대고 있는 군병들의 얼굴을 덮쳤습니다.
살을 찢어 뚫고 들어간 못은 혈관을 짓이기고 뼈를 으스러뜨렸습니다.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습니다.
고통에 예수님의 목을 뒤틀렸고 얼굴은 피범벅이 된 채 일그러졌으며 온몸은 발작을 일으켰습니다.
예수님의 손목을 그렇게 못 박은 군병들은 이번엔 좀 더 큰못을 가지고 예수님의 발목도 포개어 그렇게 못 박았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는 높이 세웠습니다.
예수님의 몸은 그저 손목과 발목에 박힌 못에 의해서만 매달려졌습니다.
살은 점점 찢어져 늘어졌고 뼈마디는 점점 바스라졌습니다.
붉은 피는 십자가의 나무 판 아래로 길게 흘러 내려 땅을 붉게 적셨습니다.
예수님은 오전 9부터 오후 3시에 이르기까지 무려 6시간 동안이나 산채로 그렇게 매달리셨습니다.
그때 군병들은 피가 흐르는 십자가 밑에서 예수님의 속옷을 놓고 누가 가질까 제비뽑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벌거벗겨지신 채로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높이 달리셨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고통으로 뒤틀리는 예수님을 보고 말하였습니다.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29∼30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도 함께 희롱하며 십자가에 매달려 처참하게 죽어가는 예수님을 비아냥거렸습니다.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31∼32절)
병 고쳐 주고 이적을 행할 때에는 콩고물이라도 주워먹을 듯 졸졸 따라다니던 사람들도 예수님을 멸시하며 함께 욕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갑자기 사방이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이 못 박히고 정오 12시부터 온 땅이 어두워지더니 오후 3시까지 계속되었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마침내 오후 3시, 예수님은 이렇게 크게 소리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 가족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도 완전히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완전히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습니다.
군병들은 그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서 모든 물과 피를 다 쏟게 함으로 그 죽음을 확인했습니다.
38절을 보십시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습니다.
두껍고 화려하게 수놓아져 있는 이 성소 휘장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스러운 곳인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을 가로막는 휘장입니다.
이는 하나님과 인간이 제사장없이 일대일로 만날 수 없게 하는 장벽입니다.
이 휘장이 예수님이 죽으신 동시에 둘로 찢어졌습니다.
이것은 그 장벽이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인간은 누구라도, 어느 때라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로서 이것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광경을 모두 지켜본 사형 집행관인 백부장은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38절)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진정한 메시야였음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42절~47절까지는 예수님의 시신을 무덤에 안치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 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 지가 오래냐?" 묻고
백부장에게 알아 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주는지라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
유대 규정에 안식일(토요일)에는 시체를 옮길 수 없었기에 그날(금요일) 저녁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했습니다.
빌라도는 백부장에게 예수님의 죽은 시체를 내어주게 했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그 시체를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새 무덤에 안치함으로 장사를 마쳤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완전히 죽으셔서 장사까지 마치셨습니다.
이것이 2020여년 전 행해졌던 일입니다.
3.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는 사도들의 이 고백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는 고백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옛 언약이 끝나고 새 언약이 시작되었음을 가르쳐 줍니다.
옛 언약은 속죄의 방편으로 짐승을 희생의 제물로 잡아 그 피로 인간의 죄를 대속하게 하였습니다.
이 법칙은 아담과 하와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에덴에서 쫓겨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양을 잡아 그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인간의 수치를 가리는데 짐승이 희생되었습니다.
또 출애굽기 12장에 보면 430년간의 애굽의 학대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때, 이스라엘백성들은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발랐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이 피바른 집을 그냥 넘어감으로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서 짐승의 희생 제사는 법으로 규정되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면서 희생 제물을 잡아 자신들의 죄를 대속하는 제사를 계속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은 "장래의 좋은 일(히브리서 9장11절)"의 예표에 불과 했을 뿐, 완전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짐승이 인간을 대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듯 제물과 제사장의 불완전성 때문에 짐승의 희생 제사는 매년 되풀이되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옛 언약입니다.
옛 언약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인간임을 발견하고 구원의 열망을 갖게 해 줍니다.
구원에 이르도록 우리를 자극하고 인도합니다. 하지만 율법의 행위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바울은 율법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라고 규정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완전한 옛 언약을 대신할 새 언약을 세우셨는데, 바로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마가복음10장45절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태복음26장28절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히브리서 9장11∼12절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은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짐승의 피와 전혀 다른 완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흠이 없고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자신을 희생 제물로 단번에 드림으로써 완전한 제사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새 언약은 범죄한 인간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법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죄를 짓고 그 대가로 불행과 저주와 실패와 낙심에 빠져 있는 인간들을 위해 친히 희생 제물이 되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믿는 믿음으로 이제 영원한 생명과 승리와 기쁨과 축복으로 바꾼 언약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불완전한 옛 언약을 대신하기 위해 전하신 하나님의 새 언약의 피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생명의 피입니다.
피는 생명입니다.
피가 흐르지 않으면 사람은 장애를 입거나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죽으셨습니다.
끝난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흘린 그 피가 세상에서 죽어 가는 모든 인생들을 살렸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인간의 계산으로는 그 가치를 알 수 없습니다.
우리를 위해 조건 없이 드리신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의 죽으심으로 우리는 죽음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죽음의 그 자리까지, 피 흘림의 그 자리까지 내려가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사야53장5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히브리서 9장 22절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느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죽음으로 우리의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바로 죄로 죽은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피입니다.
인도에서 사역하는 어느 선교사님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재정이 넉넉지 못해서 9살짜리 아들을 현지 학교에 보냈습니다.
인도 아이들이 자기들과 외모, 머리카락, 언어 등이 다르다고 놀렸습니다.
그것까지는 그래도 괜찮은데, 몇 명이 선교사 아들을 묶어 놓고 눈에다 못을 박았습니다.
피투성이가 되었고, 부모가 만났을 때는 이미 실명된 후였습니다.
선교사 부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항의를 했습니다.
“아니,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아무리 아이들이라도 그렇지!
하나님은 이런 일비 벌어질 때 무얼 하고 계셨습니까?
도저히 이런 사람들을 위해 선교하지 못하겠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렵니다.”
선교사 부부는 짐을 쌉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부모를 가로막았습니다.
눈이 퉁퉁 부어올라 안대를 한 아들이 호소합니다.
“아빠! 우리가 가면 이 나라 사람들에게 누가 예수님의 사랑을 전해요? 안 돼요!”
그 아들의 눈물어린 호소를 외면할 수 없었던 선교사 부부는 다시 짐을 풀고 다시 선교 사역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희생을 통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구원받은 겁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선교사들이 처음 들어왔을 때 서양 귀신 양귀자라 놀리며 핍박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사랑으로 복음을 전했고, 그로 인해 우리가 구원받은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께서 죽음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수치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굴욕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는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질 때, 우리도 남을 살릴 수 있습니다. 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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