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 강해(9)
성령으로 잉태되신 예수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 마태복음 1장 18∼25절 -
우리나라 역사를 살펴보면 나라가 세워질 때마다 그 나라를 세운 사람의 출생에 관한 신화가 하나씩 있습니다.
고조선을 세운 단군은 곰이 여자가 되고 신이 내려와서 그녀의 남편이 되어서 낳은 아들이라고 합니다.
고구려의 주몽이나 신라의 박혁거세나 가야국의 김수로는 다 같이 신비하게 알에서 태어난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런 내용들은 왕을 신격화 하고 나라의 위대성을 알리고 백성들에게 자부심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 누군가가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이야기들 때문에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탄생기사도 누군가가 만들어 낸 설화나 전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실 때도 보통 사람들처럼 태어나신 것이 아닙니다.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시기는 하셨지만 잉태되실 때 성령으로 잉태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기사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허무맹랑한 전설이나 설화가 아니라 사실 그대로를 기록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특별하게 태어나시게 한 것도 단순히 위대성을 알리기 위함이 아니라 꼭 그렇게 필요한 것이기에 그런 과정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사도신경은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서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성령으로 잉태되셨고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예언하신 대로 잉태 되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육신의 부모님이 되시는 요셉과 마리아가 정혼을 한 상태이고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는데 마리아가 임신을 했습니다.
당시의 정혼은 보통 결혼하기 1년 전에 했는데 우리의 약혼과 비슷한 것이지만 그 의미는 더 강했습니다.
함께 살거나 동침은 하지 않지만 법적으로 부부로 인정을 했고 만약 정혼을 한 여자가 정혼하고 다른 남자와 간음을 했다면 처형을 당했다고 합니다.
마리아의 임신을 알게 된 요셉은 기분이 무척 나빴을 것입니다.
당장 고소를 해서 위자료를 받아내든지 사람들에게 알려서 처벌을 받게 할 것인데 요셉은 착한 사람이라 이 일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파혼을 하고 끝내려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주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나서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그러면서 천사는 덧붙여서 이것은 예언이 성취된 것이라고 하면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한 말씀을 가르쳐 줍니다.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꿈을 통해서 이 사실을 알게된 요셉은 마리아를 데려왔습니다. 그러나 동침은 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마리아라는 처녀의 몸에서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출처는 하나님이시다
“성령으로 잉태하사”라는 말은 나사렛 예수의 출생과 근원에 대해서 분명한 선을 그어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출처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7장에 보면, 예수님과 동시대 사람들이 예수님의 인간적 기원을 들어 예수님께서 메시야가 되신다는 사실에 반대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하는지라”(27절)
이들은 ‘예수의 아버지가 누구이다’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출생과 그 근원은 인간적 기원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예수님의 출처와 근원에 대해 인간적 기원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동시대의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인간적 기원으로서가 아니라 신적 기원으로서 소개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원은 인간이 아닙니다.
인간이었다면 인간이 태어나는 그 여러 가지 필수과정을 통해서 태어났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고,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성령으로 잉태해야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지 못하고 예수님을 위대한 성자요, 스승이요, 인류 역사상 최고의 인간으로 설명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코 그런 인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마태복음 1장1절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인간적 기원에 대한 설명입니다.
누가는 여기에서 조금 더 소급해서 아브라함과 다윗을 넘어서서 아담까지 언급합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
그 위는 맛닷이요 그 위는 레위요 그 위는 멜기요 그 위는 얀나요 그 위는 요셉이요
그 위는 맛다디아요 그 위는 아모스요 그 위는 나훔이요 그 위는 에슬리요 그 위는 낙개요
그 위는 마앗이요 그 위는 맛다디아요 그 위는 서머인이요 그 위는 요섹이요 그 위는 요다요
그 위는 요아난이요 그 위는 레사요 그 위는 스룹바벨이요 그 위는 스알디엘이요 그 위는 네리요
그 위는 멜기요 그 위는 앗디요 그 위는 고삼이요 그 위는 엘마담이요 그 위는 에르요
그 위는 예수요 그 위는 엘리에서요 그 위는 요림이요 그 위는 맛닷이요 그 위는 레위요
그 위는 시므온이요 그 위는 유다요 그 위는 요셉이요 그 위는 요남이요 그 위는 엘리아김이요
그 위는 멜레아요 그 위는 멘나요 그 위는 맛다다요 그 위는 나단이요 그 위는 다윗이요
그 위는 이새요 그 위는 오벳이요 그 위는 보아스요 그 위는 살몬이요 그 위는 나손이요
그 위는 아미나답이요 그 위는 아니요 그 위는 헤스론이요 그 위는 베레스요 그 위는 유다요
그 위는 야곱이요 그 위는 이삭이요 그 위는 아브라함이요 그 위는 데라요 그 위는 나홀이요
그 위는 스룩이요 그 위는 르우요 그 위는 벨렉이요 그 위는 헤버요 그 위는 살라요
그 위는 가이난이요 그 위는 아박삿이요 그 위는 셈이요 그 위는 노아요 그 위는 레멕이요
그 위는 므두셀라요 그 위는 에녹이요 그 위는 야렛이요 그 위는 마할랄렐이요 그 위는 가이난이요
그 위는 에노스요 그 위는 셋이요 그 위는 아담이요 그 위는 하나님이시니라 "
- 누가복음 3장23〜38절 -
사도 바울도 로마서 1장에서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3〜4절)고 인간적 기원과 신적 기원 두 가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인간의 기원 속에서는 육신의 몸을 입고 태어나신 분이지만 그분의 탄생은 또한 영적이고 신적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예수님의 출생 사건은 인간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온 것이라고 확실하게 고백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기사도 인간들이 만들어 낸 탄생신화처럼 엉뚱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탄생기사를 그렇게 쓰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동정녀의 몸, 즉 사람의 몸에서 태어나신 것은 우리를 구원하실 메시야가 참 인간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대표인 아담이 실수하여 이런 죄악 된 세상이 되었기 때문에 실수하지 않고 완전히 순종할 또 다른 인간 대표가 있어야 되기 때문에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듯이 성령님께서 그 능력으로 잉태시키셨습니다.
2. 성령으로 잉태하사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것은 하나님 자신에 의해 낳아져 완전한 하나님이시라는 의미이며,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다는 것은 인간에 의해 나셔서 완전한 인간이라는 의미입니다.
오늘 성경은 예수님의 탄생의 배경과 과정에 대해서 18절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 마태복음 1장18절 -
성경은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되어”라는 말을 붙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남자를 모르는 여자가 아이를 낳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에 대하여서는 역사적으로도 받아들였습니다.
2세기경의 안디옥 교회의 감독이었던 익나티우스의 글에도 "참으로 처녀의 몸에서 오신 예수"라고 하였고, 170년경의 저스틴 마터(Justin Martyer)도 "처녀의 몸에서 빌어서 오신 예수"라고 하였습니다.
그 후 사도신경에도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라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니케아 신경에서는 "성령에 의하여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몸을 입으시고 사람이 되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도신경에서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신 것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은 예수님이 성령에 의해 처녀 마리아에게서 잉태되시고 태어나셔서 사람이 되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사실 성경에는 초자연적으로 아이를 낳은 이야기가 예수님 때 처음 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삭”을 낳은 사라도 나이 많아 아이를 낳을 수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임신케 하시고 아이를 낳았다고 했습니다.
이삭이 태어나기 전 아브라함과 사라는 임신 불가능의 상황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셨을 때 그들은 믿지 못하고 웃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창세기 18장14절)
그리고는 이름을 '이삭'이라고 지어주셨습니다.
또 세례요한의 탄생도 그 부모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늙고 나이 많은 가운데 초자연적으로 임신하고 출산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천사가 제사 드리는 사가랴에게 나타나서 네 아내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말을 합니다.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리니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 누가복음 1장13〜17절 -
그때 사가랴는 이런 질문을 합니다.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누가복음1장18절)고 의문을 제기합니다.
믿음 없는 사가랴에게 하나님은 세례 요한이 태어날 때까지 벙어리가 되는 벌을 내리셨습니다.
그 후 열 달 지난 후에 세례요한은 태어났고, 사가랴는 입을 열어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령으로 잉태” 되었다는 고백은 “마리아”에게 조금도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만일 이 말이 없다면 우리는 “동정녀 마리아”에게 초점을 맞추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단지 하나님이 사용한 평범한 여인일 뿐입니다.
성경은 그녀의 어떠함에 대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아무런 언급이 없습니다.
누가복음에는 2장에는 예수님이 어려서 유월절에 예루살렘 성전에 갔을 때 제사장들과 논쟁하는 것에 대한 마리아의 반응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의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의 어머니는 이르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그 부모가 그가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 누가복음 2장48~50절 -
마태복음 12장에는 마리아가 그저 평범한 여인에 불과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예수께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 하니
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이르시되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 마태복음 12장47〜50절 -
천주교에서는 마리아를 “성모”라고 부르며 그의 무오성을 주장하거나 신성을 부여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마리아에게 기도하면 예수님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거절치 못하시고 응당해 주신다는 것도 잘못된 주장입니다.
마리아는 요셉이나 예수님의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와 동일하게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 받아야 할 인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셨다는 이야기는 오늘 우리에게만 이상한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도 이상했습니다.
그것은 요셉에게도 이상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것이 이상하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신앙고백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동정녀 탄생은 지식의 대상이 아니라 신앙의 대상이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고백에 들어온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칼케돈 종교회의 이후 1600년 이후 동안 지켜졌던 정통 교리임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러한 예수님을 믿는 것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이며, 선물이다’는 것을 깊이 깨닫고 그분을 찬양할 뿐만 아니라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좁은 이성과 지식 그리고 지혜를 가지고 하나님의 생각 속에 가두어 놓지 말고 성령으로 잉태 하사 동정녀의 마리아에게 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을 수 있어야 I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 되었다는 것은 우리의 거듭남도 성령에 의한 것임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성령으로 거듭남에서 출발합니다.
육에서 난 것은 육이고 영으로 난 것은 영입니다.
육으로 태어난 우리는 이제 성령으로 다시 태어남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한복음 3장 5〜6절 )
3.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성령으로 잉태되신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또한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23절을 보십시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임마누엘(Immanuel, עִמָּנוּ אֵל)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의 히브리어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과 의미를 표현하는 이름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인간으로 오신 이유는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해서”입니다.
외톨이 인생의 친구가 되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외톨이 같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몰래 들어오셨습니다.
가난한 사람의 옷을 입고, 그것도 초라한 마구간에서 아기로 이 세상에 들어 오셨습니다.
우리는 결코 홀로가 아닙니다.
부모가 없는 사람이라도 그는 혼자가 아닙니다.
자식이 없는 사람이라도 그는 혼자가 아닙니다.
남편이 없는 사람이라도 그는 혼자가 아닙니다.
아내가 없는 사람이라도 그는 혼자가 아닙니다.
외로워하지 마십시오. 홀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는 능히 사탄과 싸울만한 능력이나 지혜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는 슬픔이나 환난을 대적할 인내나 용기도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죄악에 넘어지고 실패로 좌절하고 있습니다.
갖가지 인생 문제로 인해 삶을 포기한 이들이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우리를 넘어뜨리고 삼키려는 원수 마귀가 세상권세를 잡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탄의 궤계를 부수고 그의 머리를 발로 밟으신 이가 우리와 함께 계시게 되었습니다.
우리와 같은 심정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고난을 체휼하신 이가 친히 우리와 함께 계시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악과 질고, 슬픔과 근심을 그가 친히 담당하시고 그의 평안과 그의 기쁨, 그의 승리로 우리의 삶을 대신케 하시려고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공한 자리에만 계시지 않습니다.
절망 중에도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실패 중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심지어 죽음의 자리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사야 41장10절에 있는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나님은 지금, 여기에 계십니다.
이것이 임마누엘입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신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있기 위해서 아기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처럼 우리는 이웃과 함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군가의 이웃이 되어 주어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군가의 친구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군가의 들러리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어 나신 우리와 함께 하셨던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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