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97)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 로마서 12장 9〜14절 -
12절과 13절은 신앙의 사람들이 가져야할 신앙 덕목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오늘은 이 중에서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라는 구절을 묵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구절은 10절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하라”는 말씀의 구체적인 행동지침 가운데 하나입니다.
보통 가난한 자와 약자는 멸시의 대상입니다. 이런 이들을 돕는 사람들이 가장 주의해야할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형제를 돕거나, 구제하는 사람은 절대로 상대를 자기보다 낮은 사람처럼 대하면 안 됩니다.
비록 그가 빈곤에 짓눌려 자존심마저 없어졌을지라도 존귀히 여기는 마음으로 그를 대해야 합니다.
신앙인의 행동은 예수 그리스도의 거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행동이 지향하는 곳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가난한자를 주목하십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 가운데 신이시며
주 가운데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
- 신명기 10장 17〜19절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한 몸이 된 성도들이 '서로의 필요를 인식하고 나누라'(코이노니아) 는 말은 헬라어 원문에서 '코이노니아'를 번역한 말입니다. "ταῖς χρείαις τῶν ἁγίων κοινωνοῦντες"
겉옷을 달라하면 속옷까지 주며, 오리를 함께 가자하면 십리를 동행하며, 냉수 한 그릇이라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대접할 수 있다면 이것이 진정한 '코이노니아'가 됩니다.
한국교회 초창기 성도 가운데 고찬익(高贊翼)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고찬익은 서울에서 출생하여 평양에서 자랐습니다.
그의 부친은 상업을 하였는데 고찬익은 글을 읽을 만큼의 교육을 받았다고 합니다.
고찬익은 가죽신과 망건을 만들어 파는 갖바치 출신이었습니다.
고찬익은 전형적인 노름꾼, 사기꾼, 술꾼으로 유명하였습니다.
관가에 붙들려가 매도 수 없이 맞았으며, 이 일로 인하여 한때 벙어리가 되었던 일도 있었습니다.
고찬익은 자신의 천한 신분을 비관하여 노름판에서 허랑방탕하며 방랑 생활을 하던 중, 함경도 원산에서 게일(J. S. Gale) 선교사의 전도를 받아 지난날의 생활을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게일 선교사는 고찬익이 회개하는 모습에 놀랐습니다.
게일 선교사는 한문 옥편을 펴들고 남에게 좋은 일을 주는 사람이 돼라고 찬익(贊翼)이라 이름을 지어 주어 갖바치 출신으로 성만 있고, 이름이 없던 그가 고찬익(高贊翼)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고찬익이 원산교회 집사로 있을 때에 가난한 교우집 방의 자리 밑에서 알 수 없는 돈이 나오고, 혹은 뜰 안에 쌀자루를 가져다 놓아서 가난한 교인들을 돕고 원산 거리에서 구걸하는 장애인에게 옷을 사서 입히는 선행을 아무도 모르게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화제거리가 되었으나, 누구의 선행인지 몰랐는데, 고찬익 집사가 원산을 떠난 후 가난한 집에 쌀자루 가져다 놓는 일도 끊어지고 걸인을 돕던 손길도 끊어져서 그제서야 사람들이 고찬익 집사의 선행이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신앙 생활을 시작한 뒤에 어느날 평양에 와서 식당에서 냉면을 먹을 때에 식사 기도를 하는 것을 잊고 급하게 먹다가, 기도 못한 것을 후회하여 입에 들어 있던 것을 뱉어 버리고, 그 후에 다시는 냉면을 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고찬익 집사는 1899년 9월 게일 선교사가 서울로 올 때에 동행하였습니다.
1900년 게일 선교사가 연못골(연동)교회 담임 목사로 목회를 할 때, 고찬익을 조사(助事)로 임명하였습니다.
고찬익은 게일 선교사가 번역했던 존 번연의 천로역정(天路歷程)을 들고 다니면서 “내가 이 책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여러분들도 예수를 믿기만 하면 이 책의 주인공인 기독도(基督徒)가 될 수 있습니다.”라며 전도했습니다.
그의 열심 있는 전도로 연동교회는 매주 새로운 신자가 등록했고 1900년 게일 선교사는 그에게 조사의 직함을 주고 자신의 일을 돕도록 하였습니다.
고찬익 조사가 어느날 구도자의 집을 방문했을 때 몸에 걸치는 옷과 식생활을 해결하지 못하는 딱한 사정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에게 노동하기를 권했으나, 그는 양반집 가문이라 노동을 천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고찬익 조사는 그 다음날 노동복을 입고 지게를 지고 전날의 그 사람을 설득하여, 그는 마지 못해 따라나섰습니다.
고찬익 조사는 그 사람에게 자기 품삯을 주고, 쌀과 땔나무를 사가지고 돌아가게 했습니다.
그 다음날에도 그렇게 하여 노동을 연습시켰더니 그는 독립자영의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찬익 조사는 지체장애자 서너 사람이 모여 있는 빈민굴에 가서 전도를 했는데,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기는 했으나 불편한 몸으로 예배당에 나올 수 없다고 하자 고찬익 조사는 매주일 아침에 한 사람씩 업고 주일 예배에 출석시켰다고 합니다.
이처럼 고찬익 조사의 열정적이고 사랑에 넘치는 헌신 봉사 결과, 교인수가 급격히 증가하여 불과 수년 내에 일천 수백 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고찬익 조사는 1904년 연동교회에 당회가 조직될 때 초대 장로로 장립되었고, 같은 해 9월 제4회 장로회공희회의 추천을 받아 평양 장로회신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1905년 제5회 장로회공의회에서 평양의 길선주(吉善宙), 부산의 심취명(沈就明) 등과 함께 전도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되었습니다.
1907년 9월 대한예수교장로회(독노회)를 조직할 때는 연동교회 장로로서 참여하였습니다.
1903년에 창립된 황성기독교청년회(YMCA)에도 참여하여 1908년 전덕기(全徳基)·김규식(金奎植) 등과 함께 한국인만으로 구성된 의사부의 위원으로 활동하였습니다.
1904년 8월 게일의 집에서 창립된 국민교육회의 회원이었습니다.
그는 평양신학교에서 공부하던 중 1908년 4월 24일 소천하였습니다.
게일이 지은 소설 『선구자(The Vangard)』에 나오는 고씨는 고찬익을 모델로 한 것입니다.
고찬익 조사의 전도는 가난한 자를 본즉 구제하고, 게으른 자에게 노동(일)을 가르치고, 신체장애자를 업어 주어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처럼 불구자와 노동 계급의 전도뿐만 아니라, 서울 양반이나 대감이나 귀족 계급 전도에도 능(能)하였습니다.
월남(月南) 이상재 선생이나 그 당시 교회에서 한문학과 관직이 가장 높던 이원긍씨, 개화당 유성준씨 같은 고참 노인들을 비롯하여 내노라 하는 양반들과 대관들이 고찬익 조사의 단하(壇下)에서 도(道)를 배우는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거짓 없는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신앙인들의 필수적으로 소유하고, 발휘해야 ‘기본 은사’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타락한 본성은 이것마저 가룟유다처럼 ‘거짓’으로 행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그런 ‘거짓 사랑’에 속은 낙심과 절망감 때문에 울부짖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아니 많습니다.
사랑은 절대로 ‘거짓이 없어야 할’, 정말 진실하게 해야 합니다.
‘거짓 없는 사랑’을 할 줄 모르면 그 사람은 절대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참된 신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거짓 없는 사랑의 표시로 아기 예수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그리고 그 사랑의 확증으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발구유의 낮은 자리를 통해 아기로 오셨습니다. 평안!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누가복음 2장 1〜7절 -
- 하늘가는 길, 강릉남대천에서. 산돌의집 장득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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