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로마서 강해(95)-거짓없는 사랑 실천(4)/환난 중에 참으며

가족사랑 2021. 11. 26. 22:49

로마서 강해(95)

환난 중에 참으며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 로마서 12장 9〜14절 -

 

중국에 문화혁명이 일어나자 선교사들이 추방명령을 받아 모두 중국을 떠나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떠나던 선교사 한 분이 제자훈련을 받고 중국 교회의 훌륭한 지도자로 자란 중국 목사님과 차를 마시면서 물었습니다.

"목사님! 앞으로 많은 환난과 핍박이 몰려올텐데 견딜 수 있겠습니까?"

그 중국 목사님이 가만히 차를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습니다.

"선교사님, 차가 뜨겁죠?" 그러면서 차 티백을 들었습니다.

"이 티백이 뜨거운 물 속에 들어갔다고 해서 그 맛을 잃었나요? 아마도 뜨거운 물 속에서 진짜 맛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두고 보십시오. 저는 이 신앙이 진실이라는 것을 이 환난 속에서 주님 앞에 입증해 보이겠습니다."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준 옛날 신앙의 선배들은 핍박과 환난 속에서도 그 신앙을 견디고 지켰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을 생각해보십시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 고린도후서 1장 8〜9절 -   

   

 

‘환난(患難)’이란 헬라어로 들립시스(θλίψις)라는 말입니다.

고난(苦難), 재난(災難), 고통(苦痛), 곤고(困苦), 압박, 탄압, 환난 등을 의미합니다.

영어로는Trivulation, 즉 고난, 또는 시련 이라고 하거나 Affication,  즉 고난,고뇌 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환난'이란 외적 환경에 의해서 생기는 어려움을 모두 뜻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고난이란 인생에게 불가피한 것입니다.

어쩌면 인생살이에 하나의 숙명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서 바르고 착하게 살려는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더욱 심각하게 부딪쳐 오는 것이 이 고난 문제입니다.

큰 나무일수록 바람이 세차게 부딪치듯이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믿음에 굳게 서서 사랑의 봉사로 열심히 주님을 섬기며 살려는 성도들에게 고난과 시련이 닥쳐올 때가 많습니다.

이처럼 불가항력적으로 닥쳐오는 고난과 시련을 우리는 어떻게 대항해 나갈 수 있겠습니까?

거기에는 두가지 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소극적으로는 회피하거나 하나의 운명으로 알아서 체념하는 길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환난을 당할 때 참으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적극적인 고난에 대처하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죄 용서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모든 것이 다 잘 풀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도 고난이 옵니다.

고난은 우리가 범하는 죄로 인하여 오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답게 거룩하게 살도록 하기 위해서 연단을 시키기 위해서 주시기도 합니다.

 

성경이 이야기하는 '환난'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거룩하게 살려고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어려움이 오는 것을 말합니다.

성도가 환난을 당하는 이유가 여러 가지 있습니다.

환난이란 고통이 수반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를 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필요 없이 아무에게나 환난을 주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환난이 왜 오느냐? 에 대한 여러 가지 사례가 있습니다.

첫째로, 인간 사회에 환난이 도래한 것은 죄로 말미암은 결과입니다.

아담이 이마에 땀이 흘러야 식물 을 먹고 살 수 있게 된 것, 하와가 잉태하는 고통을 받은 것 등은 죄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둘째로, 환난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의 죄로 인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나를 거슬러 내게 청종하지 아니할진대 내가 너희의 죄대로 너희에게 일곱 배나 더 재앙을 내릴 것이라”(레26:21).

셋째로, 자신의 죄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이 허락하심으로 찾아오는 경우의 환난도 있습니다.

욥의 경우가 그러했습니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탄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욥1:11∼12).

네째로, 그리스도의 환난에 동참하는 환난도 있습니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계1:9). 이 환난은 그리스도인들이 기쁨으로 동참해야 할 환난입니다.

다섯째로, 우리들의 생활에 환난이 따르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대로 우리의 생애를 인도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8:3)

 

'환난 중에 참으며'라는 말은 모든 고난에서 '인내를 보여라'는 뜻입니다.

그것이 정신적이건 물질적이건 또는 육체적이건 간에 모든 '고난을 참으라'는것입니다.

성경은 고난을 당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뻐하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 베드로전서1장 6절 -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 베드로전서 4장 1213절 -

 

모세는 공주의 아들로 불리는 것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 히브리서 11장2426절 -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 야고보서 1장 12절 -

 

고난은 구원을 받은우리에게 도리어 유익함을 줍니다.

예수님께서도 산상설교에서 '환난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 마태복음 5장 1112절 -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거의 절반이 되는 18명이 대학 교육을 받지않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불우한 가정에 태어나 고난의 가시덤불 길을 걸어온 사람들입니다.

고난을 겪지 아니하고는 튼튼한 인간이 나올 수 없습니다.

고난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보여줍니다.

오랜 풍상을 겪은 단단한 나무라야 고급가구에 쓰여집니다.

사금(沙金-금모래)이 용강로 속에서 연단된 후에야 비로소 값진 순금이 되니다.

이처럼 고난은 사람을 만듭니다.

기도의 사람을 만듭니다.

영광스러운 하늘 나라의 시민을 만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비올 때에 무지개를 바라보는 자가 되십시요.

밤이 깊어 캄캄할 때에라도 동터오는새벽을 내다보는 자가 되십시요.

이런 믿음을 가질 때에만 어떠한 어려움도 참고 견디어 승리의 면류관을 얻을수 있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 AD349년경-407년, 제37대 콘스탄티노폴리스 대주교)

초대 교부 중에 크리소스톰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로마 황제가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포기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어도 그리스도를 포기하지 못한다고 맞섰습니다.

결국 그는 로마 황제의 명령으로 체포되었고

로마 황제는 신하에게 크리소스톰을 아무와도 대화하지 못하게

고독한 개인 감방에 집어넣으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그 신하가 “황제님, 크리소스톰은 크리스천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황제는 화가 나서

“크리스천이면 별다른 사람이냐? 빨리 집어넣어!”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신하는 안타까운 듯이 대답했습니다.

“황제님은 모르십니까. 예수 믿는 사람은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만일 그 사람을 감옥에 혼자 가두어 놓으면 기도를 많이 하게 됩니다.

싱글벙글 웃으면서 하루 종일 중얼중얼합니다.

우리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데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오셔서 같이 이야기한답니다.

그러니까 혼자 두면 그에게 좋은 일을 하는 셈이지요.”

이에 더욱 화가 난 황제는 그러면

“극악무도한 죄인들이 있는 감옥에 집어넣어!”라고 명령했습니다.

신하는 다시 고개를 흔들면서 “황제님. 그건 안 됩니다.

그 사람은 오히려 전도할 기회를 얻었다고 매우 좋아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의 사람들은 모두 크리스천이 되고 말 것입니다.

오히려 그에게 좋은 일을 해주는 결과가 되고 맙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그 놈을 내어다 목을 치라!”고 황제가 명령했습니다.

“황제님.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그들의 제일 큰 상급은 순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 중에 목 베임을 당하러 나올 때 우는 사람을 볼 수 없지요.

오히려 얼굴에 광채가 나고 기뻐합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황제는 “그러면 이 놈을 어떻게 해야 좋단 말이냐”하면서

탄식을 했다고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굶주린 사자의 밥이 되고, 밤을 밝히는 기름처럼 화형을 당하고,

십자가의 죽음을 감내할 수 있었던 것은 고난의 즐거움을 미리 맛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환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환난은 누구에게나 고통스럽고 괴로운 것입니다.

환난은 즐거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환난을 당하면 불평합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고 생각합니다.

왜 하필이면 나에게 그런 고통과 아픔이 주어졌느냐며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정말 모든 사람들은 환난을 싫어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을 보면 “환난 중에도 참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은 자는 환난 중에도 고통스러워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인내합니다. 평안!

- 하늘가는 길, 강릉남대천에서 산돌의집장득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