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로마서 강해(96)-거짓없는 사랑실천/(5)기도에 항상 힘쓰며

가족사랑 2021. 11. 27. 09:50

로마서 강해(96)

기도에 항상 힘쓰며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 로마서 12장 9〜14절 -

 

 

12절과 13절은 신앙의 사람들이 가져야할 신앙 덕목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오늘은 이 중에서 <기도에 항상 힘쓰며>라는 구절을 묵상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도와 관련하여  “힘쓰라”  “항상 하라”  “지속적으로 하라”는 말씀은 본문을 포함해서 신약성경에 총 6번 나옵니다.

사도행전 1장14절에는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사도행전 2장42절에는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사도행전 6장4절에는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니”

로마서 12장12절에는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에베소서 6장18절에는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 말씀들은 무엇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그것은 자주 기도하고 정규적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가끔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해도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에 “힘쓴다”는 것은 임의적인 것이 아닙니다.

기도에 “힘쓴다”는 것은 먹는 것과 잠자는 것과 같이 매일 '내 삶의 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1517년 마르틴 루터는 비텐베르크 교회 문에 95개조항의 "개혁선언문"을 붙여 종교개혁의 포문을 열었습니다.

당시 평범했던 그가 어떻게 절대 권력의 교황의 세력과 맞설 수 있었을까요?

루터는 그것을 <기도>라고 말했습니다.

"만일 내가 새벽에 두 시간 이상을 기도하지 않았다면 그날의 승리는 마귀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나에게는 너무나 할 일이 많았다. 그러나 날마다 세 시간 이상 기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었다. 그 기도가 모든 일을 지탱해 나가게 하는 힘이 되었던 것이다"

루터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시간을 내기가 어려울 정도로 분주했지만 바쁘기 때문에 더욱 기도한다고 즐겨 말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루터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네 시간씩 기도했습니다.

기도하지 않고서는 종교개혁이라는 엄청난 일을 감당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루터는 주변 사람들에게 기도하지 않고 일에 힘쓰는 것은 뿌리를 내리지 않은 채 위로만 치솟으려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능력 있는 그의 기도는 죽어가는 사람까지 살려낼 정도였습니다.

1540년 그의 친구이자 동료였던 미코니우스가 병에 걸려서 죽음이 멀지 않았음을 직감하고 작별의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루터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회신했고, 미코니우스는 자리에서 곧장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자네는 죽지 말고 살아야 하네. 교회의 개혁을 위해서 내게는 아직도 자네의 힘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야. 주님은 결코 자네가 죽었다고 내게 말씀하지 않으실 테고, 나보다 자네를 더 오래 살게 하실 것이라네. 나는 이를 위해서 기도한다네. 이것이 내 뜻이며, 이러한 내 뜻은 이루어질 것이라고 확신하네. 나는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기를 소원하고 있기 때문이지.”

,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amp;nbsp;

구약 다니엘 6장10절에 보면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은 자기 목숨이 위험한 것을 알면서도 열린 창에서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위해서 목숨까지도 두려워하지 않는 다니엘의 용기와 결단을 배워야 합니다.

또 다니엘이 하루에 세번씩 기도를 힘썼다는 것을 보십시요.

그는 아침과 점심과 저녁에 시간을 정하고 기도했습니다.

기도의 스케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할수 있을까요? 

기도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호흡만큼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하고 또 무엇을 기도해야할지 잘 모르고 중언부언 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은 어떻게 우리가 기도 해야 할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실 때 하나님을 "아빠" 라고 부르며 기도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전능하신 분이지만 우리가 아버지로 여기고 나아가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할때에  주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갈 책임이 있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 기도에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선포되는 데에 헌신하겠다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일용할 양식은 하루 동안에 소비할 만큼의 재물입니다.

꼭 먹는 것만이 아니라 옷, 신발 등 전반적인 일용품들입니다.

하루에 그 사람에게 필요한 재화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감당할 만큼의 재물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이웃과 형제의 죄를 용서해달라는 기도도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시험이 있고 사탄이 주는 유혹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시험 외에는 주시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사탄이 주는 유혹 시험을 우리가 이길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함으로써 감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행위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매일 매일 기도로 영광을 돌려드려야 합니다.

 

사도행전 1장에는 예수님께서 감람산에서 하늘로 승천하신 후 약 12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다락방>에 모여 기도한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 사도행전 1장 1214절 -

 

이들 120명의 사람들은 예루살렘교회의 아주 중요한 핵심적인 인물들입니다.

이들은 다락방에서 오순절이 이르기 전에 약 10일간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쓴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다락방이라는 한 장소에 함께 모여 기도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사람들이 한 장소에 모일 수 있으나 진정 더불어, 함께 마음을 같이하기란 정말 힘든 일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한 마음이 되어 인간적이며 이기적인 생각을 버리고, 갈등과 분쟁을 해결하면서 하나된 것을 이루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한 가정생활이나 직장생활이나 사회생활 가운데서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서로 생각이나 의견이 달라지면 곧 감정싸움으로 변질되고 맙니다.

그러나 다락방에 모였던 그들은 이미 그러한 분열과 갈등을 다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있었던 자리다툼도 사라졌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을 놓아두고 도망쳤던 일에 대해 서로 책임을 추궁하거나 책임을 전가하는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다락방에 모여 함께 마음을 다하여 힘써 기도하였습니다.

 

무엇을 위해 그들은 그렇게 기도했습니까?

성령이 임하시면 예루살렘, 온 유대, 사마리아. 땅끝까지 그리스도의 증인되기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기도한 것처럼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주님의 증인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의 제자로서 예배당안에서 세상을 변화시킨 것이 아닙니다.

세상 한가운데서 복음의 증인된 삶을 살기위해 기도한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종종 자녀와 배우자에게 집중할 때가 있습니다.

그들을 위한 기도라 할지라도 세상을 살아갈 힘과 용기와 지혜를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온갖 유혹과 거짓된 가치관과 욕망이 끊임없이 도전해 오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결단과 용기를 갖지 않고는 살기 어렵습니다.

기도만이 세상에서 우리를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갈 힘과 용기를 갖게 할 수 있습니다. 평안!

 

 

- 하늘가는 길, 강릉남대천에서. 산돌의집 장득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