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93)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 로마서 12장 9〜14절 -
11절 말씀은 이런 성도 간의 사랑이 곧 주님을 잘 섬기는 것과도 직결됨을 보여 줍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란 문자 그대로 몸으로 열심히 섬기는 사랑을 뜻합니다.
그 다음에 ‘열심을 품고’라고 번역된 말은 문자적으로는 ‘열심을 내고’라는 뜻입니다.
헬라어로 열심은 제오(ζέω)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에는 ‘뜨겁다, 끓이다, 타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신앙적으로 ‘뜨거워진 마음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성도 간에 서로 ‘사랑하고 우애하고 존경하는’ 것에 더하여 주를 섬기는 일에 있어서도 물이 끓고, 냄비가 타듯이 열심과 열정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이 열심은 성령 안에서 뜨거워지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열심이 아니라, 열심을 내게 하는 근원이 바로 성령이라는 것입니다.
열심은 우리 안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이 열심은 불꽃 쇼와 같지 않습니다.
벽난로의 불씨처럼 타고 꺼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공동체는 저절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는 사람들에 의해서 돌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의 열심은 시간이 흐르면 식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열심은 식지 않는 열심입니다.
이 열심은 갈수록 더 뜨거워집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사람들은 할 일이 많습니다.
할 수밖에 없는 내적인 동기가 주어집니다.
성령님께서 은사를 주시고, 각 사람의 심령에 불을 붙여주시기 때문에 게으를 수가 없습니다.
가만히 있을 수 없는 힘이 작용합니다.
조지 휫필드는 18세기 영국에서 존 웨슬리와 감리교 운동을 시작한 신학자이며, 설교자였습니다.
조지 휫필드는 감성적인 설교로 많은 이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였습니다. 그는 영국인이었음에도 미국에서도 활동하였습니다.
그는 교단과 관계 없이 복음 전도에 열심했습니다. 윗필드는 새로운 설교 방식으로 복음의 세계를 가르쳤습니다. 당시 사역자들이 전반적으로 열심도 없이 변호조의 설교를 하던 시절에 그는 진취적인 열심과 불굴의 용기를 갖고 복음을 설파했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영혼에 불을 놓았고, 많은 설교자들이 그에게서 본을 받아 똑같은 방식으로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을 직접적으로 적용하는 그의 설교 스타일은 개신교의 설교자들 압도적 다수에 의해 백여 년 동안 계속 실행되었습니다.[Arnold A. Dallimore, George Whitefield, 오현미 역, 『조지 윗필드』 (서울: 두란노, 1991), 277-78.]
복음에 대한 열정만을 가지고 56년이라는 짧은 인생을 살았던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는 좀 쉬면서 하라는 사람들의 말에 "녹슬어서 없어지느니, 차라리 닳아서 없어지는 것이 더 낫다. 나는 닳아서 없어지는 망치가 되지, 녹슨 망치가 되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녹슬기보다는 닳아 없어지기를 원했던 휫필드는 죽기 전날까지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휫필드가 왔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한밤중에 그를 찾아왔고, 위대한 설교자는 창문을 열고, 손에 든 촛불이 꺼질 때까지 그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습니다. 휫필드는 일곱 번째 뉴잉글랜드(미국) 방문 시에 숨을 거두었는데, 당시 그의 곁에는 가족도, 뒤를 이을 자녀도 없었습니다.
그는 오로지 주님을 위한 불타는 열정으로 한평생을 살았던 복음전도자였습니다.
우리는 이런 열심을 품고 게으르지 않고 주를 섬겨야 합니다.
그래서 일평생 게으름과 싸워야 합니다.
우리의 본성은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어 합니다.
끊임없이 편안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가능하면 편안하고 힘들지 않은 일을 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우리의 죄성과 싸우라는 것입니다.
가장 큰 싸움은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게으르다는 것은 미루는 것입니다.
결심은 했는데 ‘다음에’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것입니다.
부지런한 것은 결심을 하면 행동으로 바로 옮기는 것입니다.
부지런히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사람은 더러운 욕심만 가지고 있어도 부지런합니다.
도둑질하는 사람들은 잠도 자지 않고 밤새도록 도둑질합니다.
더러운 욕심만 있어도 부지런할 줄 알거든, 거룩한 욕심, 영적 열정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게으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사람들에게 열심이 필요합니다.
깨달은 말씀들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게으른 그리스도인들이 됩니다.
하나님은 열심을 내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싸늘하게 식은 사람은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요한계시록에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하시면서, 열심과 회개를 말씀하십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요한계시록 3장 14〜16절)
미지근하고 뜨겁지 않은 상태를 주님이 가장 역겨워하십니다.
그래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에서도 미지근한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해서 주님의 책망이 가장 신랄합니다.
'토하여 버리겠다'고 하십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열심을 내지 않은 상태는 주님의 책망이 있는 상태입니다.
예수님께서 부지런하셨습니다.
그분은 식사할 시간도 없이 공생애 기간 동안 열심을 다하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새벽 미명에 기도를 하셨습니까?
복음서를 자세히 보면 예수님께서 새벽 이외에는 시간을 낼 수 없을 만큼 바쁘게 사셨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9장4절)
"어둔 밤 쉬 되리니 네 직분 지켜서
찬 이슬 맺힐 때에 일찍 일어나
해 돋는 아침부터 힘써서 일하라,
일할 수 없는 밤이 속히 오리라.”
3절에는 “할 수만 있는 대로 힘써 일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은혜를 깨닫고 가졌던 마음의 태도입니다.
열심을 품으라는 것은 감정적으로 흥분된 상태에서 주님을 섬기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영적 열정을 계속 유지하라는 말씀입니다.
영젹 열정으로 주님을 기쁘게 하십시요. 열심!
- 하늘가는 길, 강릉남대천에서. 산돌의집 장득룡 -
'로마서 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마서 강해(95)-거짓없는 사랑 실천(4)/환난 중에 참으며 (0) | 2021.11.26 |
---|---|
로마서 강해(94)-거짓없는 사랑 실천(3)/소망을 품고 즐거워하며 (0) | 2021.11.26 |
로마서 강해(92)-거짓없는 사랑 실천/(1)형제를 사랑하고 먼저 존경하라 (0) | 2021.11.03 |
로마서 강해(91)-악을 확실히 미워하고 선한 쪽에 확실히 서 있으라! (0) | 2021.11.03 |
로마서 강해(90)-사랑에는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0) | 2021.1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