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90)
사랑에는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 로마서 12장 9〜14절 -
미국의 한 교육학교수가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조사하였습니다.
첫 번째는 항상 기뻐하는 낙관적인 인생관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낙관적인 사람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보람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사랑을 주고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진정한 행복의 조건은 소유나 명예에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과거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물질적으로 , 문화적으로 풍요하고 발달된 사회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진정한 평안과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공허하고 불안 속에서 쫓기듯 살고 있습니다.
이 불안과 공허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요?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가운데 가장 큰 이유는 참된 사랑을 알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참된 인간의 행복, 그리고 진정한 인간의 회복은 오직 사랑에 있습니다.
마태복음 22장에 보면 예수님께 나온 한 율법사가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라고 묻습니다.
그 질문에 예수님께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37~40)고 대답하셨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데 있어서 사랑이 중요하다는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이 것이 모든 성경의 가르침의 완성이 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다른 신을 둘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형상을 하나님 대신으로 만들어 거기에 절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이 망령되이 일컬어지는데 대해서 용납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일주일에 하루를 하나님을 섬기는데 쓰는 것이 기쁨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살인을 하거나 간음을 하거나 도적질을 할 수 없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이웃을 해하려고 거짓증거를 하거나 이웃의 것들을 탐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모든 율법을 완성하는 아주 소중한 것입니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9절을 보십시오.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사랑에는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악한 것을 미워하고, 선한 것을 굳게 잡으십시오 "(새번역)
사랑(아가페, ἀγάπη)이란 그리스도인의 윤리생활 강령의 제1조에 해당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을 사랑장이라고 하는데 13절에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체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기를 마치셨을 때입니다.
그때 가룟유다가 큰 무리를 이끌고 그곳으로 왔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다가오더니 이렇게 인사를 했습니다.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그러면서 가룟유다는 예수님께 다가와 입맞춤을 했습니다.
가룟유다의 인사와 입맞춤은 결코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동기가 불순했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거짓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입맞춤으로 스승 예수님을 팔아넘기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동기가 순수하고, 마음에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오늘 성경에 사랑에는 거짓이 없다고 했습니다.
‘거짓이 없다’는 말은 헬라어로 아뉘포크리토스(ἀνυπόκριτος)라고 하는데 “숨김 없는”, “가식이 없는” “위선이 없는”, “있는 그대로” “진실한” 또는 “성실한”이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이 말은 연극배우가 탈을 쓰고 연기를 한다는 말에서 나온 말입니다.
사랑이란 연극배우가 무대에 서서 탈을 쓰고 연기를 하는 것 같은 그런 거짓이 아니라 진실하고 순수하다는 말입니다.
사랑이란 연기하는 것처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에는 없으면서 겉으로 그런 척하는 그런 것은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마음으로는 상대방을 존경하지 않으면서도 존경하는 체하거나, 실제로는 게으르지만 남들이 볼 때에만 부지런한 체 하거나, 골방에 들어가 은밀한 기도의 시간을 갖기 보다는 사람들 앞에서 기도를 많이 하는 체하는 가장된 모습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진실함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합니다.
참 사랑은 진실한 사랑은 마음 깊은 것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사랑이 참 사랑입니다.
충남 예산군 대흥면사무소 앞에는 1956~2000년까지 초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어 청소년들의 교육자료로 활용되어 온 '의좋은 형제'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옛날 우애가 돈독한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추수 때가 되어 동생이 말을 시작합니다.
“올해는 형님의 노고로 풍년이 들었군요...
형님은 동쪽에서 벼를 베세요. 저는 서쪽에서 베겠습니다.”
해를 등지고 작업하는 것이 해를 보면서 작업하는 것보다 쉬워서 동생이 형님을 배려한 것입니다.
형님은
“그렇게 하지. 아우의 좋은 뜻대로...”라고 응수했습니다.
형제가 각기 벼를 베서 쌓아올린 볏가리가 각자의 수확물이 됩니다.
동생은
“나보다 형님은 식솔도 많고 씀씀이도 많으니 식량이 더 필요할 거야…
그냥 드리면 안 받으실 거고, 어쩌지?”
이렇게 생각하다가 밤에 몰래 자기 몫에서 볏단을 빼서 형님 낟가리에 쌓아 놓았습니다.
형도
“동생은 살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여러 가지 필요한 것이 많을 텐데…
그냥 주면 안 받을 거고, 어떻게 하지?”
이렇게 생각하다가 한 밤중 지기 볏단을 부지런히 동생 낟가리에 옮겨 놓았습니다.
두 형제는 똑 같은 일을 며칠이고 반복하다가
한 밤중에 드디어 볏단을 들고 서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형제는 얼싸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성만, 이순 형제의 이야기입니다.
'의좋은 형제' 이야기는 그 동안 세종실록과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 기록되어 민간에 전설처럼 구전되어 왔었습니다.
그러다가 1978년 충남 예산군 대흥면 상중리에서 이성만, 이순 형제의 효제비(충남도 유형문화제 102호)가 발견되고, 최근에 이두문자가 해독됨으로써 역사적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이 비는 고려초 효자로 이름난 이성만과 이순 형제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연산군 3년(1497년) 지신사(知申事) 하연(河演)의 주청에 의해 대흥면 상중리 개뱅이다리(佳芳橋) 옆에 세워졌으며, 조선초기 양식의 화강암 비석에 이성만 형제의 갸륵한 행실에 대하여 왕이 정문을 세워 표창하고 자자손손에게 영원히 모범되게 하라는 173자가 기록되었습니다.
예산군은 대흥면 상중리 개뱅이다리(佳芳橋)근처에 있던 효제비를 예당저수지 수몰 위험을 염려하여 현 위치인 대흥면사무소 앞으로 옮겼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겉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척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런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처럼 어렵고 위험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겨야 할 이유도 모르면서 교회에 드나드는 사람은 조그마한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문제를 만들고 그것을 핑계로 교회를 떠나고 성도들과 등을 지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여러 가지 핑계를 댑니다.
교회가 좋지 않아서, 목사가 기분 나쁘게 해서 아무개 집사가 보기 싫어서, 헌금하는 것이 부담이 돼서 봉사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등등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고 그 좋으신 하나님을 마음 깊이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잘못을 해서 보기가 싫다, 누가 잘못해서 이것저것 때문에 이혼을 한다하는 모든 인간관계의 문제들도 사랑이 없는 것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진실한 사랑을 하게 된다면 모든 인간관계는 정말 훌륭한 관계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신실한 사랑이 없이 그저 겉으로만 사랑하는 척하거나 어떤 이익을 위해서 사람을 사귄다면 그 관계는 금세 나쁜 관계가 되고 말 것입니다.
사랑하는 척 하고, 잘해주는 척하고 들어서 기분 좋은 말하고 하는 그런 외식적인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평안!
- 하늘가는 길, 강릉남대천에서. 산돌의집 장득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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