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생일에 피자와 케이크를 먹고 싶어요!"
7살 된 딸이 생일에 피자를 먹고 싶다고 아빠에게 부탁했습니다.
홀로 딸을 키우는 아빠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의 수중에는 돈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통장 잔고는 571원이었습니다.
이 돈으로는 딸을 위해 사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딸아이의 소박한 꿈조차 들어줄 수 없는 현실에 아빠는 소리 없는 울음을 삼켰습니다.
코로나19로 직장을 잃은 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어온 아빠였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밖에 없는 딸의 생일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습니다.
고민 끝에 아빠는 평소 몇 차례 주문했던 피자집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사장님! 7살 딸을 혼자 키우는 아빠입니다. 지금 당장 돈이 없어서 부탁드립니다.
며칠 후에는 기초 생활비가 나옵니다. 그 날 돈을 드릴 테니, 피자 한 판만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
돈은 꼭 드리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별 기대 없이 한 부탁이었습니다. 거절해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건 전화였습니다.
그런데 상냥하게 전화를 받은 30대 젊은 사장님은 흔쾌히 그러시라고 대답했습니다.
잠시 후 따뜻한 피자가 배달되었습니다.
배달 전표에는 '결제 완료' 처리가 되어 있었고, 피자 상자 겉면엔 큼지막한 글씨가 적혀 있었습니다.
"부담 갖지 마시고!!! 또, 따님이 피자 먹고 싶다고 하면 연락 주세용."
딸의 생일날 받은 아주 특별한 선물!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피자였습니다.
딸의 생일에 따뜻한 배려를 받은 아빠는 이 따뜻한 이야기를 언론에 알렸습니다.
이 이야기는 삽시간에 커뮤니티에 퍼졌습니다.
따뜻한 피자를 선물한 젊은 사장님의 선행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하여 이른바 ‘돈쭐’을 내주겠다며 앞다퉈 주문을 하고 있답니다.
착한 이야기가 세상을 감동시키고 있습니다.
착한 사람이 세상을 따뜻하게 하고 있습니다.
'착하다'는 칭찬을 많이 듣던 때가 우리 모두에게 있었습니다.
어릴 때 어른들에게 인기 있는 아이는 착한 아이입니다.
아이들이 어른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던 덕담이 있다면 그것은 "착하게 살아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서 이런 칭찬은 어색하게 되고 맙니다.
착한 덕목은 그냥 어릴적 덕목쯤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이유는 어릴적 통용되었던 '착함'에 대한 원칙이 어른의 삶에서는 전혀 유익하지 않아보이기 때문입니다.
‘착하다’란 무슨 뜻일까요?
사전적으로 “몸가짐이 얌전하고 행동이 차분하여 일을 차근차근하고 무슨 일이든 불평 없이 척척 해내는 사람”을 착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착하다’는 말은 칭찬이 아니라 “남의 말을 잘 듣는 사람”처럼 취급당합니다.
또 “주관이 없는 사람” 혹은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을 일컬어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착한데...." 혹은 "저렇게 착해빠져갔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여기에서 '착하다'는 말은 인생에 별 도움이 안된다는 생각이 깔려있습니다.
“할 말이 있을 때 참고, 나서야 할 때 기다리며,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는 성격. 다들 놀 때도 자기 일은 물론, 남이 부탁한 일까지도 열심히 처리하며 아차 하면 남에게 이용도 당하는 사람” 이런 사람을 누가 좋아할까요?
어른에게 착하다는 칭찬은 왠지 매력적이지 않아보입니다.
우리는 착하기보다는 능력이 우선되고, 과정 보다는 결과가 우선시 되는 가치관 속에 살고 있습니다.
편법과 불법으로라도 큰 결과를 만들면 옳은 것이 됩니다.
착한 사람이 대접받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농업사회, 그러니까 남을 해코지 하는 일이 없는 순수하고 착한 사람들이 사는 농업사회에서는 그랬습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녀에게 착한 사람이 되라고 입버릇처럼 얘기하곤 했습니다.
순수한 것이 통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진화한 신자유주의 사회에서는 민주주의의 원리도, 경제원리도 사라진 불법과 탈법, 변칙과 위선, 이기적인 인간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 착한 사람이란 돈벌이에 눈이 어두운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기 안성맞춤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착함'을 '구닥다리'로 취급하여 장롱 속에 처박아 놓아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다가올 미래는 착한 사람의 시대입니다.
다가올 미래는 착한 사람이 승리합니다.
다가올 미래는 영리함이나 민첩한 이해력보다 ‘착함’이 우선적으로 필요합니다.
에이플러스(A+)그룹을 이끄는 곽근호 회장이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는 저서 《착한 사람이 이긴다》에서 수십 년간 직장인과 경영인으로 치열하게 살아오면서 깨달은 새로운 지향점인 ‘착함’의 중요성을 화두로 던지고 있습니다.
성공하는 삶을 만드는 5 가지 착함의 원리를 (1)지성, (2)유익함, (3)행동, (4)성장, (5)선한 지향이라고 말합니다.
“성공하기 위해 독해야 하고, 이기기 위해 불법적인 일을 감수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합니다.
굴지의 글로벌 기업이 거짓말 하나로 위기를 맞고, 모두의 존경을 받던 유명인의 위선이 드러나면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시대에 개인의 성공이든 기업의 미래든 ‘착함’이 기본을 이루지 못하면 모래성처럼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합니다.
신약성경 산상수훈(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 마태복음 5장 39〜42절 -
이 말씀은 약자는 강자에게 무조건 저항하지 말고 당하기만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른뺨을 때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아 못 견디는 사람에게 계속 오른편과 왼편을 계속 돌려대 ‘분풀이 대상’이 되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뺨을 돌려대라’는 것은 ‘오른편 뺨을 친 사람이 왼편 뺨을 돌려 댐으로서 자신의 행위를 부끄럽게 느끼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사회에서 가장 좋은 사람과 가장 필요한 사람은 착한 사람입니다.
어느 곳에서나 가장 필요한 사람은 돈이 많은 사람이나, 지식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능력이 많은 사람이나, 얼굴이 예쁜 사람도 아닙니다.
이 시대 어느 곳에서나 가장 좋은 사람과 가장 필요한 사람은 착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사람도 착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사람도 착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시는 착하신 분이십니다.
“이 세상에는 신도 많고, 주도 많으나, 당신들의 주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시고, 참 주님이십니다. 그분만이 크신 권능의 하나님이시요,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며, 사람을 차별하여 판단하시거나, 뇌물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시며, 고아와 과부를 공정하게 재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셔서 그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신명기 10장18〜19).
하나님께서는 악독이 가득한 니느웨 사람들과 동물들까지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신 착하신 분이십니다.]
“하물며 좌우를 가릴 줄 모르는 사람들이 십이만 명도 더 되고 짐승들도 수없이 많은 이 큰 성읍 니느웨를, 어찌 내가 아끼지 않겠느냐?"(요나4장11절).
예수님은 모든 죄인들과 모든 병자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는 착하신 분이십니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사도행전 10장38절)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마태복음 9장36절)
그 분은 제자들에게 착한 행실을 나타내 보이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그 분은 제자들에게 긍휼을 베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마9:13).
그 분은 자기를 십자가에 달아 못 박는 로마군인들까지 불쌍히 여기시고 저들을 위해서 기도하신 착하신 분이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누가복음 23장34절)
착한 사람은 자기보다 다른 사람을 더 많이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착한 사람은 자기 유익보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더 구하는 사람입니다.
착한 사람은 이기적이고 악착같이 자신을 챙기는 사람이 아닙니다.
착한 사람이 세상을 이깁니다.
착한 사람이 미래에 살아남습니다.
착한 사람으로 살아 내십시요. 평안!
- 하늘가는 길, 강릉남대천에서. 산돌의집 장득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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