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과 칼럼

우리의 인생은 작거나 큰 역경의 연속입니다

가족사랑 2021. 10. 11. 23:35

충청도 농사꾼의  6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난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2살 때  소아마비를 앓았으나 너무 가난하여 치료시기를 놓쳤습니다.  
그 후유증 때문에  “앉은뱅이” 로 어린 시절을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장애를 부끄러워했습니다.
술을 마신 날이면,  "저런 쓸모없는 놈 제발 좀 갖다버리라"고 말하며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눈물로 지샜습니다. 
그는 혼자 힘으로 설 수도 없었기에 기어 다녔습니다. 
비료 포대 위에 엎드려 한 손으로 땅을 짚고 
다른 한 손으론 포대를 잡아끌었습니다. 

 

어린 시절!

  그에게 친구라고는 병아리들과 강아지,

그리고 
마당에 지천으로 피어 있던 작은 꽃들이 전부였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등에 업혀 
집에서 1시간 떨어진 초등학교에 입학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학교는  '장애인이란 이유' 로 그의 등교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와 아들은 그날 교문 밖에서 한없이 울었습니다. 
아들을 등에 없고 오는 길에 슬픈 마음으로 

어머니는 
아들의 꽁꽁 언 발을 만지며 
“아가야, 춥지?” 
라고 따뜻하게 물으셨습니다. 
어머니의 그 한마디는 
그에게 다른 어떤 말보다 값졌습니다.

그 한 마디에 그는 힘이 났습니다.   
세상의 힘든 일들이 비수처럼 다가왔을 때 
기억나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어머니의 그 말 마디는 어둠 가운데 
생명과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같았습니다.

이 일이 있은 그 날 이후

아들은 평안해졌고,  어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는 11세에  집을 떠나 재활원에 들어갔습니다.  
굳은 다리를 펴서 보조기를 끼우고 목발을 짚으며 걷는 방법을 배우는데 
무려 2년이 걸렸습니다.
그런 그가 공부에서는 늘 1등을 했고 
선생님의 추천 덕분에 대전 중학교에 들어갔고, 
고등학교 입학 연합고사에서 만점을 받아 장학금을 받고 충남고에 배정받았습니다.
그는 TV가 크게 틀어져 있는 방 한구석에서 
밥상을 놓고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그는

서울대학교 수학과를 입학했고 
미국 버클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카이스트와 서울대 교수를 거쳐 
현재는 고등과학원 (KIAS) 교수로 재임 중입니다. 
2007년엔 40세 이하의 과학자에게 주는 ‘젊은 과학자 상’ 을 받았습니다. 
그는 김인강 교수입니다.
김인강교수는  '3차원 다양체의 위상수학' 과 '기하학 분야' 의 세계적인 수학자로 명망이 높습니다.

김인강교수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은 32세에 비극적인 유서를 작성하고 그의 형제인 칼과 존에게 전달할 생각이었습니다.

유서에는 삶에 대한 회한과 원망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나는 지난 6년 동안 미래에 대한 막연한 희망으로 지냈다. 이제 머지않아 삶을 마감할 것이다. 오! 하나님이시여, 내게 기쁨의 날을 허락해주소서.” 

그 후 베토벤은 46세부터 귀가 멀기 시작해 필담(筆談)이 아니면 대화를 나룰 수조차 없게 됐습니다.

작곡가로서 목숨보다 더 사랑하던 음향의 세계와 단절된 그의 육신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염성 카타르, 황달, 류마티스의 고통이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습니다.
그런 몸으로 베토벤은 불후의 명작 9번 교향곡을 작곡했습니다.

이 합창 교향곡은 그의 나이 53세에 완성한 것입니다.

합창교향곡은 베토벤이 23세 때 프리드리히 쉴러(Schilleer)의 ’환희의 송가‘를 읽고 감동받은 영감에서 작곡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나이가 든 노인이었지만, 그는 가난과 귀머거리에 육신의 가혹한 질병 등 인생의 모든 고뇌와 역경을 위대한 신앙으로 극복하고 오히려 이를 찬송으로 승화하여 대걸작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루드비히 본 베토벤(Ludwig von Beethoven 1770-1827)

누구에게나 ‘시련’은 찾아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일이 해당 당사자에게는 엄청난 괴로움으로 느껴질 수 있듯, 시련은 개인의 맞춘 양복처럼 각자의 인생을 침범합니다.

물론 어느 누가 겪어도 ‘감당하기 벅찬’ 소위 초강도의 고난이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어쩔수 없이 직면해야 하는, 마치 피할 수 없는 파도같이 각자에게 몰려옵니다.

역경(逆境)은 스무고개와도 같습니다.

그것은 고개를 넘을 때마다 정답에 다가가는 진실게임을 닮아 있습니다.

역경의 끝에서 만나는 건 이전과는 다른 가치입니다.

사람은 행복하기로 마음먹은 만큼 행복합니다.

역경을 승리로 바꿔 살면 살아있는 모든 순간이 행복입니다. 

 

불운과 고난의 늪을 헤치고 올림픽의 금메달을 목에 건 인간승리의 표본인 불굴의 스타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안겨진 한 개의 메달이 다른 몇개의 메달보다 더없이 값지고 더 영롱하게 빛나는 것은 어둡고 지리한 병마의 역경을 이겨낸 인간투쟁의 빛나는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1960년 제17회 「로마 올림픽」대회는 7년간의 소아마비를 극복하고 여자1백m, 2백m, 4백m계주에서 각각 우승, 3관왕이 된 20세의 흑인선수 <윌머·루돌프>가 찬연히 빛을 낸 대회였습니다.
<월머 루돌프>는 미국 테네시주에서  아버지와 두 부인사이의 열일곱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4 세때 급성폐렴, 성흥열을 한꺼번에 앓아 소아마비로 왼쪽다리를 절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어머니의 피어린 정성으로 11세에야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가 고1때 처음으로 농구를 시작했고, 고등학교룰 졸업후 육상으로 전향했습니다.

그녀는 천부적인 재질과 줄기찬 노력의 결실로 마침내 로마 을림픽에 출전하여 여자1백m에서 11초08로 우승했는데 , 남자기록보다 0.8초 뒤진 경이의 기록을 냈습니다.  이어 출전한 2백m에서 24초F, 그리고 4백m계주에서 44초5로 1위로 골인해서 삼관왕을 차지해 흑인여성으로 흑진주처럼 빛을 냈습니다.

윌머 글로딘 루돌프(Wilma Glodean Rudolph, 1940년 6월 23일 ~ 1994년 11월 12일)

여섯 살쯤 된 아이가 자전거를 배우다 진흙탕에 빠졌다면 한국 부모는 쏜살같이 달려가 아이를 일으켜 세웁니다.

그런데 유대인 부모는 '스스로 빠져나오라!'는 말만 남기고 가버린다고 합니다.

이때 아이는 온갖 애를 쓴 후 겨우 진흙탕을 빠져나오게 되는데 유대인 부모는 그제야 '아이를 크게 칭찬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 교육법을 소개한 ‘유대인 엄마의 힘‘에 나오는 일화입니다.

유대인들은 아이를 세우는 교육도 중요하지만, 넘어뜨리는 교육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중에 ‘역경과 좌절교육’은 유대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교육입니다.

 

유대인 부모들은 일부러 가정 형편이 어려워진 것처럼 꾸며 세상살이가 얼마나 힘든지 가르칩니다.

예컨대 연례행사처럼 기아 체험을 시키고 빈곤 지역에서 자원봉사를 통해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직접 체험하게 합니다.

이스라엘 교육자들은 지능 지수(IQ: Intelligence Quotient), 감성 지수(EQ:Emotional Quotient) 만큼이나 역경 지수(AQ: Adversity Quotient)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교육 심리학자들은 성공하는 데 지능 지수가 미치는 영향은 20%에 불과하며 나머지 80%는 역경 지수와 감성 지수에 달렸다고 단언합니다.

이런 이유로 유대 부모들은 어릴 때부터 자녀의 역경 지수를 키워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또한 그들은 역경 지수를 높이기 위해 좌절 교육을 병행합니다.

사람이 고난과 역경이 닥칠 때 의지적인 힘으로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얼마 못가서 무너지고 포기하고 맙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이 있어야 역경을 극복하는 힘이 커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체로 일반 사람들보다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의 역경지수가 높은 편입니다.

 역경지수가 높아지면 단순히 역경을 극복하는 것을 넘어 역경이 오히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는 기회가 됩니다.

 

우리의 인생은 작거나 큰 역경의 연속입니다.

역경은 고통스럽지만 그렇다고 부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모순적일 수 있지만 인간은 역경을 겪으며 성장합니다.

누군가는 역경으로 인해 쓰러지지만 누군가는 역경을 극복합니다.

 

역경(逆境)은 분명 위기입니다. 

그러나 위기(危機)는 정확히 말하면 '위험한 기회'입니다. 

위험하지만 기회이고, 잘 극복하면 ‘위험한 기회’가 얼마든지 ‘위대한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고난이나 역경은 누구에게나 닥쳐옵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시도 때도 가리지 않습니다. 

신자이거나 불신자이거나 가리지 않습니다. 

신앙이 좋거나 신앙이 별로이거나 가리지 않습니다. 

성경을 아무리 샅샅이 뒤져봐도 믿는 성도라고, 혹은 신앙이 아주 좋은 성도라고 고난이 완전 면제된다고 약속한 구절이 없습니다. 

오히려 성도의 고난에 관해 언급한 구절이 많이 나옵니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시편 34편19절)

의인은 신앙이 좋은 성도를 가리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고난이 있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많다고 했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그 고난에서 건져주신다고 했습니다. 면제해 주신다는 말은 분명히 아닙니다.

 

부모가 왜 자식에게 고난을 줍니까? 

왜 매를 들고 징계를 합니까?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세우기 위해서, 유익하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합니다. 

하나님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12:10 )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바로 세우시고 사용하시려고 고난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세상에서 승리의 삶을 살 수 있게 하려고 고난을 주십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역경이 닥쳐오는 것을 겁내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대처함으로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의지적인 노력으로 시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으로 역경을 극복하고 위기를 기회를 만들며 살아갑니다.

당신이 그렇게 하나님을 믿어 기회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당신에게 닥친 위험한 기회가 위대한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평안!

 

「여러분은 사람이 흔히 겪는 시련 밖에 다른 시련을 당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여러분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는 것을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련과 함께 그것을 벗어날 길도 마련해 주셔서, 여러분이 그 시련을 견디어 낼 수 있게 해주십니다.」

- 고린도전서 10장13절(새번역성경) -

 

- 하늘가는 길, 강릉남대천에서. 산돌의집 장득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