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로마서 강해(75)-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가족사랑 2021. 6. 30. 13:29

로마서 강해(75)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 이사야는 매우 담대하여 내가 나를 찾지 아니한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묻지 아니한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말하였고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되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느니라" - 로마서 10장 19〜21절-


배은망덕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도 바울은 이사야 65장을 인용합니다.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따라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 곧 동산에서 제사하며 벽돌 위에서 분향하여 내 앞에서 항상 내 노를 일으키는 백성이라”(사65:1∼3)

바울은 자기 동족인 이스라엘이 결코 하나님 앞에 핑계할 수 없음을 밝히며 고소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을 향해 손을 벌리고 계신 하나님에 대해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되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느니라”(21절)

누가복음 11장에는 예수님께서 <밤중에 찾아온 친구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이야기의 주인공의 집에 여행 중의 친구가 불쑥 찾아왔습니다. 그것도 모두 가 잠든 한밤중에 말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관습상 비록 친구가 한밤중에 자신의 집을 방문했다할지라도 그 친구는 자신의 동네와 자신의 집을 방문한 귀한 손님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극진히 대접하는 것은 가장 귀한 덕목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밤중에 찾아온 친구가 저녁 식사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주인공의 집에는 친구를 대접할 떡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의 주인공은 밤중에 저녁 식사를 하지 못한 친구를 위해서 옆집 친구에게 찾아가서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고 부탁합니다. 떡을 빌리러 친구에게 찾아간 시간이 “밤중”인 것은 주인공이 친구에게 빵을 빌리러 간 시간이 ‘가서는 안 될 만큼, 그러나 그럼에도 꼭 가야만 하는’ 가장 곤란한 상황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이야기를 통해서 제자들이 이렇게 극단적으로 곤란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 원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 하나님께서는 좋은 것으로 주시는 분이니,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할 때는 적극적으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가르쳐주십니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누가복음 11장9∼10절).

오늘 성경은 불순종하며, 거슬러 말하는 백성조차도 포기하시지 않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불순종하고, 거역하는 이스라엘이라 할지라도 저를 향하여 손을 벌리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마치 누가복음 15장의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렘브란트의<돌아온 탕자>,1669, 캠버스에 유채화, 262 X 206 cm, 에르미타쥬 박물관 소장

네덜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화가인 렘브란트가 그린 그림 중에 누가복음서 15장에 나오는 예수의 비유를 가지고 그린 돌아온 탕자라는 성화가 있습니다. 이 그림을 보면 집을 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는 빨간 옷을 입고 있는데 이것은 아들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뜻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 집을 나갔다가 돌아온 둘째 아들은 아주 초라한 옷을 걸치고 있습니다. 둘째 아들은 머리도 다 빠졌고, 신발도 오른쪽은 다 떨어지고, 헐어서 밑창이 뜯어져 있고, 왼쪽 신발은 아예 벗겨져 있습니다. 그림은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가져간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빈털터리가 되어서 돌아온 것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을 자세히 보면 둘째 아들을 감싸 안고 있는 아버지의 오른손과 왼손에 좀 차이가 있습니다. 오른손이 어머니 손과 같이 작고 부드럽다면, 왼손은 아버지의 손과 같이 크고 힘이 있어 보입니다. 이 두 손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함께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또 무릎을 꿇고 아버지 품에 안겨 있는 아들의 모습에서는 용서를 구하는 애절함이 나타나 있습니다. 또 뒤쪽에는 하인이 아들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가락지와 새로 신을 신발과 잔치에 필요한 송아지를 끌고 오는 모습도 보입니다. 그리고 왼쪽에는 좋은 옷을 입고도 굳은 표정으로 서 있는 큰 아들이 있습니다. 자기 동생을 용서하는 아버지가 그만큼 못마땅하게 생각된 것입니다.
이 그림은 돌아온 아들을 주제로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설사 둘째 아들처럼 불순종의 자녀들이라 하더라도 풍성한 긍휼로 항상 손을 벌리시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만나주시려고 사랑으로 지켜보고 계십니다.

베드후서 3장9절에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종일 손을 벌리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팔을 벌리시고 맞아주시는 분이시며, 적극적으로 응답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시고 사랑이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량없는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종일 팔을 벌리시고 맞아주시는 하나님' 앞에 적극적으로 나아가 기도하고 동행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그 사랑에 대해서 성숙한 믿음으로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게 하시려고 시대마다 사람들을 세워서 외치서 그들이 복음을 듣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불순종하고 거역하였을 때에라도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은 탕자의 아버지처럼 우리를 잊지 않으시고 종일 팔을 벌리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은 돌아오기만 하면 죄를 묻지 않으시고 환영해주시고 품에 안아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는 전쟁영화가 있습니다.

밀러 대위는 7명의 대원을 데리고, 라이언 일병을 구하기 위해서 독일군 지역 깊숙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라이언을 살리고는 밀러 대위와 대원 전원이 죽습니다.
죽어 가는 밀러 대위가 라이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네가 우리 8명이 목숨을 버리고 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네가 내 목숨과 나의 사랑하는 자들의 목숨을 버리고 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구원받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에 걸맞은 인생을 살아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구원을 얻게 하셨습니다.
구원은 모든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이 구원을 모든 사람에게 주시기 위해 끝까지 참으십니다.
정말 오래 참으시고, 인내하시고, 기다려 주십니다.
그러나 주님의 인내도 반드시 끝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평안!

- 하늘가는 길, 강릉남대천에서. 산돌의집 장득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