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77)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되 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그런즉 어떠하냐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또 다윗이 이르되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시옵고 그들의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 로마서 11장 1〜12절 -
바울은 자신의 예와 엘리야 시대의 예를 들면서 지금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도 구원받을 자를 남겨두셨다고 말합니다.
5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5절).
‘남은 자(레임마, λεῖμμα)’ 사상은 성경 전반에 걸쳐 나타납니다.
창세기에 대 홍수가 났을 때 노아의 가족은 살아남았습니다(창6:1-8).
소돔 고모라가 불심판을 받아 멸망할 때 롯의 가족이 살아났습니다(창19:29).
이사야 시대에 하나님의 심판을 당해도 그 가운데 구원받아 남은 그루터기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유다가 남북으로 갈려있을 때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당하기 전에 활동한 선지자로 <남은 자>에 대하여 예언을 합니다.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사6:13)
남왕국 유다백성들이 망할 짓만 하였습니다.
그래서 마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듯이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에 의하여 베임을 당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 당할지라도 그루터기는 남아있습니다.
다 없어지고 끝나는 줄만 알았는데 그루터기에서 새싹이 나옵니다.
이 새싹이 또다시 큰 나무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즉 회복이 된다는 말입니다.
남겨둔 그루터기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바벨론에 의하여 남왕국 유다가 망하고 끝나는 것 같았지만 포로로 잡혀간 사람 들 중에 하나님께서 남겨두시는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이사야는 '남은 자'라고 합니다.
이 사람들로 하여금 다시 이스라엘을 회복하고 이스라엘을 건설한다는 예언입니다.
대체로 남은 자는 소수입니다.
그루터기에서 나는 새싹은 연약합니다.
좁은 문이고 좁은 길을 가는 것입니다. 외롭습니다.
실제로 그루터기와 남은 자는 세상을 바꿀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실망과 외로움과 무기력에 빠집니다.
그러나 <남은 자>는 그렇게 존재해 있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루터기와 남은 자들을 통해서 구원의 역사를 열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열심과 능력으로 하나님께서 새로운 생명의 역사를 펼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 남은 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은 자>를 하나님의 구원의 도구와 일꾼으로 삼으시어 새 일을 행하십니다.
성경의 인물이라고 해서 다 남은 자들이 아닙니다.
어떤 인물들은 바람이 불어오면 날아가 버리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날아갔습니다.
가룟인 유다도 날아갔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에는 남은 자들이 있습니다.
욥은 압도적인 시련가운데서도 하나님 신앙으로 남은 자가 되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도 남은 자들입니다.
우리나라가 일제하에서 신사참배를 강요받을 때 죽음으로 신앙을 지켜낸 주기철 목사, 손양원 목사 같은 분들이 남은 자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의 지조를 지키며, 세속적인 큰 것이 유혹한다 해도 주님을 믿는 그 믿음과는 바꾸지 않겠다고 작정하는 남은 자들이 있습니다.
남은 자들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시련이 닥쳐오는 순간에도 허둥지둥 대지 않습니다.
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의지합니다.
남은 자들은 하나님을 꼭 붙잡고 있습니다.
남은 자들은 어떤 회오리바람에도 날려가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은총으로 선택하시는 남은 자 편에 서 있으십시요.
끝까지 인내를 가지고 하나님 편에 남는 자가 되십시오.
5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지금도 이 남은 자들이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있다고 말씀합니다.
은혜란 무엇입니까? 깨닫게 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마음이 열리는 것이 은혜입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내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는 이 은혜 때문에 복음을 깨달았고, 이 은혜 때문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농사를 지으신 분들은 잘 압니다.
한 밭에서 거두어들인 곡식, 즉 낱알이라고 해도 모두 똑같지는 않습니다.
바람개비로 바람을 불어보면 같이 수확한 낱알이라고 할지라도 가는 것이 있고 굵은 것이 있습니다.
가는 것은 바깥쪽으로 굴러가고 굵은 것은 안쪽으로 굴러옵니다.
굵은 것은 농부가 반드시 따로 담아 아껴둡니다.
양식이 떨어져도 이것은 절대로 먹지 않고 끝까지 남겨둡니다.
씨앗으로 삼기 위해서입니다.
곡식 중에서도 좋은 것을 남겨두어 씨앗을 삼듯이 하나님께서 남겨두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절대로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되었다는 것은 선택이 철저히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라는 것입니다.
‘은혜로 택하심을 입었다’는 것은 택하심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행위가 아닌 믿음을 기준으로 자기 백성을 선택하여 지키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남은 자는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으로 은혜를 구원받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구원받지 못한 남은 자가 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어떠하냐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
8절도 보십시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사람은 자연히 우둔해 집니다.
우둔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포로오(πωρόω)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돌같이 굳게 하다, 무감각 되게 하다, 맹목(盲目)적으로 하다, 완고(頑固)해지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개역 성경에는 이 단어를 ‘완악’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완악’이라는 말은 영적인 일에 대해서 전혀 반응을 보이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무감각한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가 일을 많이 하면 손에 못이 생긴다는 말을 합니다.
못이 생긴 살갗은 굉장히 두터워서 감각이 없습니다.
바늘로 찔러도 아픈 줄을 모릅니다.
이것을 우둔(완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둔하여졌다’ 것은 영적인 일에 대해서 무감감하고 아무리 영적인 말을 해도 복음을 말해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아무리 구해도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합니다.
복음을 들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혼미한 심령과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할 눈,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할 귀가 됩니다. 성공한 것 같은데 밥상이 올무와 덫이 되어 나중에는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됩니다.
9절과 10절을 보십시오.
“또 다윗이 이르되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시옵고 그들의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하나님이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게 하시면 완악함과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 듣지 못할 귀가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진노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결코 파괴적이고 물리적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직접 벼락을 때리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자기 욕심에 빠져 스스로 자기 인생의 주인 된 상태를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완악하게 되어 성공하여 밥상이 차려진 것 같은데 올무의 덫과 거치는 보응이 되는 바벨탑이 되게 만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신이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었는지, 하나님이 왜 나를 택해주셨는지, 죄인 중에 죄인인 나를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나 대신 죽게 하신 그 신비한 이유를 다 알 수 없어서 감격하는 사람이 남은 자입니다.
부족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불꽃같은 사랑, 그 열정에 몸 둘 바를 몰라 그저 하나님을 위하여 살 수 밖에 없습니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남은 자입니다.
주위에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그 은혜를 전할 수밖에 없습니다며 겸손하게 전도하는 사람이 남은 자입니다.
누가 택함을 받았는지 알 수 없기에 만나는 사람마다, 기회가 있는 대로 복음을 전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전합니다고 하는 사람이 남은 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를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들 가운데 포함시켜 주신 이 감격이 있다면, 이 세상 삶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감사하며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죽을 병이 걸려도 이 감격이 있으면 천국 소망을 가지고 감사의 찬송을 부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언젠가 하나님께서 자기의 때에 자기의 목적하신 곳에 쓰시려고 남겨둔, 남은 자이기를 바랍니다. 평안!
- 하늘가는 길, 강릉남대천에서. 산돌의집 장득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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