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 강해(15)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마태복음 5장 38∼42절 -
어떤 사회에서든지 분노하는 사회는 잔인하고 무서운 보복의 사회가 됩니다. 왜 복수를 하고 보복을 하게 될까요? 그것은 내가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즉 내 권리가 무시되었거나 빼앗겼을 때 나타나는 반응이 보복이고 분노입니다. 사람들은 정의라는 이름을 빌려서 권리를 찾으려 하고 복수하려고 하고 보복하려고 합니다.
1.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38절을 보십시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38절)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구약의 계명은 인간의 완악함으로 보복하지 말라고 주신 사랑과 용서의 계명입니다.
이 계명은 재판관들이 공의의 기준으로 사용하라고 주신 계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보복하라고 주신 계명으로 가르치고 행했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사용하도록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명이 잘못 사용됨을 지적하시고 보복은 하나님의 권한임으로 하나님께 맡기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교훈하셨습니다.
그 첫 예로 39절에서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라고 교훈하셨습니다.
즉 내가 부당한 인격모독을 당하더라도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교훈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오른편 뺨을 맞는 것은 최대의 인격모독입니다. 보통 오른 손으로 상대의 뺨을 때리면 상대는 왼편 뺨을 맞게 됩니다. 그런데 그가 오른편 뺨을 때렸다면 그것은 그가 오른 손으로 뺨을 때린 것이 아니라 오른 손등으로 상대의 오른편 뺨을 때렸다는 것입니다. 손등으로 때렸다는 것은 상대방을 경멸하며 깔보고 때렸다는 뜻으로 상당한 모욕이 됩니다. 그냥 빰을 맞아도 모독감이 드는데 손등으로 빰을 맞는다는 건 모독 중에 가장 큰 모독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격적으로 모독당하고 정말 자존심 상하는 일이 있더라도 참으라는 것입니다. ‘욱’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것입니다.
2.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예수님은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40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경우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워서 법정으로까지 데려다가 우리의 권리와 안전을 빼앗아 가려는 것을 뜻합니다. 악한 뜻으로 다른 사람의 권익을 빼앗아 자기만족을 채우려는 경우를 말합니다.
유대인에게 겉옷은 속옷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유대인은 속옷을 입고 망토나 담요 같은 것을 겉옷으로 걸쳐 입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낮에는 겉옷을 두르고 다니다가 밤이 되면 겉옷을 벗어서 이불로 사용했기 때문에 겉옷은 그들에게 있어서 생명의 마지막 보호막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없다면 헐벗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은 어떤 재판을 해도 겉옷은 빼앗지 못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겉옷은 저당할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22장입니다.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 그것이 유일한 옷이라 그것이 그의 알몸을 가릴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로운 자임이니라”(출22:26∼27)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려고 하는 자에게 겉옷도 가지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원수가 요구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당한 요구를 하는 사람을 대적하지 말고, 그들이 요구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양보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발을 통해서 속옷을 가지려는 것은 재판을 통해서 남이 가진 것을 빼앗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재판을 하게 되면 가능한 유리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 최선을 다합니다. 특히 악인들은 재판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이러한 경우에 그들과 같이 다투게 되면, 법정은 치열한 싸움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경우에도 예수님은 우리를 향해 네 권리와 이익을 주장하지 말고 상대방이 요구하는 것 이상으로 내어주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의무보다 권리를 더 요구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노조는 적게 일하고 더 좋은 작업 환경과 임금을 얻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들은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서 집단적 투쟁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사업주는 적게 주면서 더 많은 일을 시키려고 합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의무보다 권리를 더 주장하게 되면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명령은 개인에게 준 것이지 국가나 사법기관과 같은 공적인 기관에 준 것은 아닙니다. 판사는 당연히 부당하게 남의 것을 탈취하려는 사람을 찾아내서 그들에게 적절한 처벌을 부과할 책임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국가나 사법부가 공의를 행하는 것을 금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도들은 개인적으로 원수를 갚지 말고, 그들이 요구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양보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은 ‘너는 네 권리를 주장하고 지켜야 한다.’ ‘포기하지 말고 투쟁하라.’ ‘포기하면 모든 것을 다 잃게 된다. 그러니 절대 양보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네가 부당하게 권리를 침해당한다고 해도 오히려 상대가 요구하는 것 보다 더 베풀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속옷을 빼앗아간다 할지라도, 겉옷까지 주라고 하십니다.
이 가르침이 역사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것은 참 어리석어 보입니다. 생명까지 다 내어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사람이 되시기를 거부하셨다면, 누리셔야 할 하늘 영광을 포기하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수님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시고 용서하고 사랑하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 모범을 우리는 따라야 합니다.
3.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41절)
예수님은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해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는 것은 고대 세계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정부는 나라의 일로 짐을 운반할 때에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을 선발해서 그 짐을 옮기게 할 권리가 있었습니다. 이 법은 주로 정복국이 피정복국의 국민들에게 요구했습니다.
당시 팔레스타인은 로마의 속국으로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에 로마 군대도 유대 백성들에게 이러한 요구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로마 관리들은 필요한 경우에 1마일 내에서 사람들을 선발해서 국가의 짐을 운반하도록 명할 수 있었습니다. 1마일은 한 마을에서 다음 마을까지 갈 수 있는 거리를 말합니다. 그래서 로마 군인들은 한 마을에서 아무나 붙들어 다음 마을까지 짐을 지게하고, 또 그 마을에서 지나가는 아무나 붙들어 억지로 짐을 지워서 그 다음 마을까지 가게 한 겁니다.
예수님께서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가실 때 힘이 없어서 가다가 쓰러지셨습니다. 이때에 로마 병정은 지나가던 구레네 시몬을 불러서 예수님을 대신해서 그 십자가를 지고 가게 했습니다. 이러한 일도 강제 부역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러한 강제 노역법에 대해 로마에 분개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점령했을 때에 일본 군사들도 우리 민족을 강제로 징집하여 여러 가지 일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로 인해서 우리는 일본에 대해 적개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로마의 관리가 강제로 짐을 지고 5리를 가게 할 때에 거부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천국 백성들이 이러한 요구를 받게 되면 10리까지 짐을 지고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점령국 관리에 의해서 강제로 부역을 당하게 되면 적개심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요구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해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면 천국 백성들은 마음에 평안을 누리고 원수를 감화시킬 수 있습니다.
국가는 백성들에게 세금을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백성들은 국가에 내는 세금을 적게 내려고 노력합니다. 어떤 사람은 문서를 위조해서 세금의 액수를 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천국 백성은 이러한 일을 하면 안됩니다. 기독교인들은 국가가 요구하는 세금은 물론이고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국가나 사회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할 때에 국가에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직장인은 직장에서 가능한 적게 일하고 더 많은 것을 받기를 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회사에서 받은 월급보다 더 많이 일을 해야 합니다. 기독교인은 회사가 자기에게 요구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해줌으로 회사에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직장을 하나님께서 주신 일자리로 알고, 회사의 기대보다 더 많은 것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러한 원리는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의 경우에 서로 상대방에게 원하는 것은 많은데, 자신이 해야 될 일은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배우자가 원하는 것보다 더 많이 사랑하고 섬기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이러한 일을 하려고 할 때에 우리가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실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상대방이 기대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제공할 때에, 우리는 비로소 상대방의 마음을 얻을 뿐 아니라, 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4.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예수님은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42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가운데에는 자기 것을 남을 위해서 사용하는 일에는 인색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더 많이 갖기 위해서 남의 것을 빼앗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구하는 자에게 주고, 꾸고자 하는 자를 거절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구하는 자에게 주고, 꾸고자 하는 자를 거절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독교인은 많은 것을 움켜쥐고 탐욕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기독교인은 자신의 유익 뿐 아니라 이웃의 유익도 함께 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웃이 도움이 필요할 때에 기꺼이 자신의 것을 나누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어려운 이웃을 외면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이웃이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기꺼이 자신의 것을 그들을 위해서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어려운 사람을 보고도 인색하게 구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즉 천국을 바라보고 사는 성도는 아버지 하나님과 같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의 유익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아십니까?
이 비유에 나오는 강도는 "정당하게 일하지 않고 부당하게 남의 것을 탈취하는" 불법자입니다. 그는 정당하게 일을 해서 돈을 벌 생각을 하지 않고 폭력과 불법을 통해서 남을 해치고 위협합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은 네 것이다"라고 말하는 개인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고, 또 남이 어려울 때에 도와주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번 것을 가지고 자신을 위해 쓰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마지막으로 선한 사마리아인은 ”내 것도 필요하면 네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타주의적인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웃이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에 기꺼이 그를 도와줍니다. 그는 자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으로 이웃을 도와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랑하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선한 사마리아인과 같은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천국 백성들이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천국 백성들에게 "구하는 자에게 주고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와 함께 십리를 동행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웃을 위해서 자원하여 십리를 동행해 줌으로써 그들에게 사랑과 필요를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칭찬받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산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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