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 강해(17)
은밀하게 하라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 마태복음 6장 1∼8절 -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사는 신앙의 사람들에게 분명한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사람으로 살아가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구제나 기도나 금식 같은 것을 할 때 자랑하지 말고, 좀 조용히 하고, 남들에게 자랑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보통 우리들은 기본적으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삽니다.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체면치레를 많이 합니다. 실속이 없이 겉으로만 그런 척 하는 일들을 잘 합니다. 속마음은 그렇지 않는데 사람들 보기가 미안해서 그냥 그런 척 하는 일도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 특별히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이런 외형적인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 나머지 중심적인 내용은 없고 가식적이고 형식적인 것만 남아 있었고 더러는 위선적인 행동을 했습니다. 2절에 나오는 “외식하는 자”가 바로 그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오늘 말씀은 우리 인간들의 그런 체면치레적인 행동에 대해서 사람에게 무엇을 보이기 위해서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바른 신앙생활을 하려고 한다면 이런 잘못된 생각을 바꾸어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 사람 앞에서 자신의 의를 행하는 것이 잘못임을 알고 철저하게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의를 행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본문은 하나님 앞에서 행하여야 할 가장 중요한 세 가지인 구제와 금식과 그리고 기도를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고 은밀하게 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기도와 금식과 함께 구제는 유대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권장되고 칭찬을 받는 행위였습니다.
어떤 랍비(Elasar)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선을 베푸는 사람은 온 세상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우려는 자와 같다. 왜냐하면 자선과 정의를 행하는 자는 지구를 여호와의 사랑으로 채우기 때문이다. 인간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확실히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에 속한다. 인간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 자는 확실히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에 속하지 않는다. 구제는 그 안에 있는 사랑의 척도에 따라 보답을 받는다.”
유대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공동체 전체가 일정한 액수를 부담해서 가난한 사람을 돕는 공동적인 방식이 있는가 하면, 개인이 자원해서 기부하는 자발적 방식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구제할 때도, 유대인은 가난한 사람들의 인권을 존중하려고 했습니다. 유대인은 대중 앞에서 가난한 사람을 모독하는 것을 반대했으며, 이웃에게 자선을 베풀 때에도 가급적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이 좋다고 믿었습니다. 유대인도 받는 자가 누구로부터 받는지 모르고 주는 자도 누구에게 주는지 모르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이렇게 구제하지 않았습니다.
2.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본문은 그들의 구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그들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주는 척 하면서 속셈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들이 구제하는 목적은 사실 주는 데 있었던 것이 아니고, 자기들이 받으려고 하는데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목적은 남을 도와주는데 있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자기들이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으려는데 있었습니다.
실제로는 받기를 원하면서, 겉으로는 주는 척 했습니다.
얼마나 외식적인지 모릅니다.
'외식하는 자'란 배우처럼 연기하는 자, 속마음과 달리 겉으로 연극하는 자를 말합니다.
외식하는 자는 가난한 자를 위해 혹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구제하는 듯이 크게 떠벌리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영광을 위해, 즉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받기 위해 구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둘째로, 그들은 회당과 거리에서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들은 얼마든지 은밀하게 구제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본문은 그들이 회당과 거리로 나갔다고 했습니다.
회당과 거리는 사람들이 붐비는 곳입니다.
그들은 구제할 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찾아가서 나팔을 불었습니다.
사람들이 더 많이 모일 때까지 계속해서 나팔을 힘껏 불었을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겉으로 드러내는 명분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균등하게 구제 받을 기회를 주기 위함이었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속셈은 따로 있었습니다.
자기들이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더 많은 영광을 받기 위해서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그 당시에 회당과 성전의 구석진 곳에는 작은 방이 있었습니다. 구제를 위해서 마련된 방이었습니다. 침묵자의 방(The Chamber of the Silent,)이라고 불리던 곳입니다. 그 방은 들어가는 입구가 양쪽에서 나있었습니다. 구제를 하는 사람이 구제하기 위해서 들어오는 입구와 구제를 받는 사람이 구제 받기 위해서 들어오는 입구가 서로 달랐습니다. 구제를 원하는 사람은 조용히 그곳에 가서 자기들이 가져온 것을 자유롭게 놓고 돌아올 수가 있었습니다. 구제를 받기 원하는 사람도 다른 쪽으로 들어가서 자기들이 필요한 것이 있으면 들고 나올 수 있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구제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구제를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은밀하게 구제를 할 수 있도록 그렇게 조치를 해 놓은 것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그런 곳에서 얼마든지 은밀하게 구제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회당과 거리로 나갔습니다. 계속해서 나팔을 불었습니다. 물론 그들이 겉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골고루 구제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함이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서 더 많은 영광을 차지하려고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겉과 속이 다른 외식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그들은 얼마든지 은밀하게 할 수 있는 구제를 그렇게 하지 않고, 회당과 거리에서 나팔을 불며 공개적으로 구제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2절 하반부입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그들은 목표한대로 사람들의 박수갈채는 받았을 것입니다. 자기들이 원했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자기 상을 다 받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받으셔야 할 영광을 중간에서 가로챘기 때문에, 이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책망과 벌뿐이었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사랑하는 여러분!
구제의 동기는 은밀해야 합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오직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구제하는 사람이 드러나게 되면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영광을 구제하는 사람이 중간에서 받기가 쉽습니다.
구제는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서로 모르도록 은밀하게 함으로서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 돌려지게 해야 합니다.
어떤 마을에 구두를 수선하는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활도 그다지 넉넉하지 못한데도 좋은 일을 많이 했습니다. 그는 불쌍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를 못했습니다. 자기 생활에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한편 그의 이웃에는 부잣집 할아버지가 살았습니다. 그는 구두쇠로 소문이 났습니다. 그는 남에게 동전 한 푼 보태주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에게 손가락질하며 그를 욕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구두쇠 할아버지가 죽었습니다. 그가 죽고 나니까 이상하게도 구두를 수선하는 할아버지가 더 이상 구제를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구두 수선하는 할아버지가 구제한 것은 전부 구두쇠 할아버지가 뒤에서 준 돈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구제할 때는 은밀하게 해야 합니다.
누가 주는 지도 모르고,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그래야 오직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3.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예수님은 우리가 은밀하게 의를 행할 때에,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서 이를 갚아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상급에 대해서는 사람들마다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도들이 상급이나 대가를 바라고 선을 행하는 일이 옳지 않다고 비난합니다.
그들은 상급을 위해서 의를 행하는 것은 저급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대가가 없더라도 그 일이 옳기 때문에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사람이 상급이나 심판 때문에 선을 행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심판이 없고 또 천국이나 지옥도 필요없다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의 견해에 대해서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요?
물론 우리는 상급보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선을 행해야 합니다.
또 우리는 상급이나 심판 때문이 아니라 그 일이 옳기 때문에 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악을 행한 사람에게 심판이 있고, 의를 행한 사람에게 상급이 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모세가 애급의 영화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선택한 것은 그가 “상 주심을 바라보았기 때문”(히11:26)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눈앞에 보이는 영광과 즐거움을 얻으려고 혈안이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더 높고 먼 곳에 있는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당시의 세계 최대강국인 이집트의 왕자로 살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광야에서 고난받는 일에 동참한 것입니다.
신약성경 곳곳에는 보상 교리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0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냉수 한 그릇은 보잘 것 없는 것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베풀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보잘 것 없는 것조차도 예수님은 잊지 않으시고 상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2장에서 심판 날에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눅12:47∼48)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3장에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에 세상을 불로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그 때에 짚이나 나무, 또는 풀로 지은 집은 모두 타 버릴 것이나, 금과 은, 또는 보석으로 지은 집은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고전3:12∼15).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고전3:8)고 말했습니다.
또 고린도후서 5장에서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심판 받게 될 것”(고후5:10)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5장에서 양과 염소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양과 같은 의인들, 오른편에 있는 의인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25:35∼36).
그때 의인들이 의아스럽게 생각하면서 예수님께 되물었습니다.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37절)
오른편에 있는 의인들은 이런저런 구제를 많이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전혀 기억치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은밀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40)
그러면서 주님은 그 의인들에게 아버지의 나라를 상속케 하시고,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도록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남에게 주목받지 못하는 착한 일이 하나님 앞에 칭찬받습니다.
남이 알아주지 않는 긍휼이 하늘의 상을 받습니다.
왼손이 모르게 한 오른손의 구제가 하나님을 감동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잊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대신 갚아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산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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