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과 칼럼

지금도 엄마가 필요하세요?

가족사랑 2021. 3. 19. 18:10

"지금도 엄마가 필요하세요? "

 

지인이 매일 보내주는 카톡 일기를 읽습니다.

어느 날,  '여덟 명의 자식과 한명의 애인'이라는 제목의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 글의 제목을 보면서  '여덟 명의 자녀보다 남편 하나가 최고!'라는 내용일 거라고 지레 짐작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글을 읽어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애인은 남편을 지칭한 것이 아니라 진짜 남자 친구(애인)였습니다.

그리고 글을 읽어보니 우리들의 이야기, 바로 우리들 가정의 이야기였습니다.  

 

아래는 그 글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엄마가 57세에 혼자가 되어버렸다. 

나의 이혼소식에 쓰러진 아버진 끝내 돌아오지 못하셨고 

그렇게 현명하셨던 엄마는 정신이 반 나간 아줌마가 되어 큰오빠 작은오빠 눈치보기 바빴다.
이제 아버지 노릇을 하겠다는 큰오빠 말에 그 큰집을 팔아 큰오빠에게 다 맡겼고, 

나 몰라라 하는 큰오빠 때문에 작은 오빠의 모든 원망을 다 감수해야 했다.
사이좋았던 팔남매가 큰오빠 때문에 모이는 횟수가 줄어들수록 엄마의 표정은 점점 굳어져갔고

노름하는 아들한테 조차 할 말을 못하는 딱한 처지가 되어버렸다.

그걸 이해하는 난, 엄마가 원하는 대로 형제들에게 돈을 풀어주었고,

그런 나에게 미안했던 엄마는 가끔 나에게 이런 말씀하셨다.

'널 낳지 않았으면 난 어떡할 뻔 했니'

 '괜찮아 엄마, 엄마는 우리 여덟 잘 키웠구 큰오빠가 지금 자리 잡느라고 힘들어서 그렇치, 효자잖어.

 이젠 새끼 걱정 그만하고 애인이나 만들어서 즐기고 살어!'

'난 애인은 안돼. 니 아빠 같은 남자가 없어' 

그러던 엄마가 어느 날 나에게 슬그머니 말씀하셨다. 

'남자친구가 생겼어. 작년 해운대 바닷가 갔다가 만났는데 괜찮은 거 같아서 가끔 같이 등산 간단다.'

어쩐지... 자꾸 등산을 가더라..... 뭐하는 분인데? 

'개인병원 의사인데 사별했대.'

 '이번 엄마 환갑 때 초대해봐. 내가 언니 오빠들한테 말해 놓을 께 .' 

우린 엄마 생신 때 호텔 연회장을 하나 빌렸고 엄마 지인들과 여고 동창들을 다 초대했다. 

그리고 그 아저씨도

엄마 남자 친구는 멋졌다. 

그리고 어울렸고 아버지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겨 더 좋았다.

 '그 집 아들들이 재혼을 원한다는데 어쩌지? 혼자 계시는 아버지가 좀 그렇다네.'

 모두들 찬성이었다. 

그런데 작은 오빠가 길길이 뛰기 시작했고 

'안 돼 엄마 그런 게 어딨어, 우리 불쌍한 아버진 어쩌라구! 이 나이에도 남자가 필요해?
우리 자식 보며 살면 안돼? 창피해! 

형은 장남이 돼 가지고 엄마 모시기 싫어서 그래? 

내가 모실테니 걱정 마 그러면 아버지 제사 땐 어쩔껀데, 

엄마! 아직 난 엄마가 필요하다구!!!!'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는 미친놈이 보기 싫어 형제들은 다 가버렸고 

소리 지르며 욕을 퍼붓는 나를 엄마가 막으셨다. 

"그만해라, 없었던 일로 하마."

그리고 다음 해! 

어느 날

 술이 잔뜩 취해 올케와 싸웠다고 작은 오빠가 전화가 오고 

가지 말라고 말리는 나를 뒤로 하고 간 엄마는 

다음날 병원 응급실에서 만났다. 

새벽에 얼까봐 수돗물을 틀어 놓으러 나오셨다가 쓰러져 뒤늦게 발견 된 엄마!

우리 자식들은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혼수상태의 엄마를 처음엔 매일 붙어 있었지만 

시간이 좀 흐르자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것에 두려워 지기 시작했다. 

슬슬 볼일들을 보기 시작했고

면회시간을 꼭 지켜 기다리고 있는 건 병원을 맡기고 온 원장님뿐이었다.

우린 깨어나지 않는 엄마를 기다릴 뿐이었는데 

원장님은 엄마를 주무르며 계속 속삭였다. 

'박 여사 일어나요. 우리 전에 시장가서 먹었던 선지국밥! 그거 또 먹으러 갑시다. 

내가 사준 원피스도 빨리 입어 봐야지!'

원장님은 병원에서 우리 형제들을 불러놓고 말했다. 

'이제 병원에서 해줄 것은 없습니다. 퇴원하셔야 됩니다.' 

평생 '식물인간' 이라는 판정과 함께 어디로 모셔갈 껀지를 정해 줘야 

차로 모셔다 준다는 말에 모두들 헉! 큰 올케가 먼저 말했다. 

자신은 환자를 집에 모시는 건 못한다고.

둘째 오빠가 말했다. 

맞벌이라 안 된다고. 

장가도 안간 스물여덟 살 막내 동생은 울기만 한다.
딸들 표정은 당연히 큰오빠가 해야지 본인들 하곤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오빠들은 '그동안 니가 모셨으니 계속하면 안 될까?' 하는 표정으로 날 본다.

그냥 누워 계시는 게 아니라, 산소 호흡기를 꽂고 있어야 하니 모두들 선뜻 대답을 못했다.

 난 결국 내 집인 줄은 알지만 형제들 꼴을 쳐다보고 있는데,

'저~ 제가 감히 한마디 해도 되나요?'

언제 오셨는지 우리 곁으로 오신 원장님.

'제가 그때 박 여사와 재혼을 말했을 때 박 여사가 이렇게 말했어요. 

아직 우리 애들한텐 엄마가 필요한가 봐요. 

자식들이 내가 필요 없다 하면 그때 갈께요 했어요. 

지금도 엄마가 필요하세요? 

난 저렇게 누워있는 사람이라도 숨만 쉬고 있는 박 여사가 필요합니다. 

나한테 맡겨 주세요. 내 병원이 박 여사한텐 더 편할 껍니다.'

작은 오빠가 통곡을 했다. 

다른 형제들이 울기 시작했다. 

결국 엄마는 퇴원을 못하고 돌아가셨다. 

난 엄마에게 부탁했다. 

'엄마! 엄마의 이뻤던 모습만 보고 먼저 간 아버지는 잊고,

엄마의 추한 병든 모습까지도 사랑한 이 원장님만 기억하고 가.

엄마! 엄마는 팔남매 키운 공은 못보고 가셨지만 여자로 사랑만큼은 멋있었어.'

67세에 우리 엄마는 

그 가슴 졸이며 평생 키운 팔남매가 아닌 

몇 년 만난 남자의 손을 잡고 마지막 숨을 거두셨다. 

자식이 식물인간이 돼 있다면 부모는 무엇을 이유로 댈까. 

우리 팔남매는 엄마를 모셔가지 못할 이유가 다 있었다.

더 끔찍한 것은 나도 그 입장이라면 그런 핑계를 대지 않았을까? 

이해가 된다는 것이었다.
우리 엄마한테 묻고 싶다. 

'엄마~ 또 다시 새 인생을 준다면 팔남매 낳을꺼야?‘

어떻게 읽으셨습니까? 정말 눈물이 솟는 슬픈 글이지요?

이 글은 안타깝게도 우리에게 어두컴컴한 구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우리 모두는 예외없이 이들 팔남매와 똑같은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팔남매처럼 병든 엄마를 돌보지 않아도 될 떳떳하고 그럴듯한 이유와  변명을 산더미처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마에 주름이 깊숙히 파인 우리 부모님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 있습니다. 
저만 그런가요?

"너를 낳아 준 아버지에게 순종하고 늙은 어머니를 업신여기지 말아라."

- 잠언 23장22절  -

 

- 하늘가는 길, 강릉 남대천에서. 산돌의집 장득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