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신等神
등신이 무엇이냐
나무나 돌
혹은 흙이나 쇠 따위로 만든 사람
아니, 신의 모습이라는데
말귀 못 알아듣는
백치 같은
고집 꺾을 수 없는 벽창호 같은
현실에 어두컴컴한
바보와 흡사하게 닮은 것이지요
절간에서나
교회당에서나
제법 깨우쳤다는 사람들은
등신이라는 소리를 들어야지
문밖으로 나갈 채비가 되었다고 한다는데
내 살을 팔아서
허기진 사람들에게
밥 한 그릇 나눠주고
내 피를 팔아서
목마른 사람들에게
물 한 모금 나눠주는
등신 같은 짓만 골라서 한다면
세상은 조금 아름다워지겠지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우리 주변에
등신 같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꽃이란 꽃과 열매란 열매
그 많은 나무와 지저귀는 새
비 한 번 오면 넘쳐흐르는 강물까지
등신이 아닌가 그 말이지요
(김종제·교사 시인, 강원도 출생)
옛날에 어느 고장에 흉년이 들어, 마을 사람들이 살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 마을 부근에 절이 있었습니다.
노승이 야산에 쓸모없이 버려진 땅을 개간하려고 사람들을 불러다가 일을 시켰습니다.
날이 가고 달이 가도 일이 제대로 진척되지 않았습니다.
이를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같은 값으로 더 좋고 큰 논을 살 수 있으리라고 충고하였습니다.
그러나 노승은 일꾼들과 더불어 묵묵히 돌밭을 일구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든 품삯은 시세보다 몇 곱이 더 들었습니다.
그런데 속 깊은 노승의 어리석음 덕분으로, 그 흉년에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병들지 아니하고도 굶주림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노아, 아브라함, 요셉, 모세, 다윗, 다니엘 같은 사람들은 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던 사람입니다.
특히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했던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의 기준으로 볼 때는 등신(等神) 같은 행동을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노아는 120년 동안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노아가 만든 배에 그의 가족들만 탄 것을 보면 당시 사람들이 노아를 등신(等神)으로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고향을 떠났고, 100세때 겨우 얻은 아들을 하나님께 번제로 바치려고 했습니다.
모세도 애굽의 왕자의 위치에서 평생 호화호식할 수 있는데도 동족인 히브리인들이 학대받는다고 살인을 저지르고 망영자가 됩니다.
다니엘은 또 어떻습니까?
포로로 잡혀간 곳에서 총리에 까지 올랐는데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어놓고 기도하다가 체포되어 사자굴에 던져집니다.
요셉은 자기를 시기하고 미워하여 죽이려고 했고, 또 자기를 노예로 팔아넘긴 형들을 복수하지 않고 용서하고 그들이 잘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었습니다.
다윗도 보십시오!
그는 목동으로 있을 때 골리앗을 죽여 나라를 위해 크게 공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이 시기하여서 죽이려고 해서 광야와 사막으로 수년간 도망 다녀야 했습니다.
어느 날 굴에 숨어 있을 때 사울 왕이 자기가 숨어 있는 굴로 혼자 들어왔었습니다.
당시 다윗은 사울왕을 단칼에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만 “하나님이 기름 부은 사람”이라고 사울 왕을 죽이지 않고 보냅니다.
다윗의 부하는 자신이 한 창에 죽이겠다고 하지만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않고 옷자락만 짜릅니다.
그리고 또 다시 도망 다닙니다. 죽이면 끝인데 말입니다.
얼마나 등신(等神)같이 행동합니까?
예수님 앞에 나온 막달라 마리아를 보십시오.
그녀는 300데나리온(당시 노동자의 1년 봉급)의 가치가 있는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습니다.
사람들은 무슨 바보같이 행동하냐?고 하면서 그녀에게 등신의 낙인을 찍습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 고린도전서 1장25∼29절 -
믿음은 어리석게 되는 것입니다.
지식이 힘인 세상에서 어리석게 되는 것은 삶을 근본적으로 위협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삶은 좁은 문입니다.
오늘날 믿는 이들이 세상에서 지혜롭게 살려 하기 때문에 믿음을 점차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믿음은 어리석어질 것을 각오하는 용기입니다.
모두 다 지혜롭게 되려 하는 때 자신만은 어리석은 길을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세상의 지혜와 다릅니다.
세상의 지혜는 철학이나 과학으로 인생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고 보지만 하나님은 전혀 다른 길을 택하셨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입니다.
그의 십자가에 구원의 지혜가 나타났습니다.
저주에서 축복으로 변화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과학이나 철학이 사람의 방법이라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세상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어리석은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리석은 십자가를 통해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로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 고린도전서 1장21절 -
하나님의 방법은 과학이나 철학이 아니라 미련한 십자가 복음입니다.
세상이 어리석게 여기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2000년 전의 십자가가 우리의 삶을 놀랍게 바꾸어 주는 과학보다 더 뛰어난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세상의 지혜가 어리석게 여기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어떤 지혜보다 탁월한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믿음이란 이 지혜를 깨닫고 거기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세상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세상이 어리석게 여기는 것을 하나님의 지혜로 받아들입니다.
세상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미련한 것이라 보지만 믿음의 사람에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십자가는 죽어야 산다고 가르칩니다.
지혜로워지려면 어리석게 되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어리석은 십자가의 지혜보다 더 탁월한 세상의 지혜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습니다.
이것이 역설입니다.
세상에서 어리석은 것이라 여기는 그리스도가 세상의 삶에 들어와서 세상에서 어리석은 자를 탁월한 지혜자로 만듭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지혜가 주어집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비밀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 고린도전서 1장27절 -
이것이 하나님의 어리석음입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의 능력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부정적인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따르는 사람을 어리석다고 하는 세상의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지혜자들보다 오히려 세상에서 약하고 어리석은 자들을 선택하십니다.
하나님이 기뻐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그런 바보들입니다.
잘해야 본전이요 못하면 욕 듣고 마음에 상처 받는 섬기는 자리에서 힘들고 어려워도 섬기는 바보.
내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상대방을 먼저 찾아가 화해를 하는 바보.
복수하고 원망하고 미워해야 하는데 용서하는 바보.
하나님께서는 그런 바보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런 바보들을 기뻐하시고 그런 바보들을 통하여 일하십니다.
어리숙한 아브라함은 약삭빠른 조카에게 선택권을 양보했습니다.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 창세기 13장9절 -
조카는 선택권을 사양하지 않고 기름진 들판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기름진 들판을 취한 조카 롯은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눈앞의 이익에 집착한 롯의 가족은 결국 그동안 축적한 재산과 함께 영적인 자산까지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불리한 조건을 선택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큰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 창세기 13장14∼15절 -
사람이 자기 것을 챙기지 않으면 하나나님께서 챙겨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기준이 달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준으로 살아야 합니다.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다들 그렇게 한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자녀에게 그렇게 살면 어떻게 하느냐고 하면, 친구들도 다 그렇게 한다고 대답합니다.
물론 그렇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은 사람을 찾아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예수믿는 사람은 세상 사람과 달라야 합니다.
예수믿는 사업가는 세상 사업하는 사람과 달라야 합니다.
세상을 사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내 실력으로 사는 방법이 있고,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살면, 지고 가는 짐이 훨씬 가볍습니다.
내 실력으로 사는 삶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살면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플러스 알파가 되어주시므로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그리스도를 위한 바보가 되기 위해 고난을 겁내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사는 어떤 사람도 고난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기독교에는 십자가가 없는 부활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고,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바보로 사는 결정은 세상적인 눈에는 바보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지혜로운 결정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물론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서 살면서 세상가운데에서도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에 걸림돌이 된다면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평안!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 미태복음 5장39∼48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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