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느 마을에 부유한 농부가 4명의 자식을 두고 있었습니다.
큰 아들은 군인 시몬(Simeon)입니다.
둘째 아들은 뚱보에 장사꾼인 타라스(Tarras)입니다.
셋째 아들은 집안 일을 도맡아 하는 이반(Ivan)입니다.
그리고 넷째는 귀머거리에다 벙어리였지만 눈 썰미 하나는 좋은 외동딸 밀라냐(Milania)입니다.
이반은 바보입니다.
도무지 자기 것을 주장할 줄 모릅니다.
큰 형과 둘째 형들이 하자는 대로 합니다.
자기의 권리를 악착같이 챙기지도 않고 부당한 천대와 손해도 기꺼이 감수합니다.
어느 날, 큰 형, 시몬이 아버지를 찾아와 재산의 3분의 1을 나누어 달라고 합니다.
아버지는 곤란해하면서 여태 고생스럽게 일만 한 이반과 말라냐가 화나지 않겠냐고 거절합니다.
하지만 시몬은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인 이반과 벙어리인 말라냐가 재산을 가져서 무얼 하겠냐?고 고집을 부립니다
아버지는 마지 못해 이반의 생각을 물어봅니다.
이반은 큰 형의 말대로 들어 달라고 흔쾌하게 승낙합니다.
그 뒤에는 둘째 형, 타라스가 더욱 부자가 되고 싶은 욕심 때문에 아버지를 찾아와서 시몬처럼 3분의 1을 달라고 합니다.
같은 과정을 거쳐 타라스도 자기 몫을 받아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이반은 여전하게 홀로 집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부모님과 말라냐를 돌보며 살아갑니다.
한편 지하에서 살아가던 늙은 마귀(Old Devil)는 이들 삼형제가 서로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지내는 것이 못마땅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부하들인 작은 마귀(small devils) 셋을 불러 이반 형제들의 사이를 갈라 놓을 것을 명령했습니다.
작은 악마들은 삼형제에게 골탕을 먹인 다음 모두 망하게 만들어서 서로 모이게 하면 싸울 것이라는 계획을 세우고 한 명씩 맡기로 했습니다.
큰 아들 시몬을 맡은 마귀는 세계를 군대로 정복해 왕에게 바치겠다는 야망을 그에게 불어넣었습니다.
세계를 군대로 정복해 왕에게 바치겠다는 시몬의 이야기를 듣고 왕은 매우 기뻐하면서 시몬에게 더 높은 관직과 지휘권을 주고 인디아로의 진격을 명령했습니다.
마귀는 그렇게 인디아와 괜한 전쟁을 벌이게 한 다음, 전투 전날 밤 시몬의 군대가 가진 화약을 전부 물에 담갔다가 꺼내놓았습니다.
그리고 마귀는 짚으로 인디아 쪽에 군인들을 몰래 잔뜩 만들어 주었습니다.
기세 좋게 쳐들어갔던 시몬의 군대는 인디아 군의 규모를 보고는 겁을 먹어버렸습니다.
시몬이 공격 명령을 내렸지만 물에 젖은 대포도, 총도 발사가 되지 않았습니다.
시몬은 일방적으로 패하고 관직과 토지를 몰수당하고 사형을 선고받아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마귀는 시몬이 감옥에서 도망치게 한 뒤 곧장 아버지에게 달려가 구원을 요청하게 만듭니다.
둘째 악마는 타라스의 욕심을 불려 놓아 오만가지 물건들을 잔뜩 사들이게 합니다.
타라스는 가진 돈이 바닥나자 남의 돈을 빌려서까지 물건들을 계속 사들였습니다.
그리고 마귀는 돈을 갚을 날이 가까워 오자 그것들을 모두 거름으로 만들어서 채무자들에게 쫓기는 신세로 만들었습니다.
빚을 잔뜩 짊어진 타라스도 어쩔 수 없이 아버지에게 달려가 도움을 청하게 됩니다.
셋째 악마는 이반의 크바스 통에 침을 뱉어서 이반의 배가 아프도록 했습니다.
※크바스(Kvass)는 호밀빵을 발효시켜 만드는 저알코올의 청량음료
그리고는 이반이 밭을 갈 때 땅을 돌처럼 단단하게 만들고 쟁기를 붙잡아 방해했습니다.
그러나 이반은 복통에 시달리고 땅도 딱딱해졌는데도 기어이 밭을 몽땅 갈아 오히려 악마는 손을 심하게 다쳤습니다.
이튿날 이반은 돌처럼 단단한 밭을 마저 갈고 있었습니다.
이때 작은 악마는 흙 속에서 이반의 쟁기를 다리로 꽉 움켜잡고 일을 방해했습니다.
이반은 흙 속에 나무뿌리라도 새로 돋아났나 싶어서 손으로 흙 속을 휘젓다가 작은 악마를 잡아올렸습니다.
이반에게 붙들린 마귀는 이반에게 '한 뿌리만 먹어도 무슨 병이든 낫게 하는 나무뿌리' 세 개를 주며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했습니다.
이반은 그 자리에서 나무 뿌리 한 개를 먹고 정말 복통이 사라졌습니다.
이반이 마귀에게 “하나님께 가거라!”하며 놓아주자 마귀는 기겁을 하고 도망쳐 땅에 구멍만 남겼습니다.
그 후 이반이 계속 집에서 살아가던 중 키우던 개가 전염병에 걸렸습니다.
사람에게도 전염될 수 있는 무서운 병이라서 이반도 섣불리 다가가지 못하고 슬퍼하다가 마귀가 준 ' 한 뿌리만 먹어도 무슨 병이든 낫게 하는 나무뿌리' 생각이 나서 남은 두 개 중의 하나를 빵에 넣어 줬더니 개의 병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이걸 본 부모가 놀라서 이반에게 "어찌 된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이반은 자신에게 어느 병이든 치료해주는 풀뿌리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부모는 어느 왕국의 공주가 위독한 병에 걸렸는데 그녀를 치료해주는 사람은 부마(駙馬)로 삼을 것이라고 했다고 알려줬습니다.
※ 부마(駙馬)는 임금의 사위 혹은 공주의 남편을 이르는 말.
이반은 공주의 남편이나 부귀영화에 아무 관심이 없었고, 부모의 말도 다 이해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반은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공주에게 가기로 결심하고, 떠날 준비를 하던 도중 어느 손이 굽은 여자 거지가 와서 당신은 어느 병이든 치료하는 나무뿌리를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면서 그 나무뿌리를 자신에게 베풀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 여자가 불쌍해진 이반은 하나 남은 나무뿌리를 줬습니다.
부모님은 무슨 어리석은 짓을 했냐면서 탄식했습니다.
그런데도 이반은 그대로 마차에 올라 출발했습니다.
이반은 "나무뿌리도 없으면서 대체 지금 어디를 가냐?"는 부모를 뒤로 하고 '공주를 낫게 하러 간다'는 말만 남깁니다.
사실 이반은 자신이 빈손임을 순간 잊어버린 것이었지만, 무슨 조화인지 이반이 궁전 문에 들어서자마자 공주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왕은 기뻐하면서 약속했던 대로 이반을 부마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왕이 세상을 떠나면서 이반은 그 뒤를 이어서 왕위에 올라 왕이 되었습니다.
이반은 왕이 된 후 잘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반은 왕이 되어서도 도대체 자기 것을 주장할 줄 몰랐습니다.
이반의 이런 성품 덕에 큰 아들, 둘째 아들도 각자 나라를 하나씩 세울 수 있게 되어 왕이 되었습니다.
이렇듯 이반 집안이 승승장구하자 이번엔 늙은 마귀가 직접 나섰습니다.
늙은 마귀는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의 탐욕을 부추겨 결국 두 나라를 망하게 만들었습니다.
늙은 마귀는 최후의 승부처인 이반의 나라로 향했습니다.
이반이 왕인 나라엔 단 하나의 법만 있었습니다.
그 법은 막내 벙어리 여동생 밀라냐가 정한 것입니다.
“손에 굳은 살이 박힌 자는 식탁에 앉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먹다 남은 찌꺼기를 먹어야 한다.”
작은 마귀들 대신 직접 나선 늙은 마귀는 이반 나라에 들어가 이 하나뿐인 법을 공략했습니다.
'손으로 일하는 삶은 어리석은 것'이라며 '머리를 쓰면 편하게 잘 살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늙은 마귀는 광장에 백성들을 모아놓고 머리 쓰는 법을 강연했습니다.
연단에 올라가 머리 쓰는 법을 열심히 설명했지만 정작 백성들은 고개만 갸우뚱했습니다.
연 이틀 동안 소리만 지르다 배가 고파진 늙은 악마가 빵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백성들은 “머리로 빵을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대답했습니다.
늙은 마귀는 지치고 허기진 끝에 결국엔 비틀거리며 연단 기둥에 머리를 찧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그가 드디어 머리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고 수군거렸습니다.
늙은 마귀는 결국 연단에서 떨어지고 그가 떨어진 땅엔 구멍이 뚫렸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이반은 예전에 나타났던 시커멓고 기분나쁜 마귀놈들의 우두머리가 분명하다면서 정말 지독한 녀석들이라고 질린 듯이 말했습니다.
이반은 농사 일을 하고 백성들을 돌보며 평화롭게 살았습니다.
망해서 찾아온 형들도 받아주고 먹여 살렸습니다.
살기 위해 찾아온 어려운 사람들이 있으면 누구 하나 가리지 않고 부족할 것 하나 없는 자신의 나라에서 사는 것을 허락해 주었습니다.
이반의 나라에는 다양하고 복잡한 법도 필요가 없어 만들지 않았는데 단 한 조문만이 있었습니다.
"손바닥이 굳은 살이 박힌 사람은 식탁에서 식사를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먹고 남긴 것을 받아 먹어야 한다."
톨스토이는 성경적 가치로 살아가는 공동체가 어떤 모습인지 모여주고 싶어했습니다.
톨스토이는 바보 이반의 삶과 그의 나라를 통해 성경적 가치로 살아가는 공동체를 보여주고 싶어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바보들」
성경에는 이반처럼 바보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가 바보 이반과 같습니다.
노아 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천년 가까이 살았습니다
"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라멕을 낳은 후 칠백팔십이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구백육십구 세를 살고 죽었더라
라멕은 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라멕은 노아를 낳은 후 오백구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칠백칠십칠 세를 살고 죽었더라
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 창세기 5장25∼32절 -
노아는 구백오십세에 죽었습니다.
"홍수 후에 노아가 삼백오십 년을 살았고 그의 나이가 구백오십 세가 되어 죽었더라" -창세기 9장28∼29절 -
노아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사람이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었습니다.
노아에게는 셈과 함과 야벳이라 이름하는 세 아들도 있었습니다.
노아 시대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했습니다.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 창세기 6장5~12절 -
하나님께서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고 하시며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세기6장13~14절).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무려 100년 내지 120년 동안 가족노동으로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100여년 걸쳐 만드는 동안 아마 누군가는 왜 방주를 만드느냐?고 물었을 것입니다.
이때 노아는 하나님의 계획을 전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의 사람들은 노아를 비웃고, 실컷 즐기는 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노아의 방주에 가족 외에는 아무도 들어가지 않은 것을 보면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 시대의 사람들 눈에 보인 노아의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한 마디로 노아와 그 가족을 바보 취급했을 것입니다.
허구헌 날, 1년도 아니고, 10년을 넘어, 100여년에 걸쳐 이상한 것을 만들어가는 노아를 바라보는 그들은 노아를 바보처럼 손가락질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은혜 가운데 하나님이 지시하신 대로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 창세기 6장22절 -
노아 이후로도 노아 못지 않게 바보 같은 인생을 살아간 사람이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으로 부르는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고향 갈대아에서 그런대로 풍족하게 잘 살아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렀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 창세기 12장1∼5절 -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난다고 할 때 동네 사람들이 왜 가느냐고 물어보았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내가 하나님을 만났는데 하나님이 가라고 해서 간다고 했을 것입니다.
동네 사람들이 어디로 가냐고 물었을 때, 아브라함은 "나도 모른다. 하나님이 가라고 말씀하시는 데로 간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 대답을 듣고 똑똑한 친구인 줄 알았는데 '바보같은 사람'이라고 수군거렸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고향을 떠나야 했던 아브라함에게 '고향을 떠나면 목적지를 알려 주겠다'고 했습니다.
일단은 떠나라는 것입니다.
당시 시대적 상황으로 비추어 봤을 때 하나님의 명령은 정말 무책임한 것이었습니다.
고향을 벗어나면 그 시간부터 주변 부족의 사냥감이 되는 순간인데 도대체 어디로 간다는 말입니까?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미련없이 고향을 등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길을 떠났습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창세기 12장4절 -
안전한 자리, 익숙한 자리, 편안한 자리를 떠나 부르심을 쫓아 길 한 가운데로 들어섰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부족들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높은 성벽을 쌓을 때,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들은 하나님의 음성에 기대어 길 한 가운데 거주했습니다.
단단한 성벽 안이 아닌 성 밖 들판에서 거주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더 위험에 노출시키는 선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로 가나안으로 이사해서 아브라함이 조카 롯과 함께 살고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가축과 은과 금 등 재산이 풍부했습니다.
함께 있는 롯도 양이나 소같은 가축이 많았습니다.
아브라함이나 롯이나 이렇게 가축이 많아 함께 사는 데에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의 사이에서 고민과 갈등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은 여기서 믿음의 사람다운 결단을 내렸습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에게 우선 화해의 제안을 합니다.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 창세기 13장8∼9절 -
당시 가축은 중요한 재산이요 기업입니다.
가축에게 좋은 먹이를 먹일 수 있는 땅을 차지한다는 것은 부와 직결되는 아주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아브라함이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는 것은 바보같은 제안입니다.
아브라함은 세상적으로 바보입니다.
아마 그런 아브라함을 보고 아브라함의 가족들이나 목자들은 땅을 쳤을 것입니다.
땅의 선택권은 아브라함에게 있었지만, 아브라함은 그 선택권을 조카 롯에게 양보했습니다.
참으로 큰 양보를 했습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외아들 이삭까지 번제로 바치려고 했던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세기 22장2절)
아브라함은 딱 이 한 마디를 들은 것뿐입니다.
왜 번제로 드려야 하는지에 대한 전후 사정에 대한 설명도 없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아들입니다.
생리학적으로 자식을 낳을 수 없는 나이에 얻은 아들이니 아브라함이 이삭을 얼마나 아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아들을 양이나 소처럼 불에 태우는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은 겁니다.
아브라함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이삭을 번제로 바치기 위해서 필요한 장비를 갖춰 모리아 산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어떤 기분이었는지, 말도 되지 않는 명령을 어떻게 따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말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마치 기계처럼 움직입니다.
모리아 산에 올라가 제단을 쌓은 뒤에 이삭을 거기에 올려놓고 칼로 목을 따려는 순간에 여호와의 사자가 아브라함을 불러 칼을 거두라고 했습니다.
외아들까지 아끼지 않는 것을 보니 하나님을 참되게 경외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겁니다.
아브라함은 뿔이 수풀에 걸려 꼼짝 못하고 있던 숫양을 잡아 아들을 대신해서 번제로 바쳤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아브라함은 바보중에 참 바보입니다.
자식을 번제로 바칠 부모는 없습니다.
자식을 바칠 바에야 자기를 바칠 겁니다.
선택의 가능성이 있었다면 아브라함은 당연히 이삭이 아니라 자기를 번제로 바쳤을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삭을 지정했고, 아브라함은 그 명령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모든 것이었습니다.
자기보다 이삭이 그에게 더 중요했습니다.
그의 미래는 오직 이삭에게 달렸습니다.
이삭이 없으면 자기의 재산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땅의 티끌처럼 늘어나게 해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친다는 것은 자기의 미래를 포기하겠다는 결단입니다.
이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아버지라고 말하는 겁니다.
아브라함은 세상적으로는 바보처럼 보였지만 신앙의 세계에서는 참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도 바보입니다.
모세는 히브리민족의 혈통으로 출생했지만 당시 애굽왕 바로의 히브리민족 말살정책으로 강물을 버려졌습니다.
다행히 나일강에서 목욕하던 바로의 딸에 의해 발견되어 바로의 궁중에서 자랐습니다.
역사가에 따라 조금은 다르지만, 계속 바로의 궁중에 있었다면 바로는 아들이 없었기에 모세가 이집트의 정권을 붙잡을 수도 있었습니다.
모세에게는 원하기만 하면 가질 수 있는 세상의 부귀와 영화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것을 다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을 당하는 것을 더 기뻐하며 그 길을 선택했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
- 히브리서 11장24∼26절 -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했을까요?
"모세는 바보 아냐"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모세는 바보처럼 공주의 아들보다 동족 히브리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모세만이 바보가 아닙니다.
물매돌로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도 바보입니다.
다윗은 정말 바보같은 짓을 합니다.
아버지의 부탁을 받고 형들에게 도시락을 가지고 간 다윗은 골리앗 장수가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하는 장면을 목격하니다.
다윗은 사울 왕에게 자신이 직접 나가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다윗의 형들이 다윗을 책망했고 사울 왕도 그를 만류했습니다.
사실 다윗은 골리앗의 적수가 될 수 없는 어린 소년에 불과했습니다.
당시 다윗의 키는 1m 50cm정도였고, 골리앗의 키는 2m 90cm이나 되었습니다.
골리앗은 다윗보다 거의 두 배나 컸습니다.
물론 싸움은 키가 크다고 이기는 것은 아닙니다.
키가 작아도 싸움을 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인 골리앗은 키만 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장수였습니다.
그에 비해 다윗은 전혀 전쟁 경험이 없는 목동에 불과했습니다.
더윗은 전쟁놀이하는 바보처럼 막대기 하나와 물맷돌 다섯 개를 가지고 골리앗과 싸우러 나갔습니다.
반면 골리앗은 철갑옷에 칼과 창과 단창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윗이 물맷돌로 거인 장군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그의 목을 베었습니다.
바벨로 포로시대에 살았던 다니엘과 세 젊은이들(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도 바보입니다.
그들은 20대 건장하고 멋진 청년들이었습니다.
왕의 총애를 받고 그야말로 장래가 촉망되는 멋진 유대의 엘리트들이었습니다.
왕이 그들을 높여준 만큼 왕의 명령을 잘 받들고 다른 사람에게 모범을 보여줄 것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지사였습니다.
당시 바벨론은 비록 세계적인 대제국이었지만 인종과 언어가 제각기 달라 쉽게 분열될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제국의 내부 결속을 위해서 종교처럼 국민의 정신을 통합시키는 데 효과적인 수단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신상 건설 사업과 숭배법을 선포했습니다.
그리하여 높이가 무려 육십 규빗 (30m), 나비가 여섯 규빗 (3m)이나 되는 금 신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의 세 친구들을 위시한 나라의 모든 공직자들을 신상의 낙성식에 불러들여서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라고 명령했습니다.
" 너희는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에
엎드리어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라"
- 다니엘 3장5절 -
그러나 세 청년들은 왕의 명령을 거부하고 우상에게 절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들은 체포당해 왕 앞에 끌려왔습니다.
왕은 대노했지만, 인재를 아끼는 왕은 그들을 설득했습니다.
다시 한번 기회를 줄 테니까 금 신앙 앞에 엎드려 절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왕의 호의마저도 거절했습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 다니엘 3장17∼18절 -
유다지방에서 같이 포로로 끌려왔던 친구들은 "지만 잘났어. 저 불티가 우리한테 튈지도 모르는데 꼭 저렇게 해야 해" 하는 말을 했을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올라간 자리인데 그냥 머리를 한 번 꾸벅하고 지나면 되는데 그것을 하지않는세 청년들을 바보라고 손가락질 했을 것입니다.
한번 타협하면 잘살 수 있는데, 지금까지 이룬 것을 다 누리며 살 수 있는데 그것을 타협하지 못하는 바보라고 수군거렸을 것입니다.
세 청년들이 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답변을 하자 느부갓네살 왕은 “분이 가득하여 낯빛이 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평소보다 칠 배나 더 뜨겁게 타오르는 풀무 불에 그들을 던지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사건이 극적으로 반전되었습니다.
세 청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붙든 사람은 불에 타 죽었는데, 세 청년들은 멀쩡하게 불 속에서 살아난 것입니다.
"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느부갓네살이 맹렬히 타는 풀무불 아귀 가까이 가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에서 나온지라
총독과 지사와 행정관과 왕의 모사들이 모여 이 사람들을 본 즉
불이 능히 그들의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을리지 아니하였고
겉옷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 탄 냄새도 없었더라"
- 다니엘 3장25∼28절 -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세상적으로 보면 분명 바보같은 행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신앙의 세계에서 하나님을 높이는 행동이었습니다.
육신의 부모에게 인정받는 것이 너무나 소중하듯이,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 아버지께 인정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성공해도 세상에서 아무리 많은 것을 누려도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하면 그 삶은 항상 무엇인가 빠지는 듯한 인생이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성경의 인물들의 공통점은 모두 당대의 사람들에 눈에 바보같이 보였습니다.
노아, 아브라함, 모세, 다윗, 그리고 다니엘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등, 성경에 나오는 신앙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당대의 사람들에 눈에는 바보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세상과 타협하여 살면 편하게 살 수 있는데 그들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갑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갑니다.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말씀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깁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바보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은 시작할 때는 손해 같지만 하나님이 헛되게 하지 않으십니다. 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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