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과 칼럼

성경의 인물-에바브로디도(3)

가족사랑 2024. 8. 16. 18:06

- 바울과 함께 군사된 에바브로디도 -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나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저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자를 긍휼히 여기셨고

저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저를 보낸 것은 너희로 저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저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 빌립보서 2장 2530절 - 

 

 

주후 156년경  황제 트라얀 시기에 아시아 지방에서 기독교 박해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정부는 명확한 이유없이 몇 명의 기독교인을 처형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당시 안디옥 감독 익나티우스와 동시대 인물이었던 폴리캅은 사도요한의 제자였습니다.

당시 폴리캅이 섬겼던 교회는 서머나 교회였고 그는 그곳의 감독이었습니다.

서머나교회는  폴리캅의 체포를 걱정해  폴리캅을 숨겼습니다.

그러나 당국이  그의 하인을 고문하여 그가 숨은 장소를 알아내 폴리캅을 체포했습니다.

체포된 폴리캅이 암피트리테 (amphitrite) 사형장에 들어서자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오, 폴리캅! 남자답게 강하고 담대하라! 고통에서 담대하라!”

경기장에 있던 많은 기독교인들은 그에게 들려진 음성을 들었습니다.

당국자들은 86세된 노인인 폴리캅을 처형하는 것 보다는 회유를 통해 그가 신앙을 부인하도록 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총독이 폴리캅에게 물었습니다.

‘나이를 고려하여 봐줄 테니,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황제에게 희생제를 드리는 것이 어떻소?’

이 말을 들은 폴리캅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86년 간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겼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나를 한 번이라도 부인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어떻게 모든 사악한 것에서 나를 보존하시고

나를 구원하실 나의 왕을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화가 난 총독은 야생동물의 먹이가  되게 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폴리캅은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저의 뜻은 불변합니다. 환난을 받는다고 해서 선이 악으로 변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총독은 화가 치밀어서 그를 화형에 처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그러자 폴리캅은 “당신은 나에게 불로 위협합니다. 아쉽지만 그 불은 단지 얼마동안만 저를 불태울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심판의 불은 영원토록 불경건한 자들을 불태울 것임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지체하지 마십시오. 원하시는 대로 야생동물이나 불을 지피십시오.

무엇을 명하시든지 저는 결코 저의 주님이신 구세주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불을 피우기 위해 건초들을 놓는 것을 보자 폴리캅은 옷을 벗고 신발을 벗었습니다.

장작더미에 세워둔 기둥에 그의 손에 못을 박으려 하자 저항하지 않고 태연하게 받아들이는 그의 자세에 사형관들도 감동을 받고 못을 박지 못하고, 줄로만 그의 손을 뒤로 묶었습니다.

그리고 불을 지피고 화염이 치솟자, 폴리캅은 외쳤습니다.

“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영광의 아들의 아버지시여!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모든 사람들보다 뛰어나신 당신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영원하신 제사장, 사랑하신 성자, 그리고 성령님께

영광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합니다. 아멘.”

이 기도가 끝나자 화염은 그를 삽시간에 불태웠습니다.

이때가 주후 168년이었습니다.

 

 

 

 바울과 함께 군사된 자(fellow soldier) 에바브로디도

사도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다섯 가지 호칭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나의 형제(my brother) ”라고 합니다.

둘째로,  함께 수고한 자(fellow worker)라고 합니다.

셋째로,   "함께 군사된 자(fellow soldier)"라고 합니다.

넷째로,  “너희 사자(your messenger)라고 합니다.

다섯째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care of my needs)라고 합니다.

 

오늘은 세 번째 '함께 군사된 자'입니다.

새번역성경은 '군사'를 '전우(戰友)'라고 번역했습니다.

이 표현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대적자들과 계속해서 싸우는 일꾼을 가르킵니다.

로마 군인들은 자신들이 군인임에 대하여 대단한 자부심과 소명 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군인임을 자랑스러워했고, 자신들이 로마 제국의 수호자임을 자각하고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은 마귀와 죄와 세상과의 영적 전쟁입니다.

성도는 영적으로 그리스도의 군병들입니다.

군인들은 전쟁 때를 위하여 잘 훈련되어야 합니다.

군사들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무장을 해야합니다.

성도들도 영적 무장을 해야합니다.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에베소서 6장11∼17절)

 

군인에게 필요한 것은 잘 훈련되는 것과 더불어 죽기까지 복종하는 것입니다.

군인은 상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하며 죽음의 싸움터에도 용기 있게 나가야 합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군사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잘 훈련된 성도는 어려운 일이 닥쳐도 흔들리지 습니다.

이 땅에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영적 전쟁터에서 산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전쟁을 수반합니다.

세상은 하나님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적대적입니다.

물론 우리들의 싸움은 혈과 육에 속한 것이 아니니 세상 사람들에 대해 적대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그들 뒤에서 작용하는 악한 영의 세력과 다투는 전쟁입니다.

이 싸움은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고 전우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빌리보교회 성도들에게 '에바브로디도는 영적 싸움터에서 나와 함께  전우로 있습니다'고 말합니다.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

에바브로디가 영적 싸움터에서 바울의 전우(戰友)로써  영적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30절을 보십시오.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에바브로디도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다가 거의 죽을 뻔하였다고 말합니다.

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에바브로디도가 자신을 위해서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다하지 못한 봉사를 채우려고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바브로디도는 영적 전쟁터에서 사도 바울의 전우로서 충성을 다한 사람이었습니다.

런던에 있는 미술관에 가면 군인을 모델로 해서 그 당시의 어지러운 모습을 그려놓은 유명한 그림이 하나 걸려 있다고 합니다.  

그 그림 아래에는 "충성"이라는 제목이 붙여져 있답니다.

그렇습니다.

 주위의 그 어떤 환경과 여건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가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충성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충성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이렇게 하든지 또는 저렇게 하든지 그것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또 남들이 알아주든지 몰라주든지 그것에도 관심하지 않습니다.

그저 은밀히 보시는 주님께서 모든 것을 알아주신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 어떠한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든든히 서서 충성합니다.

참으로 충성된 자는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용기 있게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있을 것이다. 

에바브로디도가 그충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 에바브로디도처럼 충성된 전우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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