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과 칼럼

성경의 인물-에바브로디도(1)

가족사랑 2024. 8. 4. 16:09

에바브로디도( Ἐπαφρόδιτος)

 

‘에바브로디도'라는 이름은 로마 제국 시대에 아주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바울과 동시대의 인물로서 이름을 남긴 ‘에바브로디도’가 다수 있습니다.

빌립보교회의 초대 감독, 트라키아의 안드리아카(Andriaca)교회의 초대 감독, 로마와 나폴리 사이에 소재한 테라치나(Terracina)교회의 초대 감독이 있었는데, 이들이 모두 동일 인물이었는지는 명확치 않습니다.

<사도전승>이란 책을 남겼고, 로마에서 활동하다가 주후 235년에 순교한 히폴리투스(Hippolytus)는 안드리아카(Andriaca)교회의 초대 감독 에바브로디도를 그가 작성한 70문도의 목록에 포함시켰습니다.

 

 

이밖에도 로마의 에피그라피코 박물관(Museo Epigrafico)에 소장된 비문들 가운데 에바브로디도의 것이 있습니다.

이 비문의 주인공은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에파프로디투스’로서 주후 20-25년 사이에 출생하여 95년경에 처형당하였습니다.

이 비문의 주인공은 황제 클라우디우스의 해방노예(Augusti libertus)로서 황제 네로의 비서관이었으나 네로의 자살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황제 도미티아누스로부터 처형당하였습니다.

 

 

바울과 동시대의 인물로서 또 다른 사람은 문법학자 에바브로디도였습니다.

그는 출생연도나 사망시기로 볼 때 네로의 비서관과 동일한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 사람은 로마로부터 지원을 받아 유대인 <고대사>와 <유대전쟁사>를 저술한 유대인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와 해방노예출신의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도스(Epictetos)의 후견자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빌립보교회 - 빌립보서

빌립보에 교회가 세워진 것은 바울의 2차 전도여행 기간입니다.

아시아(지금의 터키)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힘을 썼던 바울은 어느 날 환상 가운데 "마게도냐로 건너와 우리를 도우라"(사도행 전16장9절)고 말하는 마게도냐 사람의 요청에 따라 유럽으로 건너가 처음으로 세운 교회가 빌립보 교회입니다.

바울은 당시 디모데, 누가와 함께 빌립보를 방문하였습니다.

그곳에서 바울 일행은 자주색 옷감 장수인 루디아와 점치는 소녀, 빌립보 옥의 간수와 그 가족에게 전도하였는데, 그들이 회개한 후 루디아의 집에서 모이기 시작한 것이 빌립보 교회의 시작입니다.

이후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선교사업에 지속적으로 재정적인 도움을 주었습니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빌립보서 4장15∼16절)

 

바울은 3차 전도 여행 때 빌립보 교회를 두 차례 방문하였습니다.(사도행전20장15절)

이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후 죄수의 몸으로 로마의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빌립보 교회는 에바브로디도를 보내 바울의 필요를 돕게 됩니다.

그러나 에바브로디도가 병에 걸려 빌립보 교회의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빌립보서2장26절)

에바브로디도가 병에 걸린 것은  바울에게도 근심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에바브로디도의 병이 낫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오히려 복음의 진전을 보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동안 빌립보 교회가 보낸 재정적 지원에 감사하며 편지를 보냅니다.

그 편지가 빌립보서입니다.

 

 

빌립보서는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AD 62년에 써 보낸 편지입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에 보낸 이 편지를 감옥에서 썼습니다.

그래서 옥중서신이라고 합니다. 

빌립보서에는 바울의 개인적인 느낌과 생각들, 그리고 애뜻한 표현들이 상당히 많이 들어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가장 사랑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빌립보교회는 다른 지역의 교회들보다 가난한 교회였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가장 애를 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 빌립보서 4장14∼15절 -

 

바울은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에 빨리 보낸 후에 자신도 곧 가보려고 했었지만 그 일이 성취되지 못했습니다.

대신에 에바브로디도를 보내려고 결정했습니다. 

 

- 에바브로디도(러시아에 있는 작자 미상의 그림) -

 

- 빌립보교회의 성도 에바브로디도 -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나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저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자를 긍휼히 여기셨고

저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저를 보낸 것은 너희로 저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저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 빌립보서 2장 2530절 - 

 

에바브로디도(영어: Epaphroditus, 헬라어: Ἐπαφρόδιτος)는 빌립보 지역에 있었던 초대교회의 성도였습니다.

에바브로디도란 이름은 아름다운’(lovely) 혹은 매력적인’(charming)이란 뜻을 가진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에서 나왔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의 편지(빌립보서)를 빌립보 교회에 전달한 사람입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교회가 옥중에 있는 바울을 위해 파송한 평신도 대표였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빌립교회가 거금과 중대책임을 맡길 만큼 믿음직한 사역자로서 실로 그는 목숨 걸고 자신의 임무를 수행한 사역자였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사도 바울이 기록한 빌립보서에 두 번 등장합니다.

(1)빌립보서 2장25~30절.

(2)빌립보서 4장18절.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에바브로디도에 대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많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그의 가족관계, 신앙의 계기, 직분 등 직접적인 기록이 없습니다.

다만 에바브로디도가 언급될 때의 상황을 볼 때, 그는 감옥에 수감된 바울을 돕기 위한 조력자로 바울의 편지를 빌립보 성도들에게 전하는 전달자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바울은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투옥되어 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듣게 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바울을 몹시 걱정하여, 바울을 위해서 물품과 조력자를 보내고자 했습니다.

바울에게 물품을 전달하고, 곁에서 옥바라지해줄 사람으로 ‘에바브로디도’가 선정되었습니다(빌립보서 4장10~18절).

마케도니아에 위치한 빌립보 교회에서 바울이 수감된 로마까지의 거리는 2,000km가 넘습니다.

거기다 치안이 열악해 길에 강도와 도둑이 우글거렸던 시대적 환경을 생각하면, 선교 비용과 물품을 들고 수천 킬로가 넘는 거리를 이동한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 일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빌립보서 4:16~19).

무사히 도착하더라도 로마인들이 바울에게 사형 판결을 내린다면, 곁에서 그를 도운 자신 역시 처벌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에바브로디도는 옥에 갇힌 바울을 보살피기 위해 그 위험한 여정에 기꺼이 발을 내디뎠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목숨을 건 여정을 거쳐 바울과 만났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을 돕기 위해 찾아온 에바브로디도를 하루라도 빨리 다시 빌립보에 보내려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에바브로디도가 자신에게 오던 중, 장거리 이동으로 인해 중병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에바브로디도의 병세가 어느 정도로 나빴는지, 그리고 이제 어느 정도나 좋아졌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가 일단 위험한 고비는 넘긴 것 같습니다.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고 그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27절).

바울은 자신의 감옥 생활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중병을 앓았던 에바브로디도가 더 이상 감옥 생활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바울은 여전히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중병을 앓았던 에바브로디도의 안위와 형제로 인해 근심하는 빌립보 성도들을 염려해, 에바브로디도를 돌려보내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에게 에바브로가 교회 공동체에서 어떤 사람인지를 구체적으로 말해줍니다.

25절입니다.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새번역 성경은 25절을 이렇게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 형제요 동역자요 전우요 여러분의 사신이요 내가 쓸 것을 공급한 일꾼인 에바브로디도를 여러분에게 보내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영어 성경 NIV 번역입니다.

"But I think it is necessary to send back to you Epaphroditus, my brother, fellow worker and fellow soldier, who is also your messenger, whom you sent to take care of my needs."

헬라어 성경은 25절을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Ἀναγκαῖον δὲ ἡγησάμην Ἐπαφρόδιτον τὸν ἀδελφὸν καὶ συνεργὸν καὶ συστρατιώτην μου, ὑμῶν δὲ ἀπόστολον καὶ λειτουργὸν τῆς χρείας μου, πέμψαι πρὸς ὑμᾶς,

 

에바브로디도는 자기 사명을 조금의 불평도 없이 행했습니다.

얼마나 자기 일에 헌신적이었는지, 그는 로마에서 생명이 위중할 정도로 중병이 들었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되었습니다.

그런 에바브로디도를 바울은 다섯 가지 호칭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나의 형제”라고 합니다.

둘째로,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함께 수고한 자라고 합니다.

셋째로,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함께 군사된 자"라고 합니다.

넷째로,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너희 사자라고 합니다.

다섯째로,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고 합니다.

 

1. 내 형제(my brother) 에바브로디도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나의 형제(my brother)”라고 합니다.

형제(兄弟)는 본인으로부터 방계 2촌 남성 혹은 형제와 자매, 남매를 통틀어 이르는 말입니다. 

바울이 에바브로디도를 '내 형제'라고 한 것은 성(姓)이 같기 때문에 가문이 같기 때문에 형제가 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 때문에 형제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무리에게 말씀을 전하고 계실 때 그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왔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말했습니다.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

이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마태복음 12장50절).

바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3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있을 때 주님이 아나니아를 보내어 그를 안수케 하시매 보게 되고 성령이 충만케 하셨습니다.

이 때 아나니아는 사울을 가리켜 “형제 사울아!”(사도행전 9장17절)라고 불렀습니다.

성경에서 보여주는 성도간의 호칭은 「형제자매」입니다.

기독교에서 형제는 가장 친밀하고 가장 가까운 사이입니다.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사이입니다.

기도를 함께 나누고 교제를 함께 나누고 봉사를 함께 나누고 물건도 함께 나누고 생명도 함께 나누는 사이입니다.

'형제'에 해당하는 아델폰( ἀδελφὸν)은 한 어머니의 자궁에서 태어난 이들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명사형은 아델포스() αδελφος)입니다.

히브리서 2장11절 말씀입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주님은 자기 안에서 거룩하게 하신 우리를 형제(αδελφός:아델포스)’라고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에는 친형제배다른 형제의형제 등이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형제로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바울과 함께 신앙을 공유하며 하나님 가족의 일원으로서 깊은 형제사랑을 나누는 성도였습니다.

바울의 감옥 생활을 도와주기 위해서 빌립보 교회로부터 파송받은 에바브로디도는 한낱 심부름꾼이 아니라 바울의 형제와 같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누구를 '형제'라 부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의 씨가 처음 뿌려지던 시절에 있었던 일입니다.

경상북도 영주군 순흥 지방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기독교가 전파될 당시만 해도 백정은 천민이어서 어른이 되어도 아이들이 하대를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백정 한 사람이 예수를 믿겠다고 했습니다.

선교사는 바로 그 백정을 입교시키고 그를 '형제'라고 불렀습니다.

주변에서는 그를 형제라 부르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는 그를 형제라 부르기를 고집했습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기독교는 야만의 종교요, 서양 선교사는 예법을 모르는 야만족이라고 해습니다.

예배당에는 상놈들이나 갈 곳이지 양반은 갈 곳이 못된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선교사의 결정은 옳은 결정이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의 피로 다시 태어난 사람입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모두가 그리스도의 형제입니다.

'형제'라는 하나님 앞에서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천한 자라고 하는 사람도 귀한 자로 높아지는 곳이 교회입니다.

귀한 자라고 뽐내는 사람도 낮아져서 하나가 되는 곳이 교회입니다.

높은 자는 낮아져야하고, 낮은 자는 존귀해 져야 합니다.

바울이 에바브로디도를 '내 형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누가 우리의 형제입니까?

예수님은 '주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들이 내 형제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서로 서로에게 형제의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의 형제들과 함께  순례의 길을 걸어갑니다. 평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