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156)
「하나님께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μόνῳ σοφῷ θεῷ, διὰ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ᾧ ἡ δόξα εἰς τοὺς αἰῶνας, ἀμήν.
(킹제임스KIV) To God only wise, be glory through Jesus Christ for ever. Amen.
(영어NIV) to the only wise God be glory forever through Jesus Christ! Amen.
(새번역)) 오직 한 분이신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영원무궁 하도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
(한글킹제임스) 홀로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광이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개정개역4판)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1.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 θεῷ ἡ δόξα εἰς τοὺς αἰῶνας)
고린도 교회는 믿음에 열심이 있었지만 많은 문제들로 혼란한 가운데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 등으로 나뉘어 한 공동체를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성적인 타락과 음행의 문제, 성도 간에 이권을 놓고 세상법정에 고발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결혼에 관한 문제,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어야 하는가 먹지 말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그 외에 성도들이 우상을 섬기며 귀신에게 제사하는 문제, 여자가 머리를 가리는 문제, 성찬의 문제, 성령의 은사 문제 등으로 성도가 서로에게 대하여 그리고 사회에 대하여 덕이 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문제해결의 방법으로 다음과 같이 권면하였습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 고린도전서6장19∼20절 -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 고린도전서 10장31절 -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유익에 관심을 가질 때는 분쟁과 다툼만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에 관심을 가질 때는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잡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이란 주제는 특별히 교회의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있어서 매우 실제적인 해답이 될 수 있습니다.
교회와 성도는 마땅히 “하나님의 영광”에 일차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또한 모든 사역의 시작과 마지막뿐만 아니라 문제해결의 시작과 마지막도 그 주제는 하나님의 영광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완전하고, 다른 피조물과는 구분되고, 무한히 위대하신 하나님의 속성이 드러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완전하고 무한히 위대하신 속성, 즉 하나님의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거룩이라고 말합니다.
그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겉으로 표현되는 것을 ‘영광’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잘 드러난 말씀이 이사야 6장입니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 이사야 6장1∼3절 -
스랍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그분을 ‘거룩하다’고 선포했습니다.
온 땅에 충만한 그분의 거룩하심을 ‘영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영광(榮光)”이란 의미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말은 “카보드"(כָּבוֹד, kabod)라는 명사이며, “영광스럽다”라는 형용사형은 “카베드”(כבד)입니다.
“카보드”는 일차적으로 “물질적인 무거움”이나 “무거운 것” 혹은 “많은 양”을 의미합니다.
“영광(무거움)”이 사람에 대하여 비유적으로 사용될 때에는 그 사람의 탁월한 지위나, 능력, 가치, 중요성, 부유함 등을 두루 가리키는 낱말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명예와 존경을 받을 만하다”는 뜻도 가지게 됩니다.
이처럼 카보드는 무거운 것, 부(wealth)나 많은 재산, 풍부함, 부자, 또는 군중이나 많은 군대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습니다.
“영광" 즉 "카보드"(כָּבוֹד, kabod)가 하나님에 대하여 사용될 때에는 독보적인 탁월함으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거룩하심”(the Holiness of God)과 깊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본질적 속성으로서의 “하나님의 영광”은 사람들에 의해 더해지거나 감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출애굽기3장14절)로서 “영광의 하나님”이시며, “거룩하신 하나님”(the Holy God)이십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그의 영광으로 덮으시며, 그의 선하신 뜻에 따라 그의 영광을 그가 원하시는 사람들에게 나눠주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모든 영광의 근원이시며 분배자이십니다.
하나님의 본질적 내적 속성으로서의 "영광"은 당연히 여호와 하나님께만 속합니다.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리니 내 영광(카보드, כָּבוֹד)으로 말미암아 회막이 거룩하게 될지라”(출애굽기29장43절).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이르시기를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겠고 온 백성 앞에서 내 영광(카보드, כָּבוֹד)을 나타내리라 하셨느니라 아론이 잠잠하니”(레위기10장3절)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카보드, כָּבוֹד)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이사야6장3절)
신약성경에서는 구약의 “카보드(כָּבוֹד)”를 “독사(δόξα, doxa)”라는 낱말로 번역하였습니다.
“독사(dovxa)”는 원래 고대 헬라어에서 “생각”이나 “의견”을 의미하는 낱말이었습니다.
이 낱말이 신약성경에서 “영광”을 의미하는 낱말로 정착하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전 3세기 중반에 프톨레미 필라델푸스(Ptolemy Philadelphus285-246 B.C)는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 있는 그의 유명한 도서관에 비치하기 위하여 히브리어로 된 율법서를 헬라어로 번역하는 작업에 착수하였습니다.
이때 이 작업에 참여한 학자들의 숫자가 72명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이유로 이 헬라어 역본 성경을 셉투아진타(Septuagint, Septuaginta)라 부르게 되었는데, 셉투아진타는 라틴어로 <70>이란 뜻인데, 약기호로는 <LXX>로 표기합니다.
그 후로 율법서 이외의 구약성경책들도 계속해서 번역되어 주전 132년 경에는 모든 구약성경이 완전히 헬라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이후로 이 성경역본은 구약과 신약의 다리 역할을 하게 되는데, 기독교인들이 헬라어로 신약성경을 기록하면서 구약성경의 히브리어를 이 셉투아진타에 의거하여 헬라어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런 이유로 셉투아진타는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는 아주 소중한 성경역본이 되었습니다.
<셉투아진타>가 번역되었을 때부터, “독사( δόξα )”는 주로 구약의 히브리어 “카보드” (kabod,dwbk)가 가지고 있었던 의미들을 대신하게 되었으며, 신약에서 “영광”을 나타내는 대표적이고 일반적인 용어로 정착되었습니다.
또한 구약에서 “영광”이란 의미로 쓰였던 많은 히브리어들이 “독사 (δόξα, doxa) ”라는 낱말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이 쓰여질 때에는 <셉투아진타>의 용례에 따라, “독사(δόξα, doxa)”가 “영광”을 의미하는 낱말로 그대로 사용되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독사( δόξα , dovxa)”는 하나님의 신적인 본질로서의 존재양식이나, 그의 위대함, 그의 탁월한 능력, 권세, 명예, 명성 등을 의미합니다.
신약성경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서, 특히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고 권면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영광을 예배에서 선포할 때, 우리의 모든 삶에서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축복하는 모든 섬김에서, 감사하는 겸손이 우리로부터 흘러 하나님의 영광까지 다다릅니다.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고 우리를 권면하는 가장 친근한 성경 본문은 베드로전서 4장 10∼11절입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베드로는 우리에게 우리가 가진 모든 은사를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 사용하길 권면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전심으로 다른 사람에게 행한 섬김을 통해 영광 받으십니다.
특히 믿음의 형제들에게 행한 섬김을 통해 영광 받으십니다.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서 제1문답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Soli Deo Gloria)과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모든 행위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성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칼빈도 우리가 선택 받은 것뿐 아니라 우리가 존재하는 목적 그 자체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께 속하였고 하나님에 의해 완성되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구원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전 삶을 항상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권위 아래서,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2. 세세무궁(世世無窮)하도록 있을지어다(εἰς τοὺς αἰῶνας)
"에이스 투스 아니오나스(εἰς τοὺς αἰῶνας)-세세무궁하도록
세세무궁(世世無窮)이란 시간이나 공간 따위에 끝이 없음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영어로는 영원히(forever)입니다.
하나님은 지혜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권능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로마서16장26∼27절)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신다는 것은 “이 복음으로 우리를 견고하실 권능”을 지니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우리를 견고하게 하신다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갖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어떤 시험과 환난이 와도 흔들리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지키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마지막 심판대에 두려움 없이 서며 영원히 복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 수 있게 해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런 권능과 지혜의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돌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 보면, "영원히", "영원토록", "세세토록" "세세무궁토록" 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런데 개역개정성경은 이 단어들이 일관성이 없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신약성경 각권의 번역자가 달랐던 이유가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헬라어 원문상으로 볼 때에는 그 문구의 뜻이 보다 더 명확합니다.
이 문구들을 헬라어로 본다는 것은 신약성경에 나오는 진리를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줍니다.
우선, "영원히, 영원토록, 세세토록"에 들어가 있는 단어 "아이온(αίών)"에 대해서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헬라어 "아이온(αίών)"은 "시대(age, period,)" 혹은 "세대(generation)" 혹은 "세상(world)" 등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원래의 뜻은 "한 사람이 태어났다가 죽는 이 세상에서의 한 시기" 그리고 "다가오고 있는 다른 한 세상의 시기"를 의미합니다.
아이온(αίών)은 크게 "이 세상(this present age)"의 시기와 "오는 세상(the age to come)"의 시기로 구분됩니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에 나오는 "아이온(αίών)"은 단수로 나올 경우와 복수로 나올 경우에 그 의미가 다르게 번역되어야 합니다.
단수(아이온)로 나오면 그 의미는 "이 시대(세상)"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복수(아이오나스, αἰῶνας)로 나오면 "이 시대(세상)와 오는 시대(세상)"를 다 포함하는 개념이 됩니다.
그러므로 아이온(αίών)은 "세대동안(시대까지)" 혹은 "시대동안(세대까지)"라고 번역하는 것이 올바른 번역입니다.
그리고 "에이스 투스 아이오나스(복수)"는 "세대들동안(시대들까지)"라는 의미이므로 "영원히"라고 번역해야 좋습니다.
3. 아멘(ἀμήν)
'아멘(ἀμήν)'이란 단어는 히브리어 '아만'(אמן)에서 유래했습니다.
'아만'은 확증하다, 지지하다, 뒷바침하다를 뜻하거나 확립하다, 신실하다, 확실하다, 믿을 만하다 을 뜻하기도 하고, 확고하다고 알고 있다, 믿다, 확신하다의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대체로 이 단어는 확실한 사실 혹은 대상을 대하는 자세와 관련하여 의미가 정해집니다.
때문에 이 단어를 헬라어로 표현하면 주로 '믿음'을 뜻하는 '피스튜오(πιστεύω)'로 번역합니다.
이 단어서 파생된 '아멘'이란 단어도 '아만'의 연장선에서 '확실한', '확고한', '신실한', '진실한'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약에는 '아멘'이 무려 120회 이상 사용됩니다.
25회 '아멘'을 사용했던 구약에 비해 매우 많은 숫자입니다.
이는 구약을 지나 신약으로 흘러가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멘'이 보편적 용어로 자리잡았음을 말해줍니다.
신약에서의 '아멘'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복음서에서 사용된 '아멘'이고, 둘째는 서신서에서 사용된 '아멘'입니다.
복음서에서 사용된 '아멘'은 우리말 성경으로는 쉽게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말 성경에서 '아멘'은 "진실로(αμην)"로 번역되었습니다.
주기도문을 마무리하며 괄호 안에 기록된 마태복음 6장13장에서만 '아멘'이 한번 발견됩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하지만 헬라어로 '아멘'을 찾아보면 사본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100번의 '아멘'이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서에서 '아멘'은 크게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아멘'이 문장의 마지막이 아니라 처음에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구약을 시작으로 서신서까지 복음서를 제외하고 '아멘'은 대부분 문장의 마지막에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서에서 '아멘'은 항상 문장의 시작에 위치합니다.
두번째는 복음서에서 예수님만 '아멘'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서에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아멘'을 말하는 사람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마태복음 5장18절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가복음 9장1절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21장32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
요한복음 5장25절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헬라어 성경 아멘(αμην)을 개역개정은 "진실로"로 번역했습니다.
새번역은 이 부분은 "진정으로"로 번역했습니다.
이와 같이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아멘'을 외치고 나서 말씀을 시작했습니다.
요아킴 예레미아스(Joachim Jeremias)는 이같은 방법은 예수님이 처음으로 시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이전에도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없었고, 이후에도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이 방식으로 말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아멘' 할 수 있습니다.
한번 약속하면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이기에 하나님의 모든 것에 '아멘'으로 동의하고 수용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멘'이자 우리의 '아멘'이 됩니다.
서신서에서 '아멘'은 바울 서신이 15회, 베드로전서가 2회, 유다서에서 1회, 요한계시록은 8회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서신서가 사용하고 있는 '아멘'은 대부분 구약의 '아멘'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서신서는 대부분 동의하고 수용한다는 의미로 '아멘'을 사용했습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다른 사람의 말이 아니라 자신의 말에 대해 동의와 수용의 의미를 담아 '아멘'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구약에서 시편의 '아멘'이 보여준 모습과 같습니다.
예배와 찬양을 위해 '아멘'을 사용했던 시편과 같이 바울은 물론이고 서신서 저자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한 기도하는 내용에 '아멘'을 사용하였습니다.
바울은 서신서에서 여러번 '아멘'을 사용하였습니다.
로마서 1장25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로마서 9장5절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로마서 11장36절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로마서 15장33절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로마서 16장27절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갈라디아사 6장18절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에베소서 3장21절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골로새서 4장20절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아멘”이라는 말은 형용사적으로는 “확고하다”, “한결같다”, “참되다”는 뜻이며 명사형으로는 “신실함”, “진리”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아멘” 하는 것은 “진실로 그러합니다”,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바로 그것이 제 기도입니다.”라는 말이 됩니다. 이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하거나 그에게 순종과 충성을 다짐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의 기도에 화답하는 양식이었으며 자신의 기도의 진정성을 표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아멘'은 우리의 뜻을 하나님이 받으시고 이뤄주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취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아멘'이라는 말에는 인간의 모든 것을 배제한다는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이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완성된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약속대로 우리의 아멘이 되어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아멘이 되는 길은 참으로 험난했습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빌립보서2장6∼8절).
예수님은 아멘이 되기 위해 아멘의 삶을 살았고 우리의 아멘이 되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아멘'하는 우리들은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오시겠다 약속하신 예수님을 아멘으로 기다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아멘으로 예수님의 다시오심을 기다릴 때 아멘의 예수님이 반드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우리에게 임하실 것입니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 요한계시록 22장20∼21절 -
하나님께서 영세전부터 세상을 구원하실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계획을 선지자들을 통하여 알리셨습니다.
마지막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친히 이 세상에 보내셔서 그것을 온전히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을 통해서 모든 민족에게 알게 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모두 오늘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믿음의 사람은 이 사실을 깨달으며 이에 합당한 믿음의 응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삶의 자리가 어둡고 불안하며 우리의 삶의 여건이 여의치 못합니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며, 영원히 복된 하나님나라의 삶에로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해야 합니다.
더나아기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복된 삶을 살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평안!
※ 그 동안 로마서 강해를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로마서 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마서 강해(155)-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0) | 2024.06.08 |
---|---|
로마서 강해(154)-하나님께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0) | 2024.05.19 |
로마서 강해(153)-재무관 에라스도와 형제 구아도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0) | 2024.04.25 |
로마서 강해(152)-온 교회를 돌보아 주는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0) | 2024.04.19 |
로마서 강해(151)-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 (0) | 2024.04.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