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139)
내 친척 헤로디온에게 문안하라
「 내 친척 헤로디온에게 문안하라 나깃수의 가족 중 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아순그리도와 블레곤과 허메와 바드로바와 허마와 및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들에게 문안하라 빌롤로고와 율리아와 또 네레오와 그의 자매와 올름바와 그들과 함께 있는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 로마서 16장 11∼16절 -
바울은 7절에서 11절에서 여덟 명의 사람들에게 문안하라고 하는데 그 중에서 세 사람을 '내 친척'이라고 합니다.
안드로니고, 유니아, 헤로디온입니다.
학자들은 ‘내 친척(συγγενῆ, my relative)’이라는 표현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여러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첫째, 혈육의 친척.
둘째, 바울의 가까운 동료.
셋째, 다소 지역의 친한 시민.
넷째, 동족 유대인.
대부분 학자는 네 번째 해석을 취합니다.
일단 이들이 유대인이고, 바울과 함께 한 믿음의 동역자였기에 바울이 특별히 가까운 호칭을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은 주로 이방인을 향한 선교 활동을 폈지만 항상 그의 동족 유대인들에게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동족 대부분이 현재는 복음을 거절하고 잇지만 장래에 하나님께서 그들도 구원하실 것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되 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로마서 11장1-6절)
헤로디온(Herodion)은 헤롯 가문에 솟한 노예 출신의 자유인으로 추정됩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주인의 이름을 따서 자기의 이름으로 삼은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바울사도가 내 친척 헤로디온에게 문안하라 함은 바울과 가까운 동족으로 이스라엘 사람이거나 아니면 헤롯의 가계에 속한 유대계 그리스도인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바울이 친적이라고 표현 할 때는 보통 동족을 말 할 때입니다.
바울은 이 사람에게도 ‘내 친척’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자신의 ‘동포’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나깃수의 가족 중 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
. ‘나깃수(Ναρκίσσου τοὺς, Narcissus’는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측근 중 한 사람으로 네로가 즉위한 지 얼마 안 되어 죽임을 당합니다.
나깃수가 죽임을 당한 후 그의 가문은 황제 가문으로 흡수되었다고 합니다.
바울은 이들과 친분이 있다기보다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정도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나깃수(Narcissus)라는 인물에 대하여 많은 주석 가들은 '나르킷수스' 라고 합니다.
이 사람은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의 노예 신분으로 있다가 해방된 자유인으로 권모술수에 능한 부자였다고 합니다.
'나깃수'는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치하에서 권력을 휘둘렀던 자로 주후 54년 네로가 즉위한 직후 네로의 모친 아그리피나의 미움을 사서 처형당한 인물입니다.
나깃수의 재산은 몰수되어 그의 노예들은 황제의 소유로 예속 되었습니다.
나깃수의 노예들은 황제 가문의 다른 노예들과 구별이 되어서 '나르키시아니'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나깃수는 권모술수에 능하고 극악무도한 사람으로알려져 있습니다.
'나깃수'는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았지만 그의 가족 중 일부와 노예들은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깃수의 가족 중 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칼빈은 "하나님의 은혜가 온갖 종류의 사악으로 들끓는 나깃수의 집에까지 들어간 것은 의미가 깊은 일이며 놀랍고 대단히 경이로운 일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신분에 관계없이 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을 자들에게 측별한 관심과 사랑을 갖고 기회 있을때마다 그들에게 문안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다양한 성도들과 함께 일했습니다.
그들의 협조를 받아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위력이고, 교회의 다양성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환경에서 누구를 보며 살았는가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본대로 닮아 가기 때문입니다
나깃수의 가정에서 그 악독한 모습을 보고 살았던 사람들이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는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그들 중에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도 있었다는 것은 복음의 위력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알 수 있게 합니다.
곤당골교회 이야기
- 사무엘 무어 선교사와 백정 박성춘 -
1893년 서울에서 새문안교회에 이은 두 번째 장로교회가 시작됐습니다.
이름하여 곤당골교회(서울 승동교회 전신)입니다.
지금의 관철동과 종로·을지로 1~2가 일대가 곤당골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엔 경성부 미동이라고도 했습니다.
곤당골교회는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신분질서 타파와 인권운동의 시작이 이 교회로부터 비롯됐기 때문입니다.
당시 조선은 양반, 중인, 상인, 천인, 네 계급의 신분질서 사회였습니다.
10%에 불과한 양반 계급에 속하지 않으면 사람 구실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 가운데 기생, 무당, 광대, 포졸, 갖바치, 고리장, 백정은 소위 ‘7 천인(賤人)’으로 취급 받았습니다.
특히 백정은 인도 카스트계급제도의 가장 아랫 계급인 불가촉천민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백정은 이름조차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조선에 이 신분질서를 무너뜨리는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양반과 상놈이 뒤섞여 교제를 하고 다 같이 하나님 백성임을 고백한 뒤 만왕의 왕 예수를 따랐습니다.
봉건적 질서를 사수하려는 수구세력에겐 대역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곤당골교회는 한걸음 더 나아가 백정 (白丁) 도 하나님 백성으로 인정하고 축복했습니다.
※ 백정(白丁)은 고대부터 내려오던 한반도에 있었던 계층에 대한 호칭이다. 현대의 인식으로는 옛날에 소나 돼지 등 동물을 잡고 해체해서 파는 일을 했던 소위 도축업자로서, 조선시대에는 평민 하류에 속해 천민인 노비보다 사회적 인식이 나빴으며, 조선 전기 중대한 사회문제로 취급받았다.
곤당골교회의 시작은 ‘백정 전도의 개척자’ ‘백정 해방운동의 지도자’로 불리는 사무엘 무어 (1846~1906) 선교사였습니다.
무어는 46세 늦은 나이에 아내와 함께 입국했습니다.
그 무렵 선교사들이 정동 미국 공사관을 중심으로 모여 살았으나 무어는 백성 속에 깊숙이 들어가 선교하겠다며 민가에서 살며 조선말을 배웠습니다.
알렌, 언더우드 선교사 등이 안전지역 내에서 양반 등 상류층 전도를 이어갈 때 그는 철저히 현지화 선교로 임했습니다.
‘조선예수교장로회 사기 상권’은 이에 대해 ‘그때 선교사 모삼열(무어)이 경성 미동에 거주하면서 아직 방언을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열심히 공부하여 매일 신도와 함께 시가 전도를 하니, 당시 함께 다닌 조사는 김영옥, 천광실이고…모 목사는 신덕과 자선이 가득하여…믿든지 안 믿는지 상관없이 모두들 그를 어진 사람이라 칭찬하고 그의 집은 인의예지가 있는 집이라 일컬었다’고 기록했습니다.
무어는 당시 원고 없이 한국말로 설교하는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초가에 살며 쌀밥과 김치로 식사하고, 상인 및 천인과 어울렸기 때문에 언어 향상이 빨랐습니다.
또 수 주 만에 식모를 전도하고 매일 20~30명씩 평민을 접촉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첫 조직교회가 곤당골교회였습니다.
영국 출신 감리교 목사이자 종교신학자인 제임스 헌틀리 자료에 따르면 ‘창설 교인은 16명이었고 첫 해에 43명의 교인이 모이는 교회로 성장시켰다’고 했습니다.
무어는 조선 최초의 근대식 병원 제중원에서 정기적으로 설교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책임자 올리버 에비슨 선교사와 협력했다.
1894년 미동 권역 관자골(현 관철동)에 사는 박가라는 백정이 장티푸스에 걸려 사경을 헤맸습니다.
무당에게 굿을 청했으나 효험이 없었습니다.
그 무렵 박가의 예닐곱살 된 아들 봉주리가 곤당골교회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봉주리는 무어 목사에게 울며 호소했고, 무어 목사는 심방 뒤 에비슨에게 알려 목숨을 살렸습니다.
이를 계기로 그는 무어 선교사가 지도하는 곤당골교회에 출석하였는데, 그곳 양반 교인들이 “백정과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없다.”며 박성춘을 다른 곳으로 보낼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하지만 무어 선교사는 ‘만민평등’을 내세우며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에 양반 교인들이 홍문서골(홍문동)로 교회를 분립해 나갔습니다.
그는 서울, 수원, 평택, 양주, 포천 등지의 백정 마을을 다니며 전도하였고, 1년 사이에 백정과 천민 출신들로 곤당골교회가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이후 경기도 수원에도 백정들이 교회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기독교를 통해 ‘만민평등’의기치를 터득한 박성춘은 백정 해방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이름도 없던 백정 박가가 훗날 기독인권운동가 박성춘( (朴成春, 1862~1933)이고, 그의 아들 봉주리는 한국인 첫 양의( 洋醫)박서양(1887~1940)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그들의 과거의 모습과 관계가 없이 한마음이 됩니다.
한 형제로서 뜻을 합하여 함께 일을 하고 같은 길을 가는 위대함이 있습니다.
과거에 어떤 모습으로 살았던지 상관이 없습니다
지금 어떤 신분으로 살든지도 상관이 없습니다
부자이든지, 가난한자이든지도 상관이 없습니다.
잘났든지 못났든지 그것도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그런 조건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위대한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 모두는 거룩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천국 시민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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