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과 칼럼

"자네에게 회사의 관리를 맡기고 싶은데 가능하겠나?"

가족사랑 2022. 6. 7. 14:36

일기예보에 없던 강한 돌풍과 비가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작은 원룸에서 사는 한 청년이 자신이 일하는 회사 창고의 화물들이 걱정되었습니다.

청년은 어릴 적 가난했던 형편으로 인해 남들보다 일찍 사회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는 남들이 흔히 말하는 좋은 직장은 아니지만 창고에서 상·하차 하는 일에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 날은 들어온 화물이 너무 많아 일부를 창고 밖에 두고 퇴근했습니다.

퇴근 후 집에서 적녁을 먹고 쉬고 있는데 갑자가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청년은 갑자기 내리는 비와 돌풍에 당황하게 되었습니다.

청년은 퇴근하면서 혹시 비가 올리지 몰라  방수포로 물건을 꼼꼼히 여며놓긴 했지만 비바람이 신경 쓰였습니다.

그래서 청년은 늦은 시간이었지만 다시 회사 창고로 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청년이 화물에 씌워놓은 방수포가 바람에 밀려 벗겨지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청년은 방수포를 감싸고 묶은 로프를 몇 겹으로 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비에 쫄딱 젖고 있을 때렸습니다.

화물이 걱정된 회사 사장이 창고로 나왔습니다.

사장과 청년은 세찬 비를 맞아가면서 늦은 밤까지 화물을 방수포로 감싸고, 로프도  몇 겹 더 둘러  마무리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출근하니 사장이 청년을 불렀습니다.

"자네에게 회사의 관리를 맡기고 싶은데 가능하겠나?"
청년은  깜짝 놀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사장님, 전 제대로 된 경력도, 학력도 부족한데요." 

그러자 사장이 말했습니다.

 "자네가 어제 보여준 모습은 그런 것들을 훨씬 뛰어넘고도 남으니 걱정하지 말고 맡아주게나!"

 

 

 

청년에게 벌어진 일은 단순히 '행운'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일들은 성실한 행동과 노력에 따른 당연한 '결과'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성실성(conscientiousness)이  ‘성취’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성실성이란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성실하게 노력하고 계획하는(planful) 성향을 뜻합니다.

충동을 억제하고(impulse control) 목적 지향적(goal-directed)인 성향, 만족감을 지연시키는 것(delay gratification)을 뜻합니다.

 

 원래 성실은 일부러 잔꾀를 부리거나 거짓된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목표를 향해 매진하고 노력하는 성품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성실은 후자의 어감이 더 강합니다.

바람직한 근로자의 자질로 전용되고 있습니다.

땀을 흘리며 일하는 청년을 보고 ‘성실한 청년이로군!’이라고 하거나, 일을 체계적으로 착착 진행하는 직원을 보고 ‘성실’하다고 평가하는 것입니다.

마치 ‘일개미’ 같은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게다가 성실이 늘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사회적 믿음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성실은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는 성품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면접장에서나 으레 하는 형식적인 말에 불과하다는 식입니다.

요리조리 유연한 태도와 초지일관 성실한 태도를 반대의 개념으로 두기도 합니다.

기존의 가치에 공손하게 순응하고, 케케묵은 질서를 추구하며, 자발적으로 많은 노력을 하면서도, 적은 보상에 기분 좋게 만족하는 사람이 돼야만 비로소 ‘성실’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쯤 되면 성실한 사람은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성실이라는 가치는 이미 유효기간이 지난 것일까요?

건강한 선순환의 흐름이 끝났기 때문에 이제는 성실을 집어 던지고 단기적 찬스를 노리는 것이 유리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정성스럽고 참된’ 진정한 성실은 여전히 유효한 가치입니다.

게임이론에 의하면 성실한 전략은 늘 우월한 전략입니다.

협력 게임을 시뮬레이션하면, 협력하는 플레이어가 결국 승리하게 됩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완벽하게 성실할 수는 없습니다.

너무 성실한 사람이 많으면, 일시적으로 불성실한 전략이 유리해집니다.

불성실한 전략이 많아지면 다시 균형을 찾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이를 어려운 말로 빈도의존성 선택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성실은 늘 다수가 선택하는 우월한 전략입니다.

 

사탄의 전술중의 하나는 불성실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자신의 일에 부지런한 사람들을 유혹하지 않고 항상 게으른 사람,  즉 불성실한 사람들을 골라서 유혹해 이용했습니다.
다윗이 범죄를 저지른 것 역시 부하들이 모두 전장에 나가 국가를 위해 열심히 싸우고 있을 때 혼자서 지붕 위를 거닐고 있다가 사탄의 유혹을 받았습니다.

지도자로서 불성실했을 때 범죄한 것입니다.

 

성실이 성공의 친구이듯 불성실은 실패의 가장 친한 친구입니다.

비록 성공했더라도 불성실한 사람에게는 그 성공이 오래 가지 못합니다.

반대로 성실한 사람은 실패했더라도 그것이 끝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성실한 사람은 실패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그 실패는 결론이 될 수가 없고 재도전의 시작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실한 사람에게 실패는 성공을 위한 주춧돌이며 새로운 도전이 됩니다.

 

시편기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삶의 지표로서 “성실로 식물을 삼으라”(시 37:3)고 했습니다.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 시편 37편3절 -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노동자의 윤리로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 골로새서 3장22절 -

 

우리는 노력, 성실, 근면, 정직, 희생 등 협력적인 사회적 가치가 뭇사람의 조롱을 받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이러다가 사회가 무너지는 것이 아니냐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심지어 과거의 가치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습니다.

 노력이나 성실은 과거 농경사회에나 적합한 덕목이므로 현대사회에는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엉뚱한 4차 산업혁명 시대나 인공지능(AI)을 들먹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것은 모두 틀린 말입니다.

 

사탄 마귀는 불성실한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유혹을 합니다.

그러나 성실한 사람에게는 유혹의 틈을 만들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성실한 사람을 지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성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히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

-시편 31편23절 -

 

성공하는 사람의 특징은 성실히게 항상 노력하고 열심히 뛰어다닌 사람입니다.

물론 세상에는 복권에 당첨되거나 도박에서 거금을 따는 등 뜻밖에 횡재를 하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수억 분의 일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성실만이 성공을 만들어내고 사탄의 유혹을 피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실한 사람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가난하여도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부유하면서 굽게 행하는 자보다 나으니라"  - 잠언 28장6절 -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나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곧 넘어지리라"  - 잠언 28장18절 -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 이사야 11장5절 -

 

- 존 밀턴(John Milton, 1608-16074) -

존 밀턴(John Milton)은 17세기 영문학을 대표하는 청교도 작가이자 위대한 서사시인입니다.
어려서부터 학문과 예술 분야에 재능을 보였습니다.
17세 때 케임브리지 대학 크라이스트 칼리지에 입학해 24세 때 문학석사로 졸업할 때까지 최초의 걸작 「그리스도 탄생하신 날 아침에」(1629)를 비롯한 여러 편의 소네트를 썼습니다.

만년의 밀턴은 『실락원』, 『복락원』, 『투사 삼손』 등 3대 걸작 서사시를 집필했습니다. 

존 밀턴은 재능도 재능이지만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더 나은 시를 쓰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4시에 일어났다고 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하십시오.

만일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골3:23)하면 주님은 우리의 수고를 통하여 우리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필요까지도 채워 주실 것입니다.

 

성실은 앞으로도 여전히 정답입니다.

성실은 사회가 만들어낸 인위적인 도덕률도 아니고, 지배계층이 노동자에게 세뇌시킨 행동 지침도 아닙니다.

성실은 한 인간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성공 요인이자 기질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공의 디딤판으로 주신 가장 확실하고 겸손한 교훈입니다. 평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