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취이모(勿取以貌)
- 외모(용모)로 사람을 취하지 말라 -
옛날 백성들의 사는 모습을 살피기 위해 고을의
원님이 나무꾼으로 변장을 하고 마을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살피고 있었습니다.
한참 돌아다니다 보니 목이 말라서 물을 얻어 먹으려고 주위를 둘러 보니 마침 부잣집이 근처에 있었습니다.
원님은 마침 출출하기도 해서 부잣집에서
먹을 것도 좀 얻어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그 집 대문을 두드리며 ‘이리오너라’하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하인이 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무슨 일이오?”
"내 지나가는 나무꾼인데 목이 말라서 그러니 시원한 냉수 한 사발 좀 얻어 마실 수 있겠소?"
하인은 나무꾼 차림의 원님을 아래 위로 훑어 보더니
“나무꾼 주제에 무슨 양반 말투를… 기다려 보시오.”하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주인 영감이 무슨 일인가 하고 물었습니다.
하인이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영감이 말했습니다.
“나무꾼님이 목이 마르시다는데 바가지로 퍼다 드리거라.”
하면서 하인에게 눈을 찡긋하였습니다.
그러자 하인이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더니
바가지에 물을 담아 나왔습니다.
원님이 “고맙소.”하고 손을 내밀자 하인이 냅다 물을 원님에게 끼얹었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행패요?"
그러자 안에서 주인 영감이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아직 갈증이 가시지 않은 모양이구나, 한 바가지 더 퍼서 안겨드리거라.”
원님이 어찌하는가 보려고 가지 않고 계속 서있으니
하인이 바가지에다 물을 퍼와서는 원님에게 또 끼얹었습니다.
“내 보자보자 하니 해도 너무 하는구만.
부잣집의 인심이 고작 이 정도란 말이오?”
그러자 주인영감이 나와 말했습니다.
“이놈아, 나무꾼이면 나무꾼답게 머리를 조아리고 물을 구걸해도 줄까말까 한데
어디와서 건방지게 양반말투를 해가며 머리를 꼿꼿이 들고 물을 달라고 하느냐?
어서 썩 물러가거라.”
봉변을 당하고 동헌으로 돌아온 원님은 관복으로 갈아 입고 다시 부잣집으로 갔습니다.
원님을 보자 주인영감은 버선발로 뛰어나와 원님을 맞아 안으로 모셔 들였습니다.
그리고는 하인에게 시켜 진수성찬을 차려 내오게 하였습니다.
이윽고 상이 차려져 나오자 원님은 음식과 술을 옷에다가 들이 부었습니다.
이 기괴한 모습을 지켜보던 주인영감이 당황한 기색으로 원님에게 물었습니다.
“차린 상이 초라하였으면 용서해 주십시오.
소인이 다시 준비하여 내오겠습니다.”
그러자 원님이 말했습니다
“ 이 상의 음식과 술은 사람을 보고 차린 것이 아니라
내 옷을 보고 차린 것이니 마땅히 옷이 먹어야 하지 않겠소?”
“무슨 말씀이신지 소인은 도무지 이해를 못하겠사옵니다.”
“사람은 다 같이 귀하거늘 나무꾼 옷을 입었다고 천한 대접을 하고
관복을 입었다고 귀한 대접을 하는 것은 무슨 도리이냐?”
그러자 주인영감이 원님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 보고는
무릎을 꿇고 죽을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 야고보서 2장 1-4절 -
우리는 종종 사람의 외모만을 보고 경솔히 그 사람에 대해 편견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결정입니다.
돈 없는 사람은 교회도 다니기가 어렵다는 말을 들어보신 일이 있으십니까?
사람들의 명함에 박사가 몇 개씩 붙어 있고 무슨무슨 총재, 회장 등 감투가 수두룩한 것을 보신 일이 있으십니까?
이 사회가 돈 있고 높은 명예를 가진 자를 높이고 돈 없고 학식이 없고 명예가 없는 사람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 그룹 명예 회장이신 정주영씨가 어느 날 험한 자동차를 타고 어떤 호텔에 갔더니 호텔 안내원이 차를 보고 차를 탄 사람이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판단하여 손가락질을 하면서 저 쪽으로 갔다 차를 세워라고 했다는 실화는 현 시대를 잘 설명해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야고보서가 쓰여질 당시의 사회도 외모로 사람을 차별하는 일이 심했습니다.
그런 사회적인 풍조가 심지어는 교회에까지 침투되어 교회에서도 돈 있는 자는 대우받고 가난한 자는 천대를 받았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교회 안에 번져나가고 있기 때문에 이를 차단하려고 편지를 써 보낸 것입니다.
성경은 세상 사람들이야 어떻든 주님을 주로 고백한 성도들은 영광의 주님을 주로 모시고 사는 형제와 믿는 자답게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여 대우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아름 다운 옷을 입고 손에 금가락지를 끼고 오면 그 사람을 특별히 대우하여 자리를 챙겨주고 혹 가난한 자가 더러운 옷을 입고 들어오면 자리를 챙겨주지 않고 어디든지 앉으라고 하면 이것이 자기의 이익을 노려 악한 생각으로 사람을 구별하여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한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나, 금가락지를 낀 자란 돈이 많고 높은 지위를 가진 자나, 또는 많이 배운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가졌거나 경제적으로 부유한 자를 말하는 것이며, 가난하고 더러운 옷을 입은 자라고 하는 자들은 돈도 없고 명예나 지식이나 사회적 지위가 없는 자를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의 외적 사정에 따라 사람을 존대하거나 천대하지 말라고 합니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그 사람을 위한다기 보다는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악한 생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2장 11절에는 “하나님께서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교회에는 일부 유대인들이 신앙생활은 바르게 하지 않고 하나님의 택함 받은 민족이라는 것을 은연 중에 내세우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 사도는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각 사람의 행위에 따라 판단하시고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하면서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는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외모는 민족 혈통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유대인이라고 해서 봐주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웠다가 사울이 불순종하여 실망하신 후 사울을 버리고 다윗을 왕으로 세울 때 있었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사무엘에게 베들레헴에 사는 이새의 아들 중에 한 사람을 왕으로 선택했으니 가서 기름을 부으라고 했습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지시대로 이새가 사는 베들레헴에 가서 제사 자리에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불렀습니다.
사무엘은 이새의 아들 중에 엘리압을 보자 하나님이 그를 왕으로 선택한 줄 알고 엘리압에게 기름을 부으려고 했습니다.
그 용모와 신장이 다른 아들들보다 뛰어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시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사무엘상 16장7절).
하나님은 우리의 외적인 것을 보시고 판단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속마음을 보시고 아들딸 삼아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도록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기준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종들이 사람이 만든 기준을 가지고 하나님께 속한 종들을 판단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창조자 하나님을 깔보는 결과가 됩니다.
보통 우리는 외적 조건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남자 친구 고를 때, 자녀를 결혼시키려고 선보게 할 때 먼저 무얼 봅니까?
대부분 외모를 먼저 봅니다.
교회에서 목회자를 구할 때도 외모나 조건을 따져봅니다.
인상이 좋은지 설교는 잘하는지, 어느 신학교를 나왔는지 학벌을 따집니다.
직장에선 사람을 써 먹기 위해 사람을 뽑는 것이니 여러 조건과 능력을 따져 평가합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외모보다 중심을 봐야 할 것입니다.
요즘 세상 인심은 인품이나 인생을 얼마나 바르게 살려고 노력했는지 이런 것은 별로 평가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재산을 얼마나 모았는지, 또 얼마나 힘 있는 자리에 있는지 그런 게 높은 점수를 얻습니다.
재물이 많고 겉 모습이 번듯해야 대우해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본문 2절 이하를 보면서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간 사는 세상은 참 똑같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옛날 유대인 회당에서도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으로 잘 차려 입은 사람들은 회당장이 좋은 자리를 배석해주고 허름한 옷차림의 가난한 사람들은 말석에 앉게 하는 등 대 놓고 무시한 것 같습니다.
야고보의 멀씀은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모인 회당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야고보 사도가 오늘 우리의 모습을 보고 뭐라고 하실까요? 평안!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
- 요한복음 7장 24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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