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과 칼럼

“꼭 아셔야 할 일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가족사랑 2022. 1. 28. 21:50


9.11 테러 2년 뒤인 2003년 9월 11일

버지니아 주 노포크의 지방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전해진 사연입니다.

그의 이름은 로버트 매튜, 다음은 그의 증언입니다.


9.11 몇 주간 전이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첫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아내는 캘리포니아에 사는 언니를 만나러 갈 계획을 세웠습니다. 

나는 공항으로 차를 몰면서 하나님이 아내와 함께 하셔서 안전한 여행을 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아멘!' 하는 순간 텅 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 크게 흔들렸습니다.

타이어가 터진 것입니다.

나는 될 수 있는 한 신속히 타이어를 갈아 끼웠습니다.

그러나 끝내 탑승하려던 비행기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무척 속상해 하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뉴욕에서 소방관으로 종사하다 은퇴하신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아버지는 아내가 타려던 여객기의 넘버를 물었습니다.

나는 우리가 놓친 비행기 번호를 알려드렸습니다.

아버지는 그것이 바로 세계 무역 센터 남쪽 타워에 충돌한 비행기라고 알려주었습니다.
나는 너무 놀라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계속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구조 활동을 도우러 현장에 가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난 이대로 앉아만 있을 수가 없다. 뭐든 할 일을 해야겠다.”
나는 물론 아버지의 안전이 걱정이었습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아버지가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몇 마디 만류해보았지만, 아버지의 결심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전화를 끊기 전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손자 잘 돌보거라.” 

이것이 내가 아버지로부터 들은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아버지는 9.11 테러 현장에서 구조 활동을 하다 돌아가셨습니다.  
아내의 안전을 빌었던 나의 기도가 응답되었다는 기쁨은 금새 분노로 바뀌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향해 분노했고 아버지와 나 자신에 대해서도 분노했습니다.

나는 근 2년간이나 아버지를 앗아 가신 하나님을 원망하며 살았습니다.

내 아들은 할아버지를 영영 모르게 되었고, 아버지는 예수님을 영접하실 기회를 잃었습니다.

이제 나는 아버지께 한 마디 작별인사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일어났습니다. 

두 달 쯤 전입니다. 

아내와 아들과 함께 집에 앉아 있었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습니다. 

내가 아내를 바라보자 아내는 이 시간에 올 사람이 없는데 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나는 문을 열었습니다. 

젊은 부부가 아이를 안고 서 있었습니다.  
처음 보는 남자는 나를 향해

'댁의 아버지 이름이 제이콥 매튜세요?'

라고 물었습니다.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는 와락 내 손을 잡으며 말했습니다. 

“저는 아버님을 뵌 적이 없지만 그 아드님을 뵈니 영광입니다.”
그는 설명했습니다. 

세계 무역센터 건물에서 일하던 자기 아내가 

테러 공격 당시 임신한 몸으로 건물 안에 갇인 채, 

무너진 건물 더미에 깔려 있는 것을 나의 아버지가 구해주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이런 사람들을 위해 자기 생명을 희생하셨다고 생각하니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남자는 말을 이었습니다. 

“꼭 아셔야 할 일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이번에는 그의 아내가 설명했습니다. 

아버지의 구조를 받으면서 그녀가 전도했고 아버지는 예수님을 영접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다시 흐느껴 울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이제 압니다. 

내가 하늘나라에 가면 아버지가 예수님 옆에 서서 나를 환영해주실 것을 압니다. 

그리고 이 가족들이 아버지께 직접 감사 인사를 드릴 것을 압니다.」

 
그들은 아기가 태어나자 

자기 생명을 희생하여 엄마와 아기를 살려낸 그 분을 기념하여 

아기 이름을 '제이콥 매튜'라고 지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한 가지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모든 것을 다스리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같지 않습니다.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너희의 길은 나의 길과 다르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하늘이 땅보다 높듯이, 나의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다.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 땅을 적셔서 싹이 돋아 열매를 맺게 하고, 씨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사람에게 먹거리를 주고 나서야, 그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나의 입에서 나가는 말도,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고 나서야, 내가 하라고 보낸 일을 성취하고 나서야, 나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 이사야 55장  811절 -  

 

어떤 사람이 배를 타고 가다가 배가 난파되어 표류하다가 무인도에 닿았습니다.
그는 같이 항해하던 동료들은 다 죽었는데, 자신만 살았다는 사실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는 구조될 때까지 지낼 움막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바닷가에 나가 고기를 잡아다가 나뭇가지를 비벼서 불을 피워 구워 먹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조개를 잡으러 나갔다가 돌아와 보니, 피워놓은 불이 움막에 옮겨붙어서 다 타버리고 말았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까지 내리는 바람에, 나뭇가지를 비벼 애써 피워놓은 불길마저 사그라들며 연기만 풀풀 피어오를 뿐이었습니다.

이제는 비를 피할 움막도, 음식을 해먹을 불씨조차도 그에게 남아 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는 생명을 건졌다는 감사도 잠시, 언제 구조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모든 걸 잃게되어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하나님, 왜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원망과 슬픔으로 눈물을 흘리며 잠이 들었는데, 잠결에 그의 귀에 뱃고동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곧 그 배가 무인도로 와서 그를 구출해주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구조해준 뱃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여기에 사람이 있는 줄 알고 왔습니까?”
“이 섬을 지나가다 보니 여기서 불빛이 보였습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곧이어 연기가 피어오르던걸요. 그래서 뱃머리를 돌려 이곳에 오게 되어 당신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는 존재”라는 말을 합니다.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 만큼의 세계를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세모 같은 생각을 하면 세모 같은 삶을 사는 것이고, 네모 같은 생각을 하면 네모 같은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절망적인 생각을 하면 절망적인 삶을 사는 것이고, 희망적인 생각을 하면 희망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겁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수준으로 생각하면 사람이 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생각하는 수준으로 생각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삶이 어려울 때 사람들이 많이 하는 말은 ‘길이 안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남의 탓, 사회 탓, 나라 탓, 시대 탓, 정치인들 탓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남 탓을 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길이 없어서 안 보이는 게 아니라 우리의 시각이 너무 좁아서 그럴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전혀 다른 새로운 길을 갖고 계십니다. 

길이 없다고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볼 때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차원에서는 우리가 모르는 수백, 수천, 수만의 길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절박한 상황에서 간절히 기도할 때마다 우리가 모르는하나님의 길이 보입니다.

하나님께는 우리가 못보는 길, 생각하지 못하는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에 길을 내십니다.

하나님은 사막에도 강물을 내십니다.

하나님은 바다 밑에도 지름길을 내십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 속에 갇혀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언제나 새길을 내십니다.

믿음이란 눈에 보이는 사람이 낸 길이 아닌,  'Way Maker'이신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걷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들고 인도하시는 길이 당장은 고난의 길 처럼 보입니다. 시련의 길 같아 보입니다. 패배의 길 같습니다.

 늦게 가는 길 같고, 뒤쳐지는 길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손을 잡고 한 걸음 한 걸음 가다 보면 폭풍이 몰아치는 그 길이 내가 생각했던 길보다 훨씬 빠른 지름길입니다.

 

그래서 인생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봐야 합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의 아들,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은 어린 나이에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가면서 인생의 모든 꿈을 포기했을 겁니다.

그대로 자랐더라면 부잣집 아들로 귀여움 받으며 잘살았을 텐데, 그 꿈이 십 대 때 산산조각 나버렸습니다.
그 당시 한 번 노예로 팔리면 평생 노예입니다.

상식적으로 풀려날 길이 없습니다.

행복한 삶을 살 소망이 끊어졌습니다.

고향 땅으로 돌아가 아버지와 가족들을 다시 만나리라는 희망도 사라졌습니다.

애굽나라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으로 팔려가 그곳에서 형편이 좀 나아지나 싶더니 또 누명을 쓰고 감옥으로 끌려갔습니다.

요셉은 자기 인생이 끝없이 절망으로 내려가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이 내리막길이라고 생각했던 그 길이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오르막길이었습니다.

축복으로 가는 길이었고,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는 길이었습니다.

그것이 애굽과 열방을 살리는 축복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길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요셉이 정상적인 코스로 애굽에 가서 경쟁하여 총리대신까지 올라갈 길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노예로 떨어진 그 길은 총리대신으로 가는 축복된 길이었습니다.

이 길이 저 길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우리의 지식과 경험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신묘막측한 방법으로 우리가 모르는 길, 도저히 연결될 수 없을 것 같은 길들을 연결시켜서 길을 내셨습니다.

 

"네 갈 길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만 의지하여라. 주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 시편 37편5절 -

 

우리는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걸어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걸어가야 하는 이 길은 세상 사람들이 가는 길과는 다른 길입니다. 

세상의 관점으로 보면 사실 편하고 좋은 길이 아니라 좁고 험한 길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가기를 원치 않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길은 하나님의 사람이 반드시 가야 하는 거룩한 길이고 진리의 길입니다. 

왜냐하면 그 길은 생명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평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 요한복음 14장 6절 -